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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희(작가, 칼럼니스트)
사진 출처왁타버스 YouTube

2025년 5월 17일, 고척스카이돔(이하 ‘고척돔’)의 조명이 꺼지면서 관객의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이세계아이돌이 무대에 등장하자 수천 개의 응원봉이 일제히 빛을 발하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노래가 시작되자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세계아이돌의 팬들이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의 라이브가 펼쳐졌다.

지난 3월 18일, 버추얼 걸그룹 ‘이세계아이돌’의 프로듀싱을 담당하는 버추얼 스트리머 우왁굳은 자신의 SOOP 채널을 통해 ‘2025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는 이 방송에서 이세계아이돌의 향후 활동 로드맵을 세세하게 공개했다. 2022년부터 약 3년에 걸쳐 연기되어 왔던 4집 ‘Misty Rainbow’의 발매일을 확정하는 동시에 그간 작업하고 있던 나머지 곡들도 4~6월에 걸쳐 전부 발표될 거라고 공지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2023년에 개최했던 ‘이세계 페스티벌’이 2025년 5월에 고척돔에서 다시 개최될 것이며, 당장 3월 20일에 ‘이세계 페스티벌 2025’(통칭 ‘이세페 2025’)의 홍보 곡 ‘SYZYGY’가 발매될 거라는 소식까지 전했다. 그리고 이 방송을 보던 이세계아이돌의 팬덤 ‘이파리’들은, 폭발했다. 

‘SYZYGY’는 2023년 9월 ‘이세계 페스티벌’에서 공개되었던 ‘Superhero’와 ‘OVER’ 이후로 543일 만에 나오는 이세계아이돌의 신곡이었다. 게다가 작년 7월에 있었던 이세계아이돌 멤버 ‘릴파’의 첫 오프라인 단독 콘서트 ‘LILPACON : Going Out’ 이후 이렇다 할 외부 행사가 없었기에, 오랜 기다림에 지쳐 있었던 팬들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거기다 ‘이세페 2025’는 국내 버추얼 아티스트가 최초로 고척돔에 입성하는 기념비적인 공연이었기에 팬들은 잔뜩 고무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5월 16일과 17일, 양일간에 걸쳐 ‘이세페 2025’가 개최되었다. 페스티벌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더보이즈·츄·태양·국카스텐·선미·보이넥스트도어·엔플라잉·트리플에스·10CM 등이 이름을 올렸고, 해외 아티스트로는 AKB48·히메히나·FLOW·Keshi 등이 출연하며 화려한 라인업을 뽐냈다. 하지만 타이틀에 ‘이세계’라는 단어가 들어간 만큼 이날의 헤드라이너는 당연하게도 이세계아이돌이었다. 

Be My Light, 서로가 서로의 빛이 되어준 순간들
저녁 8시가 가까워지자 팬들이 수동으로 제어하고 있던 첫 공식 응원봉 ‘맆스틱(Leaf+stick)’에 중앙 제어 시스템이 연결되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들고 있던 맆스틱에서 연둣빛 조명이 환하게 빛났다. 고척돔 내부가 기대감으로 가득 찬 순간, 애니메이션 오프닝 영상이 재생되었다. 1,247일. 2021년 12월 17일 디지털 싱글 ‘RE : WIND’로 데뷔한 뒤 2025년 5월 17일 ‘이세페 2025’로 팬들을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 이 날짜는 데뷔 이후 1,247일 동안 우주를 유영하고 있던 멤버들이 공연을 위해 지구에 착륙했다는 설정으로 승화됐다. 곧이어 무대에 설치된 초대형 고화질 스크린에 우주선이 착륙하는 증강현실 CG가 송출되었다. 마침내 지구에 착륙한 이세계아이돌은, 첫 곡인 ‘Lockdown’으로 무대의 막을 올렸다.

