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묘한 이야기’ 시즌5(넷플릭스)
윤해인: 넷플릭스 대표 시리즈물 ‘기묘한 이야기’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미국 인디애나주 가상의 마을, 호킨스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이야기를 그린다. 드라마는 어느 날 호킨스에 사는 열한 살 소년 윌 바이어스가 실종되면서 시작된다. 윌을 찾아나선 친구들 마이크, 더스틴, 루카스는 우연히 초능력자 소녀 일레븐(이하 엘)을 만나게 되고, 엘을 통해 윌이 ‘뒤집힌 세계’로 끌려갔다는 걸 알게 된다. 한편 윌의 어머니 조이스와 호킨스의 경찰 호퍼 또한 윌을 찾는 과정에서 이상한 현상들을 마주한다. 드라마는 지난 네 시즌에 걸쳐 ‘뒤집힌 세계’란 무엇인지, 엘은 왜 초능력자가 되었는지, ‘뒤집힌 세계’로 윌을 데려간 최종 빌런 베크나는 누구인지 차근차근 풀어왔다.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의 인기와 재미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다양하다. ‘던전앤드래곤(D&D)’을 연상시키는 설정, 크리처물의 시각적 흥미, 다채롭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케미스트리, 1980년대 문화를 실감나게 구현한 배경과 컬트적인 작품들에 대한 오마주까지. 여기에 또 다른 드라마적 재미가 있다면, 아이들을 통해 보여주는 성장사의 희열일 테다. ‘기묘한 이야기’는 2016년 첫 시즌이 공개된 후 만 9년이 지났고, 실제로 10대 초반이었던 아역 배우들은 성인이 되었다. 다섯 개의 시즌 동안, 그 외적인 성장만큼 드라마 속 캐릭터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이해하며 성숙해졌다. 예를 들어 지난 시즌 초능력을 잃어버린 엘은 지워버렸던 과거의 기억을 온전히 마주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되찾게 됐다. 과거의 슬픔과 트라우마로 삶의 경계선에 놓였던 맥스를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만든 건, 맥스가 좋아하던 음악 ‘Running Up That Hill’로 대변되는 친구들과의 추억과 유대감이었다. 그 끝에 시즌5의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윌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왜 자신은 남들과 다른지 혼란스러워 할 때 로빈이 건네는 대사는, 사실상 드라마를 관통하는 메시지에 가깝다. “문제는 늘 나 자신이었지. 다른 사람한테서만 답을 구했지만 모든 답은 내 안에 있었어.” 어른이 된다는 건, 나 자신을 알게 되는 일이다. 호킨스의 아이들은 그렇게 점점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호킨스 마을은 아직 위기에 처해 있다. 다섯 번째 시즌, 병원에 있는 맥스는 여전히 혼수상태이고 윌은 때때로 ‘뒤집힌 세계’의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호킨스 마을에 군대가 주둔하며 외부의 출입도 통제됐다. 다만 우리의 주인공들은 각자 해야 할 일을 한다. 로빈과 스티브는 지역 라디오를 진행하며 ‘뒤집힌 세계’로 잠입할 수 있는 정보를 은밀하게 퍼뜨린다. 엘은 군대의 추적을 피하면서 이전보다 강해지기 위한 훈련을 거듭한다. 호퍼는 모두의 도움으로 ‘뒤집힌 세계’에 잠입해 베크나를 찾기 위한 수색을 지속 중이다. 과연 호킨스 마을은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기묘한 이야기’ 시즌5는 지난 11월 26일에 공개된 볼륨 1을 시작으로, 12월 26일 볼륨 2와 2026년 1월 1일 피날레 에피소드를 차례로 선보이며 베크나와의 마지막 전투를 예고한다.

‘여행과 나날’
배동미(‘씨네21’ 기자): 일본에 사는 한국인 작가 이(심은경)는 시나리오가 잘 써지지 않아 고민이다. 홀로 책상에 앉아 한 글자 한 글자 연필로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면, 과연 그가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게다가 일문이 아닌 한글이어서 번역은 또 어떻게 할까 안쓰러워질 때쯤, 영화는 그가 쓰는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쳐 보이기 시작한다. 글을 쓰는 자의 계절인 겨울과 달리 한 여름의 바닷가. 청년 나츠오(타카다 만사쿠)는 어머니 고향인 해안 도시에서 지루한 낮시간을 보내다 아름답고 묘한 또래 여성 나기사(카와이 유미)를 만난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긴 시간 함께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츠오는 내면의 우울까지 불쑥 털어놓는다. 두 사람은 냉소적인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지만, 해가 질 때까지 곁에 머물면서 서로를 담담히 위로한다. 그리고 내일 또 만나 수영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태풍이 몰려온다. 다음 날이 되자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장대비가 쏟아지며 파도는 높이높이 들이친다. 나츠오와 나기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안전하게 수영할 수 있을까. 여러 궁금증이 들 때쯤 영화는 겨울로 홀연히 돌아와 이의 이야기를 재개한다. 그 다음 시나리오가 잘 써지지 않던 이. 글이 잘 풀리지 않자 숙소도 예약하지 않고 눈이 소복이 쌓인 일본의 북쪽 지역으로 불쑥 여행을 떠난다. 영화 ‘여행과 나날’은 겨울과 여름을 연이어 충돌시키며 두 갈래의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심상으로 그려 나간다.
