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TIS’ 공식 유튜브 채널
김리은: CORTIS가 세상에 공개된 지 5일 만에 그들의 유튜브 채널에는 ‘Pack Up Bro’라는 영상이 올라왔다. 아직 팀의 이름조차 결정되지 않았던 시기에 촬영된 이 영상은 “3월엔 트리지”라는 멤버들의 다소 엉뚱한 이야기로 시작해, 맏형인 제임스가 “Pack up bro”를 반복함에도 미국에 가기 위한 짐은 싸지 않고 한밤중에 즉석 랩을 펼치는 마틴과 그에 맞춰 엉망으로 비트박스를 하는 건호와 성현의 공연으로 마무리된다. 이후에도 CORTIS의 유튜브 채널에는 ‘Laundry in LA’나 ‘Yoga Challenge’처럼 해시태그도, 소제목도, 정해진 형식도 없는 영상들이 간헐적으로 올라오는 중이다. 때로는 브이로그 같기도, 때로는 자체 콘텐츠 같기도 한 무질서함과 정돈되지 않은 맥락의 편집은 신인의 서투름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다섯 멤버의 매력을 보여주는 고유의 결로 축적되는 중이다.
이글루를 열심히 만든 후 다 함께 부수는 것처럼 소소한 장난부터 팬들을 위한 응원법을 연습하다가 괴성을 지르는 것처럼 장난기 가득한 모습까지. 내려간 성현의 바지를 ‘GO!’의 가사 “바지 내려 입고 / 스튜디오로 가지”로 가리는 편집이 등장할 만큼, 카메라의 존재를 잊게 하는 멤버들의 자연스러움과 시끌벅적한 관계성은 팬들이 보고 싶어 할 법한 진정성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성현이 카메라 앞에서 세탁한 속옷이 줄어든 것을 한탄하다가 리더 마틴에게 “아, 제발 카메라 앞에서 찍고 있는데.”라고 잔소리를 듣는 장면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은 선택의 영역이다. 외식을 건 요가 미션을 성공시키기 위해 힘겹게 맞닿은 제임스와 건호의 발이 확대된 채 영상 초반에 삽입되는 것처럼 코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역시 전략의 영역이다. 진정성과 완벽함 사이의 저울질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CORTIS의 콘텐츠들은 갓 데뷔한 신인인 동시에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는 다섯 소년의 청춘을 최대한 여과 없이 보여주고자 한다. 무엇이든 볼 수 있지만 정작 무언가를 진정으로 들여다보기는 어려운 시대에, 거칠고도 정교한 렌즈로 청춘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콘텐츠가 도착했다.
스포티파이 재생목록: ‘crash out’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특정한 감정이나 분위기를 위한 재생목록은 많지만, 한편으로는 기쁨과 슬픔이라는 큰 감정의 분류를 벗어나지 않아 서로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crash out’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현대적인 감정에 대한 특별한 사운드트랙이 되고자 한다. 원래 ‘crash out’은 극심한 피로 때문에 기절하듯 잠드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대적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몰려 감정적 붕괴, 소진 혹은 정신적 셧다운(shutdown)에 이르는 것으로 그 의미를 확장했다. 이는 업무 스트레스와 같은 사회적 활동, 개인적 애정 관계의 긴장 그리고 요즘은 모든 문제의 근원처럼 보이는 소셜 미디어에서 오는 피로감 등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한다.
재생목록의 간단한 설명, ‘해변의 콘래드를 생각하며(thinking about Conrad on the beach)’는 그 의미를 대중문화의 맥락에서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문구는 인기 소설이자 TV 시리즈 ‘내가 예뻐진 그 여름(The Summer I Turned Pretty)’의 등장인물 콘래드 피셔(Conrad Fisher)와 배경 장소 커즌스 해변(Cousins Beach)을 가리킨다. 콘래드는 가족 문제에 따른 내면의 고통으로 오랜 친구 벨리 콘클린(Belly Conklin)과의 관계에서 접근과 단절을 반복한다. 그리고 벨리는 콘래드와의 관계에서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얻었다가도 일순간에 혼란, 상처, 절망 사이를 오간다. 요컨대 알 수 없는 표정의 커버 아트, 간결한 재생목록 이름과 설명 문구는 그 어느 재생목록보다 복잡한 감정을 포착하려는 노력의 결과다.
그래서 ‘crash out’의 수록 곡은 특정한 장르나 시대, 템포로 규정되지 않는다. 빌리 아일리시의 ‘Happier Than Ever’와 함께 소리 치고,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drivers license’로 눈물 흘리고, 채플 론의 ‘My Kink Is Karma’가 다소 뒤틀린 복수심과 쾌감으로 이어진다. 솜버와 로라 영 같은 ‘crash out’을 체현하는 듯한 젊은 아티스트부터 제프 버클리와 플리트우드 맥 같은 고전을 비교할 수도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노래 중 무엇이 ‘crash out’에 들어 있을지 예상해보는 건 어떨까? 예를 들어 테일러 스위프트, 라나 델 레이, 시저의 노래 중 무엇이 침대에 파묻힌 당신을 대변하는가?
‘독쑤기미: 멸종을 사고 팝니다’ - 네드 보먼
김복숭(작가): 작가 네드 보먼은 ‘독쑤기미: 멸종을 사고 팝니다’를 통해 SF라 부르기도 망설여질 만큼 현실과 맞닿은 미래로 독자를 이끈다. 이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은 철학적 우울을 품으면서도, 첫 장부터 독자를 모험 속으로 끌어들이는 재기 넘치는 스릴러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2030년대, 멸종은 상품화되어 기업과 정부는 일정량의 크레딧만 구매하면 죄책감도 법적 제약도 없이 한 종을 멸종시킬 수 있다. 이 설정은 오늘날의 탄소 크레딧 제도를 풍자하며, 핵심 문제는 모든 것을 시장 논리에 맡긴 결과 멸종 크레딧의 가격이 억제력을 발휘할 만큼 비싸지 않았고, 그로 인해 눈 깜짝할 사이에 생물 수만 종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독쑤기미의 멸종이 거의 확실해지고, 카린과 마크가 이 지능을 지닌 물고기의 마지막 개체를 찾아 세계를 누비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물고기를 찾는 여정이나 각 인물의 동기보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에 던지는 메시지다. 보먼은 환경주의, 자본주의, 기술의 실패를 꿰뚫는 넓고 긴 설명을 즐기며, 가상의 등장인물보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 더 깊이 공감한다. 이 소설은 블랙 코미디로 포장된 경고이자, 마지막에 살짝 비치는 낙관으로 끝맺는 이야기로 읽히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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