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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인
인터뷰윤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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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의 말처럼, 에픽하이의 음악에 세계관이 있다면 항상 비가 내렸을 것이다. 때로는 짙은 감정으로 침잠하고, 날이 선 비판이 서늘하게 스치기도 하며, 따스한 희망이 폭우를 헤집고 스며들던 그들의 음악처럼. 그리고 이제 타블로는 RM과 함께한 신곡 ‘Stop The Rain’에서 그 비를 멈추겠다 말한다.

5월 2일 방탄소년단 RM 씨와 함께한 타블로 씨의 싱글 ‘Stop The Rain’이 공개돼요. 어떻게 시작된 곡인가요?(인터뷰는 4월 10일 진행)
타블로: 대략 2년이 넘었는데요. RM의 곡에 제가 함께했던 ‘All Day (with Tablo)’를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고, RM이 입대 전부터 “이제 형의 곡으로도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함께 얘기를 나눴어요. 저는 ‘All Day (with Tablo)’와 달리 감성 위주의 곡이 좋겠다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RM한테 물었더니 ‘맵더소울(Map the Soul, 과거 에픽하이의 독자적인 힙합 레이블)’ 시절의 음악이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제가 몇 곡을 보냈는데 RM이 ‘Stop The Rain’의 데모 스케치를 듣고 “형과 ‘비’를 주제로 만나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했어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영어로 가사를 쓰고 싶다고 했고요.

특별히 ‘비’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요?
타블로: 만약 저희에게 세계관이 있다면 ‘비 오는 날’ 자체가 세계관이라 생각해요. ‘비’, ‘rainy day(비 오는 날)’ 같은 주제는 에픽하이의 음악에도 자주 등장했으니까요. RM의 노래 중에도 ‘forever rain’이나 방탄소년단으로서 만든 음악에도 비 오는 정서가 항상 있었어요. ‘봄날’도 왠지 가랑비가 내릴 듯한 분위기잖아요. 서로의 음악에서 나오는 그런 정서를 좋아했고, 저희에게 ‘비’의 의미가 크다고 느꼈어요. ‘비 내리는 날’의 이미지가 젊은 날의 역경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요. 비가 내리다 멈추고, 해가 뜨기도 하면서 극복했다고 느끼죠. 그런데 비는 반드시 또 와요. 희망도 있지만 고통에도 익숙해지라는 거죠. ‘저번에는 그냥 나가서 흠뻑 젖었으니까 다음에는 더 준비를 잘해야지. 우산을 들거나 우비를 입거나.’ 이런 게 젊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아이러니한 건, 이번 노래의 제목이 ‘Stop The Rain’이잖아요. ‘비를 그치게 하려고 한다.’ 비 맞는 삶이 지겨운 거죠.

왜 멈추고자 하는 걸까요?
타블로: 20년 넘게 음악을 하면서 다양한 역경들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다 아는 일도 겪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고. 그래서 이제 단단해요. RM도 연습생 시절부터 지금의 방탄소년단이 되기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분명 역경이 있었을 테고요. 그러면서 그도 단단해졌고 비 맞는 것에 익숙할 거예요. “우산이 없어도 괜찮아. 좀 맞지 뭐.” 할 정도로 익숙한 거죠. 그래서 ‘Stop The Rain’은 “네가 맞고 있는 비를 멈추게 만들게.”라고 강하게 얘기하는 단계예요. 예전의 에픽하이 음악은 “비가 계속 내리겠지만, 함께 맞아줄게.”였다면, 이 노래는 ‘비를 멈추고 싶다.’는 감정으로 생각했어요.

그런 노래라면 작업 과정에서 RM 씨와 많은 대화를 나눴겠어요.
타블로: ‘All Day (with Tablo)’ 때 알게 됐는데, RM이 작업하면서 대화를 많이 나누는 스타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이 곡을 작업할 때 제가 계속 대화를 청했어요. 노래 하나로 주고받은 문자가 몇백 건은 될 거예요. 에픽하이로 작업할 때는 각자 알아서 하는 편이었는데, RM은 같은 팀이 아닌데 팀이 된 기분이라 색달랐어요. 항상 제게 음악은 외로운 작업이었고, 외로워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작업하면서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어요. 그 영향으로 에픽하이의 작업 방식도 살짝 닮아가고 있어요. 저희가 20년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미쓰라와 제가 작업하면서 대화를 더 많이 해요.(웃음)

