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어서,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하는 세상의 모든 소하, 태수, 유민, 보현이에게. 한로로가.
퍼스널 컬러를 진단받은 브이로그에서 색감 있는 옷과 친해져 보겠다고 한 말이 기억나요. 오늘 촬영에서도 다양한 콘셉트를 시도할 예정인데, 그런 스타일 변화가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을까요?
한로로: 확실히 퍼스널 컬러를 진단을 받고 나서 더 많은 도전을 해보게 된 것 같아요. 이제 ‘쥐색’ 같은 건 입지 않거든요.(웃음) 하지만 그 말 하나에 얽매였다기보다는 달라져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당장의 취향이 휙휙 바뀌기도 하고, 예전보다 많은 분들이 스타일이나 변화에 은근히 관심을 가져주시니까 이제서야 신경을 한 번 써보는 거기도 하고요.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요?
한로로: 예전에는 검은색, 흰색, 회색 같은 무채색을 좋아했고, 튀지 않게 옷을 입고 다녔는데요. 요즘에는 확실히 더 과감해지려고 해요. 올리브그린, 연두색, 보라색, 하늘색, 고동색이 저한테 생각보다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요. 여전히 줄무늬나 체크 패턴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더 다양한 스타일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예전에는 아직 학생이었던 것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데뷔 초에는 학생과 아티스트의 삶을 병행하다가, 졸업 후에는 아티스트로서의 삶에 집중하게 된 거잖아요.
한로로: 졸업을 하니까 아무래도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약간의 여유가 생기더라고요.(웃음) 당시에는 낮에는 학생이고 밤에는 음악을 하는 제 일상 자체가 그냥 감사하고 재미있다고 느꼈는데, 지금 돌아보면 몸은 꽤 고단했겠다는 생각도 솔직히 들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음악에만 집중했다면 오히려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학교에 가면 음악에서 잠시 환기가 됐고, 시험 준비로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음악을 하러 가면 또 학업 스트레스가 풀리는 식으로 두 가지가 공존하면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거든요. 그래서 그 시절은 참 재미있었어요. 물론 지금 다시 그렇게 하라고 하면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때 졸업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졸업 후에 모교인 건국대학교 축제에서 공연하기도 했죠.
한로로: 사실 학교에는 공연 전까지 거의 가보지 못했는데, 대학 축제 덕분에 처음 가게 됐어요. 그때 동기들이나 몇몇 후배들이 직접 공연을 보러 와줬는데,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언니 언제 나와?” 같은 메시지를 받는 그 자체가 저에게는 엄청 낯설고 신기하더라고요. 함께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이 객석에 있다는 게 묘한 느낌이었어요. 또 DM을 보면 저 덕분에 건국대학교 진학을 꿈꾸게 됐고 실제로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도 가끔 있어요. 그분들이 공연을 보러 왔다고 메시지를 보내주면 무대에 오르기 전에 더 힘이 나는 기분이에요.
콜드플레이 콘서트 오프닝 무대에 선 것도 큰 호응을 얻었잖아요.
한로로: 너무 감사하게도 콜드플레이 콘서트 주최 측에서 먼저 해줄 수 있는지 문의를 주셨어요. 제가 록 장르를 하기도 하고, 분위기를 잘 띄울 수 있는 메시지들이 콜드플레이 무대와 잘 어울렸기에 초청을 받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생각했어요. 사실 저는 ‘이런 무대에 서겠다.’와 같은 공간적인 목표보다는 ‘세상이 조금 더 다정해졌으면 좋겠다.’ 같은 추상적인 목표를 꾸준히 가져온 사람이었는데, 감사하게도 그런 모습을 알아봐주신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세상이 조금 더 다정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요? 요즘은 누군가에게 다정해지기도,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잖아요.
한로로: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에서 상처를 많이 받는 편이라서 오히려 더 고집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다정함이나 사랑 같은 이야기가 늘 반복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고,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요. 저도 사람이니까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이 들 때가 많아요. 그런데 결국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그래도 사람을 사랑하는 쪽으로 가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하더라고요. 그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되게 희한하게 느껴져요. 미워하고 싶지 않고, 상처 주기도 싫고, 또 상처받기도 싫은 마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태랄까요.
