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4일, 버추얼 보이그룹 PLAVE(플레이브)는 데뷔 3년 만에 첫 월드 투어 ‘KEEP IT MANIC’ 일정을 발표했다. 9월 12~13일 양일간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시작해 일본과 대만, 태국, 싱가포르를 거쳐 마카오에서 끝을 맺는 이번 월드 투어로 PLAVE는 인천문학경기장에 최초로 입성한 버추얼 아이돌이 된다. 이는 지난해 11월, 데뷔 첫 아시아 투어 ‘Dash: Quantum Leap Encore’에서의 고척스카이돔 단독 입성에 이은 신기록 갱신이다.

2022년 9월, 리더 예준을 시작으로 멤버들을 한 명씩 공개하고 2023년 3월 싱글 1집 ‘ASTERUM’을 발매하며 데뷔한 PLAVE는 그간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그렇기에 때로는 불안해 보였지만, 매주 꾸준하게 라이브 방송을 하고 본인들이 직접 작사, 작곡 및 프로듀싱에 안무 창작까지 도맡아 가며 노력한 끝에 데뷔 1년 만인 2024년 미니 2집 ‘ASTERUM : 134-1’로 초동 하프밀리언셀러를 달성했다. 이뿐 아니라 그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2025년 2월에 발매한 미니 3집 ‘Caligo Pt.1’이 초동 100만 장을 넘기며 보이그룹 밀리언셀러 반열에 진입했다. 그해 11월에 발매한 싱글 2집 ‘PLBBUU’는 지난 앨범 ‘Caligo Pt.1’의 판매량을 가뜬하게 넘기면서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고, 초동 판매량 109만 장가량을 기록해 보이그룹 발매 싱글 중 역대 초동 2위에 올랐다. 지난 4월 발매된 미니 4집 ‘Caligo Pt.2’는 초동 밀리언셀러 달성은 물론이고 빌보드 200에 145위로 데뷔하며 K-팝 버추얼 아이돌 최초의 미국 메인 차트 진입이라는 기록을 남기기까지 했다.

아스테룸과 카엘룸, 그리고 테라가 그리는 삼각형
이 눈부신 성장 서사에는 PLAVE가 데뷔 때부터 정교하게 쌓아온 세계관이 한 축을 차지한다. 어떤 방송에 출연하든 멤버들은 본인들이 아스테룸에서 온 외계 존재이며, 테라(지구)와 소통할 수 있게 되어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짚고 넘어간다. PLAVE의 세계관은 세 가지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가상 웹툰 속 캐릭터였던 예준과 노아, 밤비, 은호가 살고 있던 가상 세계 카엘룸(Caelum)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테라(Terra) 그리고 그 중간에 위치해 있는 중간계 아스테룸(Asterum)이 있으며, 현재 PLAVE 멤버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아스테룸이다.
이런 기묘한 삼각관계는 PLAVE 본체가 있는 장소와 그들이 영상 등을 내보내는 컴퓨터(인터넷)라는 매개체 그리고 최종적으로 팬덤인 PLLI(플리)가 쥐고 있는 매체(PC나 스마트폰 등)에 닿는 관계의 메타포처럼 읽히기도 한다. 즉, PLAVE의 세계관은 콘텐츠의 일부가 아니라, PLAVE라는 그룹의 존재 방식 그 자체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멤버들이 라이브 방송을 켤 때마다 혹은 위버스 DM을 보낼 때마다 이런 활동은 그저 단순한 콘텐츠에 그치지 않고 매 순간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그 속에서 일상에서의 행동을 수행하고 있어도 PLAVE 멤버들은 사실 세계관 안의 사건인 ‘아스테룸에서 테라(지구)로 통신을 송출한다.’라는 행위를 충실히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PLAVE는 억지로 현실에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자신들의 존재를 끼워 맞추는 대신, 자연스럽게 세계관을 통해 가상 세계 속으로 PLLI들을 초대한다. 현실과 다소 유리되어 있어도 ‘이곳은 아스테룸이기에 가능하다.’라는 설정 아래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기에 PLAVE의 버추얼 기술은 곧 세계관이 되고, 그 세계관은 다시 멤버들의 일상에 스며든다.
PLAVE의 이러한 세계관은 ‘ASTERUM’ 3부작의 시작이자 데뷔 싱글인 ‘기다릴게’의 뮤직비디오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구현됐다. ‘기다릴게’가 각자의 세계에 있던 다섯 명이 테라인의 사랑을 받아 중간계인 아스테룸에 도달하는 모습을 담았다면 ‘여섯 번째 여름’ 뮤직비디오는 ‘테라 속 존재로 살아가는 PLAVE’라는 평행 우주를 그렸으며, ‘WAY 4 LUV’에서는 PLLI의 사랑을 먹고 아름답게 성장한 아스테룸을 탐험하며 테라로 향하는 PLAVE 멤버들을 볼 수 있다. ‘WAY 4 LUV’의 후반부에는 망토로 얼굴을 가리고 그들을 의미심장하게 지켜보는 존재들이 등장하며, 새로운 시작을 예고했다.

