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 투어로 전 세계를 누비는 바쁜 일정 속에도 윤진은 부지런히 책장을 넘긴다. 윤진은 독서가 은유의 힘을 빌려 자신의 시야를 넓혀주는 거울이자 창이라 말한다. 한 뼘 더 성장하기 위한 윤진의 고민과 더불어, 그가 책과 같이 이뤄 나갈 꿈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윤진 씨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나요?
스토리텔링을 엄청 좋아했어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읽는 것도 그리고 제가 만들어내는 것도 너무 좋아했어요.
어릴 때는 혼자서 아니면 동생이나 동네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만들면서 놀았어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엄마, 아빠가 집 안에서 한국어를 최대한 많이 쓸 수 있게 노력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동화책을 거의 100권 가까이 가지고 있었어요. 서재 책꽂이에 동화책이 꽉 차 있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 항상 책을 읽어주셨어요.
책마다 어떤 언어로 읽을지 선택하는 윤진 씨만의 기준이 있나요?
사실 기준은 없는데, 영어로 읽었을 때와 한국어로 읽었을 때 느껴지는 감도가 조금 다르더라고요.
치유가 필요할 때 한국어로 읽곤 해요. 마음에 와닿는 게 조금 달라서.
시집하고 소설을 한국어로 많이 읽어요.
에세이 같은 논픽션은 영어로 많이 읽고요. 아무래도 영어가 처음부터 접했던 언어이다 보니 조금 더 ‘raw’하게,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있어요.
두 언어로 독서를 한다는 건 윤진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처음에는 한국어를 잘하지 못했고, 읽는 것도 진짜 오래 걸려서 제가 한국어로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예전에 어떤 연습생 언니한테 책을 빌려서 처음으로 한국어 책을 읽었는데 그것도 엄청 오래 걸렸거든요.
저는 언어가 사람의 성격을 많이 바꿔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국어로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엄청 넓혀줬어요.
저는 영어를 쓸 때와 한국어를 쓸 때 같은 사람이지만 각각의 페르소나가 다르다고 느껴져서, 영어를 쓸 때면 한국어를 쓸 줄 아는 자아가 반쪽이 된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두 언어로 독서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더 온전한 허윤진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방송에서 차로 이동하는 중에도 책을 읽는 모습이 종종 보이기도 해요.
오히려 차에서 집중이 잘되더라고요.
이동할 때 집중이 잘돼서 비행기 안에서도 많이 읽어요. 그래서 투어 때 책을 많이 읽었어요.
아침에 딱 눈을 뜨고 출근하는데, 차에서 ‘이제 뇌를 좀 깨워야 해.’라는 생각이 들면 책을 읽었어요.
책을 읽는 시간은 윤진 씨에게 휴식인가요?
휴식이자 양식인 것 같아요.
뭔가… 사람의 취향도 그냥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노력해서 큐레이팅해야만 나의 취향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독서도 비슷해요.
취미지만 계속 부지런하게 읽어야 남는 게 있지 않나. 온전한 휴식은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도 욕심이 있고, 더 배우고 싶어서 읽는 거니까요.
그런 노력을 들이는 게 힘들게 느껴질 때는 없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채워져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걸 배웠어요.
오히려 아웃풋이 너무 많으니까, 인풋을 계속 채워야 한다고 느껴서 더 읽고 싶어져요.
그런 게 있잖아요. 진짜 하기 싫고 쉬고 싶은데, 그래도 하는 게 나한테 좋다는 걸 너무 잘 아는 거요.
그래서 뇌를 운동시킨다고 생각해요. 마음과 머리를.(웃음)
윤진 씨는 책 읽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 같아요.
네, 저는 너무 재밌어요.
때로는 졸려서 힘들 때도 있지만, 읽다가 갑자기 집중이 너무 잘돼서 술술 읽힐 때 그 기분이 좋아요.
그때의 ‘flow state’가 너무 즐겁고 행복해요.
최근에 그렇게 잘 읽혔던 책이 있나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되게 짧긴 한데 한 2시간 만에 다 읽었어요.
저는 이야기가 거울이자 창처럼 느껴져서 좋아요.
거울 같다는 의미는 책을 읽음으로써 나의 이야기 같고, 공감이 된다는 뜻이에요.
동시에 이야기는 창 같아서 상상력을 가져다줘요.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세상이 이렇게 보일 수도 있구나.’ 그런 게 이야기인 것 같아요. 이야기는 은유의 힘을 빌려서 저의 세계와 시야를 넓혀줘요.
어쩌면 마주하기 힘든 이야기들도 보여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역시 인간은 아무리 고난과 역경에 시달려도, 꺾일 수 없는 생명체구나. 패배란 없다.’라고 느꼈어요. 굉장히 좋았어요.
