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은 또 다른 언어로 음악을 가졌다는 데에 있다. 멜로디라는 이야기 그릇을 만들고, 경험담 혹은 상상 속 동화를 노랫말로 담아내면서 본인의 목소리로 대중과 소통한다. 나아가 서로 공감한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음악이 대중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로운 대화의 장이 펼쳐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직접 만드는 아티스트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태연은 독특하다. 보컬리스트로서의 역할에 철저히 충실하다. 작사나 작곡에 참여하는 때도 있었지만, 그건 그의 커리어에서 극소수에 속한다. 대부분 누군가 만들어둔 음악과 가사를 전달한다. 목소리에 담긴 감정으로, 자신만의 해석으로. 그래서 태연의 음악은 대화가 아닌 대중을 향한 설득에 가깝게 느껴진다. “같은 곡일지라도 그날의 감정에 따라 달리 표현한다.”라는 그의 인터뷰 속 문장처럼 그는 매일 달라지는 감정을 세상 밖으로 내던지며 설득한다. 그렇게 우리는 태연에게 속절없이 설득당하고 만다.

Who am ‘I’
태연이 첫 솔로 앨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서야?’였다. 태연은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보컬이었다. 2007년 걸그룹 소녀시대로 데뷔한 지 채 1년이 지나기 전, 그가 부른 드라마 ‘쾌도 홍길동’ OST ‘만약에’가 큰 흥행을 거두었고 뒤이어 ‘베토벤 바이러스’ OST ‘들리나요’까지 흥행에 성공했다. 이제 막 대중에게 존재를 알리기 시작해야 할 때, 태연은 자신의 목소리를 단번에 각인시켰다. 그 뒤로도 꾸준히 드라마 OST를 부르며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데뷔 8년 만인 2015년에 전해진 솔로 앨범 소식은 뒤늦게 도착한 기분 좋은 편지와 같았다.
연이어 흥행한 OST가 발라드 곡이었고, 이 장르가 보컬리스트의 역량을 가장 돋보이기에 한다는 점에서, 대중은 태연의 첫 솔로 타이틀 곡 역시 발라드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태연의 선택은 모던 록이었다. 혼자만의 음악을 밴드 사운드로 채워 나갔다.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삶을 향한 찬가를 노래했다. 모던 록 장르로 ‘고통을 이겨내고 찬란히 비상한다.’라는 이야기를 부르는 태연은 모두의 예상을 뒤집은 모습이었지만, 그 반전의 크기만큼이나 대중에게 큰 울림을 선사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장르의 폭을 조금씩 넓혀 갔다. 트로피컬 하우스 곡인 ‘Why’, 얼터너티브 팝 장르의 ‘Fine’, 몽환적인 분위기의 네오 소울 ‘Something New’까지. 태연은 익숙함을 걷는 법이 없었다. 그 색다름에 중심이 되는 것은 ‘나’였다. 가벼운 여행마저 망설이는 이에게 ‘왜 망설여?’ 하고 가볍게 툭 던지는 질문은 마치 삶의 모험을 다짐하는 태연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이별 후 솔직한 감정 또한 비유 없이 "나는 아니야" 하며 직설적으로 전했다.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나다움’ 속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음악적 가능성을 넓히는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탐구하며 노래했다.

나를 위한 주술 혹은 주문
‘사계’를 발표했을 때 그는 이런 말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적어 올렸다. “처음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고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을뿐더러 억지로 짜맞추려 하기까지 하며 나름의 노력을 했음에도 여전히 내 경험과 배경과는 다르다고 느꼈어. 근데 지금 갑자기 사계를 들으며 번쩍 떠오르는 것이 내가 서른이 될 때까지 그동안 내 인생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음악과 나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 지금의 내 상태와 평생을 함께해 온 음악과 노래와 다투고 사랑하고 늘 그렇게. 그렇고 그런.”
그러니까 태연에게 음악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존재다. 모든 계절이 지나가는 자리. 냉정과 열정을 쏟아부은 공간 같은 것. 음악과의 관계 재정립을 끝낸 듯 그 후 태연은 노래로 설득하는 대상의 범위를 자신으로까지 확장했다. 설득의 방향이 안쪽으로 향할 때 그것은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 되고 주술이 된다.

‘불티’는 그 주문의 첫 시작이었다. 인상적인 드럼 사운드가 심장 소리처럼 쿵쾅대고, 그 소리를 배경으로 그는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불티’에 비유하며 타오르라고 반복해 주문을 걸었다. 조심스럽게 시작한 모험 속에서 어떤 답을 찾았다는 듯이 강렬하게 노래한다. 그러나 그 불티는 단순히 타오르기 위한 불 혹은 자신의 존재를 더 밝히기 위한 불이 아니었다. 그는 타오르는 불 속에서 자신을 단련했다. 이후의 노래들은 모두 그 잔불 위에서 피어난 듯했다. 이별의 잔향을 담담히 털어내고, 상처를 비추며,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What Do I Call You’, ‘INVU’, ‘To. X’ 그리고 ‘Letter to Myself’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하나의 서사처럼 읽힌다.
감정의 잔열을 억누르듯 무심하게 노래한 ‘What Do I Call You’에서는 감정을 흩뿌리지 않고 오히려 눌러 담으며 사랑의 끝에서 남은 공기를 견딘다. 상대방에게 관계 정의를 내리라는 듯 질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관계의 정의를 내리는 쪽은 반대다. 헤어진 연인을 부르는 당사자는 자신이기에, 그 물음은 자기 행동을 정의하려는 몸짓이 된다. ‘INVU’ 속에서는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사랑을 멈추지 못하는 자신을 노래한다. 비참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네가 부럽다”고 반복해 노래하며 감정의 아이러니를 부여해 상황을 비틀어 버린다.
상황을 장악하는 힘은 ‘To. X’에서 냉정한 결단으로 드러난다. 관계의 끝을 선언하면서도, 그 끝을 담담하게 노래한다. 누군가에게 통제당하던 감정의 끈을 스스로 끊어내며 감정의 주도권을 되찾는다. 그러니까 그의 노래는 더 이상 탐색이 아니다. 확고에 가깝다. 비록 그 확신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순간일지라도, 그는 자신에게 반복해 말한다. ‘나’를 이해하고 자신이 놓인 세계를 바꾸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그 방법은 ‘Letter to Myself’에서 꽃을 피운다. 광대한 사운드 속에서 그는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모든 감정을 통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널 미워하지 말라고. 멍든 마음과 흉터마저 숨길 필요 없으니 어설픈 대로 다 내뱉으라고. 그리고 널 잃지 말라고. 이 말들이 오롯이 담긴 장르는 그의 첫 솔로 타이틀 곡 ‘I’와 닮은 록 장르다. 비상하겠다던 외침이 자신을 치유하는 말로 되돌아온 것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태연은 음악을 통해 자신을 탐색하고 표현하고 다짐했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다독이기도 하고 위로도 하면서. 노래는 그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자 자신을 증명하는 일이고 동시에 삶의 증거다. 본인이 직접 쓴 말들이 아니어도 그것을 자신의 이야기로 전환해 버린다. 대중을 향한 설득을 넘어 자신을 설득하며 자신과 공명한다. 그는 여전히 감정을 탐구하고 매 순간의 자신을 담아 노래한다. 그런 목소리에 속절없이 설득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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