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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스파이더맨의 새로운 세계
이 주의 영화, 유튜브, 음악
Credit
남선우(‘씨네21’ 기자), 오민지,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소니 픽쳐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남선우(‘씨네21’ 기자): 전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피터 파커(톰 홀랜드)가 모두에게 정체를 들키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반대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의 초입에서는 피터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잔혹한 소동 끝에 유일한 가족은 세상을 떠났고, 친구와 연인은 그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 때로 상실감은 일중독을 부른다. 피터는 동급생들이 대학에 진학해 미래로 발돋움하는 동안 오직 ‘스파이더맨’으로서 뉴욕의 빌딩 숲 사이를 활공한다.

그러다 맞닥뜨린 빌런은 이번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더 웨일’과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에서 강렬한 인장을 새긴 배우 세이디 싱크가 분한 ‘그 캐릭터’는 피터와 거울상처럼 놓인다. 거대한 능력, 유사한 결핍, 판이한 대처. 이를 히어로 무비의 익숙한 대조법이라 지적해도 좋다. 피터를 지켜봐온 관객이라면 그 대비가 소년의 성정과 성장을 두루 보여준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나아가 피터의 주도로 이뤄지는 ‘그 캐릭터’와의 짧은 교감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본격적인 새 국면을 예고한다. 어른들 싸움에 끼고 싶어 했던 철부지가 어느새 비뚤어진 악당도 동료로 만들 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날 닮은 너’ 하나쯤은 발견해내는 힘은 피터를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이 세계관은 그 친절한 이웃의 행보 덕에 훌쩍 넓어질 전망이다.

‘하말넘많’
오민지: 세상은 성인 여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규정한다. 다이어트나 피부 관리 같은 자기 관리는 꾸준히 하는지, 운동이나 공부를 통해 자기 계발을 이어가고 있는지, 커리어를 쌓고 돈도 착실히 모으면서 연애도 잘하고 있는지. 그 속에는 자기 관리와 자기 계발을 놓치지 않고, 관계도 일도 모두 ‘잘’해내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이때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은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박하지도, 그렇다고 수용하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이 맞는 여성들이 함께 모여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채널의 멤버인 강민지와 서솔 그리고 편집자 잔니는 친구들과 함께 살고, 같이 ‘작업실 점심’을 먹거나 여행을 떠나고, 또 다른 친구들을 초대해 ‘초장집’을 연다. 동대문시장에 가서 마음에 드는 말랑이를 구해오고, 시장에서 제철 음식을 사다가 푸짐한 한 상을 차려 친구들과 한 끼 식사를 한다. 미라클 모닝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강아지 깔롱이와 산책을 나갔다가 강아지와 싸우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말고 편의점에 들러 먹고 싶은 음식을 다 사서 ‘황제 정식’을 차려 먹거나 사투리부터 예능, 책, 드라마, 음식까지 자신들의 취향이나 관심사라면 무엇이든 리뷰하기도 한다.

‘하말넘많’의 영상에는 특별한 성취나 대단한 성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강민지와 서솔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지도, 해내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좋아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취향을 즐기며, 실패를 웃어넘기고,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요컨대 ‘하말넘많’이 보여주는 여자들의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새로운 이정표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살 수도 있다.’는 또 하나의 선택지다. 모든 것을 다 잘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잘살 수 있다는 가능성이 담긴.

김도언 - ‘녹색과 분홍색’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프로듀서 김도언의 두 번째 정규 음반 선공개 곡 ‘녹색과 분홍색’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육각형으로 보이는 도형이 박자에 맞춰 일정하게 움직인다. ‘호두까기 인형’ 행진곡의 첫마디처럼 들리는 드럼 머신 리듬이 경쾌하게 발맞추자,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프렛리스 베이스 연주음이 행진에 합세한다. 김재호가 슬라이드로 흘려보내는 이 소리는 그러나 이윽고 밀려드는 여러 소리에 파묻힌다. 전작 ‘Damage’에서 “내가 정하지 않은 기호들로 가득한 이 세계 (‘Newbie’)”를 수많은 전자음으로 무성히 구성했던 바, 김도언은 ‘녹색과 분홍색’에서도 형태와 질감이 분명한 소리 토막을 꼼꼼히 배치해 풍성한 풍경을 만든다. 그런 만큼 곡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를 한꺼번에 받아들이면 과잉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신시사이저로 찍고 샘플러로 따온 수많은 소리가 대열에 동참하자, 음향 전반이 요정들처럼 제 모습을 바꾸니 말이다.
 
그럼에도 발걸음을 착실히 내딛는 박자를 따라 집중하면 이 붐비는 행진에서도 반복되는 소리의 무늬를 찾아낼 수 있다. 이를테면 국악기 샘플의 세부 사항을 찰현악기처럼 들릴 듯 말 듯하게 뭉개놓아 누군가 흥얼거리는 듯한 소리를 떠올려보자. 아무리 파편적일지언정, 구체적인 음색과 뚜렷한 선율이 단단히 맞물린 이 소리는 어느새 저만의 독창을 들려주고, 다른 토막들과도 연결되어 한 줄기의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개별적으로 귀에 걸리는 이 소리들은 ‘Damage’에 참여한 음악가들의 개성적인 목소리와 닮았는데, ‘온음’의 필자들이 짚었듯 음 사이의 구분을 흐려 무엇이 ‘자연’스럽고 ‘인공’적인지 재고하게 하기 때문이다. ‘녹색과 분홍색’과 함께 새로운 재고 대상이 되는 것은 점멸하는 각 소리의 연속성, 지금 나타난 소리를 방금 사라진 소리의 ‘다음’으로 간주할 수 있느냐는 점일  테다. 만약 당신이 특정 소리가 들락날락하는 그사이를 무의식적으로라도 이어 붙일 수 있다면, 이 행진은 저마다 달리 만들어진 여러 소리가 하나의 곡으로 성립하는 장관을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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