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은 타고나길 차분한 성격이라 말했고, 때로 카메라와 낯을 가린 적이 있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여러 사람 앞에 나서야 하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아무래도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게 제일 좋았어서요.”
인터뷰 직전 화보 촬영을 했어요. 오늘 촬영은 어땠나요?
이서연: 고풍스러운 호텔인데, 형광색 의상에 힙한 무드로 찍어서 색다르고 재밌었어요. 정적인 느낌의 촬영을 많이 해왔는데, 오늘은 걸어다니며 로비 한가운데에서 최대한 멋있는 척을 해봤어요.(웃음)
새 앨범의 콘셉트 포토 ‘Before Midnight’과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네요.
이서연: 콘텐츠 찍을 때 드레스를 입어봤지만, 제대로 촬영 때문에 차려입은 건 처음이었어요. 다들 맨날 보는 멤버인데 조금 낯설더라고요. 최대한 우아한 표정을 지어봤는데(웃음) 무표정에 분위기를 담는 게 힘들어서, 사진이 다 똑같이 나오면 어쩌나 걱정도 했어요.
‘After Midnight’ 콘셉트에서는 어떤 표정을 담으려 했나요?
이서연: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진이 약간 놀란 표정이거든요. 사실 담장을 육안으로 보고 ‘괜찮네.’ 하고 앉았는데, 생각보다 높은 거예요. 무서운 표정을 지으라고 하셨는데 정말 리얼한 표정이었어요.(웃음) 이번 콘셉트 포토는 멤버마다 이미지가 뚜렷해요. 예를 들어 지선 언니는 보부상처럼 짐을 이만큼 들고 탈출하고, 다른 멤버들은 힘들게 기어서 간다면, 저는 “여기 개구멍 있는데?” 이런 식이죠.(웃음) 각자 캐릭터가 잘 살아 있고, 우리도 이런 게 점점 뚜렷해지는 것 같아 재밌었어요.
타이틀 곡 ‘DM’에서도 각자의 매력이 살아 있어요. 서연 씨의 음색이 인상적이던데요?
이서연: 처음 들었을 때는 약간은 무게감이 있는 곡이라고 생각해서, 저음을 살려보면 어떨까 하고 디테일하게 연습했어요. 사실 저는 춤을 추거나 녹음할 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어.’ 이런 생각으로 하거든요. ‘거울 속의 난 So perfect’라는 가사가 있는데, 녹음도 웃으면서 했어요. 자아도취 이런 게 많았던 것 같아요.(웃음)
서연 씨의 그 파트는 안무에서도 제스처가 돋보이죠. ‘DM’의 안무를 준비하는 건 어땠나요?
이서연: 멤버마다 춤선이 다른데 그걸 잘 보여줄 수 있는 안무였고 선을 쓰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로웠어요. 춤이 딱 보면 살랑살랑해 보이는데 추는 입장에서는 역대급으로 힘들더라고요. 강약을 줘야 하는 포인트가 많아 온몸에 계속 힘을 주고 있어야 해요. 한 번만 춰도 끝나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더라고요.
‘DM’은 선이 강조된다면, ‘Escape Room’은 조금 더 힙하다거나 그루브가 가미된 느낌이 있어요.
이서연: 제가 해왔던 무드들이 있는 춤이라서 반가웠고, 안무 선생님이 최대한 중성적으로 동작을 크게, 힙하게 춰달라고 하셨어요. ‘Escape Room’을 처음 받았을 때 우리도 이런 곡이 수록될 만큼 성숙해졌다는 생각이 들고, 일단 제 취향의 곡이라 너무 기뻤어요. 파트도 마음에 들어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연습했고요. 애드리브 녹음할 때는 조금 오글거렸는데(웃음) 멋있게 잘 나와서 뿌듯해요.
‘Hush Hush’에서도 힙한 무드가 서연 씨 보컬에서 잘 묻어나는 듯해요.
이서연: 제가 곡 작업에 참여해서 제 창법이 많이 묻어 있어요. 파트가 많아 녹음 시간이 오래 걸리겠구나 했는데, 처음으로 수정 녹음도 안 하고 한 30분 만에 끝났던 것 같아요. 지원 언니와 보컬 디렉팅에도 참여했는데, 멤버들에게 감동 받았어요. 다들 “이렇게 불러볼까? 한 번 이렇게 해볼게. 어때?” 이런 질문도 많이 하고 열심히 해주는 게 보여서 고마웠어요.
