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한다. 사랑을 관장하는 신 에로스에게조차 그것은 통제 밖의 영역이었다. 자신의 어머니이자 아름다움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프시케를 찾아 나선 그가 그녀를 본 순간 그 명령을 수행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처럼. 처음 사랑에 빠진 순간 에로스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하나는 추측할 수 있다. 사랑을 관장하는 신에게조차 사랑은 혼란스럽고 과거의 질서를 무너뜨리게 만드는 에너지였다는 것을. 살포시 달아오르게 만드는 열, 시선을 고정시키는 힘, 내 안에서 휘몰아치는 자전운동 같은 것. 그가 자신의 화살로 스스로 상처 입힌 비논리적인 사건도 사랑의 에너지가 개입되었다고 이름 붙이면 쉽게 설명된다. 사랑의 논리는 늘 비논리적이다.
NCT WISH의 노래에는 사랑의 불안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상대의 마음은 온통 물음표투성이지만,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은 없다. 에로스 또한 그랬을 것이다. 프시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화살을 쏘면 사랑에 빠진다. 그 자명한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것이 자신이 관장하는 운명의 역학이므로. NCT WISH의 사랑 방식도 마찬가지다. 너는 반드시 날 사랑한다. 내가 그렇게 주관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운명의 모양은 그러하기에. 다만, 내가 만든 그 운명과 사랑을 지속하는 법을 골몰히 생각한다.
NCT WISH의 네 번째 미니 앨범 ‘I SPY’는 그들이 사랑을 실현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통제할 수 없지만, 상대가 나를 사랑할 거란 걸 안다. 그 사랑이 완성되도록 함께 사랑할 세계를 직접 만든다. 그리고 그 세계로 초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에는 에로스의 화살이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응답이 필요하다. 사랑을 제 의지대로 이뤄낼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그 완성을 위해서는 타인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걸 아는 것. 이토록 비논리적인 사랑의 논리 속에서 ‘I SPY’는 사랑을 일으키는 에로스의 능력과 사랑의 상호성을 요구하는 안테로스의 욕망이 만나는 자리가 된다.

기하학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세계
에로스는 현실과 동떨어진 궁전에서 프시케와 사랑의 순간을 나눴다. NCT WISH의 궁전은 디지털 세계다. 그 세계를 쌓아 올리는 재료는 바로 그들의 음악이다. 지난 4월에 발매된 NCT WISH의 첫 번째 정규 앨범 ‘Ode to Love’는 NCT WISH의 음악 스펙트럼을 한층 넓힌 앨범이다. 다양한 분위기의 음악들이 그들의 음악 세계를 채웠다. 개러지 장르가 섞인 ‘Ode to Love’나 밝은 분위기의 팝 곡인 ‘Don’t Say You Love Me’는 화사한 분위기를 조형하고, 재즈 힙합을 구사한 ‘Street (2AM)’나 보사노바와 힙합을 조합한 ‘Sticky’는 강렬하면서도 생소하다. 대조적으로, ‘여우비 (Crush)’와 ‘Voyage’에서는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강조되며 아련한 정서를 덧칠한다.
그러나 ‘I SPY’에 수록된 여섯 곡은 동일한 정서를 공유한다. 인공적이고 사이버틱하다. 어떤 사운드 레이어가 쌓이더라도 그 중심엔 전자음이 있다. 타이틀 곡 ‘I SPY’에서는 디지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도입부와 곡 전반을 몰아치는 익살스러운 신스 사운드, 역동적인 질감으로 변주되는 아웃트로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자음이 만들어낸 낯선 세계의 풍경을 현란하게 펼쳐 놓는다.

