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에 이요한, 일렉트릭 기타에 방인재, 베이스에 성수용, 드럼에 이윤혁, 보컬 권정열. 밴드 소개를 먼저 하고 앨범을 소개하는 편이 좋겠다. 그렇다. 5세대 10CM의 새 앨범은 록 장르다. 권정열이 소문난 메탈 광이고, 메탈 보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의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렇다 해도 지금까지 그가 10CM 이름으로 발표한 노래와는 사뭇 성격이 다르다. 가수 윤하가 진행하는 유튜브 음악 토크 쇼 ‘우쥬레코드’에 출연한 권정열의 앨범 소개를 들어보자. “어쿠스틱이 없어요. 더 많이 밴드적이고, 로킹한 사운드가 들어가니까… 즐거움을 만족시킨 그런 앨범이 만들어지는 바람에,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이 다릅니다.”

15년의 세월 동안 10CM는 많이 달라졌다. 경북 구미의 동아리 선후배 두 명이 결성한 인디 포크 듀오가 홍대 앞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던 시기의 기억은 이제 희미하다. ‘아메리카노’와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스토커’ 등 2010년대를 대표하는 히트 곡을 줄줄이 쏟아낸 밴드는 재치 있는 가사와 입에 달라붙는 노랫말, 음악의 힘만으로 인디 최초로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를 개최하며 한국에서 사랑받는 밴드 중 한 팀으로 자리를 잡았다. ‘엉큼’, ‘19금’ 등의 미묘한 상황을 묘사하거나 권태로운 88만 원 세대라 던질 수 있었던 슬래커적인 태도와 냉소적인 시선은 정규 3집까지만 유효했다. 권정열의 솔로 프로젝트로 팀을 전환한 4집부터 10CM의 이야기는 잡다한 만담보다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의 경험을 과하지 않게 풀어내는 균형에 집중했다.
음악에도 변화가 생겼다. 2017년의 정규 4집 ‘4.0’과 함께 이어간 ‘4.5’까지의 싱글, 앞번호를 바꾸어 이어간 세 번째 EP까지 일관되었던 권정열의 리듬은 ‘청춘 3부작’ 시리즈부터 힘을 내기 시작했다. ‘입김’에서 손에 잡아보았던 일렉트릭 기타에 오버드라이브를 걸고 본격적인 밴드 사운드를 만들어간 ‘그라데이션’과 ‘부동의 첫사랑’ 그리고 이벤트성으로 발표한 ‘너에게 닿기를’이다. 10CM 음악의 근간인 포크는 표현의 방식이나 가창에서 팝의 터치를 많이 가미하는 과정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라데이션’과 ‘부동의 첫사랑’에서 권정열이 들고 나온 악기는 어쿠스틱 기타였다. ‘너에게 닿기를’의 역주행이 그래서 중요했다. 14년 전 동명의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번안하여 다시 내놓은 곡의 예상치 못한 인기는 노스탤지어의 영향보다 J-팝을 위시한 밴드 음악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 증가한 공이 더 컸다. “이 앨범은 정말로 타의로 만들었습니다. 팬들이 원했어요.” 유튜브 채널 ‘최성운의 사고실험’과의 인터뷰에서 권정열의 고백은 밴드 음악으로의 전환이 시류에 탑승하기 위한 전략과는 거리가 먼 결정임을 증명한다. 록이라면 일견 무겁게 느껴질 법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편의점’ 같은 음악이라는 설명 앞에 관록을 믿어보게 된다. 베테랑 싱어송라이터의 유연한 도전이랄까.

