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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인
사진 출처수빈 인스타그램

지난 7월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수빈은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수박 빨리 먹기’ 개인기를 선보였다. 커다란 수박 한 조각을 3초만에 먹을 수 있다는 수빈의 개인기는 사실 처음 출연하는 공중파 예능에 좋은 임팩트를 남기고자 따로 연습해온 것이었다. “7년 차인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는 멤버들의 걱정 어린 농담을 들을 만큼, 수빈은 원래 대식가로 알려진 멤버도 아니고 빠르게 먹는 장기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수빈은 프로그램 특성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독한 유머나 흥미 위주의 에피소드를 빠르게 풀어놓는 ‘라디오스타’의 분위기에 맞춰, 수빈은 자신보다 연예계 경력이 한참 앞서는 패널들을 독특한 음식에 비유하는 ‘닮은꼴 찾기’를 준비하기도 했다. 다만 호기롭게 매운맛의 단어들을 고른 것과 달리, 수빈은 특유의 조곤조곤한 말투와 파르르 떨리는 손을 감추지 못했다. 출연한 방송에 걸맞은 예능감을 보여주고자 최선을 다한 것과 별개로, 그가 평소 그런 상황과 화법에 익숙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수빈의 모습은 어느 순간 자신만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 저희 팀 자체가 재미는 없어서…” FT아일랜드 이홍기가 팀에 예능 담당 멤버가 있는지를 묻자 수빈은 당연하다는 듯 특유의 담담한 말투로 이렇게 답한다. 그는 수박 개인기를 연습해온 것도 성대모사나 춤, 노래보다는 다른 임팩트를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아 준비한 것이라고 담백하게 얘기한다. 수빈은 혜리가 진행하는 유튜브 ‘혤’s club’에서 여러 상황상 아직 새 앨범에 대한 설명을 잘 숙지하지 못했다고 실토하지만, 곧이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설명은 성실하게 해낸다. 혹은 멤버들에게 놀림당할까 봐 면허 시험을 한 번에 붙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일화를 수줍게 털어놓기도 한다. 이런 수빈 특유의 솔직한 화법은 ‘라디오스타’에서 “이 친구의 가장 큰 개인기는 읍소야.” 같은 김구라의 피드백을 남길 수 있는, 일종의 예능적인 재미로 돌아온다. 대신 수빈은 자신의 긍정적인 면모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유지하면서, 타인이 건네는 칭찬 또한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수긍한다. ‘혤’s club’ 출연 당시, 그를 “카밀리아(걸그룹 카라의 팬덤명) 중 제일 유명한 사람”이라 소개하자 “그렇게 됐습니다.”라며 특유의 해사한 미소와 함께 당당한 목소리로 긍정한다. ‘라디오스타’에서는 스스로의 외양을 “하이브의 청순 라인”이라고 소개하거나, ‘아이돌 인간극장’에서 같은 팀 멤버 범규가 “수빈이 형은 잘생겼지.”라 칭찬하자 일말의 고민 없이 “그건 맞지.”라고 답한다. 수빈은 어디서든 그렇게 자신의 좋은 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우와, 형 목소리 되게 좋은데요?” 유튜브 웹 예능 ‘최애의 최애’에 K-팝 덕후로 출연한 배우 김지훈이 노래 한 소절을 부르자 진행을 맡은 수빈이 보인 반응이다. 수빈은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에게서 어떤 좋은 점을 발견하면, 사소하지만 기분 좋아지는 칭찬을 즉각적으로 건넨다. 그는 유튜브 ‘디바마을 퀸가비’에서 슬픔이 PD가 소위 ‘주접 멘트’를 건네는 게 괜찮았는지 묻자 “너무 좋았어요. 어디가서 이런 말 들어보겠어요.”라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최애의 최애’ 첫 에피소드에서 수빈은 자신의 ‘최애’ 카라 동아리를 소개한다는 콘셉트에 맞춰 반말로 발표를 시작한다. 그러나 수빈은 수강생 역할의 제작진이 자신과 나이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아채자마자 존댓말로 바꿔 말했다. 프로그램의 콘셉트이다 보니 반말을 이해받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평소 그의 몸에 밴 예의가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수빈은 때때로 예능적인 재미를 위해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여기엔 언제나 상대를 향한 예의와 배려를 담는다. ‘라면 덕후’로 출연한 엔하이픈 희승이 ‘너구리’를 좋아한다는 말에 “난 너구리 별로 안 좋아해.”라거나, “나올 게 얼마나 없으면 라면으로 나올까.”라며 디스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빈은 바로 눈을 가리고 라면을 먹는 희승에게 “바닥 뜨거우니까 위로 잡아.”라며 챙겨주고, 그가 라면에 “생각보다 진심이었다.”고 되짚는다. 그렇기에 야채 곱창을 열정적으로 영업하는 이영지의 설명을 듣다 수빈이 하품을 참는 순간을 이영지가 알아채는 장면이나, 그가 동아리의 가입을 끝내 거절하는 순간도 오히려 예능적인 재미로 바뀔 수 있다. 말 그대로 하품을 ‘참는’ 상황이었고, 방송 내내 최대한으로 이영지의 이야기를 경청해왔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내내 수빈이 보여주는 다정함과 존중이 깔려 있기에, 그가 보여주는 농담 역시 언제나 유쾌하게 다가올 수 있다.