상처받으면서도 그런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한로로: 미워하는 입장이든, 미움을 받는 입장이든 그 순간이 엄청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제가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리거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지는 걸 느껴요. 이런 감정이 저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닐 거라는 확신도 있고요. 그래서 누군가가 너무 큰 미움을 드러내는 모습을 봐도 예전처럼 쉽게 판단하지 않게 돼요. 예전에는 ‘왜 굳이 저렇게까지 할까?’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저 사람 안에도 분명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 거고, 그것들이 묻혀 있어 그런 방식으로 표현되는 걸 수도 있겠다. 그걸 파헤쳐준다면 저렇게까지 사람들에게 미움을 내던지지는 않을 거다.’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한로로 씨가 사랑하는 시처럼요? 유튜브 ‘민음사TV’에서 양안다 시인의 시를 이야기하며 “시 속에 담고 있는 상황이 긍정적이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려는 애절한 에피소드들을 시로 풀어내는 것 자체가 본인과 닮아서 동질감을 느꼈다.”고 하셨잖아요.
한로로: 양안다 시인의 작품은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오히려 정말 가까운 사이에서만 드러날 수 있는 솔직한 아픔들이 필터 없이 담겨 있다고 느꼈어요. 제 친구들이나 제 마음과도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저도 속마음을 쉽게 말로 꺼내는 편은 아니에요. 생각이 많다 보니 말을 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지나고 나서 ‘말하지 말 걸.’ 혹은 ‘그때 이렇게 말할걸.’ 하고 후회하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글로 해소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그림일기 쓰는 걸 좋아했고, 중·고등학생 때는 비밀 노트에 시 비슷한 글을 쓰기도 했어요. 말로 꺼내면 괜히 과장되거나 민망하게 들릴 것 같은 감정들을 글로 풀어내면서 정리해왔던 거죠.
유튜브 채널 '한로로 HANRORO'의 콘텐츠 ‘당밤나밤’에서 게스트에게 시를 써주시기도 하잖아요. 시로 자신의 감정을 풀어내는 것을 넘어 타인의 마음까지 보듬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한로로: 제 이야기를 쓸 때는 정말 솔직하게, 과감하게 생각을 풀어내는 편이에요. 말 그대로 해소하듯 생각을 정리하면서 쓰는 거죠. 반면에 선물하는 시는 아무래도 받는 분을 먼저 생각하게 돼요.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주제나 단어를 고르려고 하고, 읽었을 때 이해받는 느낌이나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말을 많이 하지 않을수록 하고 싶은 말을 더 신중히 고르게 되잖아요. 그 수많은 말들 중 이해와 위로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한로로: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저는 음악을 저 혼자 들으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제 노래를 듣고 반응해주는 순간 그 자체가 감동이에요. 그게 앞으로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고요.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이니까, 저와 비슷한 이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나도 그 마음을 안다.’는 방식으로 다가가고 싶어져요. 그렇게 마음이 통할 때 생기는 연대감 같은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로로 씨의 소설 ‘자몽살구클럽’도 그런 ‘연대’의 감각이 담긴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죽어야 할 이유가 더 명확한 아이들이 모였지만, 결국 죽기보다는 함께 살아갈 이유를 찾으려고 하잖아요.
한로로: 소설에는 제 개인적인 바람이 어느 정도 담겨 있어요. 아직 어린 친구들이다 보니 내가 정말 죽고 싶은 건지,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건지 확신하지 못한 채 갈림길에 서 있는 상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거죠. 어쩌면 ‘정말 죽고 싶은 걸까, 사실은 살고 싶은 게 아닐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고요. 지금의 환경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뿐, 누군가 함께 살아갈 사람이 생기고 사랑을 느끼게 된다면 다시 살고 싶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같은 것들이 그 안에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당장 죽고 싶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20일만 더 미뤄보자.’고 약속하는 거죠. 그 시간을 보내면서 정말 죽고 싶은 건지, 아니면 살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는 건지 스스로 확인해보는 과정을 겪겠죠. 그 이후의 결론이 무엇이든,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왜 20일의 유예 기간을 준 건가요?
