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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씨네21’ 기자)
사진 출처Netflix X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작품 안에서 구현된 K-팝 산업의 문화와 세계관 설정의 근간이 되는 여러 요소는 분명 한국의 것이다. 작품에 참여한 주요 창작진 중에는 K-팝의 히트메이커 테디를 비롯해 다양한 한국인이 이름을 올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기존 영화 산업이 보여주지 못했던 전통적 의미의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성과를 거둔 한국 영화들이 있었다. 2016년 ‘부산행’이 해외 박스오피스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기록했고, 2020년 ‘기생충’이 작품 자체로 ‘현상’을 낳으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관왕을 거머쥐었다. 해당 영화들의 성과는 분명 한류를 바라보는 지평을 넓혔고, 화제성도 두루 챙겼다. 하지만 정작 한국 영화가 한류의 차원에서 논의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미지수다. 영화의 한류가 드라마나 K-팝이 달성한 것과 확실히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영화는 콘텐츠의 해외 팬들을 공략한 관광 상품을 낳지 않는다. 혹은 영화의 주연 배우가 특정 국가에서 국빈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다. 이를 여러 근거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대 후반은 더 이상 작품 하나하나를 두고 한류 열풍을 분석하기엔 드라마나 K-팝이 이룬 전적(前績)이 너무 많은 시기인 탓에 막상 영화가 흐름을 타니 신선함이 줄었고, 영화라는 매체는 한국적인 무언가를 확언하기엔 다소간 보편적인 데가 있다. 무엇보다 영화의 즐거움은 모두가 동일한 시점에 동일한 요소를 누리는 시대에 극장에 발걸음을 해야만 목도할 수 있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어떠한가. 정교한 K-팝 문화의 재현을 바탕으로 그 자체로 한국의 K-팝 문화에 익숙한 관객도, 이에 새로 눈을 뜰 관객도 모두 한국적인 문화 전반을 충실히, 그것도 각자의 공간에서 즐길 수 있다. 작품 릴리즈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관람객 수가 급증했으며 전통 민화 작호도를 모티브로 한 머치(merch) 판매도 폭증했다. 작품의 주요 배경인 낙산공원과 청담대교 등을 관광한 후 인증하는 문화 역시 챌린지의 일종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Golden’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 1위에 오른 데 이어 이르지만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후보로도 점쳐진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신드롬은 넷플릭스라는 디지털 플랫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넷플릭스는 오랜 시간 서브컬처로 치부되던 한국 콘텐츠를 전 세계에 보급하는 역할을 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뿐만이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일자리든 파티든 어딜 가도 해외 게스트들이 ‘흑백 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을 이야기했고, 급기야 나탈리 포트만도 이 프로그램을 언급했다. ‘오징어 게임’ 각 시즌의 인기야 말해 입 아프다. 물론 넷플릭스가 초국가적(transnational) 메가 플랫폼이기 때문에, 언제든 어디서든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하지만 서브컬처의 부흥이 거대 플랫폼 ‘내에서’ 바이럴되기 위해서는 넷플릭스의 자체의 특성을 살펴야 한다.

넷플릭스의 추천 콘텐츠 시스템과 마케팅의 승리
‘킹덤’을 시작으로 ‘오징어 게임’, ‘스위트홈’, ‘더 글로리’ 등의 작품이 거듭 인기를 얻었고 전 세계 시청자가 시차 없이 한국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2022년 넷플릭스 공식 뉴스룸은 전 세계 회원의 60% 이상이 최소 1편 이상의 한국 작품을 시청했고, 한국 콘텐츠는 언제나 비영어권 장르에서 시청 시간 1위를 기록한다고 보도했다. ‘케이팝 포스트’의 평론가 제시카 H.는 ‘오징어 게임’ 덕에 넷플릭스가 한국 IP로부터 거둬들인 구독 수익이 34억 달러 이상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돌아보면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일찌감치 국제 시장에 눈을 돌렸다. 마침 ‘한류 3.0’이라 불리는, ‘글로컬’ 문화의 차원에서 한국 문화 전반을 논의하는 시기가 맞물려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과 로컬 문화의 결합이 두드러졌다.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은 관객의 초국가적 콘텐츠 소비를 가속화한다. 기술이 세계 각국의 콘텐츠를 내 집 안방, 출·퇴근길 스마트폰으로 편히 가져다준 것이다.

