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한 백인 남성이 아시아인 운영 스파 세 곳에 들어가 총기를 난사했다. 8명이 사망했다. 이중 6명이 아시아인 여성이었고, 그중 4명이 한국계 여성이었다. 연방하원의원 주디 추(Judy Chu) 의원이 미국 내 아시아인 대상 혐오 범죄가 하루 100건 넘게 보고되고 있다고 발표한 지 한 달 만 그리고 세계보건기구(WHO)가 2020년 3월에 코로나19 팬데믹을 선포한 지는 1년 만의 일이었다.

 

이 사건은 2021년 들어 더욱 심각해진 미국 내 아시아인 혐오 분위기 중에도 시민들에게 특히 큰 충격을 안겼다. 총격범의 왜곡된 인종과 성 의식은 물론이거니와, 해당 지역 경찰이 보인 태도 때문이었다. 경찰은 범인이 “그날 일진이 나빴다(Had a bad day).”고 말한 것을 대변인 발표에 그대로 옮겼고, 아시아인 여성을 집중적으로 노린 사건임에도 혐오 범죄로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이 마침내 총격범을 혐오 범죄 방지법 위반으로 기소하는 데에는 두 달여의 시간이 더 걸렸다. 5월 11일, 애틀란타 총격 사건은 작년 조지아 주에 혐오 범죄 방지법이 발효된 이래 실제 적용된 첫 사례가 되었다.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시민들의 의견 개진과 저항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이번 사건에는 아시아계 유명인들이 본인의 플랫폼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한국계 캐나다-미국인 배우 샌드라 오는 피츠버그에서 열린 거리 집회에 나가 직접 발언했고, 애틀랜타 토박이 출신 가수 에릭 남은 ‘타임’지 기고와 CNN 인터뷰를 통해 아시아인 인권 위협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각종 SNS에 해시태그 #StopAsianHate와 #StopAAPIHate(AAPI: 아시안 아메리칸과 퍼시픽 아일랜더 인종을 아우르는 말)와 함께 아시아인을 존중하라는 규탄 성명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3월 29일, 방탄소년단도 트위터 계정에 이 해시태그를 단 입장문을 올렸다. 애틀랜타 참사 유족에게 보내는 위로, 본인들이 직접 경험한 차별 그리고 아시아인으로서 정체성 의식을 담은 이 짧은 글은 순식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리트윗되어 전 세계로 퍼졌다.

 

시계를 조금만 뒤로 돌려보자. 올해 2월 25일에는 독일 BR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 ‘바이에른3’의 DJ가 방탄소년단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쏟아내는 일이 있었다. 욕설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비유, 북한으로 ‘휴가’를 보내라는 말까지(‘휴가’는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속여 수용소로 보낼 때 쓴 표현이다), 변명의 여지 없는 뻔한 아시아인 혐오였다. 독일의 방탄소년단 팬덤 아미를 비롯해 전 세계 팬들로부터 사과 요청이 빗발쳤다. 방송국 측은 곧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단순 의견이었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팬들이 기분 상했다면 사과한다 등의 내용을 담아 더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아미는 지속적으로 제대로 된 사과를 할 것을 요구했고, 방송국은 다음 날 내용을 수정해 두 번째 사과문을 냈다.

 

방탄소년단이 서구권 매스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인종차별 발언을 들은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들이 2017년 빌보드 음악상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수상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 대부분의 주류 언론은 방탄소년단을 인터넷에서나 인기 있는 외국 가수 혹은 지나가는 유행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인기는 가파르게 치솟았고 당시로부터 불과 1년 만인 2018년 뉴욕 시티필드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는 가수가 되었다. 이듬해인 2019년에는 월드 투어를 스타디움 규모로 도는 대형 가수로 성장했다. 그렇게 도저히 못본 척할 수 없는 위치에까지 오르자, 주류 미디어는 그제야 뒤늦게 이들을 인식하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스타의 등장을 열린 마음으로 환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이 한국에서 온 비백인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외부인으로 보고자 고집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이런 사람들은 방탄소년단의 영향력이 커지자 이들을 기존 산업을 위협하는 외부 존재로 여기고 경계하며, 때로 깎아내리려 했다. 방탄소년단을 향한 크고 작은 인종차별 발언 경향이 본격화된 것도 이 2019년이었다. 앞서 말한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은 물론이고, 무성의한 기사나 부정적 함의를 곁들이는 언급 등 미세 차별(Micro-aggression) 케이스도 셀 수 없었다. 방탄소년단만큼 성공한 유명인일지라도 비백인이고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타자화되고 차별받았다.