‘Lockdown’은 이세계아이돌의 IP를 활용한 카카오페이지 웹툰 ‘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의 OST로, 지금까지 실제 라이브를 하는 영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 라이브로 선보인 ‘Lockdown’은 기존과는 달리 전체 안무를 공개했으며 반주 역시 밴드 버전으로 편곡했다. 뒤이어 2023년 8월에 발매되자마자 유튜브 뮤직에서 ‘한국 인기곡 톱 100’ 3위를, 멜론에서 ‘톱100’ 9위를 달성하고 멜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등 여러 기록을 세웠던 ‘Kidding’ 역시 밴드 버전으로 한층 더 파워풀한 느낌이 더해져 고척돔 내의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곧이어 개인 무대가 이어졌다. 멤버들이 각자의 스트리밍 방송을 통해 무슨 노래를 선보일지 미리 알려주었던 만큼, 여섯 명의 서로 다른 개성과 매력이 어떻게 담겨 있을지 기대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먼저 징버거가 아이유의 ‘너랑 나’를 커버하며 솔로 무대의 시작을 열었다. 원곡과는 달리 조금 더 잔잔한 분위기로 편곡한 ‘너랑 나’를 완벽하게 소화한 징버거의 뒤를 이어 주르르가 QWER의 ‘고민중독’을, 고세구가 HoneyWorks의 ‘팬서비스’를 불렀다. 장장 9시간 동안 진행된 페스티벌 무대였기에 관객들은 다소 지쳐 있었다. 그러나 곧 시원한 가창력을 자랑하는 릴파가 DAY6의 ‘Welcome to the Show’ 무대를 선보이며 고척돔 내의 열기는 이보다 더 뜨거울 수 없을 정도로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평소 보컬 파트를 자주 담당하던 막내 멤버 비챤은 의외로 래퍼 비와이의 ‘Day Day’를 커버하며 놀라운 랩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 중에서도 팬들이 가장 고대했던 개인 무대는 아이네가 부른 윤하의 ‘오르트구름’이었다. 지난 2022년에 릴파는 아이네와 함께 ‘오르트구름’을 커버할 거라는 내용의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마음이 맞아 언젠가는 ‘오르트구름’을 둘이서 부르는 영상을 보여줄 거라 공표했지만 여러 가지 제반 사정 때문에 결국 선보이지 못했다. 그런데 드디어 3년의 세월이 지나 이곳 ‘이세페 2025’에서, ‘오르트구름’을 부르는 아이네 앞에 멤버 릴파가 깜짝 등장하며 전설의 듀엣이 성사된 것. 놀라운 가창력으로 호흡을 맞추며 아이네와 릴파는 개인 무대의 마지막을 완벽하게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신곡을 발표하는 순간. 감성적인 시티팝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Stargazers’, K-팝 스타일의 댄스 곡인 ‘ELEVATE’, 팬들이 너무 오래 기다려왔던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들을수록 더욱 벅차오르는 감정을 안겨주는 ‘Misty Rainbow’, 새롭게 공개된 팬 송 ‘MEMORY’ 무대가 이어졌다. 이세계아이돌의 춤과 노래에 목말라 있던 팬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세 곡의 신곡이  포함되어 있어 정규 앨범의 발매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세트리스트였다. 신나게 즐기는 사이 어느새 시곗바늘은 밤 11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세계아이돌의 공연 역시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갔다. 

Lockdown’과 마찬가지로 이세계아이돌이 등장하는 카카오페이지 웹툰 ‘차원을 넘어 이세계아이돌’의 OST인 ‘Another World’와 이세계아이돌과 팬덤 ‘이파리’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곡이자 데뷔 곡인 ‘RE : WIND’로 이세계아이돌의 공연은 끝이 났다. 엔딩 곡과 앙코르 곡인 만큼 이 두 곡은 세션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와 함께 진행되어 더더욱 감동을 이끌어냈다. 이윽고 공연을 끝낸 이세계아이돌이 다시 우주로 귀환하고, 의문의 로봇이 눈을 뜨며 ‘ISEGYE IDOL will return’이라는 문구가 나타나는 VCR이 재생되며 ‘이세페 2025’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나름대로 스토리의 완결성까지 갖춘, 무엇 하나 부족함 없던 공연이었다. 

