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스트 메이크업’ (쿠팡플레이)
이희원: K-뷰티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최초 초대형 메이크업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막을 열었다. ‘저스트 메이크업’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60인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펼치는 메이크업 경쟁 프로그램이다. 1세대 아티스트 정샘물, K-팝 메이크업 아티스트 서옥, 260만 뷰티 크리에이터 이사배, 아모레퍼시픽 메이크업 마스터 이진수까지. 디테일, 전체적인 룩, 제품 활용, 스토리텔링 등 심사위원들의 서로 다른 의견이 엇갈리며 서바이벌다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첫 라운드부터 동일한 착장을 한 60명의 모델이 등장하고, 아티스트별 단독 화장대가 마련된 30개의 메이크업 무대가 동시에 펼쳐지는 장면은 프로그램의 스케일을 실감하게 한다. 첫 미션은 헤어나 의상 없이, 오직 메이크업만으로 경쟁하는 라운드. 이미 업계 정상에 오른 시니어 아티스트부터 떠오르는 루키, 뷰티 크리에이터까지 다양한 개성을 지닌 참가자들이 자신만의 필살기를 선보인다. 경력에서 오는 노련함과 신예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신선함이 교차하고, 전문가의 기술과 아마추어의 팁들이 맞붙으며 프로그램의 몰입감을 더한다. 참가 아티스트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치들도 흥미롭다. 두 번째 라운드는 총 15쌍의 쌍둥이 모델을 기용해 철저히 블라인드 심사로 진행된다. 같은 얼굴에 같은 주제를 두고 얼마나 다른 해석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관전 포인트로 삼은 것이다. “확실히 K-팝이 K-뷰티를 같이 이끌어 간다.”는 심사위원 이사배의 말처럼, 이어지는 ‘K-팝 스테이지’ 라운드는 보이그룹 TWS와 걸그룹 STAYC의 무대를 주제로, 조명, 안무, 카메라 워킹까지 고려한 룩을 연출해내는 미션이다. 메이크업으로 무대를 표현하고 완성하는 과정에서 K-뷰티와 K-팝이 서로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스트 메이크업’이 흥미로운 건, 메이크업을 단순한 뷰티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로서 확장시킨다는 점이다. 세미 파이널에서 제작진은 하이패션을 완성시키고, 신성한 소 그림을 표현하는 등의 미션으로 각양각색의 ‘뉴 페이스(New Face)’를 만드는 도전적인 주제를 던지고, 참가자들은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색과 질감, 표현을 펼쳐낸다. 서바이벌이라는 특수 상황은 아티스트들에게 실험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익숙한 스타일을 벗어나 새롭고 낯선 메이크업에 도전하면서, 참가자들은 자신이 가진 감각과 세계를 조금 더 솔직하게 드러내며 다양한 방식의 아름다움을 설득해낸다. 메이크업을 경쟁의 언어로 풀어낸 ‘저스트 메이크업’은 단순한 경연을 넘어, 지금 이 시대 메이크업이 가진 다양성과 경쟁력 그리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아티스트들의 도전을 담은 드라마로 완성될 것이다.

‘세계의 주인’
배동미(CINE21 기자): 고등학생 주인(서수빈)은 친구들과 함께일 때 가장 활기차다. 체육 시간엔 남학생들보다 능숙하게 공을 다루고, 쇼츠를 촬영하는 스마트폰 카메라 앞에선 웃긴 춤을 신나게 추며, 급식을 먹을 때 생리량이 많아 힘들다고 불평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안전한 곳에 친구들과 함께일 때면 건강하고 쾌활한 청소년. 하지만 혼자일 때도 한없이 밝을 수 있을까. 주말에 홀로 태권도장에 나와 훈련할 때면 주인이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고, 늦은 밤 고민 끝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면 거절당하기 일쑤다. 러닝타임이 흐르는 동안 관객은 그렇게 주인이의 그늘을 알아가게 된다.
