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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Lollapalooza Instagram

‘롤라팔루자(Lollapalooza)’는 다양한 장르와 문화 행사를 아우르는 현대적인 음악 페스티벌 중에서도 글로벌 확장에 성공한 드문 경우다. 물론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이나 투모로우랜드와 같은 일렉트로닉 음악 축제도 EDM과 파티 문화의 특별한 역사적 배경 아래 국제적인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주로 록 문화에 뿌리를 둔 대형 페스티벌은 힙합, 댄스 등 장르의 다양성 확대, 3~4일에 이르는 행사 규모의 증가,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한 접근성 강화와 같은 문화적 현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 영국 등 시작된 지역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이유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해외에서 대형 행사를 개최하는 운영상의 부담, 국가별로 유의미한 출연진을 확보하는 어려움 등은 개별 이벤트의 확장보다 지역별 페스티벌이 자체적으로 발달하는 자연스러운 토양이 된다.

반면, 롤라팔루자는 2010년 초부터 남미 진출을 시작으로 유럽은 물론 최근에는 인도까지 국제적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2025년은 어떤가? 지난 3월에는 남미의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인도에서 페스티벌을 열었다. 그리고 7월 12~13일 독일과 7월 18~20일 프랑스를 거쳐 7월 31일부터 4일간 미국 시카고에서 마무리한다. 롤라팔루자의 차별성은 1991년 시작부터 그 싹을 찾을 수 있다. 페리 패럴(Perry Farrell)은 자신의 밴드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의 고별 투어를 다양한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음악 페스티벌 개념과 결합했다. 전통적인 페스티벌은 개최 장소를 이름에 넣을 만큼 지역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하지만 롤라팔루자는 북미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고, 당시 부상하던 얼터너티브 록을 비롯한 젊은 흐름을 종합하는 무대가 되었다. 여기에 서커스, 예술 전시를 병행하고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발언대를 설치하는 등 음악 외적 요소를 포함하는 대안적 성격을 잃지 않았다. 요컨대 롤라팔루자의 확장성은 지명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함, 다양한 장르와 음악 바깥까지 살피는 포용성의 다른 이름이다.

ⓒ Lollapalooza Instagram

올해 롤라팔루자에서는 어느 때보다 많은 K-팝 아티스트를 볼 수 있다. 롤라팔루자 베를린에서는 제이홉이 헤드라이너로 등장한다. 그는 2022년 롤라팔루자 시카고에서 한국 아티스트 최초로 미국 대형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가 되었고, 3년 후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또한 아이브는 2주에 걸쳐 롤라팔루자 베를린과 파리 무대에 모두 오른다. 롤라팔루자 시카고에서는 트와이스가 올리비아 로드리고, 사브리나 카펜터, 에이셉 라키 등과 함께 헤드라이너로 이름을 올렸다. 목요일에는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토요일에는 킥플립, 일요일에는 캣츠아이와 보이넥스트도어 그리고 웨이브 투 어스가 무대에 오른다.

올해 롤라팔루자의 K-팝 라인업을 거칠게 요약한다면, 대형 남성 솔로, 걸그룹을 유럽과 미국에서 헤드라이너로 올리고, 이른바 4-5세대의 인기 보이밴드와 걸그룹, 다국적 K-팝 그룹, 올해 데뷔한 신인, 주류와 인디를 아우르는 밴드까지 아우른다. 마치 K-팝의 현재에 대한 적절한 스냅샷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는 지난 몇 년간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스트레이키즈, 세븐틴 등 인기 아티스트가 롤라팔루자에 출연하며 K-팝과 페스티벌이 상호 이익을 누릴 수 있던 것과도 차별화된다. 여기서 ‘상호 이익’이란 K-팝은 해당 장르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음악에 관심 있는 다수의 청중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페스티벌 측은 열성적인 팬덤을 지닌 아티스트를 라인업으로 확보할 수 있는 호혜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하지만 올해와 같이 광범위한 K-팝 라인업은 장르의 인기가 점진적으로 늘어난 상황 정도로 표현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롤라팔루자의 확장 전략은 미국 페스티벌 브랜드의 수출과 같다. 이를 운영하는 글로벌 공연 기획사는 해외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기 아티스트를 섭외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는데, 이는 곧 페스티벌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해외 롤라팔루자에서는 해당 지역의 아티스트가 참여하여 페스티벌의 ‘글로컬(glocal)’ 의미를 더한다. 그러나 K-팝 아티스트는 미국 기반도 아니고, 해외 롤라팔루자가 개최되는 지역 출신도 아니다. 요컨대 K-팝은 영미권 유명 아티스트와 그 외 언어권의 지역 아티스트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존재라는 뜻이다.

빌보드를 포함한 각종 차트는 그저 순위에 불과한 것 같지만, 때때로 어떤 기록은 그 자체로 말을 한다. 예를 들어, 앨범의 판매 순위를 집계하는 빌보드 200의 1~2위를 특정 장르가 석권하는 경우가 있다. 이 기록은 우연찮게도 어떤 장르가 미국 음악 시장에 주류로 인정받은 시점을 포착한다. 1950년대에는 영화 사운드트랙, 크리스마스 캐럴, 뮤지컬 앨범이 첫 기록을 세웠다. 1960년대에는 로큰롤, 포크, R&B가 그렇다. 이 기록은 시간을 크게 건너 뛰어 1990년 힙합과 1992년 컨트리에 이른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24년 K-팝, 2025년 라틴 음악으로 이어진다.

K-팝과 라틴 음악의 순서는 어차피 벌어질 일의 미세한 차이에 불과하다. 대신 둘의 공통점이 중요하다. 이들은 영어가 아닌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대중음악으로서 미국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유하고,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유튜브,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등 새로운 미디어는 언어가 낯설다는 이유로 라디오 등 전통적인 대중매체의 문지기를 통과하지 못했을 미지의 음악에게 기회를 주었다. 빌보드 200의 기록은 이 흐름의 상징적 결과다.

올해 롤라팔루자의 폭넓은 K-팝 라인업은 단순히 한국 음악의 글로벌 확산에 머물지 않는다. 롤라팔루자는 처음부터 '대안'을 지향하는 축제였으며, 다양한 음악 장르와 문화를 융합하여 시대 흐름을 기민하게 반영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해왔다. 과거의 페스티벌이 힙합, EDM 등 새로운 주류 장르로 경계 넓히기에 성공했다면, 이제 롤라팔루자는 영미권 음악이라는 근본적인 경계를 넘어 글로벌 대중 음악 전체를 조망하는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

따라서 K-팝 아티스트의 대거 참여는 롤라팔루자 페스티벌이 가진 대안적, 포용적 전통의 최신 버전이다. K-팝 아티스트는 이국적인 존재나 전략적 제휴의 대상이 아니라, 음악성과 상업성을 모두 입증한 새로운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K-팝은 일종의 문화적 촉매로, 페스티벌 관객이 언어와 지역을 넘어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결국 대중음악의 미래에 대한 힌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다음 세대의 성공이란 새로운 인기 장르가 아니라, 언어의 장벽을 깨는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수준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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