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당신을 T-팝의 세계로 안내하는 여섯 개의 입구
제프 사투르부터 pami까지, T-팝의 다채로운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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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백설희(작가, 칼럼니스트)
사진 출처JUICEY

블랙핑크의 리사, 아이들의 민니, 키스오브라이프의 나띠, NCT의 텐, 더 올라가 GOT7의 뱀뱀 그리고 2PM의 닉쿤에 이르기까지. 이 여섯 명에게는 K-팝 시장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 태국인 멤버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K-팝 그룹에 태국인 멤버가 소속돼 있는 모습은 언제부턴가 특별한 광경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고향인 태국 또한 음악 시장이 매우 발달한 국가라는 사실은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T-팝’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태국 팝 음악 시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태국 최대 음악 기업 GMM 뮤직이 2024년 8월에 발표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워너뮤직 아시아의 전략적 투자로 회사의 기업 가치는 250억 바트(약 1조 원)를 넘어섰으며, GMM 뮤직 2023년 매출 실적은 전년 대비 27%가 증가한 39억 1,400만 바트(약 1,590억 원)를 달성했다. CEO인 파윗 치트라꼰의 ‘동남아시아 최대 음악 시장’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

1990년대부터 꾸준히 성장해온 T-팝 시장은 2007년 태국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RS 그룹이 틴팝 레이블을 통해 태국식 아이돌 모델을 처음 체계화하고, 2017년 AKB48의 자매 그룹인 BNK48이 대대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020년대부터 T-팝은 K-팝의 시스템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특유의 리듬감이나 분위기를 적극 살린 그룹들이 잇달아 데뷔하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지금부터 소개할 6팀의 아티스트들을 통해 T-팝만이 지닌 대체 불가능한 매력에 빠져보자. 아마 예상치 못할 만큼 풍부한 문화적 층위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제프 사투르(Jeff Satur)
2022년 방영했던 태국의 BL 드라마 시리즈 ‘킨 포르쉐’에서 주인공 ‘킨’의 막냇동생 ‘킴’ 역할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제프 사투르는 2013년에 데뷔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가수이자 배우 겸 프로듀서다. 그의 이름이 낯설 순 있겠지만 숏폼 등을 통해 대표 곡 ‘Dum Dum’이나 피처링으로 참여한 뱀뱀의 솔로 곡 ‘More Than Friend’를 들어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제프 사투르는 음악과 연기, 예능 등에서 전방위적 활약을 펼치고 있는 아티스트로서, 데뷔 앨범 ‘Space Shuttle No. 8’은 스포티파이에서 2억 회 이상의 스트리밍을 기록했고, 2024년 태국 ‘스포티파이 랩드 라이브 어워즈(Spotify Wrapped Live Awards)’에서 ‘올해의 베스트 앨범’ 상을 받았다. 2025년 방콕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파이널 무대의 오프닝 공연을 담당했고, ‘Red Giant’ 월드 투어에서 매 공연을 매진시켰다. 지난 2026년 3월에는 LA 그래미 뮤지엄에서 공연한 최초의 태국 아티스트가 되기까지 했다. 슬립낫, X-JAPAN, 머라이어 캐리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자라온 제프는 1980년대 R&B의 색채를 깊게 띠고 있으면서도 로킹하고 묵직한 박자감이 돋보이는 곡들을 발표하며 직접 트렌드를 선도하는 중이다.

우리가 제프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장르를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임하는 장르가 동성 결혼 합법화를 다루는 퀴어 영화든, 마구 뛰어다녀야 하는 예능이든, T-팝을 대표하는 무대든, 그곳에서 항상 최상의 퍼포먼스를 뽑아낸다. 이것이 제프 사투르가 T-팝에서 유일무이한 아티스트로 우뚝 서게 된 이유일 것이다.

PiXXiE
2021년 데뷔한 PiXXiE는 핌마, 마벨, 잉꼬 3인조로 구성된 걸그룹이다.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TOTY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신인 아티스트 후보에 오르는 등 꽤 주목을 받았으며, 지금 태국 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걸그룹 중 하나다. 데뷔 곡인 ‘DED’는 상큼함을 전면으로 내세웠지만, 활동을 계속하면서 다양한 콘셉트에 도전해오고 있다. 그중에서 미디엄 템포의 복고풍 멜로디가 돋보이는 ‘rain’은 귀엽고 감성적인 가사가 대중의 호응을 얻어 ‘카즈 어워즈 2024(KAZZ AWARDS 2024)’에서 ‘올해의 가장 인기 있는 노래(Hottest Song Of The Year)’를 수상하기도 했다.