학교에서도 그 모습은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동성폭력을 저지르고 출소한 인물이 이사 온다는 소식에 동급생 수호(김정식)가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는데, 주인이는 사인을 거부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너는 그 새끼 돌아와도 상관없어?”라고 압박하는 수호에게 주인이는 “취지는 알겠는데 틀린 말도 있고.”라고 지적한다. 피해자를 두고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라고 표현한 대목은 틀린 말이니 수정해서 가져오면 사인하겠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주인이는 수호가 피해자에 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대학 입시에 큰 역할을 하는 학교생활기록부에 남을 만한 서명 운동을 벌인다고 여긴다. 수호도 옳은 지적을 차분히 듣기보다 자기가 주인이보다 선량하고 의식 있다고 생각한다. 말싸움이 격해지자 주인이는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라고 교실 한가운데에서 소리치기에 이른다. 일순간 사방이 조용해지면서 모든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자 주인이는 특유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가 거짓이었다고 둘러대지만, 교실 안 친구들도 극장에 앉은 관객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주인이는 진정 피해자일까, 아니면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선입견을 반대하는 걸까. 그날 이후 주인이는 “너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어? 너 그 정도로 멍청했냐? 아니면 관심받고 싶었어?”라고 적힌 쪽지를 받는다.
영화 ‘세계의 주인’은 ‘우리들’, ‘우리집’ 등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사회적으로 어리다고 평가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윤가은 감독의 신작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어린 사람이 생각까지 얕지 않다는 사실을 일관되고 섬세하게 그려온 연출자로, 이번 작품에서도 어린 캐릭터를 주인공 삼지만 젠더 갈등이나 성폭력 피해자 간 연대 등 쉽지 않은 테마를 다룬다. 어른이라고 해서 삶의 난제를 성숙하게 풀 수 있는 게 아니며, 어린 나이에도 상처와 고민과 생각이 깊을 수 있음을 신중하게 드러낸다. 영화는 내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클로즈업을 자제해 한 사람의 마음속을 훤히 다 안다는 듯 행동하지 않는다. 풀숏이나 바스트숏, 뒷모습으로 인물을 바라보려 하는 연출자의 마음이 참 사려 깊다. 영화가 끝나면 주인이가 살아갈 나날이 몹시 궁금해진다. 그리고 윤가은 감독이 그려갈 미래의 영화들이 보고만 싶어진다.

D’Angelo, 소울 속에서 편히 잠들길
강일권(음악평론가): 1995년, 디안젤로(D’Angelo)의 데뷔 앨범 ‘Brown Sugar’가 세상에 나왔을 때를 기억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의 음악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R&B였다. 예스러운 오르간의 울림과 거리의 그루브 그리고 1970년대 소울의 밀도가 한데 섞여서 마음을 동요시켰고, 자유로이 유영하는 보컬은 마치 감정의 곡선과도 같은 그루브를 만들어냈다. 더불어 마빈 게이(Marvin Gaye)의 감동을 품은 소울풀한 음색까지, ‘세상에 이런 R&B 음악도 가능하구나….’ 싶었다. 처음 라이브 무대를 봤을 때의 충격도 대단했다. 패션부터 표정 그리고 걸음걸이까지 갱스터 래퍼의 모습으로 더없이 소울풀한 곡을 부르던 그의 모습은 언제 봐도 신선하며 감탄을 자아낸다.
이처럼 디안젤로가 선보인 음악은 R&B가 주류 팝 시장에 편입되던 1990년대 중반, ‘네오소울’이란 이름 아래 장르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의 아버지 세대가 들어온 소울, 그보다 앞선 재즈, 펑크까지 내면에 흡수한 채 과거에 대한 존중과 현대적 시선의 재해석을 융합해 다시 우리 앞에 내놓았다. 이후 에리카 바두(Erykah Badu), 맥스웰(Maxwell), 질 스콧(Jill Scott), 로린 힐(Lauryn Hill) 등 걸출한 동시대 아티스트가 이 ‘새로운 고전주의’에 합류했다. 또한 다른 많은 아티스트 역시 네오소울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30년에 이르는 긴 커리어에서 그가 발표한 정규 앨범은 단 석 장뿐이지만(‘Brown Sugar’, ‘Voodoo’, ‘Black Messiah’), 이렇듯 숫자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 그가 10월 14일 51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췌장암. 가족이 밝힌 바에 따르면, 디안젤로는 2주 동안 호스피스에 있었고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새 앨범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모든 이가 깊은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 나 역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의 죽음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디안젤로는 단순히 문화의 일부가 아니라 그 자체가 문화였다는 것을. ‘세대를 아우르는 목소리이자 혁신가’였던 디안젤로, 부디 소울 속에서 편히 잠들길.
Rest In Peace
D’Angelo (1974.02.11 – 20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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