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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예진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 빌리프랩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ENHYPEN에게 2021년은 화려했다. 비록 팬데믹으로 인해 여전히 팬들을 직접 만날 기회는 적었지만, 그들이 2021년 발표한 앨범들은 이런 제약을 뚫고 전 세계적인 반응을 얻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앨범 ‘혼돈의 장: FREEZE’는 ‘빌보드 200’ 5위로 진입했고, 빌보드가 지난 17일 발표한 ‘평론가들이 뽑은 2021년 베스트 K-팝 25곡(25 Best K-Pop Songs of 2021: Critics’ Picks)’에서 ‘혼돈의 장: FREEZE’ 타이틀 곡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가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빌보드가 선정 이유에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Z세대를 대변하는 그룹임을 공언”했다고 표현하고,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에 대해 “거칠고 불안한 감정을 통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평한 것은 현재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은 K-팝의 ‘4세대 아이돌’인 동시에 전 세계 Z세대를 대변하는 존재가 됐다. ENHYPEN이 거둔 성과 또한 믿기지 않을 정도다. ENHYPEN이 지난 4월 발표한 앨범 ‘BORDER : CARNIVAL’의 첫 주 앨범 판매량은 한터차트 기준 38만 장 이상으로 데뷔 앨범보다 10만 장 이상 상승하더니, 지난 10월 발표한 첫 정규 앨범 ‘DIMENSION : DILEMMA’는 무려 81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현재 ‘DIMENSION : DILEMMA’의 판매량은 100만 장을 넘기면서, ENHYPEN은 데뷔 1년 만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밀리언셀러 루키’가 됐다.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쓴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두 팀에게 2021년의 여러 연말 시상식과 특집 방송에서 선보이는 무대는 특히 중요했다. 모든 아티스트에게 연말 시상식이나 특별 방송 무대가 소중하지만, 두 팀에게는 올해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4세대 보이 그룹’ 내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인지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ENHYPEN의 연말 무대 퍼포먼스를 총괄한 빅히트 뮤직 퍼포먼스디렉팅팀 손성득 SP는 “시상식의 의미 자체가 아티스트들은 물론 스태프들에게도 특별한 이벤트라서 굉장히 오랫동안 준비해요.”라면서 “이번에는 특히 두 팀 다 퍼포먼스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두 팀 모두 ‘확실히 이 팀은 퍼포먼스를 잘하는 팀이야.’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라며 이번 시상식이 두 팀은 물론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설명했다. 실제로 두 팀은 연말의 각종 시상식과 특별 방송 무대를 마치 앨범 활동 스케줄처럼 소화했다. ‘MMA(멜론 뮤직 어워드)’,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 ‘SBS 가요대전’ 등 중요한 행사에 모두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각각 팀의 특성을 담은 무대를 선보이려 했다. 그리고 ‘KBS 가요대축제’를 통해 두 팀의 무대가 하나로 합쳐진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ENHYPEN은 뚜렷한 팀의 성격만큼 연말 무대들에서도 각자 다른 방향을 추구했다. 손성득 SP가 “스토리라인을 퍼포먼스로 풀어가는 것”에 집중한 무대라고 밝힌 것처럼,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MMA’를 통해 그들이 지난 1년 동안 전달한 앨범의 스토리텔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VCR에서 내레이션과 함께 나온 영상의 마지막 장면이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 (Dance Break ver.)’ 퍼포먼스의 첫 대형과 겹쳐지며 시작되고, 댄스 브레이크에서는 멤버들이 얼음을 피하며 춤을 추는 퍼포먼스로 화제가 된 ‘혼돈의 장: FREEZE’ 콘셉트 트레일러를 무대에서 재현한다. 반면 ENHYPEN은 이제 막 데뷔 1주년을 지난 팀답게, ‘MAMA’를 통해 대중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기 위한 기회로 삼았다. 손성득 SP는 “ENHYPEN이 에너제틱하고 날것의 느낌을 주는 퍼포먼스로 많이 어필되고 있는 것 같아 이 흐름에 맞춰 퍼포먼스로 확실한 인상을 남기는 것”을 무대의 핵심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래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ENHYPEN은 각자 다른 고난이도 미션을 소화해야 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경우 영상의 스토리를 무대에서 재현하기 위해 퍼포먼스와 다양한 연출 기법을 결합해야 했다.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 (Dance Break ver.)’과 댄스 브레이크 구간, ‘LO$ER=LO♡ER’가 하나의 극처럼 이어지도록 하고, 레이싱 드론을 활용하기도 했다. 특히 댄스 브레이크 구간의 경우 손성득 SP가 “콘셉트 트레일러 촬영 때와 달리 무대라는 단 하나의 공간 안에서 얼음으로부터 공격받는 긴급한 상황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다양한 구성과 동선으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특히 후반부에 연준 씨의 점프 테크닉을 포함하여 여러 테크닉과 칼군무가 합쳐진 퍼포먼스이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지만 멤버들 모두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즐겁게 연습을 진행했어요.”라고 말할 만큼 연습의 난이도가 높았다. 

