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팝스타라는 오래된 이름, 지금의 티나셰
12년의 시간이 빚어낸 음악적 자유
Credit
글강일권(음악평론가)
사진 출처TINASHE X

2014년 티나셰(Tinashe)의 데뷔 앨범 ‘Aquarius’를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 얼터너티브 R&B 특유의 흐릿한 질감과 몽환적인 분위기는 이미 여러 아티스트가 반복해서 활용해온 스타일이었다. 그럼에도 ‘Aquarius’는 그 익숙한 감각을 유난히 매끄럽고 세련되게 엮어냈다. 

어두운 신시사이저와 묵직한 베이스 사이로 티나셰의 목소리가 안개처럼 번졌고, 관능적인 분위기 위에는 또렷한 멜로디의 후렴구가 자연스럽게 얹혔다. 새로움보다 세공하는 감각이 두드러진 앨범이었다. 당대에 널리 퍼진 스타일을 높은 완성도로 다듬었으며, 그 안에 자신의 목소리와 분위기를 분명하게 새겼다. 신인 티나셰의 존재감을 단번에 각인한 데뷔였다.

그렇게 선명한 첫인상을 남긴 뒤 티나셰의 커리어는 다소 복잡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싱글 ‘2 On’이 크게 성공했지만, RCA와 함께한 시기에는 ‘Joyride’(2018)의 발매가 여러 차례 미뤄지는가 하면, 활동 방향을 둘러싼 잡음도 이어졌다. 결국 2019년에 레이블을 떠난 티나셰는 네 번째 앨범 ‘Songs for You’를 독립적으로 발표한다. 커리어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순간이었다.

이후 ‘333’(2021), ‘BB/ANG3L’(2023), ‘Quantum Baby’(2024)를 거치며 앨범 발매 흐름은 한층 안정감을 찾았고 음악적 범위도 넓어졌다. 2024년 ‘Nasty’가 큰 반응을 얻으면서 대중의 관심도 다시 높아졌다. 특히 그 과정에서 독립 이후 다듬어온 음악의 결을 유지한 채 더 넓은 청중과의 접점을 다시 만들었다. 지난 10여 년간 쌓아온 감각을 훨씬 넓어진 선택지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게 된 셈이다.

여덟 번째 정규 앨범 ‘Popstar’를 들으면, 12년 전 ‘Aquarius’를 접했을 때의 희열이 다시 살아난다. 당시에도 익숙한 장르의 요소를 섬세하게 조합하고 마감하는 능력이 돋보였지만, 지금의 티나셰는 그 감각을 훨씬 능숙하고 유연하게 운용한다. 전자음악, R&B, 팝의 경계를 수시로 오가며 곡마다 스타일과 무드를 바꿔 간다. 그리고 그의 보컬은 이 극적인 전환을 한 작품의 결로 묶어냈다. 

앨범 제목은 번쩍이지만 음악은 한곳에서 오래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몸을 즉각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팝과 클럽 사운드부터 잔향이 길게 남는 신시사이저와 넓은 여백을 활용한 얼터너티브 R&B까지, 곡이 바뀔 때마다 리듬의 배치와 음향의 밀도, 분위기의 결도 달라진다. 

티나셰의 보컬은 그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인다. 얇은 가성으로 소리 사이를 스며들고 짧은 프레이즈로 비트에 탄력을 더하는가 하면 선명한 멜로디로 곡의 중심을 잡기도 한다. ‘Popstar’라는 제목은 이처럼 여러 음악적 얼굴을 한데 펼쳐 보이는 지금의 티나셰와 매우 잘 어울린다.

첫 곡 ‘Sunglasses’에서는 차갑고 비정형적인 전자음악의 질감과 얼터너티브 R&B 보컬이 과감하게 맞물린다. 머신드럼(Machinedrum)과 아르카(Arca)가 참여한 프로덕션은 잘게 부서지는 전자음과 뒤틀린 리듬이 겹쳐지며 시작과 동시에 박자의 중심을 흐트러뜨린다. 소리가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사이 티나셰의 가성은 얇게 포개졌다가 흩어지면서 그 틈을 미끄러지듯 떠돈다. 프로듀서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곡에서도 곡의 밀도와 흐름을 조율하는 티나셰의 보컬이 인상적이다.