직접 참여한 곡이라 애정이 클 텐데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이서연: 지원 언니랑 평소에 작업을 많이 해오다 보니 의견도 잘 맞고 어려움도 없었어요. 지원 언니랑 ‘척하면 척’ 이런 게 있는데, 처음으로 둘이 쓴 곡을 수록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분이 좋아요. 가사를 어떻게 쓸까 하다 새벽에 탈출해서 밖을 돌아다니는데, 아무도 없는 적적한 도시를 우리들만의 놀이터로 삼으면 어떨까 했죠. 그런데 지원 언니가 어느 날 새벽에 가사를 쓰다 잘 안 풀려서 혼자 한강을 다녀왔다는 거예요. 그럼 ‘나도 놀이터나 다녀올까?’ 하고 괜히 집 앞 놀이터에 가서 그네도 타봤는데, 추워서 금방 들어왔어요.(웃음)
곡을 작업하는 서연 씨만의 스타일이 있을 듯해요. 보통 어떻게 접근하는 편이에요?
이서연: 예전에 ‘물들어’는 듣자마자 사랑스럽고 살랑살랑 설레는 곡이라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린 거였어요. 원래는 그렇게 작업했는데 계속 하다보니 쥐어짜게 되고 힘든 방법이더라고요. 그래서 키워드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는데 좋은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탈출’, ‘일탈’, ‘사다리’, ‘놀이터’ 이렇게 타고 가며 단어를 생각했어요. 엄마가 시를 쓰셔서 여쭤보고 도움을 받을 때도 있고, 진짜 안 써질 때는 책을 펼쳐서 보다가 예쁜 단어를 찾기도 해요. 그리고 제가 탑 라인(topline)을 쓰는데, 이제 제 방식처럼 자리 잡은 게 있어요. 저희 곡이니까 파트를 속으로 정해놔요. “여기는 지선 언니가 부를 거야” 하면 ASMR을 하듯 조곤조곤 부르듯이, “여기는 규리 언니가” 하면 엄청 가성으로 만든다거나 해요. 워낙 저희 멤버가 다 뚜렷해서, 멤버들을 생각하면 빨리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음악 작업은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서연: 제가 밖에 나가서 노는 성격은 아니라 항상 숙소에만 있는데, 취미가 없다 보니 할 게 없는 거예요. 기타 치면서 곡을 써봤는데, 제가 원하는 곡을 쓰기엔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혼자 연습실에서 저작권 없는 트랙을 받아 곡을 써보며, 장비도 하나씩 사고 혼자 쿵짝쿵짝 거리면서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제대로 해보라고 하셨는데, 일이 되면서 또 취미가 사라지고.(웃음)
이전부터 취미를 찾는 게 취미라고도 했는데(웃음) 아직 현재 진행형인가요?
이서연: 제가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는 것까지는 아닌데, ‘해보자!’ 이런 마음이 잘 안 들더라고요. 저는 세상에서 취미 찾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웃음)
그렇지만 일에 대해서는 도전하고 싶은 게 많아 보여요. 음악적인 목표가 있다면요?
이서연: 취향만 보면 힙한 느낌이 가미된 곡을 좋아해서, 라틴이나 뭄바톤도 엄청 좋아해요. 언젠가 프로미스나인이 여름에 들고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초반에는 그냥 하고 싶은 곡들을 쓴 거라 프로미스나인과는 안 맞는 곡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믹스테이프처럼 꾸려서 옛날 곡들도 들려드리고 싶어요. 언젠가 정규 앨범이 나오게 된다면 저희 곡들로 채워서 발매하고 싶은 목표도 있어요.
음악만큼 무대에도 욕심이 많을 듯해요. 최근 ‘2022 Weverse Con’을 통해 오랜만에 플로버를 보기도 했죠.
이서연: 저희가 ‘FUN!’ 활동 때 이후로 팬분들을 못 뵈었어요. 비록 박수밖에 못 치시지만 계시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더라고요. 팬분들이 없으면 리허설하고 무대가 끝나는 느낌인데, 이번에 ‘와 이게 무대구나.’ 싶었어요.
연습할 때의 마음가짐도 달랐을 것 같아요.
이서연: 네. 무대 앞에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시고 실시간 방송으로도 나가니까요. ‘Feel Good (SECRET CODE)’에서 처음으로 소품을 활용해 춤을 췄는데, 놓치면 큰일 나니까 실수 안 하려고 새벽까지 열심히 연습했어요. ‘WE GO’ 댄스 브레이크는 제가 센터에서 시작하고 마무리해야 하는 걸 배우면서 알게 됐는데, 무서운 거예요. 전에는 그런 식으로 해본 적이 없었는데, 연습실이랑 무대 바닥이 엄청 달라서 부츠를 미리 신고 연습할 수 있게끔 부탁드려서 연습했어요. 리허설 때도 ‘여기를 어떻게 더 해보자.’ 이런 노력도 많이 했고요. 그럼에도 ‘WE GO’는 뭔가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끝나고 나서 아쉬웠던 것 같아요.
굉장히 완벽주의자인 듯한데요.(웃음) 유튜브 ‘Channel_9’에서 멤버들이 서연 씨의 주사가 청소라고 한 게 떠올라요.
