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에서 힙합은 한동안 가장 쉽게 빌려 쓸 수 있는 음악적 자원이었다. 특히 힙합은 전 세계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장르 중 하나가 되면서 K-팝은 힙합을 적극적으로 흡수했고, 그 과정에서 이는 일부 아이돌 음악의 중요한 표현 방식이 되기도 했다. 트렌디한 808 드럼, 낮게 깔리는 베이스, 강렬하게 뱉어지는 랩, 그리고 실력과 성취로 답하겠다는 서사까지 더하면 제법 그럴 듯한 힙합 콘셉트가 완성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늘 미묘한 간극이 있었다. 그저 힙합의 비트와 랩을 가져오는 것과 이미 존재하는 음악에서 자신이 필요한 요소를 골라 새로운 맥락에 배치하고, 자신의 경험과 주변에서 발견한 것을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방식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전자가 힙합의 음악적 요소를 가져다 쓰는 것이라면, 후자는 기존의 것을 자기 방식으로 다시 해석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창작 방식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CORTIS는 독특한 위치에 놓인다. 바로 그 경계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CORTIS의 음악에서 힙합은 매우 중요한 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CORTIS에게 힙합은 그룹의 정체성을 고정하는 장르라기보다 다양한 음악적 재료를 선택하고 조합하는 창작 방식에 더 가까워 보인다. 예컨대 데뷔 EP ‘COLOR OUTSIDE THE LINES’에서 ‘GO!’는 트랩을 바탕으로 강한 추진력을 만들어내고, ‘What You Want’는 붐뱁 비트 위로 사이키델릭 록 기타를 결합해 랩록의 영역까지 껴안는다. 그런가 하면 ‘FaSHioN’에서는 트랩을 비롯한 서던 힙합의 질감을 끌어오면서 자신들의 생활 방식과 취향을 풀어냈다.
사실 장르를 섞는 일 자체는 오늘날 K-팝에서도 흔한 방식이다. 여러 장르를 한 곡 안에 결합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멤버가 직접 작사·작곡에 참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자체 제작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만으로는 그들이 어떤 음악을 만들고,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CORTIS의 경우는 한 단계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힙합이라는 장르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자신들의 생활과 취향, 관계와 고민을 음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래서 ‘What You Want’에 붐뱁이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보다 붐뱁이 CORTIS의 다른 요소들과 어떻게 만나는가가 더 중요하다. 이때 붐뱁은 재현해야 할 특정 시대의 스타일이 아니라 새로운 곡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재료가 되는 셈이다.
바로 여기서 CORTIS와 기존의 ‘힙합 콘셉트’ K-팝 사이에 차이가 생긴다. 힙합을 콘셉트로 내세운 K-팝이 힙합을 아이돌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면, CORTIS는 같은 산업 안에서 그 역할을 조금 다르게 가져간다. 힙합을 콘셉트로 소비하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한 창작의 과정에 직접 들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CORTIS와 힙합의 관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곡 가운데 하나가 바로 ‘MOTION (feat. Juicy J)’이다. 이 곡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쥬시 J(Juicy J)의 이름이다. 남부 힙합을 대표하는 그룹 중 하나인 쓰리 식스 마피아(Three 6 Mafia)의 핵심 멤버이자 멤피스 힙합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쥬시 J와 K-팝 그룹의 협업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하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가 현재의 트렌드보다 남부 힙합의 뿌리에 더욱 가까운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쥬시 J는 1990년대 초반부터 쓰리 식스 마피아의 중심에서 멤피스 랩 특유의 어둡고 반복적인 스타일을 구축했고, 이는 이후 트랩을 비롯한 남부 힙합의 흐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 점에서 그의 참여는 단순히 유명한 해외 래퍼와 협업했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CORTIS가 자신들에게 영향을 준 음악을 거슬러 올라가 그 출발점에 가까운 인물과 직접 만나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CORTIS와 쥬시 J의 인연은 ‘MOTION’을 계기로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두 아티스트는 CORTIS가 데뷔하기 전부터 음악적으로 교류해왔고,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음악을 이해하며 관계를 쌓아왔다. 결국 ‘MOTION’은 유명 래퍼의 이름을 빌려 장르적 권위를 더한 협업이라기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음악인과 직접 관계를 맺고, 그 경험을 음악으로 다시 풀어낸 결과물에 가깝다.
