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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하츠투하츠 X

세상은 소란스럽다. 지루한 일상 속 모든 것이 흐릿하게 번져간다. 산만한 소음의 세계에서 ‘띵’, 잘못 누른 듯한 피아노 불협화음이 들린다. 나의 모든 조리개를 오직 너를 향해 여는 신호음이다. 잠깐의 정적 후, 간결하고 건조한 피아노 리프가 몽환적인 공간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집단적 독백은 노이즈 캔슬링 버튼을 누른 듯 사그라들고, 뷰파인더 안에 오직 너를 담아 시간을 멈춘다. 너를 제외한 모든 풍경은 아름다운 보케처럼 흩어지고, 나의 유일하고 선명한 피사체는 네가 된다. 무심하고 시크한 보컬, 간결한 개러지 하우스의 반복적인 리듬과 그루브, 소울이 오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소녀들은 시험지 위에서 학용품으로 대전 격투 게임을 흉내 내고, 전면 거울이 설치된 발레 연습실에 얼굴을 맞대며 새로운 나를 투영해본다. 시험은 실력을 검사하는 행위다. 발레 무용수는 24시간 365일 내내 자신을 가다듬는다. 엄격한 평가와 강박적인 법칙이 지배하는 공간을 뒤로 밀어본다. 온전히 집중해 검은 수성펜을 머리 위로 날려 보낸다. 마침내 다다른 저 위에는 화려한 불꽃으로 수놓아진 별천지가 펼쳐지고 있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 등장한 하츠투하츠의 세계는 꿈과 환상의 렌즈로 관찰하는 ‘너’와 ‘나’의 미로다. 무궁무진한 모험과 보편적인 일상을 바삐 오가는 와중에 다른 이의 시선이 개입할 틈은 없다. 오직 머릿속에 가득한 나만의 세상과 나만의 철학,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지향과 나의 해석이 중요하다. 그렇게 바라본 세상은 흥미진진하다. “파란 잉크 빛깔 속 헤엄쳐”, “떠다니는 Quiz”, “환상의 조각” 같은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시어들과 미묘하고 신비로운 신스 팝 데뷔 곡 ‘The Chase’에서부터 그룹은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의탁하지 않는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태주 시인이 ‘풀꽃’을 바라보듯, 하츠투하츠는 내 옆에 앉은 너를 깊이 응시한다. 능동적으로 수수께끼를 풀어가며 ‘내 모험’을 즐기는 주인공이 상대의 독특함을 꾸밈없이 관찰하고 예찬한다. “넌 왜 늘 튀는데?”, “이어폰 속 플레이리스트, 뭐야 그 노래 뭔데?”, “같이 걷자, 난 다 궁금해.”. ‘STYLE’의 학창 생활이 몽글몽글하게 빛나는 이유는 상대를 온전히 응시하고 하나하나 세심하게 기억하는, 호기심 어린 집중에 있다. 하츠투하츠의 ‘소녀시대’가 매우 복고적으로, 동시에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까닭이다.

SM 3.0 시대는 ‘멋진 신세계’ 같은 디스토피아 속 유토피아를 새로이 건설하는 진취적인 자세보다 ‘올디스 벗 구디스’의 현대적 적용에 초점을 둔다. 라이즈(RIIZE)가 과거로 마음을 뺏어가는 법에서 조명했듯, K-팝의 역사를 함께 쌓아 올린 기획자들은 거대 담론이나 철학보다 지난 30년 동안 표준화된 공정의 힘을 믿는다. 세기말부터 전 세계에 정교하게 구축해온 A&R 시스템과 이를 가다듬는 팀워크, 너무도 익숙해진 송캠프, 그 가운데 최선의 결정을 내리며 쌓은 경력으로 연속성을 이어 나가는 핵심 창작가들이 건재하다. 이성수 최고 A&R 책임자를 선장으로, 기관장을 켄지로 이해하면 2020년대 SM호의 지난 항로와 앞으로 헤쳐나갈 미지의 바다를 그려볼 수 있다. 

