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울에서 확장되는 NCT 127의 반경
NCT 127을 존재하게 하는 좌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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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대중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출처SM엔터테인먼트

정체성에는 하나의 장소가 좌표처럼 남곤 한다. 태어난 곳, 성장한 곳, 가장 오래 머문 곳, 혹은 기억에 가장 깊이 남은 곳 같은. 각자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어떤 장소는 때때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데에 딱 맞는 기준점이 된다. NCT 127에게 그 기준점은 서울이다. NCT 127은 NCT 중 지역을 거점으로 삼는다는 구상을 가장 먼저 구체화한 팀이었다. 서울의 경도, 127에서 따온 그룹명을 달고 NCT의 첫 지역 기반팀으로 데뷔한 그들은 흥미롭게도 지난 10년간 누구보다 멀리 움직여 왔다. 서울을 기반으로 삼되 미주와 유럽, 아시아의 무대를 오가며 그룹의 영향력을 확장해 나간 것이다.

동시에 실험적이고 비정형적인 음악 구성과 퍼포먼스를 앞세우며 ‘네오스러움’의 정수를 구축했다. 그것은 서울이라는 도시와도 닮아 있었다. 다채로운 네온사인이 뿜어내는 화려한 빛, 과거의 흔적과 미래적 요소가 중첩된 미학, 서로 다른 시간과 질감의 병치, 높은 밀도 같은 것들. 서울을 이루는 빛과 소음, 속도와 밀도는 다른 도시에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서울이 겪어온 시간과 그 시간으로 켜켜이 쌓아온 층위, 그 모든 것이 뒤엉켜 만들어낸 감각은 다른 도시로 치환되지 않는다. NCT 127의 ‘네오스러움’도 마찬가지다. 낯선 사운드와 비정형적인 구성은 하나의 장르적 장치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되어온, 쉽게 대체될 수 없는 고유의 문법이 됐다. 그렇게 서울이라는 출발점은 이들이 어디까지 이동했는지 가늠하게 하는 기준점이자, 끝내 지워지지 않는 정체성의 코어가 된다.

10년이 흐른 지금, NCT의 무한 확장 체제는 종료됐고 NCT 127을 이루는 멤버 구성 역시 변화를 겪었다. 이 시점에서 이들이 정규 7집 ‘BLINGY’에서 전면에 내세운 것은 새로운 세계나 새로운 도시가 아니다. 그들의 정체성이자 시작점, 서울이다.

They call it NEO-standard
‘BLINGY’ 속 음악은 이전의 NCT 127만큼 실험적이지 않다. 장르의 폭이 좁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익숙한 장르 요소들을 끌어와 10년 동안 구축해온 자신들의 문법 안에서 다시 배열한다. 새로운 규칙을 세우기보다 지난 10년간 자신들이 만들어온 규칙을 재확인하는 셈이다. 결국 이 앨범이 던지는 질문은 새로움보다 정체성에 가깝다. ‘무엇이 127다운가?’ 그리고 NCT 127은 그 질문에 음악으로 답한다.

NCT 127 음악의 중심엔 늘 힙합이 있었다. 그 위에 EDM, 왜곡된 신스와 베이스, 때로는 비정형적인 질감을 포개며 자신들만의 거칠고 밀집된 사운드를 만들어왔다. 또는 1990년대 힙합 그루브 위에 날카로운 전자음을 얹는 방식으로 과거의 음악적 어휘에 미래적인 프로덕션을 병치하기도 했다. 비정형적인 리듬의 충돌을 조형하며 서로 다른 시간대를 하나의 현재로 만드는 것이다.