윤진 씨는 책에 몰입한 뒤에 잘 빠져나오나요?
아니면 여운을 즐기는 스타일인가요?
하하. 전 여운을 즐기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항상 피어나와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과 책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해요.
감명 깊게 읽거나 느낀 게 있으면 통화로 “이랬고, 저랬고, 세상이 어떻게 보이고, 이제 난 이렇게 살아야겠고.” 이러면서 공유하는 걸 엄청 좋아해요.
멤버들한테도 한참 그랬어요.

책은 한 번에 여러 권씩 사나요?
한 권을 사려고 들어갔는데, 왕창 사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웃음) 의도적으로 ‘많이 사야겠다!’ 이랬던 적은 없어요.
그냥 담다 보니까 ‘이것도 재밌을 것 같고, 이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 그런 스타일입니다.
서점에 직접 가면 더 문제예요.(웃음)
헤어 나오지 못해요. 그래서 1년에 딱 두 번 허락해요.
책을 소장하는 데에도 특별한 열정이 있나요?
저는 책에 빼곡히 낙서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걸 버리는 게 너무 아깝고, 돈도 너무 아까워요.
그리고 책 자체가 너무 예쁘잖아요. 그래서 그걸 쌓아두는 재미도 있어요. 다 읽으면 그냥 장식해놓는 것도 좋아해요.
윤진 씨의 책장이 궁금해요.
윤진 씨만의 책을 꽂아두는 특별한 방식이 있나요?
최근에 책이 너무 많아서 정리를 하려고 했어요. 장르별로 분리하려고 했는데… 하다가 포기했어요.(웃음) 너무너무 복잡해서요.
일단 그냥 영어, 한국어 이렇게만 분리해놨어요.
친구가 크기별로 정리하라고 해서 해봤는데 너무 안 예쁜 거예요. 그래서 그냥 다시 제 스타일대로 했어요.
뒤죽박죽인 상태가 좋아요.

윤진 씨만의 독서 습관도 있으신가요?
스티커를 항상 챙겨 다녀요.
좋은 문장을 놓칠 때가 많아서 기억하기 위해 스티커를 자주 붙여요.
색깔별로 다 의미가 달라요. 핑크색은 ‘이거 너무 와닿았다.’, 파란색은 ‘너무 슬프다.’, 주황색은 ‘충격적이다, 이건.’
그리고 한 챕터를 끝내야 책장을 덮을 수 있어요. 읽다가 곧 가야 되거나 애매하면 최대한 안 읽어요.
챕터가 안 끝나 있는 상태로 떠나면 마음이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그리고 항상 마지막 쪽이 몇 페이지인지 확인하고 독서를 시작해요.
이전에 위버스 매거진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이북 리더기를 보내줬다고 했는데, 그건 잘 사용하고 있나요?
한 번 쓰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웃음)
아날로그가 좋더라고요. 책장을 넘길 때의 감성을 버릴 수 없어요. 종이책이 100% 좋아요.
영상이나 영화 그리고 음악은 ‘이거 봐, 이거 들어.’ 이렇게 당하는 느낌이잖아요.
그런데 책은 제가 능동적으로 넘길 수 있어요. 되게 주체적인 매체인 것 같아서 좋아요.
같은 책을 여러 번 읽기도 하나요?
진짜 좋아하는 책은 여러 번 읽어요.
‘노인과 바다’는 계속 읽어도 재미있어요. 한 세 번째 읽고 있는데 너무너무 재밌어요. 그리고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져요.
음악도 예전에 들었으면 이렇게 안 느꼈을 텐데, 지금 들으니까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으면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 나무가 너무 불쌍해서요.
‘어떻게 이렇게 아낌없이 주기만 해. 얘네는 뭐 알아주지도 않는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다시 읽으니까 그냥 그 나무가 되고 싶었어요.
‘나한테 그렇게 아낌없이 주고 싶은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거야!’를 읽으면서 느꼈어요.
여전히 주로 에세이를 읽나요?
요즘엔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여백이 너무 좋아요.
말하지 않아서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들.
제가 말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말을 좀 아끼고 싶은데.(웃음)
에세이는 대화 같아서 좋아요. 그리고 에세이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가 더 와닿을 때도 있는 것 같아요.
특별히 좋아하는 책이 있나요?
벨 훅스의 ‘올 어바웃 러브’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전히 ‘최애’인 작품이에요.
‘최애’를 꼽는 게 너무 어려운데, 저 같은 사람한테는.(웃음) 공동체의 중요성과 사랑이 존재할 수 있는 문화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알려준 책이었어요.
그래서 르세라핌 활동을 많이 되돌아보기도 했어요.
