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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지
디자인PRESS ROOM(press-room.kr), 안재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김민경

“르세라핌은 르세라핌의 길을 간다.” 콘서트연출2 스튜디오의 박선연 담당자는 11월 18~19일 양일간 열린 ‘2025 LE SSERAFIM TOUR ‘EASY CRAZY HOT’ ENCORE in TOKYO DOME(이하 ‘EASY CRAZY HOT’ 투어)’의 주제를 이렇게 정의했다. 이 메시지처럼 공연은 “퍼포먼스가 강점인 팀이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오프닝”으로 시작됐다. 암전된 무대 위로 어둠 속에서 불타오르는 무리를 형상화한 댄서들의 군무가 이어지고 나면, 어느새 관객들은 재에서 다시 살아나는 르세라핌을 맞이하게 된다.

박선연 담당자에 따르면, 르세라핌 멤버들은 도쿄 돔 첫날 공연에서 오프닝 스탠바이 동안 “눈물이 날 것 같다.”며 “‘Ash’ 첫 곡부터 울컥해 무대를 못하면 어떡하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선연 담당자는 멤버들에게 “그냥 울면서 해도 괜찮아요, 그것도 멋진데?”라고 답했던 순간을 인상적인 기억 중 하나로 언급했다. “도쿄 돔은 아티스트들에게 매우 상징적인 공연장입니다. 르세라핌은 연말 시상식을 준비하면서 이곳에서 공연을 해본 적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 공간을 온전히 팬들로만 채운다는 사실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을 거예요.” 퍼포먼스 디렉팅팀 박소연 팀장의 말처럼 도쿄 돔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꿈의 무대다. A&R팀 김유정 담당자가 “도쿄 돔 공연은 한국·일본·아시아·미국을 거쳐온 여정의 방점”이라고 밝혔듯, 르세라핌에게 이번 공연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지난 4월 인천을 시작으로 나고야, 타이베이, 홍콩, 마닐라, 방콕, 시카고, 멕시코시티 등 전 세계 18개 도시에서 약 5개월간 진행된 ‘EASY CRAZY HOT’ 투어의 대미를 장식했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내년 초 열릴 예정인 서울 앙코르 콘서트로 이어지는 투어의 성공을 자축하는 자리인 동시에 르세라핌의 첫 도쿄 돔 공연이다. 데뷔 3년 6개월 만에 도쿄 돔 단독 무대에 선 르세라핌의 여정을 총망라한 공연이라는 의미도 크다. 

이번 도쿄 돔 공연은 ‘Make it look EASY’ - ‘Make me super CRAZY’ - ‘I’m Burning hot (REVIVAL)’ 세 개의 섹션으로 이어진다. 이는 지난해부터 ‘EASY’-’CRAZY’-’HOT’으로 이어진 르세라핌의 세 앨범을 돌아보는 것은 물론, 이들이 거쳐온 역사를 되짚는 구성이기도 하다. “다양한 수록 곡을 통해 르세라핌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파트이지 않을까 생각해요.”라는 사쿠라의 말처럼 ‘Make it look EASY’ 섹션은 ‘EASY’-’CRAZY’-’HOT’ 앨범뿐만 아니라 르세라핌이 선보인 다양한 수록 곡들을 통해 공연에 담긴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컨대 ‘Swan Song’은 발레 동작으로 우아함을 강조하지만, 화면의 의도적인 딜레이는 잔상을 남기며 흔들림과 두려움 속에서도 “우아한 척하는 백조”의 감정을 시각화한다. ‘Impurities’에서는 직선적으로 뻗는 레이저 연출이 보석의 결처럼 공간을 나누고, 멤버들은 그 안에서 “상처로 가득한 단단한 불투명함”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The Great Mermaid’는 인어공주 서사를 차용하지만, 멤버들은 이 곡을 선보일 때 파도를 상징하는 조명 아래 ‘물거품’ 같은 흰 의상을 입고 “원하는 건 다 가질 거야, 그래도 날 물거품으로 만들진 못해”라고 선언한다. ‘Make it look EASY’ 섹션에서 르세라핌의 수록 곡들은 쉽지 않은 것들을 ‘쉬워 보이게 만드는’ 르세라핌의 당당함 뒤에 숨겨놓은 마음을 드러내는 서사적 장치다. 

