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는 작년 10월 발표한 앨범 ‘CHROMAKOPIA’를 기념하는 글로벌 투어인 ‘CHROMAKOPIA: THE WORLD TOUR’를 현재 진행 중이다. 올해 2월부터 미국과 유럽을 오간 투어는 오는 9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마무리된다. 지난 7월 18일 금요일, 그는 뉴욕 바클레이 센터에서 공연했다. 당시 공연장 외부에는 투명한 상자 안에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본인을 닮은 근육질 피규어가 전시되었다. 이러한 설치물에는 으레 따르듯, ‘유리를 두드리지 마시오.(Don’t Tap The Glass.)’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공연 중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이 문구를 외치며 새 앨범 소식을 알렸다. 주말을 지나고 7월 21일 월요일, ‘CHROMAKOPIA’로부터 불과 9개월 만에,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9번째 앨범, ‘DON’T TAP THE GLASS’가 공개되었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발매를 전후로, 새 앨범의 의도를 최대한 직접 밝혀왔다. 예를 들어보자. 바클레이 센터 공연 다음 날인 7월 19일 토요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새 앨범의 공식 웹사이트를 공개했다. 웹사이트는 음반과 MD에 대한 예약 구매와 함께, 세 가지 색 상자에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를 띄웠다. 첫째, 몸을 움직여라. 가만히 있지 마라.(Body movement. No sitting still.), 둘째, 오직 영광으로만 말하라. 짐은 집에 두고 오라.(Only speak in glory. Leave your baggage at home.)’ 그리고 다시 한번 셋째, 유리를 두드리지 말라.(Don’t tap the glass).
그리고 7월 20일 일요일, LA의 유서 깊은 작은 공연장 메이슨 로지(Masonic Lodge at Hollywood Forever)에서는 300명이 참석한 리스닝 파티가 열렸다. 공개된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요구하고 있다. ‘춤 안 출 거면 오지 말라.(Don’t come if you aren’t going to dance.)’ 파티가 끝나고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장문의 메시지를 내놓았다. 그는 요즘 사람들이 “촬영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춤을 추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자연스러운 표현이자 음악과의 연결이 사라진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메이슨 로지의 리스닝 파티는 전화 사용 및 촬영을 금지했으며, ‘DON’T TAP THE GLASS’ 앨범을 두 번 재생하는 동안, 모든 이들이 춤추고, 움직이고, 표현하고, 땀 흘렸다. 메시지는 다음의 직접적인 요청으로 마무리된다. “이 앨범은 가만히 앉아서 듣기 위한 것이 아니다. 춤추거나, 운전하거나, 달리거나, 어떤 종류의 움직임이든 앨범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 추천된다. 오직 최대 볼륨으로만. 유리를 두드리지 마시오.”
이 요청은 앨범 제목의 겹쳐진 의미가 떠오르게 한다. ‘유리를 두드리지 마세요.’는 흔히 동물원에서 발견되는 경고로, 방문객의 자극으로부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 비유는 이미 ‘CHROMAKOPIA’ 앨범에서 등장(‘Thought I Was Dead’의 가사 중 “I’ve been trapped in a zoo”)한다. 단, 이번에는 현대 디지털 문화의 병폐 중 하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가 직접 설명한 ‘밈(meme)이 되는 것의 두려움’을 유발하는 또 다른 유리벽으로 의미를 확장한다. 이 맥락에서 ‘유리’는 어디에나 있는 스마트폰 화면, 우리가 두드리고 문지르는 표면이자, 진정한 인간적 경험과 즐거움에 대한 장벽이 된다. 앨범의 제목, 웹사이트의 문구, 리스닝 파티, 소셜 미디어 메시지, 수록 곡 ‘Big Poe (feat. Sk8brd)’의 가사는 모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의 문제의식과 요구가 공감을 얻는 것은 놀랍지 않다. 우리는 이미 끊임없는 잠재적 감시에 대한 우려로 위축되는 경험에 익숙하다. 당시에는 진지하고 나름의 의미가 있던 많은 순간이, 고유의 맥락을 무시한 일시적인 오락 거리가 되어 익명의 대중에게 평가받고 심지어 조롱당한다. 우리는 진정한 자기 표현으로부터 분리된 혹은 마비된 자의식을 만들어냈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가 촉구하는 이유다. ‘오직 영광으로만 말하라.’ 물론 그는 음악가이고, 그의 선언은 앨범에 대한 주석이지 본문은 아니다. 다시 말해 ‘DON’T TAP THE GLASS’의 음악은 어떤가?