 

서구의 아시아인 혐오는 역사가 길다. 아시아 대륙의 광활함만큼 그 양상도 다양했다. 미국 사회의 동북아시아인 혐오로 좁혀보자면, 옐로 페릴(Yellow peril, 황화론)이 대표적이다. 옐로 페릴은 동북아시아인이 서구 문명을 위협하고 정복할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의 감정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때에 따라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쓰이기도 했다.

 

시작은 19세기였다.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동안 많은 중국계 이민자가 미국 서부에 정착했다. 19세기 후반부터는 미 서부 지역에 중국계 이민자가 백인의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내용의 혐오가 번지기 시작했다. 옐로 페릴은 불안정하고 막막한 불황 시기에 약자를 희생양 삼고 분노를 분출할 좋은 핑계였다. 팽배했던 차별과 혐오 분위기는 잦은 린치나 살인으로 나타났고, 1871년 LA 중국인 학살 사건으로 폭발했다. 그러나 19세기 미국은 이런 사회 분위기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도리어 1882년 미 연방 국회에서는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을 제정하여 최초로 특정 국적의 이민을 막기 시작했다. 이는 이후 1924년 이민법 개정의 국가별 할당법으로 이어졌다. 연간 총 이민자 수를 출신지별 비율에 따라 할당하는 법으로, 유럽계는 수용하고 아시아계는 억제하는, 사실상의 아시아인 배척법(‘Asian Exclusion Act’)이었다. 사회 분위기에서 비롯된 혐오가 국가 시스템까지 확장된 사례다. 

 

일본계 이민자들의 경우, 20세기 중반 제2차 세계대전 때 출신지가 적국이라는 이유로 무차별 격리 수용을 당한 역사가 있다. 같은 적국 입장이었던 독일계나 이탈리아계에 비해 일본계 이민자 피해가 더욱 심했던 이유는 피부색으로 사람을 거르는, 일명 인종 프로파일링(Racial profiling)의 영향이 컸다. 옐로 페릴이라는 이름의 혐오는 시간이 지나며 사그라들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들며 중국이 미국에 경제적 위협이 되자, 다양한 인종 차별과 함께 다시 부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팽배한 혐오 감정은 아시아인을 향한 폭력 범죄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인은 오히려 일본 제국에 식민 지배 피해를 당한 입장이었지만, 오로지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인종주의의 앞에서는 도매금으로 혐오를 당했다. 어차피 혐오의 주체들은 고의로 거친 일반화를 한다. 중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백인이 아닌 아시아인이라면 차별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경우 6.25 전쟁 등 역사적 맥락에 따라 추가된 편견도 있었다. 타자화(Othering), 특히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옐로 피버’ 따위의 페티시즘, ‘모델 마이너리티’ 신화 등이 대표적이다. 동북아시아 출신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인도 아대륙, 서남아시아, 퍼시픽 아일랜더 등도 비슷하거나 저마다 또 다른 맥락이 추가된 혐오를 겪고 있다. 이 글에서 하나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2021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아시아인 차별 역시 옐로 페릴의 관점에서 이해할 만한 부분이 있다. 국가 간 무역 갈등이나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인종차별로 이어질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혐오 감정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아시아인, 그중에도 여성이나 노인 같은 약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를 부추겼다. 길거리에서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별안간 욕설을 듣거나 폭행을 당하는 일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더 이상은 동족들의 고통을 좌시할 수 없었던 재미 아시아인들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StopAAPIHate 운동은 이런 배경 속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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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있었던 바이에른3 차별 발언 사건은 그 혐오의 방식이나 강도에 있어서 예전부터 방탄소년단이 겪었던 차별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뒤따른 각계의 반응은 예년과는 또 달랐다. 팬덤 아미만이 사과 요구를 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방탄소년단과 협업했던 할시(Halsey), 스티브 아오키(Steve Aoki) 등 미국의 유명 가수나 작곡가들이 직접 나서서 DJ의 인종차별을 비판했다. 컬럼비아 레코드, 소니 뮤직, 그래미상을 개최하는 레코딩 아카데미 등 음악 산업 유수의 플레이어들도 (방탄소년단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StopAAPIHate 해시태그를 이용해 비슷한 시기에 지지 성명을 올렸다. 방탄소년단의 위상이 높아진 탓도 있을 것이고, 미국 사회가 작년과 올해 #BlackLivesMatter 운동과 #StopAAPIHate 운동을 겪으며 인종적 소수자 인권 의식을 재고하기 시작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작업으로 인연이 된 아티스트들이 연대를 보내는 모습은, 방탄소년단이 단지 상업적으로만 성공했을 뿐 아니라 낯선 땅에서 호혜적인 인간관계를 쌓으며 착실히 연대를 모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해당 사태를 다루기에 소극적이었던 ‘빌보드’지 등의 언론도 흐름이 이렇게 되자 기사를 내놓았다.

