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민지: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몇 번이고 자격증 시험에 도전해야 하는 하루.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토벌’에 나서야 하는 일상. 그럼에도 먹고 싶은 라멘 한 그릇, 좋아하는 책 한 권 사기 힘든 삶. 나가노 작가의 만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동명 애니메이션 ‘치이카와’는 작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통해 이처럼 고단한 일상을 그린다. 위험하고 버거운 세상에서도 치이카와와 친구들은 서로가 곁에 있기에 행복할 수 있다. 아프거나 다치더라도 살아 있는 한 친구들은 변함없이 내 곁에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정은 이들이 고단한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다.
그러나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섬의 비밀’은 그 우정이 언제나 옳은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평소 100배에 달하는 보수와 달콤한 것부터 ‘매콤한 것’까지 무료라는 초대장을 따라 섬에 도착한 치이카와와 친구들. 여유로운 휴가도 잠시, 이들은 섬 주민들을 납치하는 괴물 ‘세이렌’을 토벌하라는 임무를 맡게 된다. 주민들에게 세이렌은 친구들을 납치하는 괴물이지만, 세이렌과 인어에게는 ‘인어를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을 믿고 자신의 친구를 잡아먹은 섬 주민들이 범인이다. 서로 다른 입장 속에서 치이카와 일행은 세이렌과 인어에게 쫓기고, 무서워 울면서도 잡혀간 친구들을 구하러 가고, 마침내 세이렌에게 다시는 주민들을 납치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낸다. 친구를 구하려는 마음은 두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
마침내 평화가 찾아온 듯한 순간, 영화는 과거의 진실을 드러낸다. 세이렌과의 사고로 죽어가는 섬 주민 두잎을 살리기 위해 인어를 잡아 요리한 한잎.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 한잎에게도 인어조림을 먹인 두잎. 인어를 먹은 이들에게 남는 표식인 ‘배터리’가 떨어져 나간 두잎을 알아보고 “알았다”고 말하는 세이렌. 한잎은 두잎을 살리기 위해 인어를 죽이는 ‘죄’를 저질렀고, 영원히 우리에 갇혀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벌’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죽어가는 친구의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설령 그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비밀을 안고 ‘영원히’ 살아가야 한다고 하더라도. 축제가 열린 날, 한잎과 두잎의 집에서 발견한 인어 비늘이 든 포쉐트를 꼭 쥐고 두 사람에게 다가간 치이카와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떨고 있는 둘을 보고 아무 말 없이 돌아선다. 진실을 알고도 침묵을 택한 치이카와 역시, 자신에게도 두려움을 이겨내게 해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친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해했을 것이다. 작고 약하지만 소중한 누군가를 지켜내고 싶은 ‘치이카와’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우정도, 죄도, 생명도 언제까지나’ 이어진다.

‘한국힙합 정정보도’ | Korean Hip-Hop: A Correction
강일권(음악평론가) : 한국에서도 힙합은 크게 유행했다. 래퍼들이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르고, 각종 공연과 행사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으며, 한때는 어디를 가나 랩이 흘러나왔다. 힙합을 즐겨 듣지 않는 사람조차 유명 래퍼 몇 명의 이름은 알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힙합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힙합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거나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토록 요란했던 유행에 비하면, 그 시절과 사람들을 기록하려는 노력은 꽤 조용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세계일보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한국힙합 정정보도’는 반가운 작품이다. 약 42분 분량의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 힙합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며 한국 힙합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한다. MC 메타, 버벌진트, 포워드, 마이노스 등 한국 힙합의 굵직한 시기를 함께해온 음악가들은 물론, 히피쿤다처럼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래퍼들의 목소리도 담았다.
제목에 얽힌 사연도 흥미롭다. 1993년 세계일보는 힙합을 ‘저질 외래풍조’라고 비판하는 칼럼을 실었다. 당시만 해도 힙합은 낯설고 불온한 문화로 여겨지곤 했다. 그런데 30여 년이 흐른 지금 같은 신문사가 한국 힙합의 역사를 되짚는 다큐멘터리와 기획 기사를 선보였다. ‘정정보도’라는 제목에는 그동안 힙합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과거 자사의 보도를 오늘의 기획으로 되돌아본다는 점에서 꽤 재치 있는 제목이다.
특히 세계일보 탐사보도팀은 약 7개월간의 취재 결과를 연재 기사와 인터랙티브 페이지로도 풀어냈다. 4,008곡의 가사 분석을 통해 한국 힙합의 변화를 살펴보고, ‘쇼미더머니’가 만든 이미지와 실제 음악의 차이, 젊은 래퍼들의 현실도 짚는다.
물론 42분 안에 한국 힙합의 방대한 역사를 모두 담기는 어렵다. 어떤 시대와 인물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앞으로도 다양한 관점의 다큐멘터리가 꾸준히 만들어졌으면 한다. 유행의 한복판에서는 미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도 하는 법이니까. 그때 남겨진 영상과 기사, 인터뷰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한국힙합 정정보도’도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킴 스텐리 로빈슨 - ‘미래부’
김복숭(작가): 세상은 암담하다. 전례 없는 폭염은 인도에서만 2,0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미래는 더더욱 암담하다. 이에 국제사회는 모여 미래 세대의 권리를 대변할 기관인 ‘미래부’를 설립하고, 메리 머피를 수장으로 임명한다. 미래부는 기후위기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위협으로 선언한다. 그리고 세상은, 마침내 행동에 나선다.
탄소배출이 기업의 이익보다도 먼저 고려된다. 비행기 사용은 금지되고 하늘길이 아닌 바닷길이 열린다. 자연보호구역을 중심으로 세계지도가 새롭게 그려진다. 인류는 속도를 늦추고, 지구는 조금씩 회복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메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설 ‘미래부’의 이야기다. 분명 소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100개 이상의 짧은 장마다 수많은 시점과 다채로운 형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이다. 그리고 작가 킴 스텐리 로빈슨은 기후위기 해결에 대한 에세이같이 다양한 생각들을 부담 없는 전개로 풀어냈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일종의 에듀테인먼트라고 할 만하다. 이름 없는 인물들, 심지어는 무생물의 목소리를 빌려 전해지는 수많은 생각과 경험들, 그리고 숨김없이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는 미래를 비관하는 이들의 믿음에 도전장을 내민다. 때론 순진하다 싶을 만큼 낙관적이면서도, 과학적 근거만큼은 탄탄한 책. 열린 마음으로 펼칠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이면 어느새 당신의 마음까지 활짝 열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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