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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지
인터뷰오민지
사진 출처Park Joo Young

크리스토퍼는 2012년 정규 앨범 ‘Colours’로 데뷔한 이후, 약 13년간 서정적인 멜로디와 진솔한 감정을 담은 음악으로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한국에서도 2019년 내한 공연 당시 ‘Bad’ 무대에서의 ‘떼창’이 SNS에서 화제가 되며 널리 알려졌고, 최근에는 정규 7집 ‘Fools Gold’와 다큐멘터리 ‘Christopher: A Beautiful Real Life’를 통해 자신이 가고 있는 길과 하고 있는 일이 맞는지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이번 내한 공연까지의 여정 속, 크리스토퍼가 내린 자신만의 ‘뷰티풀 리얼 라이프’의 정의에 대하여.

9월 6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 돔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어요. 이번 내한 공연은 어땠나요?
크리스토퍼: 이번 콘서트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했던 공연 중 가장 큰 규모였는데요. 한국 팬분들은 공연장에서 정말 모든 것을 쏟아부으시거든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성공적인 공연이었어요.(웃음) 정말 다 좋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일단 ‘When I Get Old’와 ‘Bad’ 때는 ‘떼창’을 다 함께 불러주셨고요. ‘Orbit’에서 “오오” 하는 구간에서 또 너무 크게 불러주셔서 웃음이 터질 정도였어요. 그리고 ‘Irony’를 부를 때 갑자기 공연장이 밝아지더라고요! 팬분들이 핸드폰 불빛을 비춰준 그 순간이 너무 대단하다고 느껴져서 바로 인스타그램에 올렸어요. 그리고 지난번에 아내가 한국에 처음 왔어요. 같이 올 수 있어서 매우 좋았는데, 다음에 한국에 올 때는 가족을 다 데려올 거예요. 그때가 되면 딸들도 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지 직접 볼 수 있을 테니 생각만 해도 뿌듯하네요.(웃음)

이전 내한 때 팬분들의 플래카드 문구를 보고 평생 잊지 못할 것을 직감해서 ‘Staying in the Moment’와 ‘Waited for This Moment’를 타투로 새기셨잖아요. 혹시 이번에도 새긴 타투가 있나요?
크리스토퍼: 이번에는 공연 전날에 팔 뒷면에 작게 수호 천사 타투를 했어요. 항상 한국에 올 때마다 저를 누군가가 계획대로 잘 되도록 보호해준다는 느낌이 들어서 ‘Good Luck!’이라는 뜻으로 새겼어요.(웃음) 타투를 남기는 이유는 좋았던 순간들, 좋은 공연들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순간들이 무대에서 하이라이트였던 순간일 수도 있고, 어떤 절정에 올랐던 순간일 수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한 뭉텅이로 흐려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를 제 몸에 잉크로 새김으로써 잊지 않으려고요. 

그중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타투는 무엇인가요?
크리스토퍼: 가족은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 모국인 덴마크에서 그 의미를 담은 개인적인 타투를 새겼어요. 첫째 딸이 맨 위에 있고, 그다음 아내, 막내딸이 새겨져 있는데,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죠. 중요하다는 말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 존재들이에요. 이 타투는 제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집을 떠나 있더라도 항상 함께 있다는 느낌을 줘요. 두 딸들과 아내 덕분에 제가 이렇게 자리 잡고 일하고 있어요. 

‘Orbit’의 가사 같네요. 가족을 “내 인생의 목격자이자 나를 다시 궤도로 이끄는 존재”라 표현하잖아요.
크리스토퍼: 맞아요. ‘Orbit’은 제가 가족을 중심으로 궤도를 돌고 있다는 거예요. 잠시 다른 곳에 있더라도 언제든 항상 가족을 향해서, 딸들을 향해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죠. 가족은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이자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원동력이에요. 그리고 작년에 여러 달에 걸쳐 투어를 하는 동안 알게 된 건데 저는 가족들과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더라고요.