 

그리고 4월 10일. 칠레의 메가TV에서 방탄소년단을 소재로 한 인종차별 코미디를 방송했다. 칠레를 비롯해 전 세계 아미는 SNS를 통해 이를 고발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판에 박힌 혐오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지칠 법도 했지만, 아미는 한결 같이 대응했다. 흥미로운 점은 ‘뉴욕타임스’ 등 메이저 언론이 해당 사건이 미국에서 화제가 된 12일에 즉시 기사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전 세계 유력 매체들이 주목하자, 방송사는 빠르게 사과문을 올렸다.

 

이처럼 방탄소년단, 더 나아가 아시아인 전체를 향한 인종차별 혐오가 계속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반응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이번 칠레 방송 인종차별 코미디 사건은 방탄소년단이 #StopAAPIHate 입장문을 내놓은 후 처음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전까지도 방탄소년단은 유명 인사였고 이들이 당한 차별은 충분히 뉴스로 다룰 만했다. 그럼에도 서구 언론은 적극적인 보도를 꺼렸다. 국내 언론도 큰 관심이 없었다. 서구 언론이 언급을 피한 것은 전형적인 ‘모델 마이너리티’ 차별로 보인다. 동북아시아계나 인도계 등은 교육열이 높은 탓에 성공하거나 계층 상승을 이뤄낸 사람이 많기 때문에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오해다. 차별 당한 경험을 부정(Invalidation)하는 종류의, 아시아인들이 특히 많이 겪는 미세 차별이다. 그러나 입장문을 발표한 뒤로 방탄소년단은 단순한 아시아계 유명 인사가 아닌, 아시아인 정체성을 인식하는 당사자 그리고 사회적인 목소리를 가진 #StopAAPIHate 운동의 참여자가 되었다. 언론의 빠른 대응은 중요한 사회문제의 주요 인사가 된 방탄소년단을 조명하기 위함일 것이다.

 

방탄소년단 차별을 둘러싼 반응 속도가 빨라졌다 해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의 아시아인 인권 의식에 진전이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짧아진 간격 역시 거저 얻은 결과는 아님에 주목하고 싶다. 방탄소년단의 팬 아미가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며 집요하게 이슈 파이팅을 한 것, 방탄소년단과 그 동료들이 침묵하지 않기를 결정했던 것 등이 모여 일으킨 변화다. 작은 발걸음이지만 전에 비해서는 진보라 보고 싶은 마음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달 아시아인 증오 범죄 방지법, 일명 코로나 19 혐오 범죄법이 통과 되었다. 5월 20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법안에 서명하며 “침묵은 공모입니다(Silence is complicity)”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시아인 혐오 범죄는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며칠 전인 6월 14일 LA 인근에서 아시아인 여성이 길거리 폭행을 당하는 일이 또 일어났다. 법안이 통과된 뒤에도 혐오는 당장에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보하는 듯하다가도 동시에 강한 백래시가 일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혼란스럽지만 똑바로 직시하는 수밖에는 없다.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의 4월 5일 자 표지가 화제였다. 일러스트 속 아시아인 모녀는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어머니는 시계를 찬 손목을 들고 있다. 지연된 열차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다. 지하철역이라는 일상적 공간에도 혐오 범죄 위험에 노출되는 아시아인 약자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들이 약하게 묘사되지 않음이 인상적이다. 표지를 그린 작가 R. 키쿠오 존슨은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지나치게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으로 묘사되길 원했다.”고 밝혔다. 작품에는 ‘Delayed(지체된)’라는 제목이 붙었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속담에서 따온 것 같다.

 

아시아인 인권 존중과 평등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정의다. 사회의 변화는 느리기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지금 당장 정의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시아인의 얼굴을 한 존재 방탄소년단 역시 여기에 작거나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인종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며 ‘함께하겠’다고 끝맺음했다. 지리한 싸움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연대에서 온다. 바라는 세상이 더 늦지 않게 오기를 바라본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을 비롯한 아시아인 혐오 범죄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의 안식을 빈다.

글.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평론가)
사진 출처. 방탄소년단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