 

ENHYPEN의 ‘MAMA’ 퍼포먼스는 무엇보다 춤에 집중했다. 이를테면 니키가 붉은색 끈으로 속박당하자 멤버들이 등장하여 끈을 풀어내며 니키를 구하는 과정을 그린 퍼포먼스는 손성득 SP에 따르면 “댄서들이 니키를 조종하고 구속하는 동작과 구성으로 니키의 춤 실력뿐 아니라 스킬적인 부분까지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낸 부분이다. 손성득 SP는 “몸으로 끈을 컨트롤하는 안무이기에 많은 연습이 필요했지만 어려서부터 춤과 아크로배틱까지 배워온 멤버이기 때문에 빠르게 흡수”했다며 이 퍼포먼스가 니키의 춤 실력 위에서 성립됐음을 설명했다. 스포츠 경기장 세트 배경의 ‘Tamed-Dashed’ 무대에서 럭비공을 이용한 댄스 브레이크 퍼포먼스 역시 멤버들의 퍼포먼스 역량을 최대한 보여주기 위해 기획했다. ENHYPEN은 이 퍼포먼스를 위해 손성득 SP가 “변수가 많아 리스크를 안고 간 퍼포먼스였기 때문에 멤버들이 서로의 합을 맞추는 데 신경 쓰면서 집중도를 높여 많은 연습”을 했다고 강조할 만큼 많은 연습량을 소화해야 했다. 

일곱 멤버가 공을 서로 주고받으며 능숙하게 다루는 사이 멤버들의 퍼포먼스가 곁들여지면서, ENHYPEN은 ‘MAMA’와 같은 대형 시상식의 분위기를 한껏 띄우는 ‘쇼 스틸러'가 된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정원이 공을 무대 밖으로 힘껏 차면서 시작된 올드스쿨 무드의 댄스 브레이크에서 흐트러짐 없이 군무를 추는 멤버들의 모습은 마치 스포츠 경기에서 득점할 때의 쾌감과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손성득 SP는 “전체적으로 높은 텐션감을 줄 수 있도록 댄스 브레이크의 단체 군무로 올드스쿨 장르를 선택했어요. 멤버들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테지만 자신들도 춤추는 게 신난다고 하면서 틈날 때마다 디테일과 합을 계속 맞춰가며 즐겁게 연습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반면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마치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정교한 퍼포먼스를 통해 ‘MMA’를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로 바꿔버렸다. 댄스 브레이크 퍼포먼스에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팬덤 ‘MOA’를 빗댄 존재로 출연한 댄서 노제는 이런 몰입감을 더욱 강화시키는 존재였다. 이에 대해 손성득 SP는 “공주가 왕자를 구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어요."라며 “그래서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활약한 모습이 게스트로 찾고 있던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와 잘 맞았어요.”라고 섭외 이유를 밝혔다. 노제를 통해 이 퍼포먼스는 기존의 통념 속에 있던 동화들과 달리 공주 역할의 노제가 왕자에 해당하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구하는 것으로 끝나고, 자연스럽게 ‘LO$ER=LO♡ER’로 이어지며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동화에서 현실의 세계로 오도록 만든다.  

