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의 답변은 때론 ‘플로버’로 귀결되곤 했다. 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드는 애틋하고, 고맙고, 기특하고, 미안한 감정 사이의 “우리한테는 플로버가 아무것도 안 해줘도 고마운 존재인데 그걸 알까?”라는 생각 때문에.
‘Talk & Talk’로 음악 방송에서 첫 1위 후 4개월 만에 컴백이네요.
이채영: 몸은 조금 힘들었지만 마음은 행복한 4개월이 아니었나.(웃음) 저희가 조금 긴 공백기가 있었어요. 그때 플로버가 진짜 많이 보고 싶었거든요. 플로버분들도 저희를 엄청 보고 싶어 했고. 콘텐츠로만 많이 만났는데, 이제 빨리 컴백을 하면서 앨범으로, 음악으로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2022 Weverse Con ’에서 잠시나마 팬분들을 만났죠. 앞줄에 앉은 플로버한테 팔 떨어지게 손 흔들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알아본 거예요?
이채영: 일단 저희를 보는 온도가 달랐어요. 다른 사람들은 여기도 봤다가 저기도 봤다가 하는데 저희를 진짜 뚫어져라 쳐다보시는 거예요. 그게 많은 분들 중에서도 딱 보였어요. 처음에는 플래카드를 내리고 계시다가 ‘소격동’ 커버 무대 때 프로미스나인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데 엄청 울컥하더라고요. 팬들끼리 다같이 으쌰으쌰 하는데 혼자밖에 없어서 외로웠을 수도 있는데 열심히 응원해줘서 엄청 애틋하고, 고맙고, 기특한 거예요.
‘2022 Weverse Con ’의 VCR은 긴 머리였는데, 무대에서는 지금의 중단발이더라고요.
이채영: 사실 제가 무대에서 앞머리가 있으면 컨트롤이나 고정도 잘 안 되니까 춤추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무조건 앞머리를 다 까고 하거든요. 그런데 플로버분들이 팬 사인회 때 요청을 너무 많이 해줘서 ‘그래. 내가 어떻게든 앞머리로 무대 한 번 하자.’라는 생각으로 큰맘 먹고 앞머리를 내렸어요. 그런데 중단발에 앞머리까지 있으니까 컨트롤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새롬 언니가 계속 중단발의 길이여서 언니한테 “이 친구(중단발 스타일)랑은 어떻게 친해져야 되는 거야?”라고 물어보니까 언니가 “넘길 거면 확 치고 아니면 안 쳐야 돼.”라는 거예요. 아직 친해져 가는 중인데 힘들어요.(웃음)
‘DM’에서 묶은 머리를 푸는 안무는 어땠어요?
이채영: 완벽한 상태로 나가도 신경 쓰이는데 풀어헤치면 어떻게 될지 몰라서 ‘괜찮을까?’ 했었어요. 한 번에 풀어야 되는데 남이 묶어주면 풀 수가 없어서 무조건 제가 묶고 풀어야 하고, 세게 묶어도 안 되고 안 튀어나오게 잘 묶어야 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한 번에 못 풀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니까 멤버들이랑 “그냥 머리 잡아 뜯어.”, ‘무조건 한 번에 풀자.” 하면서 완성시켰던 1초의 장면이었어요.(웃음)
‘원하는 건 딱 하나 모두 알잖아’ 부분은 작은 손가락 제스처만으로도 시선을 확 끌더라고요.
이채영: 제가 센터에 서 있고 멤버 4명이 저를 스포트라이트해주는데, 안무를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그 구간을 딱 잡아줘야 하는 파트라 고민을 많이 했어요. ‘원하는 건 딱 하나 너도 알잖아 다 티가 난다’는 걸 표현하면서도 앞에 지헌이가 자기 파트 끝나고 딱 저를 가리켜서 저도 제 파트 끝나고 지선 언니한테 딱 넘겨주는 제스처예요.
유닛 곡 ‘Love is Around’는 발라드 곡이라 부드러운 음색이 더욱 돋보여요.