CORTIS가 쥬시 J와의 작업을 통해 멤피스 랩을 그대로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들에게 과거의 사운드는 복원해야 할 유산이 아니라 현재 음악 안에서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재료인 셈이다. 그래서 ‘MOTION’은 쥬시 J의 참여 자체보다 그의 음악적 유산이 CORTIS의 현재 음악과 만나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살피는 재미가 있다.

최근 공개된 신곡 ‘PACK IT UP’과 ‘MONEYMONEYMONEY’는 CORTIS의 창작 방식을 더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두 곡의 출발점은 거창한 기획보다 멤버들이 실제로 겪은 상황과 생각에 가깝다. 특히 ‘PACK IT UP’은 해외 일정을 앞두고 숙소에서 짐을 싸던 멤버들이 장난처럼 주고받은 프리스타일에서 시작됐다. 한 사람이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던지면 다른 멤버가 비트와 멜로디, 가사를 더했고, 그렇게 가벼운 놀이처럼 시작한 작업이 하나의 곡으로 발전했다.
창작이 반드시 정해진 작업실이나 계획된 세션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다. 눈앞에서 벌어진 사소한 일도 얼마든지 곡의 재료가 될 수 있다. ‘PACK IT UP’에서는 짐을 싸는 평범한 순간이 멤버들의 즉흥적인 놀이를 거쳐 실제 음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방식은 힙합에서도 익숙하다. 거리에서 들은 소리, 친구들과 나눈 대화, 일상에서 마주친 장면과 즉흥적으로 떠오른 한마디가 음악의 출발점이 되어왔다. 특별한 것을 찾아 나서기보다 자신의 주변에서 음악이 될 만한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그런가 하면, ‘MONEYMONEYMONEY’에서는 조금 다른 면을 엿볼 수 있다. 이 곡이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돈과 성공,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욕망을 직선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힙합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소재다. CORTIS 역시 이 익숙한 영역에서 굳이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 힙합에서 흔히 다뤄온 소재도 자연스럽게 가져온다.

여기에 파리 패션위크에서의 경험처럼 실제 활동에서 비롯된 구체적인 요소를 더하며(“패션위크 파리때 / 업어온 명품백 / 공항서 관세 떼 / 너무너무 놀랐네”), 오래된 힙합의 소재가 자연스럽게 ‘현재의 CORTIS’라는 맥락 안에 놓인다. 그런 점에서 ‘MONEYMONEYMONEY’는 CORTIS가 힙합에서 익숙하게 다뤄온 소재까지도 자신의 음악 안에서 거리낌 없이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곡이다. 이런 솔직함은 중요하다. 모든 곡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거나 독창성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어떤 곡은 단순히 재미있고 또 어떤 곡은 오래된 욕망을 그대로 노래할 수도 있다. 그 선택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CORTIS의 음악적 자유는 거창한 선언보다 이런 자연스러운 선택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CORTIS 역시 거대한 K-팝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진 그룹이다. 따라서 이들의 창작이 산업의 구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시스템 안에서 멤버들의 창작 참여를 팀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히 주목할 만하다. 물론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팀이기에 지금의 작업 방식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적인 작가성으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또한 멤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지속적인 음악적 성취로 이어질지는 앞으로의 활동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행보에서 적어도 하나의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CORTIS는 힙합을 그저 ‘힙해 보이기 위한 음악’이나 ‘트렌디한 음악’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힙합은 하나의 사운드인 동시에 이미 존재하는 음악에서 필요한 재료를 골라 자신의 방식으로 조합하고, 그들이 실제로 겪은 현실과 생각을 음악으로 옮기는 창작의 참고점에 가깝다. 그래서 ‘영 크리에이터 크루’ CORTIS의 음악을 두고 “얼마나 힙합다운가?”를 묻는 것은 어쩌면 적절한 질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이 듣고 경험한 것을 얼마나 자신의 음악으로 바꿔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그동안 힙합을 입은 K-팝 그룹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힙합에서 받은 영향을 자신의 음악으로 풀어내려는 모습이 엿보이는 팀은 드물다. 지금 CORTIS를 주목할 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져왔는가가 아니라 그것을 무엇으로 바꿔냈는가다. CORTIS의 음악이 앞으로 그 질문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어떤 답을 내놓을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분명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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