한로로: 3월 중학교 입학 이후부터 여름방학 전까지의 시간 안에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거든요. 네 인물의 시간 흐름을 계산하면서 졸업 사진 촬영이나 시험 같은 학교 일정들도 같이 고려하다 보니 서로에게 20일 정도의 시간을 유예해주는 설정이, 네 아이가 살아갈 가능성을 붙잡기 위한 시간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작가로서의 판단이었어요.
그렇게 20일을 채우고도, 태수는 살아감 대신 죽음을 선택하잖아요. 반대로 보현이와 유민이는 슬픔 속에서도 살아가기로 결정하고요.
한로로: 태수는 비밀이 많은 아이였다고 생각해요. 밝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우울이나 슬픔을 혼자 품고 있었고, 그런 감정들을 겉으로 드러내기 싫어하는 친구죠. 반면 유민이는 태수를 정말 사랑하는 절친으로서 가장 정이 많은 인물이에요. 현실적인 면도 있지만 한 번 상처를 받으면 오래 가는, 어떻게 보면 가장 여린 친구고요.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무너지는 장면도 나오는데, 그런 여림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또 네 명 중에서는 가장 평범한 캐릭터이기도 해요. 특별한 가정 문제도 없고, 동아리에 들어오게 된 이유 역시 태수의 아픔을 미리 알고 그 곁을 지키고 싶어서였거든요. 보현이는 가장 단단한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유민이와는 반대되는 성격으로, 자신의 아픔이 있어도 최대한 무던하게 지나가려 하고 비교적 어른스러운 인물이죠. 유민이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다독이고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소하는 소설이 소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만큼, 언니들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가장 어린 아이지만 내면이 깊고, 남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것들을 관찰하려는 성격이 강하게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이 소하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도망’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소하가 관찰의 대상이 돼요. 자신이 죽어야 할 이유였던 아버지를 죽이고, 모임 장소였던 음악실이나 다 함께 토마토를 키우던 옥상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카메라가 좇아가죠.
한로로: 소설이 소하의 시점을 강조했다면, 뮤직비디오는 제 시선을 강조한 작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소설은 소하의 분열적인 독백 심리를 강조하며 끝나지만, 뮤직비디오에서는 그 사건을 위에서 지켜보는 시선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소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어른이자, 죽음과 가까운 어떤 신적인 존재처럼 보이길 바랐죠. 마치 저승사자 같은 존재들 사이에서 내가 이 아이를 지켜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선이랄까요.
소하는 자기 자신을 지켜내고, ‘도망’의 부제인 ‘Can I Be Me?’처럼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한로로: 소하는 처음부터 죽고 싶었던 마음만 있었던 게 아니고, 자몽살구클럽이라는 동아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점점 ‘살고 싶다.’는 감정을 깨달은 것 같아요. 언니들이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니까, 살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사라져야 한다는 충동적인 결정을 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결국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던 요소를 없애야 살 수 있다고 느낀 거죠. 소하가 자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원인을 제거하면서 또 다른 결과들이 뒤따를 수도 있겠죠.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다면, 소하는 충분히 소하답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소하에게 ‘자몽살구클럽’의 ‘내일에서 온 티켓’이 정말 살고 싶은 이유가 된 거네요. 동명의 노래도 록 보컬과 일렉 기타, 드럼 사운드가 고조되면서 ‘내일’을 처음 꿈꾸게 된 소하의 벅참을 표현하는 듯했어요.
한로로: 소하가 티켓을 받았을 때의 머릿속 상태를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처음으로 도파민 같은 감정을 느꼈을 수 있고, 늘 소속되지 못했던 삶에서 처음으로 ‘내가 속할 곳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감정을 느낀 순간이었을 수도 있죠. 집에도 편히 갈 수 없고, 학교에서도 떠돌이처럼 느껴졌던 아이가 어떤 소속감을 발견했을 때의 벅참을 상상해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사운드가 떠올랐던 것 같아요. 앨범 자체를 일종의 OST처럼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게 어떤 의미일까요?
