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차 없는 어조로 조곤조곤 말하던 수빈은 때로 ‘열심히’라는 표현을 사용하고는 했고, 그 ‘열심’ 다음에는 노래와 춤, 연습과 무대 그리고 모아가 놓였다. 그렇듯 수빈이 내뿜는 잔잔함 아래에는 늘 깊은 열정이 자리한다. 이번 활동에서 “도전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그의 말처럼.

반려 고슴도치 오디가 얼마 전 한 살 생일을 맞았어요. 오디와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수빈: 요즘 새로운 걸 해주려고 간식을 다양하게 줘봤는데 밀웜 말고는 안 먹더라고요. 하던 대로 밀웜만 주려고요.(웃음) 유튜버분들 보면 고슴도치가 온순하고 사람 손도 많이 타던데 오디는 밀웜이 없으면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해요.(웃음) 그래도 요즘 포치 밖에도 나와 있고 불을 켜도 안 도망가요. 등을 만지는 건 싫어하지만 배를 만지면 가만히 있어서, 이렇게 손을 넣어 배를 쓰다듬는데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너무 좋아요.

 

오디와 함께하면서 수빈 씨의 일상도 달라졌나요?

수빈: 오디를 데려오기 전에는 하루하루가 똑같았어요. 연습하고 퇴근하고 자고, 만나는 사람들도 같아 지루하더라고요. 오디가 온 후로 해야 할 일도 많아졌고, 퇴근하고 오디 쳐다보고 잠자기 전에 오디 발 만져보는 게 일상이 됐어요. 저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반갑고 기쁘죠. 사소한 행복이 많이 커졌어요.


오디 외에 요즘 수빈 씨에게 사소한 행복을 주는 게 있을까요? 한동안 콘솔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는 듯했는데.

수빈: 요즘 게임은 안 하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어요. 최근에도 애니메이션을 보고 와서 휴닝카이랑 이틀 동안 계속 얘기하고 있어요. 애니메이션을 보면 감상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필요한데, 휴닝이가 있어서 자주 얘기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휴닝이에게 추천하면 이미 다 봤다고 해요.(웃음)

 

애니메이션에는 어떻게 빠지게 된 거예요?

수빈: 초등학생 때 친구의 추천으로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어요. 이후로는 안 보다 데뷔하고 나서 뜬금없이 떠오른 거예요. 재밌게 본 기억에 다시 정주행을 하다 다른 것도 슬쩍 보니 재밌는 게 많더라고요. 예전에는 아름다운 작화랑 스토리에 빠져 감성적인 걸 많이 봤는데, 요즘은 액션이 있는 것도 많이 찾는 것 같아요.

그런 수빈 씨의 관심사를 모아들과 계속 공유하고 있죠. 1월에는 ‘수빈이의 케이팝속으로’ 브이라이브를 진행했고요.

수빈: 브이라이브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얘기만 하려 했는데 제가 2~3세대 K-팝을 너무 좋아했다 보니 주체할 수 없어 춤을 추고 따라 불렀어요. 팬분들이 이럴 거면 차라리 K-팝 브이라이브를 하라고 하셔서 하게 됐어요. 저는 ‘뮤직뱅크’ MC 할 때도 다른 가수분들의 리허설이나 생방송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밌었거든요. 복받은 것 같아요. 좋아하고 즐겨보던 직업을 직접 하게 되었으니까.

 

‘뮤직뱅크’ MC를 1년 넘게 했어요. 그 경험이 무대에도 영향을 줬을까요?

수빈: 비활동기일 때 그런 무대를 보니 ‘나도 저렇게 열과 성을 다해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워낙 잘하는 분들이 많아 무대적으로 많이 배웠고요. 컴백 준비할 때 이번 콘셉트는 어떤 분위기를 가져가야 될지 감이 안 잡혀서, 동세대분들의 무대를 찾아보기도 했어요.

 

이번 앨범이 처음으로 이별을 주제로 했는데, 감정 표현에서 신경 쓴 점이 있었나요?

