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산파의 13대 제자이자 천하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검수(劍手), 매화검존(梅花劍尊)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청명은 천마(天魔)와 전투를 벌인 십만대산에서의 전투에서 천마에게 일격을 날리지만, 본인도 영면에 든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백년 만에 되살아난 청명은 파산해버린 화산파를 되살리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총기도 잃고 희망도 잃어 탈출만 꿈꾸는 화산파의 제자들, 사실 까마득한 후배지만 현생에서는 사형(師兄)들에게 외친다. “대가리!”
여기까지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축하한다. 아직 인생에 즐거움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바로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화산귀환’(1부, 2부 LICO, 3부 ARCHE, 원작 비가) 이야기다. 2026년 4월 14일, 469일 만에 ‘화산귀환’ 3부가 돌아왔다. 그간 웹툰의 마케팅은 소극적인 편이었다. 몇몇 사례가 있긴 했지만 간헐적이었고, 대대적인 ‘캠페인’이라고 느낄 만한 홍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화산귀환’의 복귀에 네이버 웹툰 앱, 네이버 지도, 스포티파이는 물론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의 광고까지 등장했다. 가장 핫한 동네부터 스마트폰 속 알고리즘까지 점령한 3부 복귀는 그 자체로도 화제를 모았다. 웹소설 조회 수 7억 회, 웹툰 조회 수 21억 회. 조회 수만 봐도 압도적인데, ‘화산귀환’은 그저 조회 수만 잘 나온 작품이 아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화산귀환’의 복귀를 진심으로 반겼다. 아저씨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무협을 남녀노소 모두가 열광하는 작품으로 만들어낸 ‘화산귀환’의 비결은 무엇일까?
노력하는 주인공은 인기 없다는 거짓말
흔히 최근 작품들을 이야기할 때 “요즘 독자들은 노력하는 주인공에게 관심이 없다”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대한 거짓말이다. 독자들은 노력하는 주인공의 ‘노력 이후’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지, 노력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것이 ‘장르화’ 되면 독자들에게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를테면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에 트럭이 다가오면 ‘이세계 트럭’이고, 이세계에 떨어진 한국인은 ‘상태창!’부터 외친다. 로맨스 판타지의 세계에서 첫 등장한 캐릭터의 이름 옆에 꽃들이 수놓아져 있다면 주인공이거나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장르는 독자들과의 합의고, 독자와 합의가 끝난 것들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나 혼자만 레벨업’에서 성진우 역시 매일 수련하고, 그 대가로 레벨업을 한다. ‘귀멸의 칼날’의 주인공 탄지로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 주인공들은 노력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장르적으로 합의된 노력, 즉 ‘당연히 노력했다.‘는 합의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현대사회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미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부른다. 장르적 합의는 이런 ‘다 아는 얘기’를 하지 않고, 그다음을 이야기하기로 약속하도록 한다.
‘화산귀환’에서도 주인공 청명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청명의 노력은 아주 파편화되어 ‘주목할 만한 지점’만 보여준다. 그리고 그 노력을 통해 청명은 패배주의적 사고에 빠져 있던 화산파를 개조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것이 ‘화산귀환’이 인내와 고통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까마득한 후배(지만 선배)들을 훈련시키며 그들의 성장이 곧 화산파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 노력 없이 강해지는 주인공은 매력적이지 않다. ‘노력은 반드시 결과를 수반한다.’는 믿음 아래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노력의 결과를 이뤄내는 사람에게 우리는 열광한다.
사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대중적 인기를 얻는 작품에서 굳이 현실의 실패를 재현할 필요는 없다. ‘화산귀환’은 청명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와 엉망진창이던 화산파가 재건되는 과정을 통해 이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처음에는 청명을 저주하던 동료들이 그를 인정하고 따르게 되는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현실에서는 찾기 어려운 ‘노력이 보상받은 세계’를 읽게 된다.