이채영: 플로버분들이나 누가 들어도 ‘이 부분은 이채영이구나.’를 아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딱 저같이 부르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제가 말할 때는 낮은 목소리인데 노래 부를 때는 조금 하이 톤이라 사람들이 제가 노래 부르면 제 목소리인 줄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중저음의 목소리를 노래에 섞어서 말하는 목소리랑 노래 부르는 목소리의 갭을 줄이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평소에 말할 때도 열린 소리를 많이 쓰는데, 이걸 장점으로 살려서 저음이나 고음을 왔다갔다 할 때 막히는 게 없는 느낌을 내려고 했어요.
예전에 불렀던 ‘flaylist ‘태연 - Rain’이 떠오르네요.
이채영: 발라드풍의 노래를 좋아하기도 하고 제 목소리에 조금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노래를 부르면서도 좋아하는 태연 선배님이나 아이유 선배님을 생각하면서 부르는 것 같아요. 그리고 보컬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액팅이나 애티튜드도 많이 배워요. 고음을 똑같이 잘해도 나무처럼 서서 부르는 고음이랑 힘듦을 연기하면서 부르는 고음이랑 달라 보이잖아요. 그런거 하나하나 연기라고 생각해서 많이 봐요.
애티튜드적인 면에서 무대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이채영: 무대를 시작하면 ‘이 무대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니까.’라는 생각을 1번으로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사실 생각이 많아서 잘하고 싶은 무대일수록 ‘저는 별로인 것 같아요.’, ‘여기서 내가 이거 못하면 어떡하지?’ 이러면서 긴장을 하는데, 노래가 딱 시작하는 순간 ‘어차피 내가 책임져야 할 3, 4분이고, 내가 제일 예쁘고 제일 잘하면 돼. 괜찮아.’로 생각을 바꿔버려요.
그래서인지 의도치 않게 무대에서 방송 사고가 많이 나는 편인데도 무대에서는 전혀 티가 안 나더라고요.
이채영: 멤버들 사이에서 ‘사사’, 사건 사고 담당이라고.(웃음) 예전에 ‘LOVE BOMB’ 생방송 때였는데 똑딱이 단추 두 개만 달려 있는 랩스커트가 카메라 리허설, 드라이 리허설 때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밥을 먹어서 배가 나왔는지 생방송 시작하자마자 3초 만에 ‘탕’ 터져버린 거예요. 갑자기 딴 데를 보시는 분들과 입을 막고 ‘어떡해, 어떡해.’ 하시는 플로버 10분 정도의 얼굴이 아직도 슬로모션처럼 기억이 나요. 그래도 다행히 안에 인이어 팩을 넣는 바지를 입고 있어서 나름 마음에 안정이 됐었어요.(웃음) 그때마다 당황하지 않는 게 1번인 것 같고, 상황을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무를 안 틀리는 게 제일 중요해요. 안무를 안 틀리고 계속하면 시선이 분산되지 않기 때문에 ‘안무를 똑바로 추자.’라는 생각을 계속 해요.
연습생 때는 무대에 서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힘들어도 포기할 생각을 안 했다면서요.
이채영: 지금 다시 돌아가도 또 연습생 할 것 같아요. 너무 힘들었는데도 너무 열정이 있었고, 너무 하고 싶었어서. 데뷔를 안 해봤으니까 궁금했고, 빨리 무대에 서고 싶고, 더 열심히 하고 싶었고. 같이 연습했던 언니, 오빠, 친구들이 데뷔하고 잘되는 거 보면서 계속 불을 지폈던 것 같아요.