PiXXiE의 강점은 곡에 맞춰 의상과 안무를 함께 설계하는 그룹이란 것이다. 본격적으로 댄스 퍼포먼스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FEAT’에서는 허리춤에 장식한 천을 이용한 안무를 선보이기도 했고, 최근 ‘몬스터 뮤직 페스티벌 2026(Monster Music Festival 2026)’에서 선보인 ‘Shake!’의 퍼포먼스 역시 멤버 마벨이 입은 롱스커트가 퍼포먼스와 어우러지며 알고리즘을 통해 바이럴을 탔다. 지난 6월 ‘2026 싸왓디 서울 타이 페스티벌’에 참가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PiXXiE는 점차 한국 내 인지도를 넓혀가는 중이다.

이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이번에 발매한 앨범 ‘DUST’의 타이틀곡인 ‘DUSTY’와 ‘TOXIQUE’, 그리고 ‘DEJAYOU’를 들어보자. 지난 8월 ‘섬머 소닉 2026’ 무대에 올랐던 여정을 다룬 자체 다큐멘터리도 참고해 보면 좋다.

BADMIXY
BADMIXY는 유튜브 ‘HIWWHEE’에서 ‘믹시’로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본인들을 카토이(kathoey, 태국에서 트랜스 여성과 여성적 젠더 표현을 하는 이들을 아우르는 말)라고 지칭하는 유튜버들의 채널인 ‘HIWWHEE’는 태국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대중 앞으로 끌어냈다. ‘HIWWHEE’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믹시는 아티스트로서 발돋움하기 위해 ‘배드믹시(BADMIXY)’로 예명을 바꿨다.

계기는 2023년에 발매한 ‘B Blood Type’이라는 곡이었다. BADMIXY가 작사·작곡하고 같은 ‘HIWWHEE’의 크루인 CHRRISSA가 부른 이 노래는 발매 8일 만에 태국 스포티파이 톱 50 차트에서 7위에 오르고 태국 아이튠즈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에 본인의 음악적 재능에 확신을 갖게 된 BADMIXY는 그해에 앨범 ‘Bad Story’를 발매하며 본격적으로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수록 곡 중 ‘DILF’는 발매 6일 만에 유튜브 뮤비 조회 수가 300만 뷰를 넘겼고, 태국 애플뮤직 차트와 태국 아이튠즈 차트에서 각각 1위를 달성했다.

2024년부터 BADMIXY는 자신의 본명 Wanchaloem에서 따온 레이블 원러브(WANLOVE)를 설립하는 등 LGBTQ+ 아티스트 발굴에 좀 더 힘을 쏟고 있다. 4월부터 시작한 1기 연습생 모집에는 1만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고, 2025년 4월에는 드디어 첫 소속 아티스트 ‘This City’가 데뷔했다. 자기 정체성을 숨기지 않은 채널에서 출발한 이가 이제 같은 정체성을 지닌 후배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고 있는 만큼, BADMIXY가 그려낼 T-팝의 새로운 미래가 궁금해진다.

BUS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789서바이벌(789SURVIVAL)’에서 시작해 어느덧 태국을 대표하는 보이그룹으로 우뚝 선 BUS. 베이비몬스터 멤버 치키타의 오빠인 코퍼와 한국인 멤버인 진욱도 소속되어 있어 국내에서도 이 그룹의 존재를 아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2023년 12월 데뷔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12명의 소년들은 지난 7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에 걸쳐 두 번째 콘서트 ‘LIGHT AS ONE CONCERT’를 판매 첫날부터 3회 차 전석을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했으며, 콘서트 내내 태국 X 해시태그 트렌드 1위를 기록했다.