그런가 하면, ‘Melatonin’은 빠른 포 온 더 플로어(Four-on-the-floor) 리듬을 중심에 두고 거침없이 속도를 붙인다. 신시사이저와 베이스가 그 위를 꿈틀거리며 밀고 나가는 가운데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사운드의 표면도 한층 두터워진다. 짧은 프레이즈와 반복을 중심으로 목소리를 잘게 배치하며 비트 깊숙이 파고든 티나셰의 보컬은 리듬의 일부처럼 스며들어 있다. 초반부에 배치된 두 곡만으로도 ‘Popstar’가 익숙한 팝의 틀을 비껴가는 앨범임을 느낄 수 있다.

이어 ‘Empty Stadium’에 들어서면 클럽 사운드의 맥박을 유지하면서도 공간을 쓰는 방식이 달라진다. 비트는 여전히 앞을 향해 달려나가지만 보컬 주변으로 넓은 여백이 열리고 현의 울림과 잔향도 길게 남는다. 그 안에서 티나셰는 인정과 존재감에 대한 불안을 담담하게 꺼내놓으며 비워둔 공간을 긴 감정의 여운으로 채웠다. 이처럼 클럽 사운드의 추진력과 적막한 정서가 동시에 살아 있는 점이야말로 이 노래의 절묘한 지점이다. 

‘I’d Rather Be Alone’은 멜로디의 힘이 가장 선명하게 발휘된 곡이다. 후렴으로 갈수록 멜로디가 상승하고 티나셰의 보컬도 그 고조를 따라가며 곡에 담긴 감정을 담백하게 붙잡는다. 사운드의 질감과 리듬이 먼저 몸을 휘감는 곡이 많은 앨범에서 ‘I’d Rather Be Alone’은 노래 자체의 힘으로 오래 기억할 만한 곡이다.

한편, ‘Crash Out’에서는 ‘2 On’ 시절부터 이어진 힙합과 R&B의 접점을 확인할 수 있다. 드럼과 신시사이저가 남긴 넉넉한 공간 위에서 티나셰는 음절의 길이와 진입 시점을 세밀하게 바꾸며 비트에 탄력을 더한다. 앨범 안에서 R&B 아티스트로서의 감각이 비교적 또렷하게 드러나는 곡이라 더욱 반갑다.

짧은 ‘The Show Must Go On’을 지나 타이틀 곡 ‘Popstar’로 이어지는 흐름도 매끄럽다. 킹덤(Kingdom)과 리키 리드(Ricky Reed)가 만든 프로덕션은 앞선 곡들의 거친 전자음에서 살짝 힘을 빼고 보다 매끈하고 부드럽게 흘러간다. 멜로디 역시 한층 쉽게 귀에 감긴다. 제목만 놓고 보면 앨범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순간을 떠올리기 쉽지만, 정작 곡은 가뿐하고 산뜻하게 흘러간다. 티나셰의 보컬 역시 힘을 덜어낸 채 가볍게 움직인다. 바로 그 간극이 ‘Popstar’의 매력을 만들었다.

이렇듯 참여한 프로듀서의 성향이 뚜렷한 만큼 곡의 결도 달라진다. 그러나 티나셰는 곡마다 보컬의 질감과 호흡을 달리하며 각기 다른 프로덕션에 맞춰 노래의 힘과 여백을 조절하고, 그 차이를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다. ‘Aquarius’ 때부터 눈에 띄었던 프로덕션과 보컬의 조화가 ‘Popstar’에서 한층 세밀해졌다. 이제 티나셰는 보컬만으로도 곡의 인상을 바꿔놓는다. 

독립 이후 티나셰의 음악에는 선택과 판단의 여유가 차곡차곡 쌓여왔다. ‘Songs for You’와 ‘333’에서 넓어진 선택의 폭은 ‘BB/ANG3L’과 ‘Quantum Baby’를 거치며 한층 정교해졌고, ‘Nasty’의 성공은 그 방향이 대중적인 접점으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Popstar’는 그동안 쌓아온 감각을 한데 모아 펼쳐놓은 작품처럼 들린다. 2014년의 티나셰가 당대 주류 R&B의 흐름 안에서 뛰어난 균형 감각을 보여준 신예였다면, 지금의 그는 자신의 취향과 강점을 정확히 골라 탁월한 음악으로 완성할 줄 아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팝스타’라는 이름은 티나셰의 넓은 활동 반경과 그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함께 가리키는 말처럼 들린다. 그리고 ‘Popstar’에서 그 자유는 티나셰의 음악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Copyright ⓒ Weverse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