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카와이(可愛い, かわいい)’는 어떤 의미일까? 한글로 옮기면 ‘귀엽다’라는 말로 등치되지만, 사실 일본 문화에서 ‘카와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귀엽다’로만 번역될 수 없는 여러 사회적 함의가 들어 있다. 카와이 문화가 일본 내에 자리 잡은 시점은 1980년대로, 전 세계로 널리 퍼져나간 시작점은 2000년대 초중반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카와이 문화는 이전보다는 좀 더 복잡한 결을 담고 나아가고 있다.
이런 2025년의 카와이 문화를 얘기할 때 아소비 시스템 산하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돌 프로젝트 카와라보(KAWAII LAB.)를 빼놓을 수는 없다. 단지 프로젝트명 때문이 아니다. 그 이름만큼 카와이라는 가치를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후르츠 지퍼(FRUITS ZIPPER), 통칭 후룻파(ふるっぱー)가 있다. 2022년 데뷔한 후 2023년에 ‘일본 레코드 대상’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하고 부도칸에서 단독 라이브를 했던 후룻파는, 이듬해인 2024년에는 ‘일본 레코드 대상’ 우수작품상을 받았으며 2025년에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 입성하고 연말 결산 가요 프로그램 ‘홍백가합전’ 출연자 명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는 등 눈부신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나아가 2026년 2월에는 도쿄 돔에서 단독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다.
이처럼 남다른 존재감을 지닌 후룻파의 매력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아래에 소개할 다섯 곡을 통해 후룻파가 콘셉트와 노래에서 강조하고 있는 지점과 후룻파와 카와라보가 지향하는 ‘카와이’의 의미를 살펴보자.

‘나의 가장 귀여운 점(わたしの一番かわいいところ)’
후룻파에게 ‘제65회 일본 레코드 대상’의 최우수 신인상을 품에 안겨준 이 노래는 사실 아주 영리하게 만들어졌다. 후룻파를 위시로 카와라보의 그룹을 모두 프로듀싱하고 있는 키무라 미사는 2014년부터 약 3년간 ‘무스비즘(むすびズム)’이라는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한 이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아이돌이던 시절 느꼈던 여러 지점을 후룻파에게 그대로 적용시켰다고 밝혔다. 그 당시부터 소셜 미디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키무라 미사는 “후룻파를 속도감이 있는 그룹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그러한 부분이 8억 회라는 어마어마한 조회 수로 돌아온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귀여운 음악을 만든다.’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뮤지션 야마모토 쇼에게 이 곡의 작사·작곡을 의뢰한 이도 키무라 미사였다. 키무라 미사는 “최애와 최애를 응원하는 분들을 전부 긍정하고 싶은 마음에서 만들어진 곡”이라고 제작 비화를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에서 멤버들은 “나의 가장 귀여운 점에 대해서 너는 알고 있어/그런 네가 너무 대단, 대단, 대단해/그리고 네가 알고 있는 내가 제일 귀여워/나도 그걸 알아차렸어/그러니 저게 귀여워, 이게 귀여워라든가/누가 귀여워 이게 귀여워 이런 말 하지 말아줘, 나 말고 다른 누구한테는 싫어/ 이게 말이 안 되나?”라는 가사를 노래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이 노래는 팬과 아이돌 관계를 확장한다. 일본 종합 문화 매거진 ‘리얼 사운드(real sound)’에서 2023년 1월에 진행한 대담에서 아이돌 전문 칼럼니스트 오카지마 신지는 “가사는 ‘아이돌과 팬’이라는 1대 1 구조로, 화면을 통해 ‘좋아요’ 같은 걸 주고받는 관계성을 다루고 있어요. (…) 즉 바이럴된 시점에서 ‘아이돌과 팬’이라는 관계성을 넘어 ‘자기 자신과 좋아요를 주는 상대’의 관계성을 담은 곡으로 확산된 거죠.”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이 노래는 인플루언서들이 틱톡에서 팬들에게 “나의 가장 귀여운 점을 알려줘.”라고 물으면 팬들이 댓글로 답하는 양상으로도 퍼져나갔다. 야마모토 쇼 역시 아이돌과 팬이 마음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상대적인 귀여움’이 아니라 ‘절대적인 귀여움’에 대해 노래하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NEW KAWAII’
‘나의 가장 귀여운 점’의 기세를 계속 이어나가게 해준 곡 ‘NEW KAWAII’다. ‘나의 가장 귀여운 점’과 마찬가지로 야마모토 쇼가 작사·작곡을 담당했으며, 이 곡으로 후룻파는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이 ‘NEW KAWAII’라는 개념 자체가 후룻파를 넘어 카와라보의 아이덴티티인 만큼 명실상부한 후룻파의 대표 곡이라 할 수 있다. 아소비 시스템에서는 후룻파를 “‘하라주쿠에서 세계로’라는 콘셉트로, 다양한 문화의 발신지이자 개성이 모이는 패션의 거리 하라주쿠로부터 ‘NEW KAWAII’를 퍼뜨린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앞서 말한 ‘카와이’의 개념을 더욱 확장시킨 가사가 인상적이니, 이 부분에 주목하며 들어보자.
“다수결로 정하는 건 전혀 귀엽지 않잖아/내가 소수파여도 좋잖아/(…)/왕자님은 미정이어도 괜찮잖아(물론 괜찮지)/내가 왕자님이어도 괜찮잖아, 열심히 할게요/절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스탠스도 무너뜨리고 싶은 그레이트한 세계/좋아하는 사람이 NEW KAWAII해졌어/그게 아주 조금이라도 본인을 위한 거였으면 좋겠어/누군가가 정해준 것이 아니라/그냥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하는,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너의 밝은 미래를 좇아서(君の明るい未来を追いかけて)’
후룻파의 시작을 알리는 데뷔 곡이다. 아소비 시스템은 후룻파의 결성 소식을 알리면서, 그룹 이름에 대해 ‘열매를 맺다’라는 의미를 지닌 FRUIT에 ‘활력을 주다’라는 의미의 ZIP을 조합해 ‘후르츠 지퍼(FRUITS ZIPPER)’라고 명명했다. ‘아이돌 활동을 통해 성장하며 미숙한 씨앗에서 열매를 맺고 싶다.’, ‘세상에 활력을 주는 그룹이 되고 싶다.’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너의 밝은 미래를 좇아서’는 그런 그룹명에 걸맞은 노래다. 2025년 지금 후룻파가 내세우는 색깔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사실 이 곡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현재 그룹 내에서 레드 컬러와 체리를 맡고 있는 츠키아시 아마네는 과거 2016년부터 2020년까지 HKT48 멤버로 활동하다 졸업했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인해 츠키아시의 졸업 라이브는 무관중으로 진행해야만 했다. 당시 츠키아시의 졸업 기념 굿즈였던 타월에는 ‘Her story continues to the next chapter’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는데, 이 노래의 가사 “써 내려갔던 나 혼자만의 이야기에/‘계속’을 주었던 건 너였다”는 바로 그 대답이라는 것. 해당 영상에서도 츠키아시가 이 부분을 부르자 관객들이 “아마네! 아마네!” 하고 연호하고, 그걸 들은 츠키아시가 감격에 겨워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고 돌아온 아마네와 그런 아마네를 기다려왔던 팬들의 관계성이 그리고 후룻파가 지향하는 아이돌과 팬의 관계성이 확실히 드러나는 광경이다.

