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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이픈, 도망친 곳이 낙원이 되기까지
엔하이픈 새 앨범 ‘THE SIN : BLISS’ 리뷰
Credit
정다나
사진 출처빌리프랩

도망쳐 도착한 곳에도 낙원은 존재할 수 있을까. 엔하이픈의 새 앨범 ‘THE SIN : BLISS’의 트레일러 영상 ‘‘THE SIN : BLISS’ Trailer vol.1 Film’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 영상은 여섯 멤버가 사랑하는 상대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평온한 일상과 그 일상이 파괴되고 부서진 뒤의 폐허를 교차해 보여준다. 연인의 목에는 추적기가 달렸고, 갑작스레 날아오는 총알처럼 추격은 예상할 수 없는 순간에 닥친다. 그들에게 행복이란 카메라가 자주 비추는 민들레 홀씨처럼 언제든 흩어질 듯 위태롭다. ‘THE SIN : BLISS’의 첫 트랙 ‘Two Fools’에서 엔하이픈은 “그 어떤 것도 우릴 끊어내지 못”한다고 선언하며 “이런 사랑에 어떻게 끝이 있겠”냐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내레이션 트랙 ‘속보’에서 “금기를 깨고 도주한 혐의”로 규정된다. 누군가에게는 끝까지 지키고 싶은 행복이 외부의 시선에서는 죄악이 되는 것이다. 트레일러 영상에서 니키가 민들레를 들고 있는 마지막 장면에는 ‘When the sun rises will we finally lose each other?’라는 문구가 뜬다. 밤과 새벽의 경계를 가르는 태양이 떠오르는 동안, 도피 중인 그들 역시 희망과 비극 사이의 경계선에 놓이게 된다.

불멸자인 뱀파이어로서 필멸자인 인간을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고민은 엔하이픈의 서사에서 꾸준히 존재해온 딜레마였다. ‘DESIRE : UNLEASH’의 타이틀 곡 ‘Bad Desire (With or Without You)’에서 노래한 “영겁 같은 시간을 함께할 저주”는 다음 앨범인 ‘THE SIN : VANISH’의 콘셉트 필름 ‘Chapter.1 ‘No Way Back’’에서 뱀파이어가 연인의 목을 물려다 발각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THE SIN : BLISS’에서도 그 딜레마는 끝나지 않는다. ‘Stuck’에서 엔하이픈은 “이제야 네게 위험한 존재는 이 세상이 아닌 나란 걸 알아”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동시에 ‘Bad For You’에서 “아무리 서로를 다치고 아프게 해도 너인걸”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사랑하는 상대를 놓아버릴 수 없는 마음 또한 드러낸다. 그리고 그 고민은 ‘THE SIN : BLISS’에서 맞잡은 두 손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된다. ‘Two Fools’에서 엔하이픈은 “영원을 믿게 한 네 손의 온기 / 벅차게 잡은 두 손”이라 노래하고, ‘Stuck’에서는 “욕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네 손을 어떻게 놔”라고 자문한다. 그러나 타이틀 곡 ‘Bloody Paradise’에 이르러 “손잡고 어디로 더 이상 고민 없어”라고 단언하기에 이른다. 자신의 존재가 사랑하는 이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내면의 고뇌는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장 절정의 위기에 처한 ‘THE SIN : BLISS’에 이르러, 뱀파이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위험을 감수하며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그 자체를 더없는 행복(‘Bliss’)으로 받아들인다.

내레이션 트랙 ‘사랑의 잔해’는 “연인의 행복은 가장 높은 곳에서 전조도 없이 추락하고 말았습니다”라며 엔하이픈의 서사를 비극으로 정의한다. “바닥에 떨어진 와인잔과 부서진 LP”는 ‘‘THE SIN : BLISS’ Trailer vol.1 Film’에서 폐허가 된 장면들을 연상시키고, “툭 끊겨버린 음악처럼 한순간 끝나버린 그들만의 축제”라는 표현은 그들의 사랑이 종말을 맞이한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앨범에서 이어지는 바로 다음 트랙인 ‘Bloody Paradise’는 “사랑은 permanent”라며 외부의 시선을 전복시킨다. 브라질리언 펑크의 빠르게 반복되는 리듬과 거칠게 파열되는 킥은 쫓기는 이들의 긴박함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몸을 움직이게 하는 그루브를 만들어낸다. 처한 상황의 위험을 표현하는 리듬이 동시에 춤의 동력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퍼포먼스에서도 멤버들은 동작의 각을 만들기보다 몸통과 어깨, 골반을 연결하고 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유연하고 자유롭게 움직인다. 2분 남짓한 구성으로 이뤄진 ‘Bloody Paradise’는, 곡 전반의 흥겨움을 길게 확장하기보다 짧고 강렬하게 마무리한다. 이런 구성은 “해 뜰 때까지” 찰나의 흥겨운 춤을 이어가겠다는 해방감을 표현한 가사의 반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의 잔해’의 내레이션이 “급히 몸을 숨기려 한 듯 마구 뒤엉킨 발자국”을 도주의 흔적으로 바라보는 반면, ‘Bloody Paradise’는 이를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춤의 흔적으로 다시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 수록 곡 ‘Highlight’가 “세상 누군가 우릴 무모한 불행이라 써도 It’s our highlight”라 노래하듯, ‘THE SIN : BLISS’는 세상의 규정을 당사자의 시선에서 낙원으로 재정의하는 서사라 할 수 있다.

