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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은
디자인MHTL
사진 출처KOZ 엔터테인먼트

보이넥스트도어의 새 앨범 ‘No Genre’의 트레일러 필름은 멤버들의 아이러니한 소망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명재현은 치아 두 개를 뱉어내야 할 정도로 센 펀치를 맞으면서도 고통을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태산은 차를 격렬하게 부수는 와중에도 달팽이만큼은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한다. 성호는 비를 맞으며 신나게 어울리는 멤버들과 달리 홀로 우산을 쓰며 감정을 차단하려 한다. 이전 앨범 ‘19.99’의 타이틀 곡 ‘부모님 관람불가’에서 보이넥스트도어는 “혼자는 무서우니까 같이 놀아 낮까지”라고 노래하는, 미지의 세계를 꿈꾸는 청춘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자신이 아플 수 있다는 것도,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정의 파고에 기쁨만큼 고통이 따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의미? 주제? 그딴 걸 왜 찾니?” ‘No Genre’의 타이틀 곡 ‘I Feel Good’의 가사가 일탈이라기보다 시니컬한 태도에 가까워 보이는 이유다. ‘19.99’세를 지나며 ‘스물’에서 “정답은 들리지 않아”라며 “의미”도, “주제”도 이미 고민했던 청춘은 이제 ‘I Feel Good’에서 “오늘만 산다는 마음으로 부질없게” 춤을 춘다.

이별을 테마로 한 앨범 ‘WHY..’의 타이틀 곡 ‘뭣 같아’에서 보이넥스트도어는 “꺼져버려 제발”이라고 할 정도로 격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했다. 반면 ‘No Genre’의 첫 트랙 ‘123-78’은 “실컷 두들겨 맞은 마음”의 타격감을 경쾌한 브라스 연주와 드럼의 리듬감으로 가볍게 표현한다. 숫자를 다 세지 못하는 다급한 마음을 표현하는 내레이션 “123-78”은 다소 유머러스한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이제 보이넥스트도어에게 사랑은 격정적인 감정 표출의 대상이 아니라 해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주제다. 수록 곡 ‘장난쳐?’는 전 연인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머리 위 올라 먹구름 / 가득 차 눈물 날 지경”이라는 가사처럼 감정적으로 매우 복잡한 상황을 다룬다. 그러나 멤버들의 보컬은 코러스 파트에서 “장난쳐?”의 끝음을 가볍게 처리하며 산뜻한 느낌을 주고, 펑키한 리듬과 맑은 소리의 스트링 사운드를 활용한 트랙은 청량하고 경쾌한 느낌을 전달한다. 음악적 스타일과 메시지의 충돌은 슬프지만 마냥 눈물을 흘릴 수만도 없는 아이러니한 정서를 자아낸다. 타이틀 곡 ‘I Feel Good’은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펑크(funk) 리듬과 샤우팅에 가까운 발성으로 시작되는 코러스를 더해 춤추기 좋은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클라이맥스를 향하며 빨라지던 비트는 “날 따라 해봐요 이렇게”의 저음 파트로 이어지며 절정으로 치닫지 않고, 단조 중심의 멜로디 구성은 “I feel good”이라면서도 “내일이 없다는 마음” 역시 공존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설득한다. 이전까지 보이넥스트도어의 음악은 사랑의 설렘이나 이별의 분노, 자신감처럼 청춘의 다양한 감정을 진솔하게 보여줬다. 반면 ‘No Genre’는 스스로의 감정마저 뒤틀면서 보다 복잡한 감정을 현실적으로 구현한다.

그래서 ‘No Genre’라는 앨범명 그대로, 보이넥스트도어에게 장르는 그들을 규정하는 형식이 아니라 도구가 된다. ‘123-78’에서 경쾌한 브라스 연주를 바탕으로 한 음악적 스타일과 “My Baby Georgia, baby georgia / Can’t take my eyes off you”, “L - o - v - e” 같은 가사들은 1960년대의 명곡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떠난 연인 혹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달콤한 사랑을 노래한 원곡들과 달리, ‘123-78’은 “양말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난 널 위해 cheers”라는 가사로 대표되는 사랑의 상처를 위트 있게 표현하기 위해 해당 가사들을 인용한다. ‘I Feel Good’에서 “We steppin’ out now, yeah 더 볼륨 세게 / 딸꾹질 나올라 그래 feel like I’m MJ”를 ‘보컬 히컵(Vocal Hiccup)’으로 표현하는 운학의 창법과 멤버들의 문워크 퍼포먼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을 오마주한다. 멤버들은 “Beat drop, head nod, act like a rockstar”라는 가사에 맞춰 마치 록스타가 기타를 치는 듯한 모습을 형상화한 퍼포먼스를 소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act like a rockstar”라는 표현처럼 이는 실제 스타와 같은 카리스마를 표현하기보다는 훨씬 경쾌하고 가벼운 톤으로 동작들을 소화하면서 스타처럼 춤추고 싶어 하는 청춘의 현실적인 모습과 에너지를 보여주는 방식에 가깝다. 요컨대 ‘No Genre’는 여러 장르와 스타일을 오마주하지만, 이를 새로운 맥락으로 조합하고 구현한다. 그 과정에서 모두가 아는 음악적인 스타일은 바로 지금의 청춘이 그들만의 고유하고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거듭난다.

콘셉트 필름 ‘No Route ver.’에서 보이넥스트도어 멤버들은 옛 카세트 플레이어나 카메라를 사용해보려 애쓰지만 방법을 알지 못한 채 밖으로 나간다. 그들은 자유로운 외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망원경과 CCTV로 둘러싸여 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이 시대 청춘의 현주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거의 유산은 넘쳐나지만 그렇기에 새롭거나 고유한 것을 갖기는 어렵다. 세상은 끊임없이 검증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다르게 조합해 아이러니한 감정을 구현하는 보이넥스트도어의 음악은 마치 지금의 청춘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늘만 I LOVE YOU’에서 보이넥스트도어는 경쾌한 밴드 사운드 뒤로 “추억 팔아서 곡이나 쓰는 건 딱 죽기보다 싫은데”라 자조하고, “음악 같은 건 감정 소모밖에 안 되니까”라고 노래한다. 이 노래가 정말 보이넥스트도어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별 중에도 지속되는 곡 작업에 지난함을 느끼면서도 노래를 멈출 수 없는 아이러니는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생동감을 전한다. 그리고 ‘오늘만 I LOVE YOU’는 보이넥스트도어의 음악 중 최초로 멜론차트 톱 100 5위권 안으로 차트인했다. ‘I Feel Good’에서 보이넥스트도어는 한국인의 구전이라 할 수 있는 “날 따라 해봐요 이렇게”를 외친다. 그들의 말과는 달리, 정작 누구나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보이넥스트도어의 세상이 왔다. 수많은 장르와 법칙으로 이미 완성된 것처럼 보이던 세상에, 새로운 세대가 자신만의 목소리를 새기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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