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이 채 가깝지도 않았던 시절의 H.O.T가 ‘We Are The Future’라고 외쳤을 때, 그들은 아이돌 팝에 정말로 도래할 ‘바로 그 미래(the future)’가 무엇인지를 들려주려 했다. 사운드상의 재료들과 장르상의 문법들이 한 트랙 안에서 각기 다른 시공을 점유하도록 과다하게 빼곡히 집어넣는 것이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아이돌 팝의 작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 부품들을 갈아 끼워가며, 다양한 구간들이 한꺼번에 충돌하는 양식이 보편화된 ‘바로 그 미래’로 향하고자 했을지 모른다. 사반세기가 지난 뒤, ‘We Are Future’라는 외침과 함께 미래소년이 나타났고, 아이돌 팝이 그토록 바라왔던 ‘미래’는 이미 동시기 한국의 주류 댄스 가요의 ‘표준’이 되어 차차 퍼져 나가고 있었다. 25년 전에 덜컹거리면서 착상된 기법이 어느덧 잘 빠진 정석이 된 현 시점에서, 미래소년은 ‘바로 그 미래(the future)’에 찾아온 무수한 미래상들 중에서 ‘하나의 미래(a future)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미래는 이렇게 찾아온다. 첫 EP인 ‘KILLA’의 ‘Higher’에서 멤버들이 각 마디를 부를 때마다, 뒤편에 깔리는 비트는 스와이프라도 하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비트를 전환한다. 자잘하게 찰칵거리는 투 스텝에서, 부르르 떨며 딸깍거리며 ‘헤이!’ 하는 샘플까지 삽입된 트랩을 지나, 페스티벌 무대에서 울려 퍼질 만한 브라스 빌드업을 타, 고전적이게 덜커덕거리는 브레이크 비트를 잠시 뚫어, 마침내 뭉툭하게 부푼 신스 음에 디스코 현악이 스치고 지나가는 하우스에 닿는 여정이 한 줄기의 흐름으로 펼쳐진다. 2010년대 중후반 이후의 아이돌 팝이 종종 지나온 여러 스타일들 중에서 미래소년에게 가장 어울리는 하나를 찾기 위해 그 진열장을 거니는 듯한 이 도입부가 그러한 선택에 닿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덩치 크고 두꺼운 신스 음은 아이돌 팝이 3세대로 접어들며 장르의 활용이나 특정한 음색 등에 있어 몇 년의 시차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현대화’되기 직전, 2010년대 극초반에 강하게 결부될 수 있으니 말이다. 당시의 영미권 주류 팝에서 종종 과하게 ‘미래적인’ 이미지의 팝스타들이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이러한 사운드는 같은 시기의 2세대 아이돌 팝을 상징할 수 있을 만한 정도로 이식되기도 했으며, 아이돌 팝이 막 접어들던 새로운 전성기의 비전과 알맞게 맞물렸다. ‘KILLA’의 첫 절반에서는 그런 10년 전의 번쩍이는 미래상이 자신 있게 현재로 옮겨진 셈이었으며, ‘미래’라는 이름이 허언이 아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두껍고 굵은 신스 음이 쥐고 펴기를 반복하며 정박으로 박히는 특유의 웅장한 사운드는 바로 그 시기부터 ‘미인아’와 ‘Lucifer’를 비롯해 ‘NEVERLAND’나 ‘잘해줘봐야’ 등 2세대적인 히트 곡을 여럿 제작해온 라이언 전과 후대 작곡가로서 유사한 사운드를 새로운 아이돌 팝의 지형에 맞춰 ‘종소리’나 ‘Superhuman’ 등에서 십분 발휘해온 TAK이 참여한 ‘We Are Future’와 ‘KILLA’에서 유감없이 나타난다. 이것이 현 시점과 크게 어긋나게 않게 느껴지는 건 애초에 해당 사운드가 2021년에 맞춰 조정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멤버들 간의 역할 분배가 더욱 전문화되었고, 두껍게 쌓인 화성이 그 기량을 발휘하며, 자칫 과하게 튈 수 있는 신스의 음색조차 다듬어진 덕일 테다. 동시기의 양식에 충실한 후반 수록 곡에도 불구하고, ‘KILLA’의 앞쪽 절반은 10년이 넘어가는 과거의 일부를 열심히 복각해오면서도 해당 시간대에 머물러만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특유의 통합력으로 다양한 시간대상의 조각들을 한 트랙에 모아버릴 수 있는 팝의 힘은 아이돌 팝에서도 강력하게 작용하지만, 미래소년은 ‘인공적인 과거’를 의존적으로 재현하기보다 SF적인 이미지가 떠도는 뮤직비디오처럼 ‘인공적인 미래’를 그리는 재료로 소리 속의 과거를 사용해 이 난제를 돌파한다.