이번 ‘이세페 2025’는 이세계아이돌 섹션에만 ‘Be My Light’라는 부제를 붙인 만큼 버추얼 아이돌의 특성을 살린 무대 구성이 돋보였다. 고척돔만의 특장점인 넓은 무대를 살려 배경 효과를 담당하는 초대형 LED 스크린을 설치했다. 그리고 이세계아이돌이 중점적으로 등장할 무대 중앙에는 인물 프레임만을 담을 수 있는 고해상도의 돌출형 스크린을 한 대 더 놓아두었다. 관객들로 하여금 이세계아이돌이 실제 존재하는 아티스트처럼 느껴지도록 하기 위한 배려가 돋보였다. 무대 양옆에는 각각 두 대의 대형 스크린이 있었는데, 그 앞에는 이세계아이돌 멤버의 1/1 크기의 스태츄가 전시되어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했다. 스크린으로 영상을 송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지만 폭죽이나 연기 등의 무대 장치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콘서트 현장에서 멤버들의 손 글씨 메시지가 담긴 컨페티를 뿌리는 등 팬 서비스도 아끼지 않았다. 멤버들 또한 인천과 경기, 부산, 울산 등 각기 다른 지역에 모여 살고 있어 여러모로 상황이 여의치 않았지만, 무대를 위해 긴 기간 동안 합숙을 하고 리허설도 여러 번 진행하며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아쉬운 구석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 자체의 퀄리티는 2023년에 진행되었던 ‘이세페’보다 훨씬 높아져, 언젠가 개최될 단독 콘서트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이세페 2025’는 금요일에는 5,649명, 이세계아이돌이 출연하는 토요일에는 1만 7,807명의 관객수를 기록, 총 2만 3,456명이라는 관객 수를 기록하며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너랑 나, 우리가 다시 만난 반짝이는 기적” 
버추얼 아이돌의 시작은 흔히 일본의 ‘키즈나 아이(キズナアイ)’로 본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16년에 처음으로 유튜브에 ‘트위터 계정 만들래!’를 업로드하며 활동을 시작한 키즈나 아이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꾸준히 인지도를 쌓은 다음 2019년부터 오프라인 라이브로 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애니컬러(Anicolor)가 운영하는 니지산지(にじさんじ) 프로젝트나 홀로라이브(hololive) 프로덕션 소속 버추얼 아이돌들이 자체 페스티벌이나 컬래버레이션 행사 등으로 꾸준히 오프라인 활동을 이어왔다.  

한국의 경우에는 2019년부터 아뽀키(APOKI)가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개념을 알리기 시작했고, 2021년 이세계아이돌이, 보이그룹 중에서는 2023년 플레이브(PLAVE)가 데뷔하며 K-팝 시장에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개념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사이버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2021년의 우왁굳은 자신이 선발한 멤버들이 이렇게 성장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을 것이다. 
 
다양한 심사를 통해 선발된 여섯 명의 멤버, 아이네·징버거·릴파·주르르·고세구·비챤은 당시 작곡을 전공 중이던 아이네, 잠시나마 아이돌로 데뷔했던 경험이 있던 릴파, Rion이라는 명의로 우타이테 활동을 했던 비챤을 제외하면 따로 음악 활동을 했던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데뷔 곡 ‘RE : WIND’를 발매하고 이 곡이 벅스 실시간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전에 아이돌로서 쓴맛을 맛봤던 릴파가 멜론 톱100에 차트인을 한 것을 보고 감격에 겨워 울음을 터뜨리는 영상이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나인뮤지스의 전 멤버 세라의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이세계아이돌은 2022년에 두 번째 싱글 ‘겨울봄’을 발매하고 2023년에는 세 번째 싱글 ‘Kidding’, 공식 웹툰 ‘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과 ‘차원을 넘어 이세계아이돌’의 OST, ‘이세계 페스티벌’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다. 프로듀서인 우왁굳의 방침에 따라 ‘걸그룹 콘셉트의 버추얼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이세계아이돌은 정기적으로 스트리밍 방송을 켜야 하기에 움직임에 다소 제약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만큼 팬들과 언제든지 직접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이세계아이돌의 팬덤인 ‘이파리’는 충성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일례로 2023년 텀블벅에서 ‘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 단행본 및 굿즈의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되었는데, 무려 최종 후원금의 단위가 41억 9,000만 원을 달성해 역대 국내 크라우드 펀딩 1위라는 기록을 세우며 대한민국 펀딩의 역사를 새로 썼다. 놀랍게도 이 기록은 2024년 12월, 두 번째 공식 웹툰 ‘차원을 넘어 이세계아이돌’의 크라우드 펀딩이 최종 금액 88억 2,200만 원을 달성하며 경신되었다. 2024년에 진행했던 팝업 스토어 ‘이세돌팝업봤?’의 경우 더현대서울에서 2024년 한 해 동안 최고의 매출을 올렸던 팝업스토어로 꼽기도 했다. 이처럼 이세계아이돌은 버추얼 아이돌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나가고 있다. ‘이세페 2025’의 성공적인 마무리 역시 그들의 발자취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한때 자신의 안에 숨겨져 있던 가능성의 존재를 믿지 못해 눈물을 흘리면서도 묵묵히 노력해오던 여섯 명은, 이제 이세계아이돌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어 새로운 ‘무지개’를 펼쳐 나가고 있다. 앞으로 더더욱 빛날 이세계아이돌의 여정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항상 최초의 궤적을 그리는 만큼 그들의 끝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이세계아이돌은 언제나 다시 한번 우리를 만나러 올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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