우리들의 세계 속으로 테라인들을 초대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세계관이 진입 장벽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PLAVE 멤버들이 외계인이라는 것만 알고 있어도 그들의 콘텐츠를 즐기는 데엔 아무 무리가 없다.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재미 요소일 뿐이다. 그러나 세계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곡의 제목이나 숨겨진 웹사이트, 멤버들의 소소한 말실수 같은 새로운 요소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는 또 다른 즐거움으로 작용한다. 이를 통해 팬덤의 몰입은 한층 더 깊어지고 그 몰입에 호응하려는 멤버들의 진심까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한 ‘Caligo Pt.1’에서 PLAVE는 이전과는 다른 결의 변주를 시도한다. 직전에 발매했던 디지털 싱글 ‘Pump Up The Volume!’이 레트로한 밴드 사운드를 내세웠던 것과 달리 ‘Caligo Pt.1’은 지금껏 PLAVE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강렬한 느낌의 어두운 타이틀 곡 ‘Dash’를 선보인 것이다. 게다가 세계관을 기반으로 제작된 뮤직비디오에 세계를 유지하려 하는 카엘룸의 의지로 태어난 존재라는 ‘Caligo’를 등장시켜 새로운 대립 서사를 이끌어냈고 세계관 역시 한층 더 확장시켰다.

여기에는 다소 영리한 계산이 숨겨져 있다. PLAVE라는 버추얼 아이돌의 성공은 유례가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무거운 그림자들 또한 따라붙었다. ‘Caligo’ 연작에서 PLAVE는 그 무게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세계관 속 대립 서사의 형태로 녹여냈다. ‘칼리고’라는 적대적 존재를 만들고 PLAVE 멤버들이 그들과 맞서 싸우게 함으로써, 현실의 무게를 그들이 속한 세계관으로 옮겨놓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Caligo Pt.2’에서 한층 더 심화된다. 무력하게 당하기만 했던 ‘Dash’와는 달리, ‘Born Savage’의 멜로디는 힘을 되찾아 칼리고에게 반격을 시작하는 PLAVE의 모습 위로 신나게 질주하는 듯하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사운드의 폭격, 그리고 이에 맞춰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PLAVE는 ‘Caligo’ 연작이 단순한 콘셉트 변화에 그치는 게 아니라 PLAVE가 마주한 다음 단계임을 분명히 한다.

최초의 버추얼 아이돌 그룹이 도달할 미래
그다음 단계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지난 4일 PLAVE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된 ‘PLAVE 4th Mini Album ‘Caligo Pt.2’ Epilogue’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우리는 그 형태를 가늠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PLAVE 멤버 다섯은 간신히 힘을 되찾아 칼리고들을 물리쳤지만, 수많은 우주선 함대를 마주하고 충격에 빠진다. 이때 노아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달의 심장’ 브로치를 발동해 멤버 전원을 어딘가로 워프시킨다. 노아는 본디 ‘달의 심장’이라는 웹툰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마법사였다. 그 작품에서도 ‘달의 심장’ 브로치가 나오는데, 이는 차원을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아이템이다. 그 대신 차원을 이동한 이는 기억을 상실한다. 즉, 에필로그에서 노아는 자신의 기억을 대가로 나머지 멤버들을 구한 것이다. 이처럼 설정과 서사가 얽히고설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부분이야말로, PLAVE의 세계관만이 줄 수 있는 재미일 것이다.
카엘룸 속 캐릭터들이 테라인의 사랑을 받아 큐브에서 깨어났듯, PLAVE 역시 PLLI의 사랑을 받아 다음 챕터로 나아가고 있다. 이 관계는 세계관 안의 설정인 동시에 PLAVE라는 그룹의 존재 방식 그 자체다. PLAVE 앞에는 이제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Caligo’ 연작을 훨씬 더 흥미로운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고, 여기서 마무리하고 새로운 챕터를 시작할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향하든 이들이 걸어갈 궤적은 확실히 우리를 더 넓은 곳으로 데려가줄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고대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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