곡의 구성도 그런 대화 과정에서 정리됐을까요? 각자의 벌스(verse)가 한 번씩 등장하고 후렴구가 최소한으로 반복돼서 비교적 심플한 인상이에요.
타블로: 원래 RM의 벌스 이후에 잠깐 잔잔한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제 입장에서 중요한 두 마디의 가사를 더 넣었어요. 그런데 RM이 솔직하게 “형, 이 부분은 감정선이 깨지는 것 같아요.”라고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그 두 마디는 듣는 입장에서 중요한 게 아니라 제가 원해서 만든 느낌인 거예요. 그래서 과감하게 날렸어요.(웃음) 일주일 후에 RM이 미안했는지 “형, 너무 짧아졌나요?” 물었는데 “아니, 나는 딱 좋은데? 듣다 보니 이게 맞는 것 같아.” 했죠.

소리의 구성 또한 그 요소가 아주 많다거나 직접적인 빗소리가 자주 등장하지 않는데, 관념적인 비의 이미지는 명료해서 흥미로웠어요. 곡의 사운드를 완성할 때 중시한 게 있었나요?
타블로: 저는 노래를 최대한 비우면서 완성하는 스타일이라, 작업할 때 제일 먼저 불필요한 채널을 다 날려버려요. RM도 동의한 게 “필요한 것들만 하자.”였어요. 음악 프로듀서에는 두 종류가 있다 생각하거든요. 프로그래머처럼 사운드 설계가 완벽하고 테크니컬한 사람들이 있다면, 저처럼 100% 느낌만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느 쪽이 더 좋은 건 아니고 각자의 장점이 있는데, 남준이도 저랑 비슷한 방식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깨지는 소리가 있어도 여기서 전달해야 하는 감정이 그 소리 때문에 가능하다면 상관없는 편이에요. 잡음처럼 들리더라도 감정을 이끌어낼 소리, 단어, 박자라면 무조건 넣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노래의 여러 맥락이 사운드에서의 보컬 배치를 통해 물리적으로 다가오기도 해요. 예컨대 타블로 씨의 벌스가 먼저 정중앙에서 등장하고 후렴구를 기점으로 RM 씨가 원거리에서 다가오다가, 마침내 함께 만나 대화한다는 감각을 주더라고요.
타블로: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야지.’ 했던 건 아니지만, 노래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선택이 이뤄진 것 같아요. 처음에는 RM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대화하듯 들어오지 않고 깔끔한 소리였어요. 그런데 RM이 “형에서 제 목소리로 넘어갈 때 대화가 이뤄지는 것처럼 느껴지면 좋겠다.”고 해서 보컬을 아예 멀리 배치해보기도 하고 계속 조절을 했어요. 그리고 원래 함께 랩을 하는 파트가 아예 없었어요. RM의 벌스에 제가 “Be positive.”라고 말하는 게 있는데, 그것도 RM이 “내 목소리를 지우고 형이 녹음해서 우리가 대화하는 것처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 과정에서 가사를 새로 쓰고 편집을 더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것처럼 하게 됐어요. ‘Stop The Rain’은 RM처럼 저보다 어리지만 높게 날아오르는 친구와 함께해야 하는 노래인 것 같아요. 저도 한때 그런 시기를 거쳤으니까. 그래야 의미가 있어요.

한 곡을 완성하기까지 복잡한 선택들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전하고 싶었던 정서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타블로: RM이 저한테 “형, 우리가 전달하는 감정이 무덤덤한 거예요? 아니면 감정적으로 더 느끼는 거예요?”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나는 겪은 게 많고 지쳐서 그런지, 내 말이 아무리 날카롭고 아파도 무덤덤하다.”라고 답했더니, RM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무덤덤한 게 더 슬프죠.”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RM이 저랑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인생의 시점은 달라요. 그리고 이 친구가 느낀 아픔 중에는 제가 겪어보지 못한 삶이 있어요. 그래서 RM의 목소리는 저의 무덤덤함과는 다르게 어떤 뾰족함도 있으면서, 아직 답을 알 수 없는 미지의 느낌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RM 벌스의 첫 라인은 RM이 제가 한 방송에서 했던 걸 약간 비틀어서 쓴 거예요. 원래 데모의 제 파트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었지만, RM의 가사를 보니 이제 이 친구의 이야기 같았어요. 그러면서 제 벌스를 새로 쓰게 됐는데 예전의 경험들이 막 나오더라고요. 아마 RM도 그랬을 텐데, 그럴 때는 ‘이렇게 써도 되나?’ 생각 안 하고 날것으로 써야 돼요. 혹시 몰라서 양쪽의 팬분들에게 말씀드리자면 걱정하실 건 전혀 없어요. ‘‘Stop’ The Rain’이고, 그만큼 강하다는 거니까. 오히려 희망이 있는 노래죠.(웃음) 

