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20일 밤, 서울의 한 소년 보호시설에서 소년범 11명이 화재경보기를 작동시켜 자동잠금장치가 풀린 사이 도주했다. 7명은 이튿날 시설로 복귀했고, 2명은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기물 파손과 절도를 저지르고 도망치다 나흘 만에 붙잡혔다. 나머지 2명 역시 1주일 만에 검거됐다. 한 달 뒤, 이 사건을 보도한 ‘국민일보’는 “범죄 영화 보는 듯… 서울서 소년범 11명 탈주극”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것은 “소년법은 무조건 폐지가 답이다.”, “범죄자들이 교화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답답하다. 쟤네는 크면 더 악랄한 범죄자가 될 뿐이다.”였다. 그다음으로 가장 많은, 1,000개 가까운 ‘공감’을 얻은 댓글은 다음과 같다. “전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 주인공 심은석(김혜수)의 대사다.
심은석은 소년범을 혐오해서 소년부 판사가 되었다. 촉법소년(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고 최대 소년원 2년의 보호처분만 가능한 나이)이었던 초등학생들의 장난으로 인해 아이를 잃었기 때문이다. 반면, 가정 폭력으로 인해 소년범이 되었던 차태주(김무열) 판사는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소년범들을 헌신적으로 지원한다. 그들의 상사 강원중(이성민) 부장판사는 정치적 야망만을 좇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법제도 안에서 소년범죄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의지가 강한 인물이다. 강원중의 후임 나근희(이정은)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소년 형사합의부에서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 관료적 통제 방식을 선택하지만, 결국 그로 인한 맹점을 깨달은 뒤 반성한다. ‘소년심판’은 각기 다른 신념을 지닌 4명의 판사, 그중에서도 소년범과 관련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심은석을 중심으로 여러 소년범죄 사건을 그려낸다. 그리고 소년범을 혐오한다고 말하면서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몸을 던지고 판사의 권한 너머 수사 영역까지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던 심은석은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입장을 다시 정립한다.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중략) 싫어하고 미워할지언정 소년을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싫어하고 미워할지언정 처분은 냉정함을 유지할 겁니다. 싫어하고 미워할지언정 소년에게 어떠한 색안경도 끼지 않을 겁니다.”
즉 ‘소년심판’의 핵심적 메시지는 소년범죄에 관한 사회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가정이 그리고 환경이 소년에게 영향을 끼치는 건 사실이나 다양한 선택지 중 범죄를 택한 건 결국 소년입니다.”라고 준엄하게 질책하던 심은석은 이어 강조한다. “소년은 결코 혼자 자라지 않습니다.” 소년범을 향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 인식이 전자에 가까웠다면 후자는 소년의 보호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을 향한 문장이다. 다만 이 작품이 말하려 했던 것과 남긴 이미지 사이에는 미묘한 간극이 있는 듯하다. ‘소년심판’의 처음과 마지막에 다루어진 초등생 살인 사건과 벽돌 투척 살인 사건은 공교롭게도 둘 다 촉법소년과 연관되어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소년법 폐지 논란을 촉발했던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고, 드라마에서는 벽돌 투척 살인 사건 범인들이 제대로 교화되지 않은 결과 집단 성폭행과 불법 촬영 및 유포를 저지르는 악인으로 성장했다는 설정이다. 실제 소년범죄의 다수를 차지하는 사건이 생계형 비행이며 폭력의 강도가 과거에 비해 더 세지거나 잔혹해진 것은 아니라는(천종호,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현직 판사의 증언은 “아이들의 범죄가 언론을 통해 흉폭하게만 그려지고 있어. 소년법의 초점은 교화야.”라는 강원중의 대사와 궤를 같이하지만, ‘소년심판’은 바로 그 드물게 흉폭한 범죄 사건을 선택해 대중에게 강렬한 서사로 전달했다는 면에서 딜레마에 부딪힌다.
앞서 언급한 소년 보호시설 도주 사건 기사에서 또 하나 눈에 띈 댓글은 다음과 같다. “이래서 내가 네들을 혐오하는 거야. 갱생이 안 되니까. 진짜 ‘소년심판’ 대사가 다 적용되네. 크으~” ‘소년심판’ 초반, 시설 처분이 끝난 소년들과 판사들의 식사 자리에서 다른 손님의 지갑을 훔친 소년에게 심은석이 내뱉었던 말이다. 심은석은 그 후 여러 사건을 겪으며 변화하지만, 문제는 이처럼 소년범을 향한 혐오의 대사만이 ‘사이다’ 밈(meme)으로 떠돌며 색안경을 강화한다. 기사에서 ‘범죄 영화’ 같다고 표현한 소년 보호시설 소년범 도주 사건은 이미 ‘소년심판’에 등장한 바 있다. 청소년회복센터를 헌신적으로 운영하는 오선자(염혜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일어난 틈을 타서 소년들은 우르르 도망친다. 돈도 없고 갈 곳도 없는 그들은 이내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 심은석의 말대로 소년범죄는 “저지르는 게 아니라 물드는 거”다. 대다수 소년범은 가정 폭력-아동 학대-소년비행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환경 안에서 만들어진다. 서울가정법원에서 소년 보호 재판을 맡아온 심재광 판사는 말한다. “소년 스스로 노력을 게을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년의 의지만으로는 환경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소년이 아무리 바뀌어도 소년이 돌아간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비참한 결론은 되풀이된다.”(‘소년을 위한 재판’ 중에서) 그러니까 소년의 삶은 장르 영화 같은 것이 아니다.
소년원에서 1년간 국어 수업을 진행한 경험을 담아 ‘소년을 읽다’를 집필한 서현숙 작가는 “가해자인 소년을 영원히 가둘 수 있다면 그저 가두면 된다. 가두는 것만으로 죗값을 치르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는 곧 우리의 이웃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무엇보다 영혼을 지닌 하나의 존재로, 우리 곁에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죗값을 치르는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하는 까닭이다.”라고 말한다. ‘싹수가 노란’ 아이들이니 영원히 가두어버리자는 말은 쉽다. 그러나 그럴 수 없으니 그 ‘너머’를 상상하고 실현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소년심판’의 홍종찬 감독은 시즌 2를 제작한다면 “소년범의 환경과 그들이 처한 이야기, 소년범들이 계속 발생하게 되는 사회 시스템을 소년범 입장에서 그려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아마도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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