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아티스트 중에 빌리 아일리시(이하 빌리)만큼이나 그의 나이가 모두의 관심사인 이가 있을까. 2001년 12월생인 그는 지금 만으로 열아홉 살이다. 그는 2019년 열일곱 살에 내놓은 첫 앨범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이하 ‘WWAFA, WDWG?’)로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다. 특히 그래미 어워드는 그에게 주요 부문 4개 상을 모두 몰아주며 큰 영예를 안겼다. 최연소이자, 여성 아티스트로도 최초였다. 그는 이 모든 성과를 열여덟 살에 이루었다. ‘뉴요커’지는 “팝의 얼굴(Face of Pop)이 물질주의에서 존재론적 고민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그 대표 주자로 빌리를 꼽기도 했다.
존재론적 고민이라니, 이제껏 팝의 영역으로 쉽게 간주되던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빌리가 처음은 아니었다. 자기 내면을 성찰하며 우울이나 불안 등의 어두운 주제를 다루는 젊은 대중음악 여성 아티스트는 꾸준히 존재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대중문화 속 이런 아티스트들을 ‘새드 걸’이라는 라벨로 부르기도 했는데, 장르라기보단 계보를 연결하기 위한 일반화적 분류법에 가깝다(장르로 호명하자면 자칫 여성 화자의 고통을 장르적 요소로 당연시 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팝스타를 기준으로 꼽자면 2011년 데뷔한 라나 델 레이, 2013년의 로드 그리고 2016년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등장한 빌리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20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피오나 애플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
이 배경에는 2010년대 초반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태동한 ‘새드 걸’ 문화가 있다. 텀블러와 같은 비주얼 중심 플랫폼이 본격화되며 청소년들이 저마다의 관심사로 뭉치는 일이 흔해졌다. 그중 우울을 탐미적으로 연구하거나 전시하는 ‘새드 걸’ 조류가 있었다. 숱한 여성 청소년들이 교육적 이상과는 달리 불안한 세계 정세 속 가정이나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가부장적 차별을 겪으며 우울을 비롯한 정신 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고, 그런 이들이 인터넷 한구석에 모여 취향과 상호 돌봄과 자기 파괴의 낭만화가 뒤섞인 독특한 군집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산업이 주도하는 팝 시장을 거슬러 내향적인 가사와 감성이 중심이 되는 여성 아티스트들에 호응했고, 그 관심과 사랑이 이 가수들을 인기 반열에 올려놓았다. 물론 라나 델 레이, 로드, 빌리 모두 각자 다른 주제와 표현법을 가진 독창적인 아티스트들이지만, 케이티 페리 등으로 대표되던 강한 벨팅 창법이나 파티 분위기 위주의 팝과는 다른 조류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2010년대 중반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미디어 아티스트 오드리 월런은 이 조류에 영향을 받은 자기 작품들을 ‘새드 걸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묶기도 했다. “여성의 슬픔과 우울은 수동적이거나 약하지만은 않다, 이것도 저항의 일종이며 해방의 제스저다.”가 주요 골자였다.
빌리의 1집 ‘WWAFA, WDWG?’는 다양한 장르를 이용해 앨범 가득 우울과 불안에서 비롯된 감정과 생각을 담았다. 장르가 곧 타깃 청자층의 데모그래픽을 정의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미국 가수로서는 흥미로운 시도였다. 한국의 청자들에게는 한 음반에 여러 사운드를 담는 게 일반적인 K-팝과 닮아서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특히 악몽을 주제로 풀어나간 스토리텔링은 현실성과 신화적 아우라가 공존한다. 빌리는 뮤직비디오 속에서 히어로이기도, 안티히어로이기도 하다. 기존의 ‘새드 걸’처럼 페미닌한 이미지가 아닌, 블랙과 네온 컬러의 박시한 옷차림을 즐기는 그의 외관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정작 빌리 본인은 사람들이 자기 몸에 대해 말 얹는 게 불편해서 택했다고 하나, 그런 선택이 빌리를 특별한 스타로 만들기도 했다. 유명인의 아이러니였다.
그를 지금의 슈퍼스타 위치에 올려놓은 것은 ‘bad guy’의 대흥행이었다. 읊조리는 보컬, 미스터리 영화 테마 곡 같은 리프, 온 공간을 쿵쿵 울리는 극단적인 베이스는 팝적인 밸런스를 완전히 무시한 조합이었지만 그 지점이 오히려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다. 특히 ‘bad guy’는 ‘새드 걸’들에게뿐만 아니라 범세대적인 인기 곡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빌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분명 인디 아티스트로 분류되었지만, 그와 동년배인 청자들은 그들의 팝으로 ‘bad guy’를 선택했다. 일반적인 미국 청소년의 학교 내 ‘생태계’ 속에서 ‘인싸’보다는 ‘괴짜 소녀(Weird girl)’에 가까울 빌리의 노래가 모두의 앤섬으로 울려퍼지던 2019년은 특별한 해였다(참고로 빌리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홈 스쿨링을 받았다). 여성 청소년 당사자가 발화하는 섹슈얼리티와 로맨틱 관계 속 파워 다이내믹이라는 메시지는 일단 캐치한 사운드에 묻혀 라디오 에어플레이를 탔고, 대중은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반겼다.
