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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세카이노 오와리 인스타그램

지난 6월, 쇄도하는 바다 건너로부터의 내한 러시 속에서도 유독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바로 2019년 이후 무려 6년 만에 한국을 찾는 세카이노 오와리의 공연 발표였다. 특정 아티스트에 좀처럼 정착하지 않는 나로서도 이들에 대한 감정만큼은 특별하다. 일본 음악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시기에, 흔치 않게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며 좀처럼 표출하기 힘들었던 그 애정을 발산하게끔 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직 스트리밍이 본격화되지 않던 시절, 시부야 타워레코드 시청 코너에 걸려 있던 ‘Earth’(2010)를 우연히 접했을 때의 충격, 일본 가수의 방문이 흔치 않던 당시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 페스티벌’에 출연해 펼쳐보인 신세계까지. 숨죽이고 있던 J-팝 키즈를 지금과 같이 수면 위로 끌어낸 존재 중 하나가 세카이노 오와리라는 사실. 아마 오랜 기간 해당 카테고리를 좋아해온 이들이라면 쉬이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에 와 무엇이 팀을 이 불모지에 싹틔울 수 있게 했을까 생각해본다. 우선 독특한 외양이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밴드 편성임에도 베이스와 드럼 없이 기타 두 대와 피아노, DJ 박스의 단출한 구성. 여기에 피에로 가면을 쓴 멤버의 존재까지. 겉모습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레 음악으로 이어지고, 이를 계기로 고정관념과 저만치 거리를 둔 소리 세계를 경험하며 그룹과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서정적인 피아노 소리를 하우스 리듬으로 감싸는 ‘虹色の戦争’, 일렉트로니카 기반의 리드미컬함 속에 애절함과 처절함을 기어코 새겨놓는 ‘スターライトパレード’는 어느 장르로도 규정할 수 없는 ‘창작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일찌감치 각인시킨 초창기 넘버들이다. 일견 아름답기까지 한 곡조 속에서 “당신이 죽인 자유의 노래는 당신의 마음속에 울리고 있는지” 묻는다든가, 세상의 종말을 바라보며 “그건 마치 우리의 문명이 빼앗은 밤하늘의 빛”이라 외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이들이 가진 장대한 세계로 순식간에 빨려들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초기 작품인 ‘Earth’와 ‘Entertainment’, ‘Tree’를 관통하는 것은, 과잉된 자의식이라는 확성기를 통해 세상의 추상적인 개념을 멋대로이면서도 날카롭게 해석하는 ‘세카오와식 판타지’라는 시공간이다. 그러한 메시지성의 발로엔 프런트퍼슨인 후카세가 있다. 그는 선천성 ADHD 환자로, 서툰 감정 제어로 인한 여러 문제로 인해 순탄치 않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중퇴 후 1년간 일본 내 아메리칸 스쿨을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정신 건강 악화로 인해 단기간 만에 귀국하기도 했다. 일본으로 돌아와 입원, 특수감시보호시설에서 24시간 CCTV 감시와 강한 약물 치료를 받으며 극심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은 끝에 체중이 40kg까지 감소했다. 결박된 채 병실에서 자신의 미래에 절망하며 세상이 끝났다고 느낀 이 경험이 후에 ‘세상의 끝(世界の終)’이라는 밴드명의 유래가 되었다는 것은 팬들 사이에선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상태가 호전된 후, 그는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음악을 선택하게 된다. 어렸을 때도 노래를 곧잘 했으며 중학교 시절 작곡과 기타를 시작했고, 미국에서도 이미 미약하게나마 활동하고 있던 영향이 컸다. ‘이것밖에는 없다.’는 생각에 동료를 모아 빚까지 내어가며 우연히 발견한 빈 지하실을 개조해 트레이닝 공간을 완성하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성장의 발판이 된 라이브하우스 ‘클럽 어스(Club EARTH)’다. 여기에 오랜 인연들을 모아 앞으로의 기적을 일궈낼 집단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유치원 시절 친구였던 사오리, 초등학교 친구이자 입시를 도와주고 있었던 나카진, 고등학교 동창으로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완성시킨 DJ 러브까지. 팀의 시작점에 단단히 뿌리 박고 있는 ‘결핍으로 구축한 서사’는 그들이 던지는 음악의 감흥을 몇 배, 아니 몇십 배 증폭하며 일본 대중음악사에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게 된다.