 

물론 아이돌 팝의 주요 레퍼토리들이 다져진 현 시점에서 ‘KILLA’와 같은 트랙만을 경력 내내 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덕분에 두 번째 EP인 ‘Splash’에서 이 사운드는 10년 전을 단정적으로 지시할 수 있게 나타나기보다, 정석적인 조합과 전개의 트랙들 틈새 속에 스며든다. ‘Splash’의 경우에도 EP의 첫 절반에서 그러한 단서들을 찾아낼 수 있다. 각 구간들이 드롭으로 향하게 구성된 ‘Splash’에서는 브리지의 화성이 맥시멀하게 부풀려졌고, 딥 하우스와 트랩 간의 접합을 선보이는 ‘New Days’에서는 저음부의 배경에 직전 EP에서 마주쳤던 사운드들이 군데군데 배치됐다. 타이틀 곡인 ‘Splash’보다도 더 화려하게 난장을 펼치는 ‘Bang-Up’의 경우, 수심 깊은 곳부터 부리나케 부글거리는 드롭이나, 동표와 카엘 그리고 준혁이 발음을 과장하며 랩을 뱉는 후렴구 같은 구간에는 EDM적 쾌감에 집중하는 여러 보이 그룹들의 재미난 특징들이 한꺼번에 담겨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새 EP ‘Marvelous’에서는 미래소년의 ‘미래’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음반의 첫 절반을 다시 비교하면, ‘Future Land’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에 나타났던 외마디 신스 음이 금세 펑키한 비트 뒷면에 가려지고, 언제나 유행 상태인 것만 같은 디스코 팝인 ‘JUICE’가 이전의 사운드를 끼워 넣어보기에 트랙의 필수 요소들을 빈틈없이 갖춘 것을 생각하면, 확률은 좀 더 낮아 보인다. 그에 비해 ‘Marvelous’는 전면에 부각된 랩과 화성·멜로디에 집중한 후렴구를 묵직한 백 비트로 엮으며 여지를 좀 더 마련해준다. 두 구간의 이음매에 복선처럼 ‘굵고 두꺼운 신스 음’이 깔리고, 이것이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후렴구가 나타나기 전의 브리지 구간에서 덥스텝의 충격파를 머금고 되돌아올 때, 꽉 찬 에너지가 옅어졌음에도 사운드의 존재감은 확연히 드러난다. 미래소년의 경력이 자리 잡아 갈수록, 가장 처음에 강렬하게 드러났던 특징들은 이런 균등화와 표준화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스며든다.

 

처음에 잠시 말했듯, 아이돌 팝이 25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스스로를 개량시켜오고, 특히나 한 세대의 활동 경력을 거뜬히 차지하는 지난 6~7년 동안 그 스타일이 거의 정착된 상태에서, 새로이 데뷔하는 팀들에게는 이제 첫 시작부터 적용 가능한 일반적인 규격들이 마련되어 있다. 미래소년이 세 장의 EP를 내는 동안의 변화가 흥미로운 것은 2021년에 데뷔했던 남성 그룹 중 가장 두드러지는 사운드를 아이돌 팝의 과거에서부터 길어왔지만, 깔끔하게 업그레이드된 랩이 잘 빠진 트랙들에 맞물려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는 정반대로, 데뷔 EP의 개성적인 음색이 전체적인 음색 안쪽으로 빠르게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KILLA’에서 사뭇 불균등하기도 했던 양식상의 차이가 이렇게 균형을 잡아가 ‘Marvelous’에 다다랐다. ‘KILLA’나 ‘Bang-Up’처럼 특출한 한두 개의 트랙에 꽉꽉 담아진 미래소년만의 몸집 큰 사운드는 이제 정돈된 채로 모든 트랙에 슬슬 흩어진다. ‘미래’가 이렇게 봉합되고 나서야, 멤버들은 언젠가 ‘청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태를 띤 ‘소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Marvelous’의 후반부에 위치한 두 트랙인 ‘소름’과 ‘일곱 페이지’에서는, 미니멀하게 찰칵거리는 비트가 깔리자 각자의 방식으로 규모와 강도를 누그러뜨려진 신스 음이 세련된 외피를 입고 등장한다. 작년에 발매되었던 미래소년의 가장 짜릿한 트랙들을 생각해보면 꽤나 묘한 일이다. 미래소년의 ‘미래’가 어느새 아이돌 팝에 찾아온 ‘바로 그 미래’의 많은 트랙들과 닮은 채 어깨를 견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 믿는 ‘바로 그 미래’가 마침내 도착하면 모든 것들이 전부 한 방에 바뀌어버릴 것이라 기대하는 것과 다르게, ‘하나의 미래’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 이미 찾아와 있다. 미래소년의 소속사인 DSP미디어가, 대성기획 시절의 1980년대 후반 댄스 가요부터 아이돌 팝이 ‘현 세대’로 본격 돌입하기 직전인 2010년대 초반까지 동시기와 철저히 발맞추고자 했던 것을 염두에 두면, 미래소년의 뒤섞인 과거와 미래가 차차 풀어져 ‘현재’가 되어버린 것도, 시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다. 그럼에도 거기서도 미약하게 남아 있는 ‘하나의 미래’들을 분명히 찾아낼 수 있다.

글.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사진 출처. DSP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