KBS ‘수취인불명’에서 연습생 자신에게 중고등학생을 그냥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이채영: 아무래도 지방에서 서울로 몇 년간 왔다갔다 하느라, 월말 평가가 겹치면 연습하느라 초등학교 때 말고는 수학여행을 못 갔는데 커서 보니까 그 추억이 너무 중요한 거더라고요. 그때는 월말 평가가 인생에서 너무 큰 거였고, 너무나 잘해야 되는 거였어서 연습에 집중하다 보니 수학여행이나 소풍은 못 갈 때가 많았거든요. 그래도 어린 나이에 데뷔를 해서 또래 친구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했다고 생각해서 후회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다만 그때의 친구들을 만나면 그 친구들만 가지고 있는 귀엽고 예쁜 추억들이 저는 없으니까 그게 조금 아쉬운 것 같아요.
예전의 힘들수록 숨기고 웃는 습관은 조금 바뀌었을까요?
이채영: 지금은 저만의 방법으로 해결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숙소 생활을 하면서 24시간 같이 있어서 그 안에서도 저만의 시간을 가지면 괜찮더라고요.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크게 들으면서 책을 읽고,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뭔가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해소되더라고요. 그리고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는 혼자 노는 것도 재밌더라고요. 혼자서 영화관에서 하루에 두세 편씩 볼 때도 있고, 사람 엄청 많은 맛집에서 다 친구들이랑 밥 먹는데 혼자 넷플릭스 켜놓고 이어폰 꽂고 라면 먹으러 가고, 혼자서 하루 종일 쇼핑할 때도 있어요.
연습생 때는 서울로 몇 년간 왔다갔다 하느라, 데뷔하고는 숙소 생활을 하다 보니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겠어요.
이채영: 그래도 언니들이랑은 영혼의 단짝 같고, 엄마랑 언니들이랑 네 자매 같은 느낌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가깝게 지내서 전화나 영상 통화도 거의 매일 하고, 단톡방도 매일 활성화되고, 오늘 의상도 뭐 입었는지 꼭 사진 찍어서 보내줘야 돼요. 그리고 조카가 있는데 제가 또 ‘조카 바보’라 너무 예뻐서 하루에 한두 번은 꼭 얼굴을 봐야 해서 영상 통화를 매일 해요. 조카를 만날 때는 아기들은 노는 걸 좋아하잖아요. 걔네가 ‘아’ 할 때 전 ‘와아아악’ 해야 주도권을 제가 쥐고 갈 수 있기 때문에, 더 정신없이 해서 정신을 빼놔요. 그리고 체력이 지치지 않아야 하죠. 저도 저녁쯤 되면 많이 지치긴 하는데 그래도 귀여워서 좋아요.(웃음)
멤버들과는 24시간 같이 있어서인지 항상 멤버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 같아요.
이채영: 저는 제가 사람을 집중해서 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멤버들이 저한테 사람한테 진짜 관심이 많다고, 우리 엄마도 모르는 걸 네가 알고 있다고 그러는 거예요. 사람을 좀 유심히 보는 성격인 것 같아요. 카페에 가도 옆 사람이 계속 볼펜을 ‘딸깍딸깍’거리면 저 사람 습관인가보다 하는 식인데, 저희 엄마도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엄마 닮았나 보다.(웃음) 그리고 촬영할 때는 누가 말을 많이 안 했나를 생각하고 있는 걸 거예요. 에너지가 큰 친구들이 여러 명 있고 그중 한 명이 저라 콘텐츠가 너무 치우쳐도 안 되고 저희가 너무 죽어서도 안 돼서 항상 책임감을 가지고 배분을 잘하려고 해요. 그래서 방송이니까 다 같이 말을 할 수 있도록 말을 너무 안 한 멤버가 있다면 “그러면 서연이가 말해보자.”, “규리 언니는 어때?” 이런 식으로 말 걸어요. 멤버들끼리도 “에너지 좀 서로 나누자.” 하면서 많이 노력하는 편이에요.
몰랐던 채영 씨의 또 다른 모습이 있나요?
이채영: 전 몰랐는데 멤버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제가 사진을 고르는 기준이 엄청 엄하대요. 살짝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탈락!” 이래서 제가 사진 찍어달라고 하는 게 제일 무섭대요.(웃음) 제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 다 똑같은 사진밖에 없어서 요즘은 조금 더 다양한 구도에서 자연스러움도 있어야 한다는 걸 인식하고 너무 예쁘게 나와야 한다는 강박을 깨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멤버들과 콘텐츠와 관련한 대화를 자주 나누는 편인가요?