10개 트랙, 28분의 분량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역대 앨범 중 가장 단출하다. 얼핏 이 앨범은 익숙한 음악적 구성 요소와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성의가 부족하고 덜 중요한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쩌면 확장판의 재료가 될 법한 과거의 흔적이 단지 새로운 이름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삐딱한 시선도 가능하다. 물론 앨범의 많은 부분을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창작 역사 안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펑크와 R&B, 네오소울의 흔적은 ‘IGOR’와 ‘Flower Boy’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Cherry Bomb’의 실험적 혹은 공격적 태도가 공존한다.
하지만 ‘DON’T TAP THE GLASS’의 구성은 무심함의 결과가 아니라 목적과 기능에 부합하기 위한 의식적인 선택의 결과다. 다시 말해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춤으로 대표되나 그에 한정되지 않는, 즉각적인 신체 활동을 위한 짧고, 경쾌하며, 본능적인 음반을 만들었다. ‘DON’T TAP THE GLASS’는 1990년대 힙합과 지-펑크, 디스코와 R&B 그루브, 하우스와 테크노 등 고전적 댄스 음악의 요소를 압축해 30분 분량의 폭발적 에너지 부스터로 디자인되었다. 이 앨범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분석과 고찰을 치워 버린다.(‘Big Poe’의 가사 중 “None of that deep s**t”)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기 전에 당신의 몸을 흔들어 버리기 위해 존재한다.

이는 ‘DON’T TAP THE GLASS’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가장 새로운 작품이 되는 이유다. 그는 경력 전체에 걸쳐 자신의 얼터 에고 및 가상 인물이 등장하는 콘셉트 앨범으로 스스로의 내면을 탐색해왔다. 흔히 ‘울프 3부작(Wolf Trilogy)’으로 불리는 초기작은 가상의 정신상담가 닥터 TC와의 치료 세션을 배경으로 삼는다. 상상 속에서 벌어진 자기 자신과의 대화라는 반전은 그의 경력 초기에 선보인 호러 코어 장르 특유의 충격적인 이미지와 폭력성에 정당성과 거리를 부여하는, 일종의 서사적 액자로 기능한다. 2019년 작 ‘IGOR’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조수에서 유래한 ‘미친 과학자의 충실한 조수’라는 전형적인 캐릭터를 바탕으로, 짝사랑부터 실패한 관계까지 타인의 삶에서 조연으로 남는 존재를 탐구했다. 아예 가면을 쓰고 등장한 최근작 ‘CHROMAKOPIA’까지, 그의 앨범이란 아버지의 부재, 정신 건강과 고독감, 성 정체성과 이별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객관화하여 전달하는 도구였다.
‘DON’T TAP THE GLASS’는 아티스트의 내적 혼란이 아니라 외부의 집단적인 문화 현상을 다룬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자신을 둘러싼 감옥을 10년 동안 분해하다가 모든 사람이 갇혀 있는 보이지 않는 감옥을 발견했다. 이를 위해 같은 시간 동안 마스터해온 음악적 도구를 십분 활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단, 심오한 가사와 콘셉트는 본능과 땀방울 뒤로 물러난다. 장르 관습의 활용은 풍자적이거나 역설적인 심상을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본능 속에 박힌 흥을 끄집어내기 위해 사용된다. 따라서 ‘Yonkers’가 뉴욕 힙합 비트를 패러디하거나, ‘Cherry Bomb’ 앨범 시기처럼 불안한 감정과 따뜻한 편곡을 대조하거나, ‘IGOR’ 시기처럼 슬픈 이야기와 행복한 사운드 프로덕션을 겹쳐 고통을 강조하는 복잡함이 이번 앨범에는 없다. 당신이 듣고 반응하는 것이 100% 사실이다.

어떤 예술 작품은 기능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단지 춤추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빨간 약을 제공했다. 사람들은 그의 진단과 처방에 크게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월요일에 발매되어 차트 성적 집계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주말 3일을 건너 뛰었음에도, ‘DON’T TAP THE GLASS’는 19.7만 단위의 넘치는 성적으로 빌보드 200 1위로 데뷔했다. 특히 전체 성적 중 공식 웹페이지에서 독점 판매한 실물 앨범만 12.8만 장으로, 힙합 장르에서 극히 예외적인 수준이다.
몸의 움직임을 제안하는 앨범의 목적을 감안하면, 흥미로운 일이다. 스트리밍이 지배하는 시대에 실물 앨범 구매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적극적 움직임이다. 그것은 단순히 화면을 몇 번 터치하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앨범을 소유하고, 재킷을 감상하고, 재생하는 과정은 디지털의 즉시성과 반대편에 서는 물리적 경험이다. 이는 타일러 더 크리에어터가 비판한 ‘유리’ 너머의 세계에 속한다. 팬들은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그의 제안에 대한 동참과 지지를 앨범 구매라는 행위를 통해 증명한 셈이다. 이렇듯 새로운 음악이 나오고 그것을 듣고 구매하는, 역사적으로 수없이 반복된 일도, 가끔 전에 없던 맥락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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