‘5.0’ 앨범 첫 곡 ‘Nothing’s Going On’을 시작하는 저돌적인 기타 연주부터 다르다. 경쾌한 연주와 함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일상 속 불평을 투덜거리는 권정열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불만의 대상이 응원하는 축구팀이라는 점 역시 10CM다운 스토리텔링. 그런데 총천연색 변주를 통해 갈라지는 노래의 스펙트럼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첫 정규 앨범의 ‘우정, 그 씁쓸함에 대하여’를 연상케 하는 포크 록으로 출발하는 곡은 후렴부에서 힘찬 펑크 록으로 감정을 다 털어놓더니, 두 번째 벌스에서는 스카 리듬과 직선적인 로큰롤을 연이어 배치한다. 최근 한국에서 인기를 얻는 청춘계 밴드들의 청량한 음향에 2020년대 초 팝 펑크 리바이벌과 그룹 고유의 스토리텔링을 더했다고 설명하면 정확하다. 권정열의 팝 펑크 록은 예상치 못해 즐겁고, 능숙하게 잘 해내서 더 즐겁다.
‘5.0’의 ‘어쿠스틱 아닌 곡’들은 밴드 편성의 재미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사랑은 여섯줄’과 ‘딱 10CM만’으로 호흡을 맞춘 빅 나티와의 ‘Monday Is Coming (Feat. BIG Naughty)’에서는 1980년대 카스의 터치가 느껴지는 뉴웨이브와 그들의 계승자 1990년대 위저의 루저 감성이 묻어난다. 특히 ‘사랑은 여섯줄’이 재미있다. 음악을 시작하게 되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 짝사랑. 좋아하는 그 아이를 위해 세레나데를 연습하는 모두의 이야기가 청량한 음악에 실려온다. ‘숨도 대신 쉬어 줬으면’처럼 제4의 벽을 넘어서는 재치있는 표현 혹은 과거 싱글의 소소한 스토리텔링 강점을 이어받았다. 지난 5월 31일 ‘2025 위버스콘 페스티벌’ 무대에서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소개했던 노래가 밴드 편성을 만나 완성된 곡으로 거듭나는 서사까지 절묘하다. ‘사랑은 여섯줄’과 같은 적절한 편곡이 앨범 전반에서 빛난다. 디스코풍의 베이스가 전면에 등장하며 재미있는 기타 연주가 활력을 더하는 ‘No.1’ 같은 곡도 어쿠스틱 편성이었다면 이만큼의 감흥은 어려웠을 테다. 비비와 호흡을 맞춘 8분의 6박자 록 발라드 ‘춤 (Feat. 비비 (BIBI))’도 부피를 키운 소리 덕분에 단순한 듀엣 곡을 넘어 한 편의 뮤지컬 넘버를 연상케 하는 서사를 획득한다. 그 와중에 앰프를 끄고 손에 익은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노래하는 ‘How Could You Darling’이나 ‘무슨 노래 듣나요?’의 매력도 다르게 들린다. 익숙한 구성이었다면 눈에 띄지 않았을 곡이 변화의 가운데에서 10CM의 궤적을 이어가고 있다.

즐겁다. 요즘 시대 정규 볼륨으로는 꽤 많은 열두 곡을 수록했고, 싱글 단위를 넘어 앨범 전체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긴 호흡의 라이브 콘텐츠와 콘서트에서 익숙한 넘버와 함께 신보를 소개한다. 과거 창작의 고뇌를 심심찮게 토로하며 나름의 소신을 지키는 음악가라 고백했던, 정규 앨범의 효용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던 권정열을 떠올리면 ‘5.0’의 변화는 고무적이다. 여러 매체를 통해 밝힌 바대로 권정열은 정규 앨범에 대한 욕심을 크게 갖고 있는 음악가가 아니다. 상업적인 성과에도 4집 이후 정규작 발표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까닭이다. ‘5.0’ 발매 전 ‘4.99999999’ 소극장 단독 공연을 통해 앨범의 전체 곡을 공개한 그는 오로지 팬들을 바라보며 만든 작품임을 강조했다. 스트레스나 부담감이 없다. 그래서 ‘5.0’은 종종 라이브 앨범, 콘서트 실황처럼 들린다. 어떤 평가나 도전 의식보다 나의 음악을 지지하는 팬들과 함께 큰 무대에서 다 함께 순간을 즐기는 그림이 쉽게 그려진다. ‘그라데이션’이 떠오르는 ‘Slave For You’나 ‘Into Your Summer’ 같은 곡이 밴드 10CM의 세트리스트를 채우는 까닭이다.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2025 위버스콘 페스티벌’ 무대가 떠오른다. 40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음원 차트에서 익히 들었을 히트 곡을 꽉꽉 눌러 담아 노래하던 권정열은 과거의 10CM를 기억하는 인디 마니아들, 현장을 가득 채운 K-팝 팬들이 모두 만족하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풍경을 만들었다. ‘너에게 닿기를’ 챌린지 영상도 공통점이 있다. 본인이 나서 노래하기보다는 게스트에게 정면 자리를 양보하고, 흥에 맞춰 즐겁게 기타를 연주하는 베테랑 싱어송라이터는 10CM의 노래가 갖는 범대중적인 인기와 영향력을 모두에게 돌려주고자 한다. 새삼 당연하게 여겨서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린다. 모든 게 변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가사를 짓고 노래를 부르는, 취향을 타지 않는 유행가로 다양한 이들의 순간을 채워주는, 딱 10CM만큼만 다가서고자 하는 음악가의 목소리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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