만약에 이 책을 안 읽었다면 되게 늦었을 것 같아요. 읽었던 시기도 그렇고 의미가 있는 책이에요.
멤버들이랑 이 책에 대해서 얘기한 것들도 많아서 ‘올 어바웃 러브’와 엮여 있는 기억들이 저한테 엄청 소중합니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책.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이렇게요. 저는 읽다가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싸웠던 친구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아니면 이전엔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멤버들의 의견이 공감될 때도 있어요. 그렇게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들이 좋아요.
누군가는 문학이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해요.
저도 문학이 위로라고 생각해요.
문학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줘요. 그래서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독서 붐이 더 왔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문학 없이는 너무 외롭잖아요.
문학은 공감 능력도 더 길러주고(웃음) 저희가 바라보는 세상을 더 넓혀주는 것 같아요.
신작이 기다려지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언제나 한강 작가님입니다.
작년에 매니저님께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선물해주셨거든요. 이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진짜 많이 받았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칼날 위를 전진하는 달팽이 같은 무엇이었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었어요. 그걸 읽고 눈물이 너무 나는 거예요. 그런 게 소설의 묘미인 것 같아요.
한강 작가님을 만난다면 하고 싶은 질문이 있나요?
Oh My God!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우리 사회에 그리고 요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작가로서의 시각이 궁금해요.
너무 많지만 하나를 꼽자면 그거일 것 같아요. 저도 지금 가장 고민하는 것.
윤진 씨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요?
음… 제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연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중입니다.
문학이 연대, 연결,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로서의 영감을 얻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하나요?
되게 신기한 게, 공교롭게 저희 다음 앨범이랑 연결된 책을 항상 읽게 돼요. ‘EASY’ 끝나고 ‘CRAZY’로 활동하기 전에 이혁진 작가의 ‘광인’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주인공이 말 그대로 진짜 광인이었어요.(웃음)
그래서 ‘CRAZY, 정말 CRAZY다, 이 사람.’ 그러면서 책을 읽었어요. ‘무언가에 미치면 이렇게까지 할 수도 있구나.’를 표현한 책이었어요.
그래서 ‘CRAZY’와 그다음에 나오는 ‘HOT’ 활동할 때으로 이 책 생각이 났어요.
또 루이즈 글릭의 ‘Telescope’라는 시가 있어요.
그 시를 읽고 저희 ‘CRAZY’ 앨범에 수록된 ‘미치지 못하는 이유’라는 곡을 시작했어요.
윤진 씨에게 가사를 쓰는 건 어떤 의미예요?
일단 너무 재밌어요.
저는 가사를 쓸 때 가장 행복해요.
채택이 안 되고 다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냥 그 세계에 빠져서 음악에 맞춰 글을 쓰는 과정이 너무 재밌어요.
그래서 단순하게 말하면 작사는 제가 순수하게 사랑하는 작업이에요. 조금 더 깊이 말하자면, 나를 남기고 기록할 수 있는, 가장 저와 어울리는 방식인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고, 영상을 찍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가사를 쓰는 게 제가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방식인 것 같아요.
이전 위버스 매거진 인터뷰에서 알고 싶고, 배우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고 했었어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책임감을 갖고 시야를 넓히고 싶다고요.
여전히 같은 이유로 책을 읽고 있나요?
답변이 너무 귀엽다.(웃음)
여전하긴 한데, 지금은 제가 싫어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직면하고 싶어서 읽는 것 같아요.
겸손해지고 싶고, 잊었던 걸 되찾고 싶고, ‘맞다, 나 이런 사람이었지.’라는 것도 다시 느끼고 싶어요.
최근에 ‘내가 아무리 뭘 배워도 혼자서는 성장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랑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 얘기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라는 걸 다시 느꼈어요.
그런 이유로도 계속 책을 읽는 것 같아요. 어떤 걸 배웠는지 사람들이랑 얘기하고 싶어서.
데뷔 후 첫 월드 투어 일정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죠.
이번 투어는 윤진 씨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저희에게 너무 중요한 모멘텀이었던 것 같아요.
그간 계속 떠 있는 채로 유영하고 있었다면 이 투어를 하면서 다시 땅에 두 발을 닿을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 시작이다! 늘 시작이지만, 이젠 진짜 시작이다.’ 이렇게 서로 손을 잡고 열심히 해보자고 단결시켜준 모멘텀으로 느껴져요.
저희끼리도 그렇고, 피어나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도 그렇고요.
Oh My God.
1위를 하고 싶어요.
성적이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무언가를 성취하고 성장해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1위가 있잖아요.
그런 1위를 하고 싶어요. 그게 어떤 1위일지는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