이채영: 저희가 멤버들끼리 하는 콘텐츠를 가장 많이 하고, 멤버들이 서로 친하다 보니까 초창기에는 재밌게 하려고 선을 아슬아슬하게 탄 적도 많았어요. 그래서 저희끼리 촬영할 때마다 모여서 ‘그런데 우리 이렇게 하는 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우리 내부 콘텐츠니까 괜찮았지만 외부라면 어땠을까?” 이런 식으로 터놓고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조절하다 보니 서로 더 단단해지고 합이 잘 맞아졌어요. 재미도 서로 재밌어야 재밌는 거지, 저만 재밌다고 재밌는 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웃길 때도 짧은 순간이지만 ‘이 친구도 웃길까?’ 하면서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고 멘트를 하는 것 같아요.
‘CHANNEL_9’ ‘fashion_9 for 2041’에서 아이라인한 박지원 씨한테 “보물이야 언니.”라고 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이채영: 멤버들이 워낙에 잘해서 진정성 있게 나오는 ‘찐텐(진짜 텐션)’이라 해야 하나.(웃음) 멤버들이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걸 보면 너무 예뻐서 나오는 리액션이에요. 그런 성격이 아닌데 다른 멤버들이 열심히 하니까 용기 내서 ‘나도 해볼까?’ 하는 게 보이면 너무 예쁜 거예요. 그럴 때마다 고마워서 용기 주려고 “보물이네.”, “잘했네.” 이런 식으로 멘트를 많이 해요.
1주년 브이라이브에서도 서로밖에 없다고 느꼈다며 앞으로도 서로 의지하자고 이야기했잖아요.
이채영: 연차가 쌓일수록 서로밖에 없다고 더 느끼는 게 주변에 좋은 얘기를 해주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저희한테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니까 무서워지더라고요. ‘이러다가 내가 정말 실수하고 있는데 모르면 어떡하지?’, ‘아무도 얘기를 안 해주면 어떡하지?’ 싶어서요. 그런데 멤버들이 서로를 잡아주고 얘기를 해주니까 ‘진짜 우리끼리 똑바로 잡아줘야겠구나, 뭉쳐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맨날 숙소에서 저희끼리 놀고, 나가서 놀아도 멤버들 만나서 노는 게 제일 재밌어서 또 우리밖에 없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날 ‘플로버’라는 팬덤명이 처음 공개되기도 했죠.
이채영: 플로버는 저희를 만들어주고, 계속 서포트해준 너무 고마운 사람이잖아요. 너무 힘들 때도 플로버를 찾아가요. 바로 위버스 가서 굳이 힘들었다고 얘기하지 않아도 “그냥 뭐해요?” 하면서 굳이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힐링을 얻어요. 그리고 플로버는 다 저를 너무 사랑해주고 뭐 했다고 해도 “그랬어? 너무 잘했네.” 하면서 칭찬으로 연결이 돼요. 내 존재만으로도 사랑해주니까 이것만큼 고마울 수가 없고, 한 분 한 분 무언가를 해드릴 수 없는 게 그저 너무 미안한 거예요. 그래서 ‘언젠가 뭔가를 해주고 싶다.’,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라고 늘 생각해요. 어떤 게 될지,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제 힘으로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머릿속에 해요. 그리고 우리한테는 ‘플로버가 아무것도 안 해줘도 고마운 존재인데 그걸 알까?’라는 생각을 하죠.
그때가 1주년이었는데, 이제 4주년이 되었어요.
이채영: 열여덟 살에 데뷔를 해서 벌써 스물 세 살이 됐는데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생각이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어떤 사람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고, 사람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의 성장한 모습에 조금은 만족을 하게 되었을까요?
이채영: 너무 부족해요. 한참 부족해서 계속 열심히 성장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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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미스나인 Other Cuts2022.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