올해 내놓은 2집 ‘Happier Than Ever’는 1집에 이어 역시 친오빠인 피니즈 오코넬과 함께 작업했다. 빌리 본인의 말에 의하면 ‘시대를 타지 않는 음반(Timeless Record)’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1집의 힙합 인플루언스는 많이 줄었고, 대신 줄리 런던이나 프랭크 시나트라, 페기 리 스타일의 크루너 뮤직을 많이 참조했다. 크루너 뮤직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인기였던 미국식 가요로 지금은 ‘Fly Me to the Moon’ 같은 재즈 스탠더드 넘버의 그 시대 레코딩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애초에 크루너 뮤직이 마이크의 발명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창법의 음악이었기에 속삭이는 창법의 빌리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사실 그 시절 음악을 전면적으로 모방했다기보다는 분위기를 빌려온 것에 가까워서, 사운드적으로는 2000년대 인디씬에 많았던 어쿠스틱 팝이나 소울 가수들과 더 닮았다. 1집에서도 선보인 바 있는 우쿨렐레나 아카펠라 합창 요소가 2집에서도 여전히 쓰였다. 이로서 1집에 담은 다양한 장르는 단순히 여러 가지를 실험적으로 넣어보기 위함만이 아닌 빌리와 피니즈 오코넬 두 사람의 취향이었음이 공고해진다.
‘Happier Than Ever’는 빌리가 본격적인 스타덤에 오르고서 만든 첫 앨범이다. 앨범 공개 전에 꽤 많은 곡을 선공개 싱글로 내놓았다. ‘그래서 이번 앨범의 ‘bad guy’는 무슨 곡이 될 것이냐’가 초미의 관심사였으나, 빌리의 생각은 또 다른 히트 싱글 하나를 만들려는 전략보다는 되도록 많은 트랙에 방점을 찍어가며 앨범 전체의 메시지를 듣게 하려는 편인 것 같다. 여전히 1집부터 이어온 우울과 불안을 말하고 있지만, 같은 주제가 이제는 별안간 마주한 인기와 성공이라는 배경 속에서 진행된다. 예쁜 R&B 튠에 야망을 담은 ‘my future’, 순수한 아티스트의 재능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사람들에 대해 과거의 자신에게 경고하는 듯한 ‘GOLDWING’, 전과 다름없이 관계에 목마른 자신이지만 이제는 스타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새로운 비밀과 번민을 생겼음을 토로하는 ‘NDA’ 등은 유명해지기 전의 그에게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스토리텔링이다.
특히 2020년 초 콘서트에서 VCR로 선공개했던 9번 트랙 ‘Not My Responsilibility’는 그가 유명인이 되며 겪은 시선의 폭력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내가 입는 옷을 두고 누구는 어떤 사람들을 욕하는 데 이용하고 누구는 나를 욕한다.”, “내가 편한 옷을 입으면 여자가 아니라 하고, 내가 옷을 덜 입으면 창녀라 한다.”, “나의 가치가 오로지 당신의 인식에 좌우되는가? 나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나의 책임이 아니지 않나?” 몸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 박시한 옷을 입을 때에도, 마음을 바꿔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을 때에도, 여성 당사자로서 빌리의 몸은 얘깃거리가 되었다. 이만큼 명징하게 말하고 있지만 이 글에서 역시 언급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이 무안하기도 하다.
이제 우울과 불안은 시대정신이라 할 만큼 만연했다. 퓨 리서치 센터가 2019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청소년들은 동세대의 가장 큰 문제가 불안과 우울증이라고 꼽았다. 중대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람과 다소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을 모두 합하면 무려 96%에 달했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현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가 크고 작은 정신 건강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중이다. 대중음악의 큰 기능 중에 하나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접근성이 좋은 팝 음악 중에 어둡고 복잡한 감정을 발산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자로서는 복이다.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9.11 테러가 있었던 2001년에 태어난 이 아티스트에게 적당한 빚을 지고 있다.
다시 ‘새드 걸’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그의 작품 속 화자는 셰익스피어가 그린 오필리어처럼 비극적 결말을 맞는 순결한 소녀와는 거리가 있다. 그가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고발하며 그려내는 이야기는 자기 주도권을 탈환하기 위한 전투에 가깝다. 여성 청소년에게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라나 델 레이가 불행한 연애에 갇힌 가련한 여성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데에 집중했고, 로드는 팝의 표면에서 반짝거리는 가짜 행복들에 진절머리 난 젊은 예술가의 에고를 표출했다면, 빌리는 그 중간 어디쯤에 존재한다. 로맨틱 관계 속에서 내가 바로 나쁜 남자 역할이라며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bad guy’), 이런 내가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한다는 자체가 남성들의 판타지 아니겠냐며 자조하기도 한다(‘Male Fantasy’). 그가 박시한 옷으로 몸을 가리는 행위는 도리어 지금까지 청소년을 아무렇지도 않게 성적 대상화한 팝 시장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다. 음악 산업계는 천재 소녀에 섣불리 열광하며 당신이 우리의 미래라고 치켜세우고 왕관을 씌웠다. 그러나 결국 왕관을 수여하는 권력은 아직도 그들에게 있다. 그들은 언제든 또 다른 팝 프린세스를 찾아 추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 팝 프린세스가 꼭 한자리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빌리는 어린 시절 저스틴 비버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한다. 어릴 때는 오로지 저스틴 비버와 만나기 위해 유명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고도 한다. 마침내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비버는 그의 어린 팬을 오래도록 안아주었다. 이후 비버가 개인 인터뷰를 하며 빌리를 언급할 때에는 어린 나이에 갑작스러운 유명세를 얻은 그가 겪을 어려움을 걱정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2021년 새 앨범을 내며, 그는 앨범의 제목을 따라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유명하기 때문에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그가 부디 자신이 원하는 속도대로 나이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가 찾아 헤매는 자기 주도권이란 동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의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는 그에게 빚을 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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