여러 방면에서 두 분의 세심함과 서사가 담긴 곡인데, 꽤 긴 시간이 지나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네요.
타블로: 많은 분들이 왜 노래를 만들고 2년 동안 안 냈는지 궁금하실 거예요.(웃음) 처음에는 완성한 직후에 발매하려다가, RM이 입대했는데 노래만 나오면 이상할 것 같아서 6개월 후에 내려고 했어요. 고민을 하다 1년이 지났고, 그다음에는 안 내야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남의 일기장이 제 손에 맡겨진 느낌이었거든요. RM이 이 노래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2년이 지나갈 때쯤 RM에게 연락이 왔어요. “형, 저 곧 제대하게 생겼는데 아직까지 발표 안 하는 의도가 뭐냐.”(웃음) 솔직하게 “남준아, 너의 이런 감정이 담긴 곡을 내가 내도 되나 싶어서 기다리다가 안 낼까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죠. 그랬더니 무슨 말이냐고, “지금도 그 감정 유효하니까 내요.” 이러는 거예요.(웃음) “오케이. 미안해.” 하고 발표하게 됐어요.

2년 전 인터뷰에서 이 싱글 작업에 대해 언급하시기도 했고, 작년에는 솔로 앨범의 가능성도 얘기하신 적이 있잖아요. 이번 싱글이 솔로로서의 또 다른 작업물과도 연계되는 걸까요?
타블로: ‘열꽃’ 이후에 솔로 앨범을 내려 준비했고 ‘Stop The Rain’을 중심으로 다른 곡들이 더 있었는데, 너무 어두워지는 거예요. 저는 앨범을 만들 때 머리와 마음 속의 무드를 맞추는 편이거든요. ‘열꽃’으로부터 10년이 지났으면 제가 달라져야 하는데, 무덤덤하지만 비슷한 생각들이 있더라고요. 안 좋은 부분을 건드리면 진짜로 힘든 거죠. 그래서 이 노래를 안 내야겠다고 결심할 때쯤 솔로 앨범도 영원히 안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솔로 곡들이 에픽하이 앨범의 수록 곡으로 들어가 있는데, 그걸 합치면 ‘열꽃’ 이후로도 스무 곡이 넘어요. 언젠가 그걸 플레이리스트로 나열해봤는데, 솔직히 제가 생각했을 때 명반이에요.(웃음) 그런데 앨범으로 내기는 싫었던 거죠. 제 안에서 나와야 하는 이야기였지만, 한곳에 모아서 주목받게 하는 건 싫었던 듯해요.

그럼에도 ‘Stop The Rain’의 발매를 결심하셨으니 그 자체로 의미가 있겠어요. 두 분이 각자의 무언가를 정리한다는 느낌이었어요.
타블로: 어떤 걸 정리하는 행위라는 말이 와닿아요. 이 노래를 내는 게 맞는 것 같긴 해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RM도 돌아오면 새로운 음악에 집중해야 할텐데, 그 전에 얘기하고 정리해야 하는 감정들일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이 노래를 긴 장마철이 시작되기 전에 사람들에게 건네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저마다의 비를 겪고 있기 때문에, 이 곡처럼 아픈 이야기들도 서로에게 털어놓으면서 기댈 곳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죠. 저 또한 요즘은 유튜브도 하면서 즐거운 콘텐츠를 하고 싶은 단계거든요. 무거운 감정들도 제 정서니까 버리진 않을 거지만. 이 노래를 지금 내고, 그 다음의 일을 하는 게 맞아요.