‘skyfeelan’
후룻파는 그룹을 부르는 약칭인 동시에 후룻파의 팬덤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보통 그룹 약칭과 팬덤명을 분리해 두고 있기에 다소 특이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만큼 후룻파는 결속력이 끈끈한 팬덤으로 유명한데, 그런 팬들을 향한 마음을 담아 노래하는 곡이 바로 이 ‘skyfeelan’이다. 도입부에서 멤버 친제이 스즈카가 부르는 “다 같이 무대에서 가장 귀엽게 빛날 수 있도록”에서 ‘다 같이’는 모든 후룻파들을 포함한다. 특히 이 노래의 훅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친제이는 “아이돌 할 때까지 죽을 수 없을 것 같아서/나, 운명의 문을 열었어”라고 노래하고, 후반부에서는 관객들을 눈에 한 명 한 명씩 담으면서 모든 멤버가 “성장하고 있는 우리를 좀 더 감상해줬으면 좋겠어/고맙다는 말을 전해야만 해!/정말로 여러분, 고마워요!/기적을 계속 지켜봐줘!”라는 구절을 부른다. 무대 위 아이돌과 무대 아래 팬이 같은 이름으로 묶이는 후룻파다운 곡이라 할 수 있다.

‘거울(かがみ)’
2025년 후룻파는 화려한 한 해를 보냈다. 처음으로 오리콘 차트에서 위클리 1위를 달성했으며, 첫 아시아 투어를 돌았고 ‘홍백가합전’에도 첫 출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제67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우수작품상을 받으며 또다시 대상 후보가 되었는데, 그 후보 곡이 바로 이 ‘거울’이다.
‘거울’에는 다소 특이한 점이 있다. 앞선 ‘나의 가장 귀여운 점’이 K-팝을 의식한 곡이라면 바로 이 ‘거울’은 후룻파가 보여줄 수 있는 일본 문화의 정수를 표현한 곡이라는 점이다. 앞서 ‘리얼 사운드’에서의 대담을 보면 일본 내에서는 후룻파를 필두로 한 카와라보 소속 아이돌들의 성공을, K-팝 문화를 잘 흡수하여 자기들 나름대로 잘 소화해낸 결실이라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 ‘거울’은 마법 소녀물에서 흔히 변신 아이템으로 사용하는 콤팩트 거울에서 설정과 가사 등을 차용해왔다. 뮤직비디오에서 “변신” 부분을 부를 때는 흔히 ‘파워레인저’라고 알려져 있는 전대물이나 ‘가면 라이더’로 대표되는 특촬물 특유의 포즈를 취한다. 이는 지난 10월 15일에 발매한 신곡 ‘엉망진창 왁자지껄 라이프!(はちゃめちゃわちゃライフ!)’에도 매우 잘 드러난다. ‘거울’과 마찬가지로 변신 포즈와 ‘오타게(オタ芸)’라고 불리는 응원 퍼포먼스 등 일본 문화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거울’에서 멤버들이 일상복을 입은 모습에서 아이돌 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변신하는 장면은 명백히 ‘세일러 문’이나 ‘프리큐어’ 시리즈 등의 마법소녀물을 오마주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공연 도중에 의상을 갈아입는, 특별할 것 없는 이벤트도 마법 소녀의 변신처럼 연출한다.
이제 후룻파는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처럼 K-팝과 J-팝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카와라보는 그리고 그 중추에 있는 후룻파는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앞으로 그들이 보여줄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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