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공백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거의 모든 유명 아티스트에 대해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압박감은 엄청나고, 기대치는 충족 불가능하며, 음악 산업은 이미 변화했다. 아티스트는 자기 역사의 무게를 이겨내고 다시 날아오르거나, 조용히 쇠퇴한다. 이러한 서사는 깔끔하고 극적이다. 대신 창작 과정의 복잡한 결정을 단순한 이분법, 곧 성공적인 복귀 혹은 조심스러운 후퇴로 축약한다. 그리고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그런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한 대화는 증발한다.
방탄소년단이 ‘ARIRANG’이라는 제목을 발표한 순간부터 쉬운 이야기가 어느 정도 쓰여 있었다. 너무 서구적이고, 너무 영어 중심이며, 너무 장르적이다. 이는 방탄소년단이 차지하고 있는 무대의 크기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아티스트는 거대 질량이 중력장을 만들어내듯, 의도하지 않은 순간 담론을 생성한다. 이번에는 ‘기대의 충족’에서 벗어나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자. 2026년 방탄소년단은 어떤 아티스트인가?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했는가? 그 결과는 어떻게 시현되었는가?

협업 아티스트의 목록에서 시작하자. 이는 테임 임팔라의 케빈 파커, 마이크 윌 메이드잇, 제이펙마피아, 엘 긴초, 아르테마스 등으로 길게 이어진다. 게스트 목록을 훑어보는 것보다 지도를 따라가는 것에 가깝다. 각 이름은 현대 대중음악에서 고유한 영역, 특정 청중, 문화적 대화를 대표한다.
케빈 파커는 K-팝에서 의미 있게 자리 잡지 못했던 사이키델릭 인디 록의 문을 연다. 마이크 윌 메이드잇은 주류 팝과 트랩의 정통성을 연결하고 싶을 때 가장 좋은 카드다. 새 앨범의 많은 부분은 힙합 계보에 뿌리를 내리는데, 방탄소년단의 DNA를 생각하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과 같다. 제이펙마피아는 두 세계를 동시에 점유한다. 그는 프로듀싱만큼이나 자기 음악으로 유명한 래퍼다. 예(칸예 웨스트) 같은 거물과 일하면서도 대니 브라운과 함께 비타협적 언더그라운드 힙합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그런데 이 지도는 미국 지도가 아니다.
엘 긴초가 누군가? 그는 로살리아의 걸작 앨범 ‘El Mal Querer’ 전체, ‘Motomami’의 핵심 트랙을 만들었다. 그는 자국의 전통을 글로벌 팝으로 재구축하는 프로젝트의 검증된 거장이다. 그가 로살리아와 한 작업, 플라멩코라는 스페인의 유산을 일렉트로닉과 결합해 세계적 현상으로 만든 것은 ‘ARIRANG’의 목표와 정확히 공명한다. 아르테마스에 이르면 이 프로젝트가 지금 이 순간의 재능을 얼마나 폭넓게 고려했는지 보인다. 그는 독학의 베드룸 프로듀서로 2024년 ‘i like the way you kiss me’가 틱톡에서 25억 뷰에 달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빌보드 핫 100 12위, 미국 제외 글로벌 1위까지 올랐다. 그는 전통적인 A&R 시스템과 게이트 키핑을 무시하는 플랫폼 네이티브 세대를 대표한다. 그는 또 한 명의 영미권 프로듀서인가? 아니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국경을 넘은 방탄소년단 서사의 최신 버전인가?