수빈: ‘Opening Sequence’는 그래도 이전에 이별과 비슷한, 감정선이 슬픈 노래도 많이 불렀어서 괜찮았던 것 같아요. ‘Thursday’s Child Has Far To Go’는 신나는 곡이지만 그 속에 슬픔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제 목소리가 마냥 신나진 않아서 콤플렉스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노래에서는 오히려 제 목소리가 그 분위기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앨범 첫 곡 ‘Opening Sequence’가 수빈 씨의 목소리로 시작되더라고요.

수빈: 데모를 들었을 때 첫 소절이 하이라이트이자 킬링 파트라 생각했는데, 제가 받았더라고요. “파트 잘못 온 것 같다.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이 파트는 무조건 수빈 씨가 해야 돼서 가져간 거니까 자신감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PD님들이 고정을 ‘땅땅’ 해주셨어요. 맡았으니 열심히 녹음했습니다.(웃음) 

 

‘Good Boy Gone Bad’에서는 이전보다 강렬한 목소리이기도 해요. 

수빈: ‘Good Boy Gone Bad’를 처음 들었을 때 “와 망했다.”(웃음) 제 입으로 이런 말이 그렇긴 한데(웃음) 제 얼굴이 착하게 생긴 편이기도 하고(웃음) 인생에서 화를 내본 적도 없었거든요. ‘큰일 났구나.’ 했어요. 그리고 ‘Trust Fund Baby’는 지금까지 했던 곡 중에 제일 어려웠어요. 전체를 쭉 불렀을 때 다른 곳은 무난하게 넘어가는데 “I can’t be a lover~” 부분이 막혀서 ‘내 파트는 아니겠구나.’ 했지만 당첨이 되어 가지고. 고생을 많이 해서 애증의 곡이에요. 그래도 이제 라이브로 하면 잘되고 많이 늘었어요.

음역대를 올리는 중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그런 연습의 결과이기도 할까요?

수빈: 음역대가 실제로 많이 늘어났어요. 예전 노래도 당시에는 힘겹게 부르고 불안했는데 이젠 말도 안 되게 쉽게 나와요. 이번 앨범에서 가성으로 해도 되지만 PD님께 진성으로 해보고 싶다고 욕심을 내보기도 했어요. 결국 가성이 됐지만 그렇게 한계를 뚫고 있는 것 같아요.

 

목소리처럼 앨범에 직접 드러나진 않더라도 따로 시도했던 게 있을까요?

수빈: A&R분들이 “수빈 씨 가사를 받고 싶다. 왜냐면 아무도 안 쓰는 특이한 가사를 보내준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주제를 받으면 화자를 상상하며 스토리를 쭉 쓰고, 가사로 들어가면 예쁘겠다 싶은 걸 발췌해서 넣거든요. 초등학생,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혼자 글 쓰고 소설 쓰는 걸 좋아해서 마냥 막막하진 않았고요. “이번에 꼭 들어가야지.” 이런 마인드보다 제가 하고 싶게 만드는 주제들이 있어 재밌게 했어요.

 

어떤 주제가 특히 재밌었어요?

수빈: ‘Opening Sequence’는 영화가 시작할 때의 시퀀스가 마치 주마등처럼 거꾸로 흘러간다는 소재가 흔치 않은 것 같았어요. 첫 이별을 경험한 남자가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만한 기억들에 비교하면 잘 표현될 것 같았고요. 다른 곡은 데드라인이 다 되어서 냈는데 이건 금방 작업했어요.

 

여러모로 도전과 시도가 많았던 듯해요. 안무 역시 강렬해서 인상적이었는데 연습은 어땠어요?

