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뱀파이어로 살아남기’ (ENHYPEN 공식 유튜브)
이민영: ‘뱀자님’들의 인간 세계 적응기가 시작됐다. 엔하이픈의 새 자체 콘텐츠 ‘뱀파이어로 살아남기’에서 멤버들은 500년간 정체를 숨기고 살아온 뱀파이어로서 인간 세계에 침투한다. 그러나 “소녀들이 있는 곳인가.” 하며 당당하게 경로당을 찾은 정원, 제이크, 성훈은 할머니들 앞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공손해진다. 정원이 “지금 500살이에요.”라고 말해도, 제이크가 “저희가 사실 뱀파이어거든요.”라고 이야기해도 할머니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성훈, 선우 그리고 니키는 사찰을 찾아 스님에게 “피가 충동적으로 끌릴 때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를 진지하게 묻고, 500년간 먹은 피를 정화하기 위한 쑥뜸을 받는다. 그런 와중에도 성훈과 설원 스님은 뱀파이어 설정과 관계없이 2002년생 동갑이라는 공통점을 찾아 대화하고, 비현실적인 체력을 지닌 뱀파이어와는 달리 108배를 마친 세 멤버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계단을 내려간다. 이처럼 엔하이픈의 ‘뱀파이어’ 설정이 예상 밖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순간들은 ‘뱀파이어로 살아남기’가 웃음을 유발하는 동력이다.
엔하이픈 멤버들은 종종 ‘뱀파이어 과물입’에 실패하지만, 이는 오히려 멤버들 본연의 매력을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김장 재료를 다듬는 성훈과 제이크에게 할머니들이 칼질을 잘한다고 칭찬하자, 세 멤버들은 할머니들 앞에서 엔하이픈의 최근 타이틀 곡 ‘Knife’의 무대를 선보인다. 할머니들의 취향에 맞춘 남진의 ‘님과 함께’ 디스코 버전 무대까지 선보이며 흥겨움을 더하기까지 한다. 쑥뜸을 하는 동안 성훈, 선우 그리고 니키가 함께 활동하면서 느낀 서로의 성향에 대해 나누는 대화는 짓궂게 장난을 치면서도 애정에 기반하는 세 사람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멤버들이 과몰입에 실패해 머쓱해지는 타이밍마다 절묘하게 깔리는 ‘No Doubt’과 ‘Brought The Heat Back’은 그 간극을 웃음으로 채운다. 지난 6년간 일관되게 쌓아온 엔하이픈의 뱀파이어 세계관이 앨범 내 서사를 넘어 예능으로 확장되는 방식이다. 이처럼 어설프지만 매력적인 ‘뱀자님’들의 인간 세계 적응기라면, 적당히 속고 싶을 수밖에 없다.

‘올 그린스’
남선우(‘씨네21’ 기자): 여기 수상한 동아리가 있다. 자칭 원예부인 모임의 최초 가입 인원은 3인. 아지트는 학교 옥상. 짙은 초록색 점프슈트를 맞춰 입고 비닐하우스를 들락거리는 그들이 기르는 건 다름 아닌 대마초다. 거리에서 랩 좀 하던 히데미(미나미 사라)가 씨앗을 손에 넣었고, 기술을 배우다가 손가락이 잘린 미루쿠(데구치 나쓰키), 오매불망 만화에 빠져 사는 마코(요시다 미즈키)가 농사에 동참했다. 친구라기보다는 동급생 정도로 지내던, 비밀을 공유하기 전까지만 해도 서로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세 고등학생이 고향 탈출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끈끈해진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여기 아닌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감각 없이 10대를 지나는 사람도 드물 테니까. ‘올 그린스’는 그런 마음으로 버텨본 적 있는 관객에게도 녹색 오로라를 끼얹는다. 지난해 4월 국내에 개봉해 쏠쏠한 반향을 일으킨 일본 영화 ‘해피엔드’의 종반부를 잇는 졸업식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그때 스크린이 뿜어내는 빛깔은 새싹보단 이끼의 녹색에 가깝다. 늪에서 생존해본 이들에게만 허락된 은밀한 청신호는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는 모든 청춘을 응원하듯 명멸한다. 도피 대신 도전이 하고 싶은 당신에게, 세 소녀는 ‘대책 없음’이 대책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것이다.

Juice=Juice - ‘盛れ!ミ・アモーレ’
백설희(작가, 칼럼니스트): 지난 4월 30일, 일본 최대 규모의 음악 시상 행사인 ‘뮤직 어워즈 재팬(MUSIC AWARDS JAPAN)’이 2026년 수상 후보작을 발표했다. 그중 ‘최우수 걸즈 아이돌 컬처 악곡상 부문’에 2025년 10월 발매된 Juice=Juice의 ‘盛れ!ミ・アモーレ’가 포함되어 있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올해로 결성 12년 차인 Juice=Juice는 모닝구 무스메로 유명한 헬로! 프로젝트(이하 ‘하로프로’) 소속 걸그룹이다. 모닝구 무스메처럼 비정기적으로 멤버를 선발 및 충원하는 로테이션 시스템으로 운영 중이다. 결성 당시부터 실력파 멤버들로 구성돼 입소문을 탔으며, 원년 멤버가 전부 졸업한 지금도 실력으로는 두말할 나위 없는 11명의 멤버들이 소속되어 있다. 다만 Juice=Juice는 뛰어난 가창력과 퍼포먼스 실력에도 그간 대중에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2025년 10월에 ‘盛れ!ミ・アモーレ’가 발매되면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방심할 수 없어/셔터 찬스(油断できないわ/シャッターチャンス)”라는 부분을 부르며 다리를 힘차게 차 올리는 파트가 틱톡과 쇼츠, 릴스 등 숏폼에서 큰 반응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전체 조회 수는 약 6억 회를 달성하여 그룹 역사상 가장 큰 바이럴 히트를 기록했다. 일본의 젠지는 멤버 전원이 핸드마이크를 들고 격렬한 댄스와 고퀄리티 라이브를 소화하는 모습, 그리고 라틴 댄스 콘셉트를 차용한 ‘하로프로’ 특유의 흥겨운 리듬과 멜로디에 주목했다. 그 결과, 해당 싱글은 2025년 11월에 일본레코드협회 골드 디스크 인증을 받았으며, 뮤직비디오의 조회수는 1,000만 회를 넘겼다. 일본 음악 채널 ‘더 퍼스트 테이크’의 라이브 영상의 조회 수 역시 순조롭게 400만 재생을 돌파했다. 이에 힘입어 Juice=Juice는 맥도날드의 웹 광고를 촬영하고 각종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Juice=Juice와 ‘盛れ!ミ・アモーレ’의 흥행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9년 가까이 시원한 가창력으로 묵묵하게 팀을 받쳐왔던 리더 단바라 루루는 ‘빌보드 재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이럴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자신들이 좋다고 생각해오던 것,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좋아하던 것’을 관철해왔다.”고. 그처럼 자신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걸 우직하게 해오던 그들의 열정이 ‘盛れ!ミ・アモーレ’라는 노래를 통해 마침내 대중에게 가 닿았기 때문이다. 오는 6월 24일, Juice=Juice는 히트 곡 ‘盛れ!ミ・アモーレ’를 수록한 정규 미니 앨범 ‘MORE! MORE!’를 발매한다. 그 제목처럼 앞으로 더 나아갈 Juice=Juice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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