타이틀 곡 ‘Blingy’는 레이지와 덥스텝을, ‘Step Up’은 1990년대 올드스쿨 힙합을. ‘Day After Day’는 하이퍼 트랩과 저지 클럽을 끌어온다. ‘Piñata’는 록과 힙합을 넘나들고, ‘Getaway’와 ‘127 Million Miles’는 각각 인디 팝과 팝 록으로, 들끓는 앨범의 온도를 전체적으로 한 뼘 낮춘다. 서로 다른 시대에 형성된 장르가 한 앨범 안에서 동시에 현재형으로 작동한다. 재미있는 점은, 1990년대 힙합과 레트로 신스, 덥스텝과 레이지, 하이퍼 트랩과 저지 클럽이 한 앨범 안에서 하나를 이루는 모습이 과거와 미래의 풍경을 한 화면 안에서 목격할 수 있는 서울과 닮았다는 것이다.

이 유사성은 그들이 부르는 노랫말로 좀 더 명확해진다.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곡은 ‘Legacy’다. 서울의 ‘한강’, ‘남산’, ‘한강대로’를 호출하며 서울의 풍경을 그리고, 도시의 빛을 묘사하는 색은 바로 서울의 야경과 NCT의 상징색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Neon flash”, “초록빛”이다. “초록빛을 따라 남산 위는 밝아”지고, “한강대로 위로 Green light”가 가득하다. “발자국을 따라 빛이 되는 Future”라는 노랫말처럼 서울이라는 도시는 단순히 그들이 탄생한 배경이 아니라, 그들의 시간이 축적되어온 장소이자 앞으로의 흔적까지 덧입혀질 공간에 가깝다.

확장의 역학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들이 서울을 호명하며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들이 한 점으로 수렴한다는 뜻은 아니다. ‘BLINGY’는 명확하게 그들의 확장을 강조한다. 그러나 방식이 달라졌다. 이전에 내세운 무한 확장의 증식이 아닌, 전파의 방식이다. 서울을 본거지로 삼는다는 걸 강조하면서도 자신들의 좌표를 “온 세상에 새겨”놓을 거라는 ‘Legacy’나 지나온 모든 순간과 모습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고 긍정하면서, 그 모든 순간들이 현재의 울림으로 이어진다고 노래하는 ‘Day After Day’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그 정체성이 닿는 범위를 계속해서 넓혀 간다.

그 확장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네 목소린 작은 불씨”(‘Blingy’)라고 상대의 목소리를 빛의 시작점으로 삼는 것은 물론이고, “Say my name 더 크게”(‘Piñata’) 또는 “밤이 울려 퍼지게 크게 소리를 질러봐”(‘Step Up’)처럼 끊임없이 듣는 이의 반응을 끌어낸다. NCT 127이 먼저 소리와 에너지를 내보내면, 이를 받고 다시 돌려주는 목소리와 빛이 그 움직임을 더 크게 만드는 식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좌표에서 발생한 반응은 물리적 거리를 넘어 “초록빛에 물든 세상”(‘127 Million Miles’)을 만든다.

그러니까 이 확장의 역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팬덤이다. 서울이라는 고정된 좌표에서 시작된 소리와 기억은 세계 곳곳의 팬들을 따라 이동하고,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다시 불리고 재생되며 NCT 127의 반경을 넓힌다. 노래를 따라 부르고, 무대를 기억하고, 각자의 언어와 방식으로 경험을 공유하면서 NCT 127의 흔적을 다른 좌표에 다시 남기는 팬들이 있기에 NCT 127은 비로소 확장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서울이라는 원점이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전 세계에서 같은 이름과 음악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그들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더욱 선명해진다. 서울에서 시작된 하나의 목소리는 수많은 응답을 거쳐 각자의 장소에서 새로운 기억으로 남겨지고, 그렇게 흩어진 기억들은 다시 NCT 127이라는 하나의 좌표를 향한다.

10년이라는 시간만큼 그룹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이 변했다. ‘BLINGY’는 그간 NCT 127이 얼마나 멀리 왔고,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자랑하고자 하는 앨범이 아니다.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무엇이 NCT 127을 NCT 127로 존재하게 하는지 확인하는 앨범이다. 10년이 지나도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남아 있는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내일을 기약하게 하는가. 무엇이 NCT 127을 존재하게 하는가. 그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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