“무대의 바닥을 잘 살펴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바닥을 막지 않고 철망으로 만들었는데, 멤버들이 그 위를 지나갈 때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브리지가 타오르면서 이글거리는 연출을 계속 의도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박선연 담당자에 따르면, 이러한 무대 연출은 세트리스트에서 표현하려고 한 르세라핌들의 심경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재 속에서 다시 살아난 르세라핌은 여전히 뜨겁고, 연기와 불꽃이 피어오르는 세상에 있다. 그 속에서 그들은 ‘Make it look EASY’한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박소연 팀장은 각 곡의 퍼포먼스를 표현할 때 “팬들이 익숙하게 보던 영상의 느낌은 유지하되,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이상의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퍼포먼스디렉팅팀과 연출팀 간 많은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는 김유정 담당자의 말처럼 “공연 전체의 흐름을 하나의 서사로 읽히게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 무대 전환과 등·퇴장 동선까지 음악적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한” 팀의 철학에서 나온 결과다. 

이어지는 ‘Make me super CRAZY’ 섹션은 이번 공연의 서사적 흐름을 전달하는 동시에 관객이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실현해야 했다. “무엇보다 모든 무대를 피어나분들과 신나게 같이 즐길 수 있게 준비한 만큼, 공연을 보는 내내 관객분들도 그저 즐거웠길 바랍니다.” 카즈하의 바람이 가장 잘 표현된 섹션이기도 한 ‘Make me super CRAZY’는 최신 곡 ‘SPAGHETTI’를 투어에서 최초로 공개하며 시작됐고 관객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어 ‘공연장 전체를 활용한 번개가 떨어지면 진짜 벼락 맞는 기분이겠지?’라는 생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공연 내내 레이저로 번개를 형상화한 ‘Chasing Lightning’, 화려한 레이저 조명과 함께 EDM적으로 편곡된 댄스 브레이크로 분위기를 끌어올린 ‘CRAZY’ 등의 곡이 이어지며 공연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관객이 즐겁게 보기 위해서는 무대를 이끌어야 하는 멤버들에게 사실상 휴식이 거의 없는 구성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상당히 고강도의 공연 플랜이었음에도 멤버들 모두 공연의 완성도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어요.” 박소연 팀장에 의하면 팀의 강점인 퍼포먼스를 적절하게 배치하기 위해 멤버들은 약 3시간에 달하는 공연 동안 앉아서 부르는 파트조차 거의 없을 정도로 쉬는 구간이 최소화된 세트리스트를 소화했다. 그런 에너지에 힘입은 르세라핌의 팬덤 피어나들은 계속해서 함께 뛰고, 응원하면서 공연을 느끼고 즐겼다. 특히 ‘1-800-hot-n-fun’에서 공연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SAKI 찾기’는 모든 피어나들을 공연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Where the heck is Saki?”라는 가사와 함께 멤버들은 SAKI를 찾아 카메라를 여기저기 비추고, 피어나 사이에 있는 ‘SAKI’를 찾는다. “공연을 즐기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험이 관객 입장에선 짜릿하기도 하고, 평생의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이벤트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선연 담당자의 말처럼 관객들은 수많은 SAKI가 되어 무대를 즐기고, 자신의 가장 신나는 모습을 간직할 수 있게 된다. 재 속에서 살아난 르세라핌은 신곡 ‘SPAGHETTI’를 통해 순식간에 공연장을 환호로 물들이고, “이에 낀 스파게티”처럼 관객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모두를 공연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아티스트와 팬들이 함께 공연을 만들어 나가며 끝없이 고조되는 분위기는 마침내 르세라핌이 불사조처럼 날아 오르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공연의 오프닝 ‘Born Fire’가 ‘HOT’으로 이어지며 불 속에서 태어난 르세라핌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I’m Burning hot (REVIVAL)’ 섹션은 제목 그대로 르세라핌이 사랑하는 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온 순간들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FEARLESS–Burn the Bridge–UNFORGIVEN–ANTIFRAGILE’ 구간이 데뷔 곡에서 시작해 팀의 서사를 다시 보여준다면, ‘UNFORGIVEN’과 ‘ANTIFRAGILE’에서는 르세라핌이 퍼포먼스적으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흐름”이라는 김유정 담당자의 설명처럼 이 섹션은 멤버들의 서사를 말 그대로 ‘리바이벌’시킨다. 앞서 ‘Make it look EASY’에서는 르세라핌이 쉽지 않았던 순간들을 ‘쉬워 보이게’ 만들었던 이야기를 마주하고, ‘Make me super CRAZY’에서는 그저 ‘미친 듯이’ 즐기고 싶었던 그들의 바람을 따라온 관객들은, ‘I’m Burning hot (REVIVAL)’에 이르러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스스로를 불태웠던 멤버들과 스태프들의 노력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허윤진의 말처럼 르세라핌이 지난 3년 6개월을 살아온 방식이기도 하다. “르세라핌은 뜨거운 팀이다. 함께하면 당신도 뜨거워질 수 있다”.