얼마나였던가요?(웃음)
크리스토퍼: 가족으로부터 떨어질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은 2~3주 정도예요. 작년에는 2개월 간 투어를 돌고, 3일간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한 달 간 나가 있고, 5일 동안 집으로 돌아가고를 반복했는데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짧은 기간만 집에 있으면 가족과의 시간에 집중할 수 없거든요. 물론 어떤 일을 하든 동전의 양면 같은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래도 다큐멘터리 ‘Christopher: A Beautiful Real Life’에서 보셨던 그런 공연 일정은 다시는 안 할 거예요.(웃음)

얼마 전에 크리스토퍼 씨의 다큐멘터리가 공개되기도 했죠. 꽉 찬 공연장에서 무대에서 행복하게 뛰어다니는 반면 아프고 힘들어 하는 모습,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과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갈등하는 모습이 대비되기도 했어요.
크리스토퍼: 다큐멘터리 촬영이 조금 무서웠던 게, 제 개인의 삶을 다 드러내서 보여주는 거잖아요. 제 아내와 딸들의 얼굴도 공개되고, 저희 가족 간의 화법이나 갈등들도 다 보여줘야 하잖아요. 또 의견이 많은 사람들은 그걸 보고 ‘이렇다, 저렇다.’라고 말을 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자신을 보여주는 과정이 작사와는 또 다른가요? 평소 실제로 경험한 것에 대해서만 쓸 수 있고, 본인이 느낀 것에 대해 노래한다고 말했던 만큼 음악에 자신의 생각과 삶이 투영되고, 어떨 땐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밀한 모습까지 드러나게 되는 순간도 있잖아요.
크리스토퍼: 음악은 정말 오랫동안 해오기도 했고, 이제는 그 과정이 치유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저는 진실된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제가 본 것, 경험한 것, 살아낸 것들을 써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진실된 내용을 전하면 듣는 사람들이 저와 같은 삶을 살지는 않더라도 제 노래에 공감하고, 본인을 노래에 투영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사람들도 더 진실된 것을 보고 싶어 해요. 저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필터를 끼거나 AI가 만든 완벽한 결과물이 있지만 거기에 공감하긴 어렵죠. 나 자신을 알릴 수 있는 플랫폼과 충분한 용기만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거예요.

유튜브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에서 이영지 씨에게 “강한 여자를 감당할 수 있는 건 강한 남자뿐이에요. 절대 자신을 바꾸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했던 게 떠올라요. 이후 ‘리무진 서비스’에서 이영지 씨의 ‘Small girl’을 “큰 눈, 환한 웃음, 큰 목소리와 강한 자아/ 자기야, 그게 내가 제일 사랑하는 점이야/ 그러니 그냥 너대로, 너답게 있어.”로 개사해 답가로 불러주기도 했죠.
크리스토퍼: 영지는 웃음소리도 크고, 목소리도 크고, 개성도 정말 강해요. 그때도 이야기했던 게 영지의 그런 부분들이 소중히 여겨져야 되고, 그런 모습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된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 노래가 나왔을 때 영지가 우리의 대화를 기억하고 영감을 받아서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리무진 서비스’에서의 기회를 빌어 리메이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노래를 부르면서도 영지와의 대화가 생생하게 기억나서 재밌었고요. 그리고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 때 우리 둘 사이의 케미스트리가 정말 좋다는 것을 느껴서 ‘Trouble’을 쓰고 나서 영지가 같이 작업을 하면 정말 완벽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의 스튜디오에서 만났을 때도 영지는 평소와 같은 환한 미소와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등장했어요.(웃음) 리코딩 부스에 들어가서 제가 “이렇게 불렀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한 걸 본인만의 해석으로 보여줬는데 그것도 정말 완벽했죠. 영지는 너무 좋은 사람이에요.

사실 스스로 그런 개성을 지키는 것도, 그런 나의 개성을 소중히 여기고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크리스토퍼: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해요. 왜냐하면 완벽한 사람은 하나도 없거든요. 우리 모두 불완전한 부분이 있고 또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 모든 부분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편할 거예요. 있는 그대로 살면 되거든요. 그게 훨씬 쉬워요. 가면을 쓰고 내가 아닌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잖아요. 사람마다 추구하는 게 다르겠지만 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내가 가치가 있구나, 내가 행복하거나 슬퍼도 괜찮구나, 내 목소리를 누군가가 듣고 있구나.’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는데, 제 음악을 듣는 분들도 그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거든요. 내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게 음악이니까요.