‘덕후’가 ‘최애’를 소개한다는 마음으로 게스트들이 ‘최애 발표회’를 여는 ‘최애의 최애’에는 K-팝부터 스포츠,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물고기나 게임처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지닌 인물들이 출연한다. “내가 좋아하는 거에 대해서 말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밌고 신나더라고요.” 수빈은 ‘최애의 최애’ 시작을 자신이 좋아하는 ‘카라 발표회’로 열었던 경험을 기반으로 게스트들을 대한다. 그렇기에 ‘최애의 최애’에는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걸 숨기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또 다른 무언가를 사랑하고 몰두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때의 진심이 있다. 수빈은 때로 각 주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특유의 솔직함과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질문을 던져 나가며 편한 분위기를 만든다. “미안, 내가 진짜 몰라서 그래.” 보이넥스트도어 운학이 야구 선수들에 대해 이야기하자 수빈은 솔직하게 자신이 모르는 바를 전하는 대신, 운학이 더 잘 설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메이크업에 관심이 있는지 묻는 뷰티 크리에이터 이사배의 질문에 “제가 이런 거에 아예 무지해서요.”라 말한 뒤 “(그래서)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인다. 수빈은 무리해서 공감대를 만드는 대신, 상대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는 의향을 명확히 밝히면서 게스트의 호응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오히려 수빈이 건네는 질문들에는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궁금해할 법한 포인트가 직관적으로 담긴다. 예컨대 그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팬인 에이티즈 우영에게 “덕후면 미는 ‘러브라인’이 있잖아요.”라거나, 지드래곤 팬인 미미미누에게 “공연이랑 여자친구 1주년이 겹치면 어떡할 거예요?”라는 현실적이지만 답변이 궁금해지는 질문을 던진다. 게임 ‘오버워치 2’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데이식스 영케이에게 “스트레스가 풀려요? 쌓일 때가 더 많지 않아요?”라며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멘트로 대화를 이어간다. 그렇게 수빈은 대화 속에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발견해서 일상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래서 그 분야를 잘 모르는 시청자까지 몰입하게 만들며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좋은 진행자가 된다.

때로 수빈은 본인의 성정과 K-팝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지닌 특수한 상황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감을 밝히기도 했다. 수빈은 대형 페스티벌에 올라서 최선을 다한 무대를 보여줬음에도, 그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자신에 대한 어려움을 언급한 적이 있다. 혹은 2022년 이영지가 진행하는 유튜브 웹 예능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에 출연했을 당시, “연예인을 할 성격이랑 조금 거리가 있다.”는 고민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기도 했을 정도다. 그러나 수빈은 2022년 위버스 매거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 최수빈과 아이돌 최수빈의 구분이 없다는 게 너무 마음 편한 것 같아요.” 수빈은 인간 최수빈으로서 경험하는 고민을 꾸밈없이 보여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는 생활에서의 경험과 감각 또한 아이돌 최수빈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내기도 한다. 예컨대 수빈은 친구들이 찍어준 일상 사진을 ‘#monthlysoobin’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팔로워가 약 1,500만 명인 인스타그램에 기록하거나, 해외 투어 중에도 그저 좋아하는 콘텐츠를 보면서 밥을 먹는 게 가장 행복한 휴식의 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지난 ‘지큐 코리아’ 인터뷰에서 언급한 요즘의 위시리스트는 게스트 하우스에 가보는 것이다. ‘최애의 최애’에서 수빈이 보여준 진솔한 리액션 덕분에 모르는 주제의 영상을 즐겁게 감상했다거나, 이 프로그램으로 그에게 ‘입덕’하게 되었다는 댓글이 종종 달리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수빈은 K-팝 아티스트의 삶 속에서도 특유의 솔직함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면서, 또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함께 전할 수 있다.