쉬이 인지하기 어려운 사실이 있다. 넷플릭스의 ‘추천 콘텐츠 시스템’이 한류 진흥에 한몫했다. 넷플릭스 유저라면 추천 콘텐츠 시스템을 접해본 적 있을 것이다. 유저마다 다른 넷플릭스의 메인 페이지 말이다. 넷플릭스 서비스에 액세스할 때마다 회원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찾도록 지원하는 이 시스템은 콘텐츠 기반 추천과 협업 필터링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유저의 시청 시간, 콘텐츠 선호도를 기반으로 추천하는 체제(콘텐츠 기반 추천)와 유저와 선호도가 겹치는 유사 집단 내의 취향을 기반의 예측 체제(협업 필터링)가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용자의 시청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용자가 알고리즘을 통해 UX에 계속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알고리즘은 유저의 국가와 무관하게 작동한다. 즉, 국가를 초월한 콘텐츠의 추천이 가능하다.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40여 개의 개인화된 항목과 각 항목에 포진한 작품을 보고 한국 작품을 시청하는 경험은 한국 콘텐츠 경험의 초입이 될 수 있다. 이용자가 입력한 데이터가 홈 화면에 가시화되면 유저의 취향에 맞게 시스템이 재구성되고, 이를 통해 한국 콘텐츠 경험의 범위가 확장된다. 시청을 결정하기까지는 소비자의 의지가 따라야 하겠으나, 거대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시스템 구성이 소비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타국의 작품을 볼 수 있게끔 유도하는 현상은 분명 OTT 플랫폼만이 만들 수 있는 방식이다. 추천 알고리즘은 한 작품이라도 한국의 콘텐츠를 접한 이상 모두에게 손쉽게 가닿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만의 마케팅 또한 이에 일조한다. ‘웬즈데이’가 틱톡에서 바이럴 히트를 하며 넷플릭스는 전통적 홍보 방식인 옥외광고를 유지하되 신진 홍보 전략으로 틱톡을 전면에 활용했다. 팝업 스토어처럼 전 세계에 설치된 ‘오징어 게임’의 영희 인형은 넷플릭스에 438만 명의 신규 가입자를 안겼고, 틱톡 내의 해시태그 #squidgame의 조회 수는 820억 회에 달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공개 극초반 930만의 시청 수를 달성했다. 한데 지금과 같은 인기를 예상하는 이들은 누구도 없었다. ‘더 랩’의 취재에 의하면 넷플릭스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고화질 클립 공유를 이례적으로 허용했다. 직접 ‘짤’을 만들 수 있도록 한 셈이다. 이후 ‘당신의 최애는 누구인가요?’에 버금가는 일이 발생한다.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의 각 캐릭터들 그리고 사운드트랙이 유튜브와 틱톡, SNS를 기반으로 재빠른 속도로 퍼져 수많은 2차 창작까지 낳았다. 그 결과 ‘Golden’을 비롯한 각종 사운드트랙이 인기를 얻고, 아이돌 그룹이 이를 챌린지로 만들며 각종 소셜미디어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음악이 흘렀다. 이 챌린지엔 집에서 빈지워칭이 가능한 가족 단위의 시청자들도 다수 참여했다.

K-팝은 분명 소구층이 확실한 장르이나 특정 소구층만 공략해서는 지금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Golden’이 연일 경신 중인 기록이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Let It Go’에 비견되는 현실만 보더라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기존 K-팝 팬덤을 넘어 새로 유입된 향유층에게 한국의 콘텐츠 전반을 포섭 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넷플릭스가 있다. 넷플릭스는 추천 콘텐츠 시스템을 활용해 OTT의 최대 장점인 접근성을 극대화하며 유저들에게 한국 콘텐츠를 친숙하게 만들었다. 또 바이럴 마케팅을 성황리에 이끌 수 있는 공유성을 적극 활용해 새로운 한류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향후 이 흐름을 어떤 작품이 새로 만들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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