BUS의 기반에는 이미 검증된 K-팝과 태국만이 보여줄 수 있는 T-팝을 융합시킨 음악 스타일이 존재한다. 거기에 갈고닦아온 퍼포먼스력을 얹은 BUS는 태국을 넘어 글로벌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팬덤을 안정적으로 불려 나갔다. 지난 2월 BUS는 T-팝 그룹 최초로 ‘엠카운트다운’ 무대에 섰다. 2025년 12월 31일, ‘어메이징 타일랜드 카운트다운 2026(Amazing Thailand Countdown 2026)’에서 CORTIS의 ‘GO’를 T-팝 스타일로 재해석한 무대를 선보인 BUS의 영상이 바이럴 히트를 기록하며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BUS가 지닌 영향력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재미있게도 이날 CORTIS의 멤버들이 스페셜 MC로 나섰기에 그들 앞에서 ‘GO’ 댄스 커버를 선보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난 5월 첫 아시아 투어 ‘THE FIRST LIGHT’의 일환으로 서울에서의 팬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BUS. 그들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4EVE
7인조 걸그룹 4EVE는 BUS보다 앞선 2020년 12월에 ‘걸그룹 스타(Girl group star)’라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되었으며 5년 넘게 활동 중이다. 4EVE가 데뷔할 당시 태국 팝 씬은 2017년 BNK48의 성공 이후로 J-팝 스타일을 답습하는 걸그룹들이 여럿 등장하고 있었다. 거기다 데뷔 시기가 코로나19 팬데믹과 겹치면서 라이브 공연이 불가능해지는 등 여러모로 고난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가운데 4EVE는 걸크러시 콘셉트를 밀고 나가며 ‘걸파워(Girl Power)’를 강조했고, 그 결과 탄탄한 여성 팬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에 관해 멤버 한나는 한 인터뷰에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데 용기를 낼 수 없던 시절에 데뷔했기에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들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은 여러 장르를 섭렵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해 나갔고, 그런 노력에 힘입어 4EVE는 1만 2,000명 규모의 임팩트 아레나에서 콘서트를 두 번 열었다. 작년 11월에는 일본에서 열린 ‘뮤직 엑스포 라이브 2025(MUSIC EXPO LIVE 2025)’에 참가해 T-팝 걸그룹 최초로 도쿄 돔에 서기까지 했다.

이런 4EVE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일단 ‘Test Me’ 스페셜 비디오를 보자. 9월 기준 1.5억 회라는 무시무시한 조회 수를 기록한, 4EVE를 지금의 위치로 올려준 영상이다. 그다음에는 새로운 T-팝 시대를 예고했던 데뷔곡 ‘Oohlala!’를 들어도 좋겠다. 부채를 이용한 퍼포먼스로 큰 인기를 끈 ‘Hot 2 Hot’과, 88rising과 협업해 발매한 최신 곡 ‘TEA’도 한 번 들어보면 4EVE가 왜 T-팝의 여제로 불리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pami
유튜브에서 우연히 알고리즘을 타고 pami라는 싱어송라이터를 만났다. 처음 접했을 때의 놀라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pami의 이력을 파고들수록 예상치 못한 내용이 나타났다. 아버지가 태국인, 어머니가 중국인이라 태국·중국 혼혈인 pami는 이미 과거에 ‘Pam’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다. 2017년 태국에서 가수 겸 배우로 데뷔한 Pam은 2018년에 솔로 싱글 ‘I Don't Like’를 발매했는데, 유튜브 조회 수가 2,200만 뷰를 기록하며 대히트를 친다. 이후 2019년 중국 시장에 진출해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밍르즈쯔(明日之子)’ 결선에 올랐으며, 2020년엔 중국 3인조 걸그룹 SIS로 데뷔한다. 영화 ‘미녀특공대: 매드게임(致命玩家)’에서 여자주인공을 맡는 등 연기까지 병행했지만 2022년 SIS가 해체하면서 태국으로 돌아간다. 활동을 중단한 Pam은 영국에서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2024년 pami란 이름으로 싱글 ‘covent garden’을 내며 복귀한다. 같은 해 데뷔 EP인 ‘out of nowhere’를 발매한 pami는 지난 3월 ‘TOTY 뮤직 어워드’에서 ‘Best Hidden Gem of the Year’를 수상하는 등, 태국 인디 씬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pami의 변화를 찬찬히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지금보다 훨씬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음악을 만드는 일은 성공을 좇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pami는 그 말처럼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법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내게 pami를 처음으로 알려준 곡 ‘cry jar’를 시작으로 가장 조회 수가 높은 곡 ‘pity dirty’, ‘kiss me blue’를 들으면 pami가 어떤 아티스트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puffette’ 앨범 전체를 듣는 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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