그럼 한국에서의 공연을 모두 마친 지금 이 순간 크리스토퍼 씨의 감정은 어때요?
크리스토퍼: 최근 4개월 동안 정말 큰 공연들을 많이 했어요. 덴마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페스티벌 중 하나에 참여했고, KSPO 돔에서의 공연도 최대 규모의 공연이었죠. 한국 공연까지 모두 마치고 나니 양가적인 감정이 들더라고요. 이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너무 좋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다음 공연을 하기까지 시간이 아직 남았고, 이 파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껴 슬프기도 했어요. 이제는 다음 파도를 향해서 패들링을 해야죠.

다큐멘터리에서도 본인이 좇는 것을 ‘아드레날린’과 ‘파도’라고 표현하셨잖아요. 다음 파도는 어떤 것일까요?
크리스토퍼: 일단 스튜디오에서 여러 곡의 작사, 작곡을 해야죠. 최근에 다큐멘터리도 내고, 앨범도 냈다 보니 새로운 앨범을 작업해야 하는 시점에 왔어요. 이제 등산을 막 시작하는 단계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것은 항상 재미있어요. 성장할 수 있고, 성장할 여지가 있잖아요. 또 내년에는 덴마크에서 지금까지 했던 것 중 가장 큰 헤드라인 쇼에 설 예정인데, 그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기존에 했던 걸 해나가거나 기존의 저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할 때마다 즐거움을 느껴요. 몇 년 전에 넷플릭스와 ‘A Beautiful Life’ 영화를 찍으며 연기도 했잖아요. 계속해서 실험하고, 새로운 것을 하면서 흥미를 느끼는 거죠.

파도를 탈 때 언젠가 멈출 것을 알고 영원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가치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이 파도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좇는 과정은 어땠어요? 이번 앨범인 ‘Fools Gold’도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희생하는 것들에 대해 다루고 있잖아요.
크리스토퍼: 이번 앨범까지 오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그 순간에 충실해야겠다. 현존해야겠다. 그리고 내 직감을 따라야겠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도 서정적인 톤으로 질문을 하면서 시작하다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누군가가 내게 제발 길을 보여줬으면 좋겠고, 정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절박하게 소리를 질러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거든요. 그래서 이 앨범을 통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그런 절박함을 느껴봤을 것이고,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하고 있는 일이 맞는지 모르겠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데 사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이 길이 맞는 건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아야만 하잖아요. 그리고 답을 내리지 못해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또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할 때도 있고요.
크리스토퍼: 사실 'Fools Gold Pt. I'을 썼을 땐 가족을 너무 그리워하던 때라서 여러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던 시점이었어요. 인생에 모든 걸 쏟아부어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 살고 싶었는데, 그러다가도  진짜로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은 없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인생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지금 이걸 엄청난 거라고 생각하고 좇아가고 있는데 실제 끝에 갔을 때 금이 거기 있기는 한 걸까? 지금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나?’ 같은 질문을 담아서 쓴 노래예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요?
크리스토퍼: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완벽한 답을 찾지는 못했어요. 아직도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어떤 걸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원하는 균형을 잡을 수 있는지, 어떤 것을 하지 않아야 될지에 대한 감은 잡은 것 같아요.

어떤 걸 원하고, 찾아가고 있어요?
크리스토퍼: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제 삶의 가장 큰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일로 하고 있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특권이거든요. 100만 분의 1의 확률로 당첨되는 로또를 이긴 느낌이에요.(웃음) 또 다른 특권은 제가 제 아이들에게 꿈을 좇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여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제 딸들도 언젠가 성장하면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처럼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그들만의 것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열정을 좇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저희 딸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면 저도 아버지로서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면에서 제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은 충분한 가치가 있죠.

그 모든 시간이 말 그대로 ‘뷰티풀 리얼 라이프’인 거네요.(웃음)
크리스토퍼: 정말, 정말 좋은 여정이었어요.(웃음) 그 과정에서 스스로 많이 발전하고, 성장하고, 진화한 것도 자랑스럽고요. 그래서 저한테 아름다운 삶이란 가족과 투어가 공존하는 삶이에요. 그 두 가지 모두에서 행복을 느끼죠. 두 가지가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그 둘 모두 제 삶으로 받아들였어요. 저는 가족과 함께 있든, 투어 중이든 그 순간을 살고 충실하려고 해요. 지금은 한국에 공연을 하러 왔으니까 팬분들이 모든 걸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하죠.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할 수 있을 땐 또 100% 전념하고요. 매번 다시 하라고 한다면 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나 정말 잘해냈구나.’란 생각도 드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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