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르세라핌의 ‘괴물 찬가’
정규 2집 ‘‘PUREFLOW’ pt.1’ 리뷰
Credit
최민서
사진 출처쏘스뮤직

“For I am fearless, and therefore powerful.”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은, 스스로를 두려울 것이 없기에 강력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괴물은 그토록 복수하길 원했던 빅터의 시체를 마주하자 눈물을 보인다.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이는 그뿐이었고,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이는 나뿐이었다.” 괴물은 정말 두렵지 않았던 걸까. 오히려 사무치는 외로움이 너무나 두려워 빅터에게도 죽음 대신 고립이라는 저주를 내렸던 것이 아닐까. ‘CELEBRATION’의 뮤직비디오에서 르세라핌은 그 결말을 다시 쓰기로 한다. 마치 괴물이 빅터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막을 뚫고 빙하를 건너 괴물을 추적한다. 그러나 끝끝내 찾아낸 괴물에게 그들이 내민 것은 칼이나 총구가 아닌 따스한 손길이다. “혼자가 아냐 creatures”, “부서질 듯 춤을 춰봐”(‘Creatures’)라는 가사 그대로 르세라핌은 저마다의 모습을 한 괴물들과 어울려 춤을 춘다. 그 순간 세상에서 괴물로 치부되던 이들의 공존은 축제로 거듭난다.

르세라핌의 연대에는 전제도, 조건도 없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해야만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만난 건 말도 안 되는 기적이지만, 모든 걸 나눌 수 있다는 뜻은 아니예요.” 트레일러 ‘We walkin’ here’에서 카즈하는 볼링을 치고, 장을 보고, 밥을 먹으며 멤버들과의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와중 홀로 괴물과 맞선다. 멤버들에게는 카즈하가 보는 괴물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멤버들은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면서 카즈하를 위해 열심히 싸운다. 무의미해 보이던 그 응원은 물방울이 되어 결국 괴물을 태운다. 모두에게는 저마다 맞서야 할 괴물이 있다. 혹은 스스로가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고립된 괴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함께할 수 있다.

‘I’M FEARLESS’라는 철자를 재배열한 ‘LE SSERAFIM’이라는 팀명 그대로, 이전까지의 르세라핌은 두려움이 없는 ‘나 자신’에 집중했다. 세상의 뾰족한 시선에 맞서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어 금기를 깨뜨리고, 하고 싶은 것에 미쳐보자며 ‘CRAZY’를 노래했고, 그들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시선을 향해 오히려 자신들의 존재감을 “이빨 사이 낀 SPAGHETTI”로 과감히 치환하기도 했다. 그러나 “FEARLESS 2.0”을 선언한 르세라핌은 ‘I’m fearless’의 주어를 ‘나’에서 ‘우리’로 바꾼다. 무엇도 두렵지 않다. 여전히 세상에서 외면당할지라도, “흉진 손 맞잡고” 함께한다면. 

축제를 연상시키는 ‘CELEBRATION’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이 내재되어 있다. 하드스타일의 왜곡된 킥과 반복적인 리듬이 축제의 분위기를 구현하는 반면, 그에 맞부딪히는 멜랑콜리한 단조의 선율이 균열을 일으킨다. 코러스의 멜로디가 하강조로 “Time to celebrate”를 반복하면서 사실상 선언에 가깝게 표현될 때, 리듬을 자유분방하게 타기보다 박자에 맞춰 군무를 선보이는 퍼포먼스 역시 절제되어 있다. “불안과 마주한 나의 새로운 버전을 축하”한다는 가사 그대로, ‘CELEBRATION’의 흥겨움은 감각적이라기보다 인지적인 선언에 가깝다. 이는 추후 공개된 ‘Just BOOMPALA’에서 허윤진이 던지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생각을 멈추는 법 알아?” 이에 대한 김채원의 답변은 명료하다. “멈춰!” 그리고 나서 그는 말한다. “춤출까?” 이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의 선언에서 나아가, 두려움에 더 이상 사로잡히지 않는 상태를 향한 제안처럼 들린다. 이를 반영하듯 ‘BOOMPALA’의 퍼포먼스는 명상을 하다 힐끔 눈을 뜨는 표정이나 골반을 튕기는 리듬감, 다양한 합장을 연상시키는 포인트 동작으로 곡 전반에 경쾌한 해방감을 불어넣는다. ‘반야심경’의 공(空)과 무(無) 개념에서 영감을 얻은 “Nothing’s forever so nothing’s to fear”라는 가사 그대로 통달의 태도가 곡 전체를 관통한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끝내 벗어나지 못했던 외로움과 집착은, ‘CELEBRATION’의 인지적 단계를 거쳐 ‘BOOMPALA’에서 비로소 해방된다.

“Beating up all inner drama / Saving the shame for mañana”. 가사 속 ‘mañana’가 아침을 뜻하듯 ‘BOOMPALA’의 시간적 배경 역시 아침이다. 보통 괴물, 귀신, 벌레 등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이 출몰하는 시간대는 밤이다. 태양은 오히려 이들을 물리치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BOOMPALA’는 이러한 클리셰를 전복한다. 숨어 있어야 했던 존재들은 더 이상 밤에 머물지 않는다. 르세라핌은 그들을 거대한 확성기가 달린 퍼레이드 플로트 위에 올려 세상 한복판으로 끌어낸다. 그리고 노래한다. “She’s only an illusion, don’t feed her” ‘BOOMPALA’에서 두려움은 ‘그녀’로 인칭화된다.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두려움은 먹이를 줄수록 커지고 흘려보낼수록 사그라드는 허상일 뿐이다. ‘BOOMPALA’의 뮤직비디오에서 르세라핌은 물이 뿜어져나오는 거대한 스피커 앞에서 춤을 추면서, 물과 소리로 파동을 일으켜 모든 허상을 물리친다. 그렇게 모두가 ‘BOOMPALA’라는 뜻 없는 조어를 외치면서 번뇌는 휘발되고 꽃이 피어난다. 

‘‘PUREFLOW’ pt.1’의 마지막 트랙 ‘Liminal Space’는 차 안에서 나눈 멤버들의 대화를 담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떠나지도 않은 통과의례의 공간. 그 안에서 나누는 대화의 말미에 사쿠라는 묻는다. “우리 어디 가?” 아직 답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앞에 놓인 길은 무궁무진하다. 괴물이면 어떠하리. 이제 그들은 어느 곳에서든, 어떠한 모습이든 강하다. 두려움 속 서로를 발견했기에. 함께이기에.

“For we are not fearless, and therefore power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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