이서연: 사실 채영이가 재미를 위해서 얘기한 것도 있는데(웃음) 청소는 숨 쉬듯이 하는 편이라 주사라고 하기가 그래요. 눈에 보이면 치워야 하고, 저는 설거지 싱크대도 젓가락 한 짝이라도 남아 있으면 안 돼요. 여행 갔다 오면 캐리어도 바로 비워요.
일과 생활 모든 면에서 철저한 것 같네요.
이서연: 성격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들과 살 때는 주변에서 어느 정도 해줬는데, 숙소 생활을 하면서는 저 혼자 해야 할 게 많아지니 부지런해진 것 같아요. 또 엄청 계획적이게 됐어요.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려고 내일 일정에 맞춰 옷이랑 가방을 챙겨놓고 머리맡에 두고 잠드는 편이에요. 최대한 계획을 다 짜놓고 자요.
그런 면에서 여러 멤버들과 지내고 함께 활동하는 건 어떤가요?
이서연: 이제 4~5년째 보니까 서로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룸메이트인 채영이도 “그래도 널 위해서 많이 깨끗하게 지내려고 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멤버들 덕분에 많이 밝아지고 말도 많아진 것 같아요. 예능 프로그램 같은 스케줄이 있으면 혼자 나가는 게 아닌데도 부담이 있어, 미리 더 찾아보기도 했었어요. 원래 멘트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 했는데, 멤버들이 무안하지 않게 ‘우쭈쭈’ 하며 “우리 서연이 말해.” 이런 식으로 해주거든요. 그러다 보니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가는 느낌이에요. 멤버들 덕분에 ‘나도 많이 성장했구나.’라는 생각을 가끔 해요.
그래서인지 ‘Channel_9’ 속의 서연 씨는 편안해 보여요.
이서연: 인터뷰할 때 제가 카메라에 낯을 가려서 숨어 있어도 이해해달라는 말을 했었어요. 그런데 멤버들이랑 같이 한두 편 찍고나니 낯도 안 가리고 편하게 하게 되더라고요. 최근에는 ‘런닝나인’에서 막 뛰어다니고 쫓겨다니며 보물 찾는 게 있었거든요. 몸으로 하니까 더 재밌게 했어요. 무엇보다 다들 진심이어서.(웃음)
또래인 멤버들에게 의지되는 면이 있겠어요.
이서연: 힘들거나 고민이 있으면 새롬 언니나 지선 언니처럼 언니인 멤버들에게 찾아가는데, 동갑인 친구들에게는 공감을 구하고 싶을 때 가더라고요. “나 이랬어. 나 이런 일이 있었어.” 하고 어리광 부리고 싶을 때는 나경이, 채영이를 찾아가는 것 같아요.
서연 씨의 고민에는 어떤게 있었을까요?
이서연: 지난해에는 뭐든 할 때마다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팔랑귀까진 아닌데 결정을 잘 못해서, 막 멤버들한테 “이거 어때?”, “어떻게 생각해?” 하며 물어보거든요. 사소한 건데 밥 먹을 시간이 30분인데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밥을 못 먹기도 하고, 일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곡을 쓸 때 곡의 키워드나 방향성을 정하는 것도 오래 걸렸거든요. 제가 효율을 많이 따지는데, 그렇게 한 해를 보내니까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말자는 다짐이 생겼어요. 2022년 스물세 살은 더 효율성 있고 똑똑하게 지내보고 싶어요.
그럼 프로미스나인으로 이루고 싶은 올해의 목표가 있나요?
이서연: 소소한 목표인데 요즘 쉴 틈 없이 일을 하다 보니, 아무도 안 아프고 건강하게 활동하면 좋겠어요. 컴백하고 많이 비춰지는 게 당연히 목표이지만, 누가 아파서 빠지면 슬프잖아요. 지나고 보니 ‘Feel Good (SECRET CODE)’ 때의 아쉬움이 큰 것도 있고요.
플로버에게 언제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도 있겠어요.
이서연: 이유 없이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잖아요. 위버스를 열기만 해도 “오늘도 힘내, 고생했어.” 이런 말들이 꼭 있는데 그걸 보면 힘이 나요. 그래서 저희도 팬들도 아무도 아프지 않고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플로버와의 2022년은 어떤 한 해가 될까요?
이서연: 멀게 느껴지지 않는, 가까운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요. 저는 원래 ‘감성샷’ 같은 걸 올리는 편이 아닌데, 갑자기 길 가다가 하늘이 예뻐서 사진 찍으면 괜히 올리고 싶어서 위버스에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곡 작업도 제 일부라 생각해서 좋은 노래를 많이 들려주고 싶어요. 곡이 저의 생각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서요. 자주 소통하고 싶고, 제일 많은 걸 공유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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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미스나인 Other Cuts2022.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