미야케 쇼 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로카르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인터뷰를 통해 그는 이번 영화에서 특별히 대기의 흐름으로 만들어지는 바람을 찍고 싶었다고 밝혔다. 바람은 직접 눈에 보이지 않기에, 영화 속에서는 흔들리는 나뭇잎, 헤짚어지는 머리카락, 펄럭이는 옷자락으로 간접 표현되지만,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여행과 나날’을 보면 영화이론가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가 영화만의 미학을 “바람에 흔들려 잔물결 치는 나뭇잎들”이라고 요약한 대목이 떠오른다. 그 어떤 예술보다 영화는 가장 정직하게 세계를 물리적 현실로서 기록할 수 있다. 이런 매체 속성 때문에 영화감독은 삶의 덧없음을 포착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으며, 관객은 감독이 기록한 과거가 빛으로 스크린에 영사되어 생동하면 그 아름다움 안에 삶의 덧없음이 스며들어 있음을 아스라이 느낀다. ‘여행과 나날’이 ‘바람과 흔들리는 치맛자락’, ‘겨울과 글쓰기’, ‘여름과 수영’이라는 직관적이면서도 담백한 계절과 인간 사이의 일을 꾸밈없이 그려 나가지만, 그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아무리 현대인들이 발버둥쳐도 인간은 계절과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우리는 정직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단순한 진리.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인간은 익숙함이 지겨워 낯섦을 느끼고자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는 사실. ‘여행과 나날’은 영화만의 미학을 충실하게 추구하면서도 우리의 하루하루와 가장 닮았다.

Nas & DJ Premier - ‘NY State Of Mind PT. 3’
강일권(음악평론가): 살아 있는 전설, 힙합 아이콘, 래퍼들의 래퍼와 프로듀서들의 프로듀서, 무엇보다 힙합 그 자체. 나스(Nas)와 DJ 프리미어(DJ Premier)는 그런 존재다. 1994년 힙합의 경전과도 같은 작품, 나스의 ‘Illmatic’에서 DJ 프리미어가 함께한 이래 수많은 힙합 팬과 아티스트가 그들의 합작 앨범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15곡으로 채운 컬래버레이션 앨범 ‘Light-Years’가 발표된 것이다. ‘Illmatic’으로부터 31년, 둘의 협업 소식이 처음 나온 2006년으로부터는 19년 만이다. 제목이 절묘하다. ‘광년’은 천문학에서의 거리 단위이지만, 이번에는 경과된 시간의 은유로도 읽힌다. 앨범은 동시대 힙합의 흐름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트렌드에 대한 반응은 최소화되어 있고, 사운드나 주제 면에서 시장을 의식한 흔적도 거의 없다.
늘 시간의 주름을 어루만져 온 나스의 랩은 여전히 현재를 말하면서도 과거를 부르고,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미래를 예언한다. 반면 시간의 문지기를 자처해온 DJ 프리미어의 비트는 잘려진 샘플과 단단한 드럼을 통해 과거를 보존하고 현재를 기록한다. 두 거장은 오랜 세월에 걸쳐 뉴욕을 해석해온 방식을 탁월한 음악으로 번역해 놓았다. 이러한 ‘Light-Years‘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곡은 ‘NY State Of Mind PT. 3(이하 ‘PT. 3’)’다. 힙합 클래식 ‘Illmatic’의 대표 곡이자 ‘1990년대 이스트코스트 힙합의 상징 같은 곡 ‘NY State Of Mind’의 세 번째 시리즈.
중요한 점은 ‘PT. 3’가 다루는 뉴욕은 더 이상 힙합 전성기 때의 뉴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나스는 젊은 시절의 분노나 긴장감 대신 축적된 시간 속에서 도시를 관조한다. 그에 걸맞게 ‘PT. 1’에서의 팽팽한 긴장감 가득했던 래핑은 보다 차분해졌고, 웅크린 맹수의 살기가 느껴졌던 DJ 프리미어의 프로덕션은 엄숙해졌다. 빌리 조엘(Billy Joel)의 ‘New York State of Mind’(1976)에서 보컬을 가져와 아름답게 포갠 부분에서는 다시 한번 샘플링의 정수와 향수를 느낄 수 있다. 특히 1994년의 ‘NY State Of Mind’와 동일한 구조를 반영한 두 번째 버스(Verse)의 마지막 라인이 흘러나올 땐 감회에 잠길 수밖에 없다.
힙합의 황금기라 불리던 시절, 이미 같은 별자리에 있었던 그들이 각자의 궤도를 돌다가 만난 바로 이 지점에서 ‘힙합이 무엇으로부터 그리고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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