‘KBS 가요대축제’에서 두 팀이 함께 과거의 K-팝 명곡들을 커버한 ‘Legend of K-POP’ 무대는 각각 다른 방향의 무대를 선보이던 두 팀이 최고의 시너지를 내는 과정이었다. “이런 시도는 저도 처음"이라며 소감을 밝힌 손성득 SP는 두 팀이 합동 무대를 통해 무엇을 원했는지 간단하게 말했다. “‘이제 우리야. 다음 세대는 우리가 될 거야.’라는 거죠.” 각각의 세대마다 어떤 아티스트가 있었는지 보여주고, 이를 모두가 아름답게 보면서 그다음 세대는 두 팀이 대표한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이 두 팀의 바람이었다. 그래서 퍼포먼스의 핵심은 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 곡들을 골라 두 그룹과 어울리도록 나누고, 결과적으로 조화롭게 보이도록 퍼포먼스의 전체적인 구성을 짜는 것이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청량한 느낌의 H.O.T의 ‘Candy (캔디)’를, ENHYPEN이 터프함을 강조하는 젝스키스의 ‘사나이 가는 길 (부제:폼생폼사)’을 하면, 2000년대 초반의 솔로 아티스트 파트에서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비의 ‘나쁜 남자’를, ENHYPEN이 SE7EN의 ‘와줘..’를 선보이며 두 팀이 상반된 이미지를 모두 잘 소화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중간에 다른 매력과 재미를 주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계속 한 이미지의 곡만 하면 두 팀의 대결 구도로 보일 것 같아 노선을 한 번 틀었어요. 이 무대의 핵심은 경쟁이 아닌 ‘우리가 다음 세대를 이끄는 ‘넥스트’가 될 거야.’라는 메시지이니까요.” 손성득 SP가 강조한 무대의 기획 방향은 2세대로 넘어가며 빅뱅의 ‘뱅뱅뱅 (BANG BANG BANG)’을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ENHYPEN의 멤버를 섞은 유닛으로 진행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두 팀의 대결 구도 대신 새로운 시너지와 매력을 나타낼 수 있는 멤버들끼리 특별한 무대를 꾸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손성득 SP는 모든 멤버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곡의 특징과 포인트를 분석해가며 각 파트에 최적화된 멤버로 채우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성훈이 힐리스를 타고 등장하며 시작되는 ‘와줘..’의 경우 “피겨스케이팅 경력 때문에 그를 선택했다기보다는 비주얼을 포함해 성훈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SE7EN의 데뷔 초 느낌과 겹쳐졌기 때문”이고, 흔히 ‘333’으로 불리는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 군무 파트의 센터는 “연준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눈빛과 카리스마로 중심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결정됐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ENHYPEN의 멤버들이 태어나기도 전인 1990년대부터 시작해 2000년대, 2010년대에 이르는 안무 스타일을 한 번에 소화하는 과정은 물론 쉽지 않았다. “이 친구들은 요즘의 트렌드에 맞게 고난이도 안무를 하며 자라왔기 때문에, 그동안 몸을 쓰던 방식과 달라서 오히려 옛날의 심플한 안무들을 어려워하더라고요.” 그래서 두 팀은 연습을 하며 이전 아티스트의 모니터링을 많이 하면서 그때의 감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손성득 SP는 “요즘 세대의 안무가들이나 댄서들도 사실 그 시대의 아티스트, 그 시대 무대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이 없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그 시절에 활동했던 안무가들을 모셔와 멤버들에게 레슨을 시키기도 했어요.”라며 커버 무대만의 특성을 설명했다. 무대가 공개된 뒤 ENHYPEN이 ‘사나이 가는 길 (부제:폼생폼사)’에서 선보인 깔끔하면서 에너제틱한 점프가 관객들 사이에서 언급이 되고, 부드러우면서도 절도 있는 춤선과 동작으로 ‘나쁜 남자’의 분위기를 살린 투모로우바이투게더에 대한 반응이 좋았던 것은 두 팀이 각 시대 무대의 전체적인 느낌부터 표정과 제스처의 디테일까지 직접 공부하고 이해해서 나온 결과다. 손성득 SP는 두 팀이 합동 퍼포먼스를 하며 무엇이 성장했는지 설명했다. “두 팀 모두 이번 합동 무대 준비를 하면서 무대와 퍼포먼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역량적으로 성장한 게 느껴지더라고요.”

 

‘Legend of K-POP’ 무대는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로 끝난다. 손성득 SP는 두 팀의 12명이 무대를 함께 꾸미는 모습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ENHYPEN 모두 데뷔 전부터 봐왔던 입장에서 이들이 선배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를 합동으로 해내는 게 뿌듯하면서도 고마웠어요.” 그의 말은 ‘Legend of K-POP’ 무대를 통해 두 팀이 오랜만에 무대를 보러 방송 현장에 모인 관객들에게 또는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연말 동안 각각 다른 방식으로 무대를 완성하던 두 팀이 한데 모여 과거로부터 그들의 세대까지 내려오는 무대의, 퍼포먼스의 힘을 보여주는 것. 손성득 SP가 그들을 보며 느낀, 그들이 선사한 무대의 힘처럼 말이다. “무대를 통해 자신들이 다음 세대를 대표할 것이라며 당차게 메시지를 던졌잖아요. 그렇게 훌쩍 성장했다는 게 실감이 나서 감동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