‘화산귀환’이 보여주는 이상적 공동체
‘화산귀환’ 1, 2부에서 청명의 가장 주요한 미션 중 하나는 화산파의 재건이다. 보통 문파의 재건이라고 하면 ‘화산 정신’을 되살리고, 도가의 제자답게 맑은 내공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청명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글자밖에 없다. “돈!” 청명은 말 그대로 돈귀신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돈, 돈, 돈!”을 외치는 청명에게 환호를 보낸다. 도사가 되기 위해 수련이나 영약보다 돈을 먼저 찾는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웃음을 주지만, 그 안에는 한(恨)이 서려 있다. 모든 걸 바쳐 천마를 물리쳤는데도 거지꼴을 면치 못하고 잊힌 화산파를 되살리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다.
돈을 악착같이 모으는 청명의 모습은 현대인이 돈을 보는 관점과 닮아 있다. 청명은 노력을 요구하며 따라오는 화산의 제자들에게 가장 귀한 영약을 먹이고, 확실한 보상과 역할을 부여한다. 우리가 그리는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이다. 화산의 제자들은 사실 청명의 선배지만, 청명이 증명하는 실력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위계보다 중요한 실력,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실력을 증명하면 위계가 해소되고, ‘옳은 리더’라면 따라야 한다는 구조, 미래가 불투명하더라도 따라야 한다는 이상화된 세계에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실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는 세계, 현실에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화산귀환’ 속 화산파는 청명에 의해 구현된 이데아적 세계다. 팀원이 서로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기꺼이 헌신하고, 그에 따르는 보상이 확실한 세계. 때로는 거칠고 무자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청명이 “다 너희 좋으라고 하는 거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무협의 위치까지 바꿔 놓은 ‘화산귀환’
원래 무협은 이렇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읽히는 장르가 아니었다. 강호(江湖)를 배경으로 한 무협의 주인공은 고독하게 절대 강자가 되기 위해 전진한다. 그 과정에서 강해지고, 결국 중원을 제패한다. 협(俠)의 정신은 있지만 거악에 맞서는 서사적 명분이지 일상적 언어의 관계로 번역되지는 않았다. 독자는 주인공의 등을 보고 그의 강함을 구경하는 객체다.
하지만 ‘화산귀환’은 이 구도를 뒤집는다. 청명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고, 천둥벌거숭이 같은 선배들을 단련시킨다. 100년 전 절대 강자였던 청명의 먼치킨성을 ‘성장의 종결’이 아니라, 그 먼치킨성이 혼자 이뤄낸 게 아님을 깨닫고 패배주의에 잠식된 선배들을 일으켜 문파를, 그리고 평화와 타성에 젖은 중원을 일으킨다. 초월적 개인의 영웅담이 아니라, 집단의 회복이 ‘화산귀환’의 이야기다.
이 작품이 독자들의 열광을 이끌어내는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전통적 무협에서 지존은 타인에게 두려움이 되는, 모든 것을 초월한 절대자다. 하지만 청명은 자신이 틀렸다면, 혹은 자신이 동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아닐지 불안해한다. 3부 이후의 세계는 청명의 불안과 성장을 다룬다. 단순히 무력이 강한 절대자로서가 아니라, 완성된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불안을 안고 있던 청명이 스마트폰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며 “화산의 검”을 말할 때, 우리는 일시적으로 청명과 같은 초월자가 된다. ‘화산회귀’가 아니라 ‘귀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돌아왔더라도 필멸하는 인간으로서, 독자와 청명은 모두 미래를 알 수 없으니까.
속시원한 전개는 젊은 독자들을,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그리는 노련함은 중장년 독자들을 모았다. ‘화산귀환’은 현대적 ‘사이다’로 보이는 서사와 화려한 작화로 독자들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지금, 진짜 매력을 가지고 ‘화산귀환’이 돌아왔다. 이제, 우리가 화산에 귀환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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