그래서 ‘Burn the Bridge’는 이 섹션이, 나아가 이번 공연이 보여주는 서사의 핵심이기도 하다. 독무로 시작된 무대는 다섯 멤버의 춤으로 바뀌고, 마지막에는 댄서들이 합류하며 동료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박선연 담당자는 이 곡을 무대로 만들고 싶다는 자신의 요청에 박소연 팀장이 “멋지게 해볼게.”라고 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멤버와 스태프 모두의 고민이 함께 녹아 시너지가 난 무대”라고 회고했다. 그의 말처럼 ‘EASY CRAZY HOT’ 투어는 혼자였던 르세라핌이 다섯 명이 되고, 그 옆에 댄서들이 그리고 무대 뒤 수많은 스태프들과 무대 앞 수만 명의 피어나까지 모두 함께 동료가 되어 멤버들을 ‘HOT’하게 소생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Fire in the Belly’에서 “너 내 동료가 돼라.”라는 김채원의 외침처럼. ‘Burn the Bridge’의 “우리 저 너머로 같이 가자.’는 홍은채의 선언처럼.

“많은 것들을 포기해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의 이별도 경험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날들을 극복해낸 뒤에 오늘의 이 경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면 저는 다시 태어나도 분명 아이돌의 길을 다시 한번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쿄 돔 콘서트 2일 차 사쿠라의 엔딩 멘트처럼, 도쿄 돔에서 르세라핌과 팬들이 만들어낸 광경은 지금까지 그들의 선택과 노력이, 그간 걸어온 길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많은 피어나들은 “르세라핌 덕분에 도쿄 돔에 왔다”, “르세라핌이 나를 도쿄 돔에 보내줬다.”고 말했고, 김채원 역시 “피어나 덕분에 도쿄 돔에 올 수 있었다.”고 화답했다. “피어나가 슬픈 감정 하나 없이 공연하는 내내 행복하길 바랐어요.”라는 카즈하의 바람처럼, 르세라핌은 앙코르와 앙앙코르에서 마이멜로디와 쿠로미와 함께한 ‘Kawaii (Prod. Gen Hoshino)’, ‘Perfect Night’과 ‘No Return (Into the Unknown)’의 편곡 버전 무대를 통해 관객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한 에너지를 전달했다. 이는 무대가 끝나고 관객들이 퇴장을 준비할 때, 멤버들이 토롯코를 타고 다시 등장해 10분 동안 계속해서 점점 빨라지는 EDM 버전의 ‘CRAZY’를 열창한 순간까지 이어졌다. “‘CRAZY (EDM ver.)’를 연습실에서 ‘연습’해봤는데, 10분 동안 정말 그냥 저희끼리 즐겁게 놀면서 갑자기 연습실이 공연장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허윤진의 말처럼 ‘CRAZY (EDM ver.)’로 공연을 마무리하는 멤버들의 열기는 온 공연장을 마치 EDM 페스티벌처럼 바꿔버릴 정도였다. 박선연 담당자는 이에 대해 “도쿄 돔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감동적인 엔딩을 보여주기보다, ‘감동은 행복할 때 배가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지막까지 모두가 공연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고민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르세라핌은 퍼포먼스에 강점인 아티스트지만, 동시에 그들만의 방식으로 정말 잘 놀 줄 아는 아티스트라고도 생각해요. 피어나분들도 멤버들의 성향을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해서, 함께하는 동료들과 같은 공간에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호흡하고 노는 모습이 공연의 피날레가 되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재 속에서 살아난 르세라핌은 마침내 어떠한 고민도 없이, 관객들과 호흡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순간을 3년 6개월 만에 도쿄 돔에서 마주했다. 지금까지 르세라핌이 전해온 메시지처럼, 그들의 수많은 ‘내 동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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