이 노래에서처럼 진지함과 서정성을 드러내는 타블로 씨가 있다면, 한편으로는 유튜브에서 보이는 에픽하이 멤버들과의 유쾌함도 있으시잖아요. 그 상반된 정서가 계속 양립하나요?
타블로: 저는 누구를 만나든 똑같아요. 가족들과 있을 때, 멤버들과 있을 때, 유튜브를 찍을 때, 녹음실에 있을 때도 다 똑같아요. 그런데 저를 만난 사람들 중 절반은 그걸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자신에게 더 점잖고 고개 숙여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분명 있어요. 반대로 누군가는 음악만으로 저를 접하다가 직접 만나면 제가 예전의 음악처럼 한없이 진지하길 바라기도 해요. 하지만 제가 누가 원한다고 해서 그런 면만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진지하기도 하지만 유튜브처럼 바보 같은 모습도 그냥 내비치는 사람이에요. 연기할 줄 모르거든요. 유튜브의 저도, ‘Stop The Rain’의 저도 다 저예요. 그날 뽑은 크레용 색깔이 검은색일 수도 노란색일 수도 있는 거죠. 제가 검은색을 칠했다고 그 색만 지닌 사람은 아니니까요.

사실 유튜브에서의 모습은 오래전부터 공존했던 에픽하이만의 에너지와 유머 코드이기도 해요.
타블로: 저도 미칠 것 같아요. 어제 유튜브 촬영을 했는데, 거기서 하던 것과 지금 대화도 격차가 커서 스스로 적응이 안 돼요.(웃음) 몇 달 동안 에픽하이 유튜브에 웃긴 섬네일만 올라갔는데, 갑자기 ‘Stop The Rain’이 그사이에 올라가야 돼요. 팬분들도 좀 당황할 것 같아요. 노래 듣고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하고, 며칠 후에 유튜브 콘텐츠 올라오면 “원래 어떤 사람이었지?” 하실 것 같아서요.(웃음)

그렇게 사람들이 헷갈릴 만큼, 에픽하이 유튜브 채널을 꽤나 본격적으로 하고 계시잖아요.(웃음) 
타블로: 솔직히 말하면 심심했어요. 저희가 북미 투어할 때 버스를 타고 같이 생활하거든요. 공연마다 색다르고 즐겁지만, 그사이에 함께 지낼 때는 새로울 게 별로 없어요. 그래서 브이로그 같은 걸 찍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은 거예요. 저희도 “이게 원래 우리 모습인데, 사람들이 까먹은 것 같아. 팬들 말고는 우리를 진짜 뮤지션으로만 생각하나 봐.” 했어요.(웃음) 그래서 “우리 어차피 모이는 거 영상도 찍어서 올리자.” 하다가 지금 상황까지 와서.(웃음) 이 인터뷰가 나갈 때도 분명히 100만 구독자는 아닐 것 같아요. 그래도 팬들이 재밌으면 좋잖아요. 음악은 또 진지하게 하고.

유튜브 운영에도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 에픽하이 채널은 제작진이 있지만 DIY에 가까워 보였어요.
타블로: 유튜브를 방송처럼 하고 싶진 않았어요. 에픽하이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코드가 있다 보니 저희끼리 하는 게 나을 듯했어요. 그러다 운 좋게 그런 코드를 잘 이해하는 분을 만나서, 저희가 찍고 편집하는 것과 다를 게 없겠다 싶었죠. 처음부터 저희 채널 PD님과 얘기한 게 있어요. “바로 PPL이나 높은 조회 수를 바라지 않는다. 에픽하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신 있는 건 지구력이다. 우리는 물이 안 나와도 한자리에서 땅을 판다. 처음부터 주목받으면 일로 인식해서 부담스러울 테고 무언가 지켜야 될 텐데, 그러지 말고 천천히 합시다.” 어쩌면 평생할 생각으로 시작하는 거니까요. 게스트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냥 볼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했어요. 그랬더니 요즘 저희 채널이 유튜브 ‘골든 에이지’에 올라오던 영상 같다는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콘텐츠에 큰 자본이 투자되지 않고, 조명 하나 없던 시절 같다고요.

그런 선택은 지금의 독립 레이블 아워즈(OURS)처럼 최소한의 인원에 기반한 빠른 의사결정 때문에 가능한 듯해요.
타블로: 저는 음악을 만들 때 비우는 작업을 하듯, 불필요한 건 다 비워요. 젊었을 때 술을 좋아했는데, 하루를 사는 데 방해가 돼서 지금은 거의 안 먹거든요. 저희 회사 전체 인원이 어떤 회사의 한 부서보다 적을 거예요. 농담이 아니라 모든 결정이 3분 내로 이뤄져요. 물론 안 좋은 일, 힘든 일이 생기면 저희 책임이 되겠죠. 그런데 어차피 힘든 일이 생기면 다 자기 책임이 돼요. 저는 ‘타진요’ 사건 시작되기 직전까지 인맥 넓은 연예인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일이 터지자마자 3시간 이내로 혼자가 됐거든요. 그래서 좋은 일도 제 사람들과 집중하면서 만들고 싶어요. 가족들, 함께 일하는 파트너, 직원들. 딱 그렇게 바운더리 내의 사람들을 지키는 거죠.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과 재밌게 잘하면 돼요.