‘We Own This Street’에서는 전자음 위에 일렉 기타 사운드가 너른 거리를 활보하듯 빠르게 펼쳐지고, ‘UPGRADE’에서는 게임 속 세계를 묘사하며 형형색색의 전자음이 명멸한다. 전자음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듯한 ‘Super Major’, 게임 속 작은 우주를 연상시키는 듯한 ‘Hubble Time’까지 NCT WISH는 디지털 요소를 기반으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쌓아 올린다. 마지막 곡인 ‘꿈결 (Like A Dream)’에 다다르면,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구현하지만 앞선 곡들이 지닌 정서를 잇는다. 카펜터스(Carpenters)의 ‘Close To You’를 샘플링한 이 곡은 원곡이 갖고 있는 서정성을 몽환적인 신스로 재현하며, 사랑하는 누군가와 왈츠를 추듯 유려하게 흐른다.
기하학적으로 조립되고 현란하게 움직이다 이윽고 부드럽게 일렁이는 소리의 세계. 고정된 형태 없이 자유롭게 변형되는 이 소리들은 NCT WISH가 꿈꾸는 사랑의 세계를 이룬다. 선택을 입력하면 출력이 되는, 원하는 모양으로 운명을 빚어낼 수 있는 디지털 세계. 화살을 쏘면 사랑이 발생하는 원리를 주관하는 큐피드에게 이보다 완벽한 세계는 없다.

사랑이 한 일
에로스적 사랑의 가장 큰 역설은 사랑의 시작을 결정할 수 있을지언정 그 사랑의 지속까지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디지털 세계를 만들었다 해도 그 안에서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응답, 즉 상호성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에로스의 궁전과 NCT WISH가 구축한 디지털 세계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발생한다. 에로스가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프시케와 사랑을 나눴다면, NCT WISH는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를 드러내고 그곳으로 사랑하는 상대를 적극적으로 초대한다.
초대의 이유는 간단하다. 그 세계가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세계를 홀로 완성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이다. ‘I SPY’에서 NCT WISH가 “내 세상”에 상대를 초대하면서 “요즘에 맘에 드는 건 뭐야?”, “지금 무슨 생각 중인 거야?”, “혹시 너도 잠 못 드는 밤이야?” 하고 연달아 묻는 것은 상대로부터 그 답을 들어야 사랑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한눈에 서로를 알아봤을지라도, 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테로스의 사랑을 상징하는 상호성이 요구된다.

흥미로운 점은 사랑에 정해진 모양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정확한 지점을 정해놓고 단단한 세계를 쌓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흐름을 만든다. 두 사람이 만나 차원이 비틀리고 예상치 못하게 몰아치거나 오류가 생기기도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이전의 나를 성장시키는 ‘UPGRADE’ 과정이 되고, 둘의 상호작용은 우주적인 규모로 증폭되기도 한다(‘Hubble Time’). 그러니까 사랑이란 완벽하게 설계된 세계에 누군가를 들이는 일이 아니라, 그 누군가로 인해 세계의 질서가 뒤바뀌는 일이다. 서로의 존재로 인해 기존의 세계가 성장하고 갱신된다. 에로스의 화살로부터 촉발된 사랑은 결국 왈츠를 추며 서로의 박자를 맞추듯 조금씩 서로를 향해, 서로를 위해, 서로에 맞게 완성된다. 같은 꿈을 꾸고 서로를 닮아가고 때로는 상대가 자신을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것(‘꿈결 (Like A Dream)’).
사랑은 결국 혼자서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쥐여 주고야 만다. 예민한 감각으로 상대를 찾아내는 아주 사소한 초능력을 갖게 된 것도, 모든 물음표를 화살처럼 느낌표로 바꿔 상대를 향해 쏘아보는 것도, 한계를 깨고 내 세계를 성장시킨 것도, 그렇게 누군가와 발을 맞추게 된 것도 모두 사랑이 만든 일이다. 상대가 자신을 사랑할 것을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상대의 손을 필요로 하는 것. 자신의 의지대로 운명을 만들어내면서도 그 운명이 누군가로 인해 바뀌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입력과 출력이 완벽하게 이뤄질 것만 같았던 디지털 세계에 ‘너’라는 존재는 일종의 오류다. NCT WISH는 그 사랑의 비논리성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렇게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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