한로로: 소설이 소하 시점으로만 전개되다 보니 다른 아이들도 앨범에서는 각자가 주인공처럼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용의자’는 유민이가 태수를 떠나보내는 마음, ‘도망’은 소하의 이야기처럼 설정하고 작업했어요. 그런데 막상 듣는 분들의 해석을 보면 또 다른 관점들이 나오더라고요. ‘용의자’를 소하가 엄마에게 하는 얘기라고 이해하는 것처럼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는 걸 보면서 한 인물의 이야기로만 고정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꼈어요.
다양한 시점으로 해석될 수 있는 곡들에 이어, ‘__에게’는 소설 속 태수의 죽음 이후 ‘자몽살구클럽’ 부원들의 합주 장면을 구현한 곡처럼 느껴졌어요.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 피아노 소리, 보컬 소리가 각자 강조되면서 학생들이 직접 합주하는 듯한 정제되지 않은 질감도 인상적이었고요.
한로로: 그 곡은 가제로 ‘태수에게’라고 불러요. 소설 속에서도 아이들이 실제로 합주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 싶었어요. 일종의 마지막 페이지 같은 느낌이라 태수에게 실제로 말을 건네듯, 대화하듯 부르고 싶었어요. 그래서 현장감과 생동감을 살릴 수 있도록 녹음할 때도 각자 따로 녹음하지 않고 마이크 하나를 두고 피아노,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을 함께 연주하면서 원테이크로 녹음했어요. 그리고 그다음 트랙인 ‘시간을 달리네’ 역시 피아노로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만, 톤은 더 선명하게 다듬었어요. ‘__에게’가 태수를 완전히 놓아주기 직전의 감정에 가깝다면, 다음 트랙인 ‘시간을 달리네’를 통해서는 어느 정도 감정이 정리된 이후의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시간을 달리네’가 “만약 우리가 서로에게서 영영 사라진대도”로 시작하고, ‘0+0’이 “난 우리를 영영 잃지 않아. 너도 영영 그럴거지?”로 끝나는 것처럼, ‘자몽살구클럽’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만나 영원을 꿈꾸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한로로: 영원이 없다는 건 알지만, 살아 있는 동안 그 사람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그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영원이 아닐까 생각해요. 누군가를 떠나보낸다고 해서 완전히 망각되는 건 아니니까요. 죽기 직전까지도 계속 기억하려 한다면 그 역시 나에게는 영원이 될 수도 있고요. 영원이 없는 세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믿는 게 힘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농담처럼 ‘무덤까지 함께하자.’, ‘지옥까지 같이 가자.’ 같은 말을 하잖아요. 그런 말들도 결국 영원을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과 오래 함께하고 싶고, 서로 기억 속에 오래 남고 싶으니까요.
추상적인 질문이지만,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영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랑이란 어떤 건가요?
한로로: 저에게 사랑은 일종의 ‘연명할 수 있는 이유’ 같은 느낌이에요. 아플 때 먹는 약이나 비타민처럼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당장 제 주변 사람들일 수도 있고, 이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자체일 수도 있어요.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시간이 저는 참 좋거든요. 거기서 얻는 영감도 저에게는 사랑처럼 느껴지고요. 제 자신을 계속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적어도 제 삶을 이루는 것들을 굳이 미워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 태도가 결국 사랑을 유지하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요.
나 자신이나 주변을 사랑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미워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네요.
한로로: 저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스스로를 미워할 때도 많고, 누군가의 행동이 너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래도 사람은 양면적이라는 걸 넘어 굉장히 다면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한 가지 모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저 사람도 분명 사랑하는 게 있을 거고, 나름의 아픔이나 사연이 있을 거다.’라고 생각하면 쉽게 미워하기가 어려워지더라고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조금 둥글게 바라보려는 마음을 가지려고 해요. 저 자신도 그 이유를 완전히 설명하기 어렵고,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 이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다정함을,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이자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