아껴야 하는 주변과 가족의 존재가 클 테니까요. 요즘도 따님에 대해서 종종 언급하시는데, 관심사와 생각을 나누는 친구 같다는 인상이에요.
타블로: 집에 열다섯 살짜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는 느낌이라, 되게 복받았다고 생각해요. 하루가 어릴 때부터 음악과 영화도 좋아하고, 열한 살, 열두 살 무렵부터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졌어요. 모두 하루가 스스로 발견한 취향이에요. 그래서 저희 셋이 있으면 스타일이 다 달라요.(웃음) 하루가 저한테 플레이리스트를 보내주는데 정말 취향이 좋고 와이드하게 들어요. 저도 계속 음악을 찾아 듣지만, 딱 그런 걸 빨리 캐치하고 좋아하는 나이라서 저한테도 도움이 돼요. 요즘은 “아빠, 내가 꼭 봐야 되는 이 영화 같이 보고 싶어.”라고 해서 ‘타이타닉’이랑 ‘금발이 너무해’도 같이 보고, 최근에는 ‘굿 윌 헌팅’을 같이 봤어요. 그리고 혜정이도 음악을 좋아해서, 제 멤버들보다는 교류가 잘되죠.(웃음)

그렇지만 그 두 멤버와도 23년째 팀을 유지하고 계시고요.(웃음) 각자의 생활과 에픽하이의 커리어를 병행하며, 이토록 쉴 새 없이 활동하는 게 보기 드문 일이라고 느껴져요.
타블로: 우리 나이에 어른 셋이 의견을 맞춰서 뭘 계속 한다는 게 진짜 힘든 거죠. 성격도 서로 다르고 삶의 궤도가 벗어났잖아요. 다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생겼고, 사는 동네도 다르고요.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저희는 일하는 스태프들도 마음이 맞으면 오래 함께해요. 대신 세상과 트렌드가 바뀌었는데, 따라오지 못해서 사람을 바꿔야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잖아요. 서로 그걸 방지하기 위해 그 사람이 배우도록 만들어요. “우리와 페이스를 맞추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일해야 돼. 그러니까 같이 영화 보러 가. 완벽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나랑 계속 앞으로 걸어가야 함께 일할 수 있어.” 이런 거죠. 다행히 다들 그렇게 해줘서, 누구 한 명이 너무 앞서거나 뒤처져서 갈라질 일은 없어요. 아, 그리고 이제 저는 함께 뒤처지는 건 괜찮아요.

그만큼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두 멤버의 존재가 큰 의미가 될 것 같아요.
타블로: 미쓰라도 투컷도 저도, 제 자신을 감추거나 각자의 다른 버전을 만드는 걸 못해요. 물론 그런 삶도 존중하고,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저희는 그게 안 되는 걸 아니까 이 삶을 택한 걸 수도 있어요. 심지어 이 삶을 택했어도 어딘가에 소속되면 내 모습대로 사는 게 무례한 순간이 생기잖아요. “그런 컨트롤이 안 된다면 우리끼리 하자.” 그러다가 여기까지 비우면서 온 거죠. 저희끼리는 저희 자신들이어도 돼요. 그래서 참 좋아요.

다른 의미의 가족이네요.
타블로: 저는 진심으로 제 모든 걸 멤버들에게 맡길 수 있어요. 반대로 이 친구들이 전 재산을 맡겨도 지킬 자신이 있어요. 돈만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제 가족에게 어떤 상황이 생기면 투컷과 미쓰라한테 전화할 것 같거든요. 얘네들한테 물어봐야 될 문제가 아니고, 그냥 100% 확신해요. ‘피는 안 섞여도 피보다 진한 게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각자 힘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서로에게 달려와 있거든요. 이 나이에 좋은 친구라 얘기할 수 있는, 내가 완벽히 믿을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텐데 우리는 각자 두 명씩 있잖아요. 이게 참 소중해서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거예요. 언젠가 음악으로 함께할 수 없다면 같이 냉면집을 하든 유튜브를 하든, 웃긴 거든 슬픈 거든 멋있는 거든, 상관없어요. 이 연결 고리를 유지할 수 있으면 되는 거라. 어떻게 될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계속 무언가 만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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