하츠투하츠의 첫 EP ‘FOCUS’는 바로 그 역사의 아카이브를 오늘날에 맞춰 재해석해 신세대의 가치관으로 이식하는 과정이다. 하츠투하츠의 음악에는 S.E.S.의 서정적인 뉴잭스윙 ‘Pretty Please’와 소녀시대의 빛나는 걸스 나잇을 담은 ‘Apple Pie’, 세련된 레드벨벳의 R&B ‘Blue Moon’이 공존한다. 풍성한 보컬 하모니와 유니즌 코러스, 매끈하게 다듬어진 편곡은 분명 2025년의 음향이지만 과거의 이름을 댄다 해도 어색하지 않다. f(x)와 샤이니의 르네상스를 기억하는 ‘FOCUS’는 SM엔터테인먼트가 개척한 K-팝 전자음악의 역사와 유산을 기초로 한다. 세련된 미니멀리즘의 비트 앞에서 시간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대형 기획사의 신인 데뷔곡임에도 들뜨는 대신 차분한 태도를 가져갔던 ‘The Chase’에서 익히 예고한 무궁무진함이다.

사진 촬영을 메타포로 삼은 ‘FOCUS’에서 f(x)의 ‘미행’이나 ‘종이 심장 (Paper Heart)’의 섬세한 비유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The Chase'의 환상적 시점과 ‘STYLE”의 현실적 감각을 절묘하게 융합한 곡은 탐험, 관찰, 촬영의 3단계를 흥미로운 표현으로 완성한다. “프레임 속에 널 넣으면”, “내 눈은 오토 포커스”, “초점 뒤의 흐릿한 반투명한 My view” 등 시각적이고도 감각적인 묘사와 “세상 빼기 너 그건 재미없어” 같은 ‘STYLE’의 직설적인 화법의 공존이다. 언제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 나만의 시선, 나만의 렌즈로 다양한 화각에서 타자를 바라본다. “I cannot focus on anything but you”라 노래하는 후렴은 집중의 영역을 넘어선다. 맹목적이고도 매혹스러운 표현이다. 

“오랜 내 비밀을 가진 건 오직 너뿐이야”라 고백하는 ‘Apple Pie’와 우리만의 공간을 찾아 “어디든 달려갈래 / 너의 손 꼭 잡은 채”라 다짐하는 ‘Pretty Please’엔 “우리 꼭 영원하자”라 다짐하는 소녀시대의 경력 후반부 정규 앨범의 우정이 담겨 있다. 그 기준을 10대 소녀들인 하츠투하츠와 그들을 동경하는 아이들에게 맞춰 조정한 결과가 ‘FOCUS’의 가사 그리고 무한한 호기심과 깊은 궁금증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밤새 나누는 설정이다. 2020년대 K-팝 걸그룹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과몰입, 집중, 너와 나를 둘러싼 작은 세계의 이야기와 이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하츠투하츠도 공유한다. 그 과정에서 돋보이는 지점은 일종의 무관심이다. 깊숙이 파고든 세계에는 어떤 제3자도 없이 오직 너와 나만이 존재한다. ‘내 시선의 중심 / 세상을 뒤로 미는 중”. 초점을 고정한 ‘FOCUS’의 확신은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어지러운 감정을, 더 나아가 고유의 음악적 태도와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에 대한 선언으로까지 확장된다. 내가 너를 어떻게 바라보고, 너의 어떤 ‘STYLE’을 발견하며, 너와의 기억을 통해 어떤 결과를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의사 표현이다.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순간들로부터 펼쳐 보이는 성장담. 숱한 선배들의 노선이 떠오르면서도, 분명 다르다. 

하츠투하츠는 SM이 오랜 역사를 통해 정제한 프리즘으로 K-팝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빛을 모두 투영한다. 기획사의 역사에 의존하는 ‘무색’이 아니다. 모든 색을 반사할 수 있는 ‘투명함’이다. 상대로부터 받은 인상을 한데 모아 숨을 참고 집중하여 담아낸 순간에 찰칵, 셔터를 눌러 포착한 소녀의 세계가 저장 공간에 차곡차곡 담긴다. 서로에게 온전히 몰입한 환상의 세계가 SM과 K-팝 그리고 수많은 정보와 자극이 개인의 집중력을 흩트리는 시대에 어떤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까. 그 어떤 곡보다도 기술 친화적인 ‘FOCUS’의 오토 포커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눈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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