누구도 범점할 수 없는 독창성은 팀 스스로가 거의 모든 것을 구축하는 ‘창조성’과 새로운 소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라는 ‘집요함’이 공존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우선 DJ 러브를 제외한 3명이 모두 작사·작곡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각자 엔지니어링뿐 아니라 콘서트나 뮤직비디오 연출, 앨범 커버 디자인 등을 나눠 맡아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팀의 자랑거리다. 이와 함께 여러 해외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내수 중심의 시장에 일찌감치 글로벌한 기운을 불어넣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에픽하이를 비롯해 아울 시티, 니키 로메로, 클린 밴딧, 리햅과 같은 이들과의 적극적 협업은 데뷔 이래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이들의 선도성이 유지될 수 있는 큰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해외 활동을 위한 명의인 엔드 오브 더 월드로서 선보인 앨범 ‘Chameleon’은 이들이기에 가능했던 의미 있는 시도라 언급할 만하다.

커리어 초기에는 이들의 캐릭터와 여러 에피소드에서 파생되는 가십이 화제를 낳으며 인기를 견인했지만, 어느덧 이들도 데뷔 16년 차를 맞은 베테랑이 되었다. 관계성과 작품이 긴장감 있는 균형을 이뤘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오롯이 자신들의 원동력을 작품과 공연으로 메우고 있다. 특히 기존의 음악성을 흥미롭게 비튼 ‘Habit’의 히트는 이들의 저력이 여전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밴드 사운드를 기반으로 빚어낸 이 댄서블 트랙은 이들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만한 안무를 동반해 ‘RPG’의 2.5억 회를 바짝 뒤쫓는 2.3억 회의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함과 동시에 ‘64회 일본 레코드 대상’의 대상과 ‘MTV VMAJ 2022’의 ‘올해의 비디오 상(Video of the Year)’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다시금 음악 씬의 트렌드를 자신들의 곁으로 끌어온 셈이다.

그간 세카오와가 선보인 정규작들도 강한 자의식을 내려놓고 보편적인 일상에 밀착해 편안한 벗을 자처하고 있다. 후카세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결혼을 하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자리한 현실에서, 후카세와 사오리를 사이에 둔 망상은 더 이상 머물 곳이 없다. 물론 촌철살인과 같이 쏘아붙이는 후카세의 언어는 여전하지만, 그 빈도수는 확연히 줄었음은 분명하다. ‘イルミネーション’을 잇는 크리스마스 시즌 송 ‘Silent’, 동화책 한 권을 보는 듯한 무드와 함께 한 차원 진화된 하이브리드 뮤직을 선사하는 ‘周波数’, ‘Tree’ 시절의 작법이 지금의 팀과 만났을 때 어떤 화학반응을 내는지 확인할 수 있는 ‘最高到達点’, 기나 긴 터널을 뚫고 나와 지금의 실패마저 희망의 실마리로 마주하는 것이 가능해졌음을 알려주는 ‘サラバ’까지. 꽤나 긴 시간에 걸쳐 우리가 목격하지 못한 그들의 모습이 축적되어 있다는 점은, 오랜 세카오와 마니아들이 어느 때보다 이번 한국 라이브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시간은 모든 걸 바꾼다고는 하지만, 때로는 어느 존재보다 무력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세카오와의 신곡을 들을 때다. 인트로를 듣는 순간, 그것은 2011년 시부야 타워레코드에서의 두근거림을, 2012년과 2016년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 페스티벌’의 뜨거운 여름 무대를 그리고 2017년과 2019년의 내한 공연과 2023년 ‘섬머소닉’의 시간선을 단번에 수평선으로 만드는 타임머신으로 분한다. 절망의 끝에서 음악으로 살아남기를 택했던 이들이 이제는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을 노래하게 되었지만, 그 목소리 속에는 여전히 세상의 끝을 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가 스며 있다. 어쩌면 진정한 변화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성숙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도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변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변해가야 겠다고 다짐한다. 마치 그들이 노래했듯,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안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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