“자존감이 높지는 않아도 스스로를 깎아내리지는 않아요. 그냥 ‘부족하면 부족한 거지’ 생각해요. 더 열심히 하면 되니까.” 항상 대중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평가받아야 하는 K-팝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솔직함을 드러내고, 동시에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수빈은 ‘데이즈드’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도 함께 놓는다. “안 되는 음이면 못한다고 하는 건데, 너무너무너무 힘들게 되는 음이어서…” 수빈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최근 앨범 ‘별의 장: TOGETHER’ 레코딩 비하인드 영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수빈은 계속해서 연습하고 소리를 찾아내면서, 어떤 간절함이 느껴질 정도인 진성의 보컬을 통해 “영원의 약속”이라는 가사를 소화해낸다. 그래서 종종 수빈이 표현하는 고음역대에서는 힘들어도 끝내 해낼 수 있는 사람의 의지가 담긴다. 이전에도 수빈은 오랫동안 자신의 의지로 팬들과 멤버들에게 밝히지 않은 채, 컴백을 위해 안무 레슨을 별도로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느린 만큼 더 걸어야 멤버들이랑 속도를 맞출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수빈은 종종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 정의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에는 그 노력에서 기인하는 고유의 에너지가 있다. 예컨대 수빈은 3년 전 ‘출장 십오야’에서 자신이 오랜 시간 애정했던 K-팝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안무를 능숙하게 소화하는 모습으로 ‘핑크 카디건 걔’로 불리며 화제가 되었다. 이는 스스로가 어떻게 비치는지 신경 쓰기보다 주어진 것을 제대로 해내고, 좋아하는 걸 당당한 태도로 임하는 모습 덕분일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 있다고 말하지 않더라도 항상 최선을 다해왔고, 결국 그 최선은 수빈을 반짝이게 하는 순간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지난 7월 21일 발표된 솔로 곡 ‘Sunday Driver’에서, 수빈은 그 어느 때보다 산뜻하고 여유로운 목소리를 들려준다. ‘Sunday Driver’ 뮤직비디오에서 수빈은 드라이브를 하던 중 자동차가 고장나고 만다. 그러나 수빈은 그곳에서 우연히 화초를 발견해서 조심스레 챙긴 뒤 조수석에 내려놓는다. 고장난 자동차와 함께 트레일러에 실려서 어디론가 가지만, 수빈은 그 순간마저 경쾌한 드라이브로 바꿔버린다. 우연히 발견한 소중한 존재와 함께라면 “경로를 벗어나 닿은 곳”이 어디든, 매일을 여유로운 일요일로 만들 수 있다. ‘Sunday Driver’처럼 일상과 주변을 소중히 챙기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모든 곳에서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다. “아 숲이 아닌 바다이던가.” 작년 2월 공개된 수빈의 커버 곡 ‘숲’의 가사다. 기타 한 대로 시작되는 전주 위로 수빈의 떨리는 호흡이 그대로 녹아든 목소리는 아티스트와 팬들의 관계가 서로에게 ‘숲’이 되어줄 수도, ‘바다’가 되어줄 수도 있다는 울림을 전하는 감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주변에 높은 나무가 서 있다고 해서 그들을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니다. 오랫동안 스스로 숲이 되어야 한다고 믿어왔지만, 사실 바다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건 어찌 보면 수빈이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 찾아낸 해답일지도 모른다. K-팝 아티스트의 삶은 보편적일 수만은 없다. 다만 수빈은 그 특수한 상황들을 자신만의 일관된 방식으로 마주한다.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 말하고, 자신만의 기준을 지키되 예의 있게 대하는 것. 어려운 순간이 다가왔을 때,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또 최선을 다하는 것. 그 올곧은 마음이 풍기는 다정함은 수빈을 관통하는 정서이자, 사람들이 그에게서 편안함을 찾아내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수빈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이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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