흥미로운 것은 글로벌 프로듀서들의 사운드가 앨범 안에서 착지하는 방식이다. ‘One More Night’의 도입부를 결정하는 사이키델릭 오르간은 ‘수입’된 것이지만, 곡의 정서적 무게는 한국어 가사와 보컬의 질감이 잡고 있다. ‘Merry Go Round’의 몽환적 일렉트로 팝 위로 소용돌이치는 탄식은 방탄소년단 고유의 고민이다. 이는 최상위급의 장르적 원료를 장식을 남겨두지 않고, 그룹의 서사적 맥락 안에 배치하는 편집권이 있을 때 가능한 결과다. ‘GQ’ 인터뷰에 따르면, 그룹은 LA에서 약 두 달간 함께 생활하며 일주일에 6일씩 스튜디오 세션을 진행했다. 이는 음반 녹음보다는 레지던시에 가까운 리듬이다. ‘ARIRANG’은 이메일을 주고받아 조립된 음반처럼 들리지 않는다. 같은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생산적으로 논쟁하며 만든 음반이다. 일관성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는 것은, 방탄소년단이 명확한 지침을 바탕으로 세션을 시작했고, 그것을 꾸준히 유지했으며, 주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실행하리라 믿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수동적인 창작 자세가 아니다. 리더십이다.
‘너무 서구적’이라는 읽기는 그 의도와 달리 방탄소년단이 글로벌 음악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드러낸다. 다양하고 의도적인 프로덕션 라인업은 업계가 그들을 손님이 아닌 동등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서구적 인정은 방탄소년단이 하는 일에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영어는 또 나밖에 못 해” 같은 가사가 등장하고, RM이 스스로 그것을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3월 21일 넷플릭스 라이브 이벤트를 바라보는 관점도 비슷하다. 공연을 연출한 해미시 해밀턴(Hamish Hamilton)은 ‘슈퍼볼 하프타임 쇼’, ‘아카데미 시상식’, ‘올림픽 개막식’ 등 친밀함보다는 불가능한 규모에서 진정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도전적인 행사들을 연출해온 거장이다. 방탄소년단은 공연 스펙터클의 최고 수준에서 차용한 시각적 문법을 한국에서 그 자체로 거대한 문화적 울림을 지닌 공간인 광화문광장에 적용했다. 실제로 넷플릭스 연출은 공연의 에너지와 현장의 분위기 적절히 배합해 생생함을 전달하는 글로벌 라이브 연출의 기준을 충족한다. 이는 미시적 관찰로 현장에서는 오히려 볼 수 없는 제2의 창작을 만드는 카메라가 아니다.
넷플릭스 공연은 음악 산업의 역사 전체에서 의미 있는 대화로 이어진다. 넷플릭스는 광화문 행사에 이어 ‘BTS: 더 리턴’ 다큐멘터리를 공개한다. 이는 음악 산업이 고민해온 홍보 전략의 미래다. 수년간 음악 산업은 스트리밍 시대에 음악 방송이란 어떤 모습일지 고민해왔다. 과거 MTV와 VH1은 음악을 언제든 재생할 수 있다는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 ‘약속된 시청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 다시 말해 사람들이 방송 시간에 맞춰 저녁 일정을 조정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문화를 구축했다. 하지만 그 인프라는 한순간 무너졌고, 이를 설득력 있게 대체할 만한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광화문 공연은 최근 어떤 사례보다 그 느낌의 재현에 가까워졌다. 이는 거대 플랫폼이 아니라 아티스트가 만들어낸 결과다. 넷플릭스는 배급과 제작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바로 지금 놓쳐서는 안 될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까지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 느낌은 아티스트에 의해 생성되며, 이는 수년, 때로는 수십 년이 걸려 축적되는 특정한 종류의 문화적 중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이 등장한다. 광화문 공연이 약속된 시청 경험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시청자들이 스트리밍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자신들이 중요한 순간을 보고 있음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앨범의 창의적인 야심, 광화문이라는 장소의 상징적 무게, 프로덕션의 규모와 완성도, 플랫폼의 글로벌 영향력 등, 이 모든 것의 융합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한국은 물론 글로벌 차원에서도 드문 입지를 확보하고, 수년간의 공백 이후에도, 자신들의 서사를 완전히 장악한 아티스트를 반영한다. ‘ARIRANG’에 대한 논의는 방탄소년단이 이 음반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타협했을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 정직한 관찰은 그들이 무엇을 고수했는가 찾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로컬 정체성이 ‘약점이 아님’을 증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한 발 더 나아가, 로컬 정체성은 적극적인 차별화 자산이 될 수 있는지 묻는 앨범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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