‘Bloody Paradise’의 뮤직비디오는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THE SIN : BLISS’ Trailer vol.1 Film’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연인에게 서로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반면, ‘Bloody Paradise’에서 엔하이픈은 그 태양 아래를 자유롭게 누빈다. 교도소에서 다른 죄수들 사이를 가로질러 혼자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제이크는 한국에서 출소한 사람에게 건네는 음식을 떠올리게 하는 두부를 먹는다. 니키가 직접 벽을 부수자 무너져내린 자리에는 광활한 바닷가가 펼쳐진다. 밖으로 나온 멤버들은 햇빛을 받으며 자신들을 구속했던 수갑으로 서로에게 장난을 치고, 밤거리를 달리거나 군중에게 헹가래를 받으며 축제의 절정을 즐긴다. 그러나 뮤직비디오는 이 모든 해방의 순간을 보여준 뒤 다시 교도소로 돌아와 카메라를 응시하는 여섯 멤버의 모습으로 끝난다. 그들이 정말 탈출했다 돌아온 것인, 혹은 바깥에서의 순간들이 상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더 이상 떠오르는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을 구속했던 수갑마저 유희의 대상으로 바꾸는 엔하이픈에게 낙원은 도피 끝에 도착하는 물리적 공간이라기보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상태에 가깝다.

‘Two Fools’는 컨트리 팝 록의 경쾌한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코러스 파트에서 마치 멀리서 들려오듯 여러 목소리가 “Woah oh oh oh”로 겹쳐지는 구간을 제외하면 엔하이픈 멤버들의 감정은 좀처럼 크게 터져 나오지 않는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서정적인 트랙이라 할 수 있는 ‘Bad For You’ 역시 강하게 내지르는 진성과 부드러운 가성을 오가는 보컬로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한다. 좀처럼 고음으로 치닫지 않고 하강을 반복하는 멜로디는 “억지로 감춰도 신경 쓰여 미치겠어”처럼 매우 강렬하지만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기 어려운 복잡한 상태를 구현한다. 앨범 전반에서 가장 희망적인 정서를 전달하는 ‘Highlight’에서도 멤버들의 보컬은 벅차오르는 후렴의 멜로디와 달리 기교를 절제하고 최대한 간결하게 감정을 표현한다. “명장면이 돼 우린 매 순간 Timeless”처럼 지금까지의 서사를 새롭게 정의하는 가사는 무심한 듯 말하듯 내뱉는 랩으로, “세상 누군가 우릴 무모한 불행이라 써도 It’s our highlight”라는 선언은 기교를 덜어낸 담백한 가창으로 전달된다. 이처럼 ‘THE SIN : BLISS’는 ‘Two Fools’의 위태로운 행복에서 ‘Bad For You’의 내적 갈등을 지나 ‘Highlight’의 확신에 이르기까지의 감정적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기보다 오히려 절제한다. 어쩌면 ‘THE SIN : BLISS’에서 정의하는 행복이란 감정이 최고조로 폭발하는 일시적인 순간이라기보다, 불안과 위험을 모두 통과한 뒤에도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행복이라 부를 수 있게 된 확신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뱀파이어 도피 사건을 보도하는 ‘미스터리 쇼’ 형식으로 구성된 ‘THE SIN : VANISH’와 ‘THE SIN : BLISS’ 두 장의 앨범은 내레이션 트랙들을 통한 세상의 시선과 엔하이픈이 노래하는 당사자의 서사를 교차시키며 전개됐다. 그리고 그 끝은 ‘THE SIN : BLISS’의 마지막 트랙인 내레이션 ‘가려진 진실’에서 “금기를 깨뜨리려던 한 연인은 이제 그들 자신이 금기가 되었습니다”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뱀파이어 추격대는 더 이상 그들을 추적하지 않고, 연인의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한 적 없었다는 듯이” 지워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들이 세상의 기록에서 사라지는 순간, 그들의 삶을 죄악이나 파멸로 규정해온 외부의 시선 역시 더 이상 그들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 결국 ‘THE SIN : BLISS’가 그리는 낙원은 위험이 사라진 안전한 장소도, 누구에게나 축복받는 사랑의 결말도 아니다. 지금까지 엔하이픈의 서사가 그랬듯 사랑하는 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딜레마는 여전히 남아 있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태양도 다시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엔하이픈은 그 안에서 놓아야 할 손을 다시 잡고, 도주의 발걸음을 춤으로 바꾸며, 세상이 “무모한 불행”이라 기록할 삶을 자신들의 “Highlight”라고 부른다. 그들이 도망쳐 도착한 곳을 낙원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낙원이란 마침내 안전한 곳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현실 속에서도 세상이 죄악(‘Sin’)이라 부르는 자신의 사랑과 선택을 스스로 더없는 행복(‘Bliss’)이라 정의할 수 있는 상태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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