수빈: 저는 힘을 세게 주고 동작도 큰 걸 좋아하고 잘하거든요. 그런데 ‘Good Boy Gone Bad’는 동작이 크지 않고 힘을 빼야 하고 자신 있는 것과 반대인 게 많아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Opening Sequence’는 현대무용마냥 지금까지 췄던 K-팝의 느낌이 아니라 선을 계속 보여주고 팔다리를 쭉쭉 뻗는 게 많아요. 이틀이 지나도 안 외워지고 팔다리가 거부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배우면서 멘탈이 많이 흔들렸는데 이젠 새로운 무빙을 알아간 느낌이라 재밌어요.

그런 어려움들은 어떻게 극복했어요?

수빈: 특별한 방법은 없었고 무작정 열심히 했어요. 무식하게. 표정 연기도 자신 있는 밝은 표정, 웃는 표정과는 정반대라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극악으로 어려운 콘셉트를 소화하게 되면, 앞으로의 콘셉트를 전부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겠구나. 슬럼프가 될 수도 있고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으니 이번 앨범으로 나를 한 번 바꿔보자.’ 이렇게 마음을 바꿨어요.

 

마음의 변화가 수빈 씨에게 전환을 가져왔을까요?

수빈: 사실 뮤직비디오 찍기 직전에 마음을 바꿔 먹었거든요. 반 자포자기하고 있으니 개선될 것도 없고 그 상태로 찍으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포기하고 후회하느니 뭐라도 열심히 해서 후회하는 게 낫겠구나.’ 중요한 일정이 코앞에 있으니까 다급해졌나 봐요. 촬영 때 화장실에 가서 계속 표정과 제스처를 연습했어요. 촬영에서 스태프분들이 “수빈 씨 같지 않다.”면서 기립 박수를 보내주셨는데 성장 기회가 될 수 있겠구나 싶어 자신감을 얻었어요. 이 성공을 활동까지 이어가면 저는 진짜 많이 성장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뮤직비디오가 굉장히 기대되네요.

수빈: 어떤 장면을 써주실지 아직 모르지만, 모니터링하면서 ‘나 좀 섹시하다.’, ‘내가 저런 면이 있었구나.’ 하며 저도 몰랐던 모습을 봤던 것 같아요.(웃음) 감독님이 잘 나온 것만 써주시길 바라고 있어요.

 

항상 노력을 기울이고 계속 도전하는 게 느껴져요.

수빈: 모순적인 게 저는 반복을 지루해하고 힘들어하지만, 막상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기엔 무섭고 걱정도 많아요. 아이스크림도 새로운 맛에 도전 안 하고 좋아하는 것만 시켜 먹고 그런 거 있잖아요. 안 하던 걸 갑자기 받아들이려니 몸에서 거부감을 느꼈어요. 어떻게든 잘 담아내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고, 지금은 의지가 있어요. 내가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겠다는 그런 의지.

 

끊임없는 성장에 대한 동력은 어디에서 얻나요? 꽤나 지칠 수도 있는데.

수빈: 저는 큰 행복을 바라기보다 소소한 행복을 알아채고 즐기는 성격인 것 같아요. 사소한 걸 수 있지만 퇴근하고 오디 보는 것도 즐겁고, 끝나고 화채나 빙수 한입 먹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지고요. 남들이 지나치는 걸 하나씩 짚고 즐기는 것 같아요. 그런 낙천적인 성격이 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작년 9월 위버스에 “혼돈의 장 앨범 때부터 내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했는데 영향이 있을까요?

수빈: 제 성격이 타인 위주로 돌아가는 인생이었어요. 멤버들은 “형이 형을 먼저 돌봤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해줬는데 “뭔 소리야. 나 잘챙기고 있는데.” 하며 넘어갔어요. 그러다 특별한 계기는 없는데 어느 순간 주변만 바라보는 제 모습이 딱 보였어요. 내가 나한테 너무 못해주는 것 같아 ‘혼돈의 장’ 이후부터는 제 위주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수빈 씨를 위한 하루하루에는 어떤 변화가 있어요?

수빈: 좀 못된 것 같은데.(웃음) 제가 하고 싶은 걸 더 욕심 내서 하고 의무감으로 인해 했던 일들을 내려놨어요. 예전에는 지나칠 정도로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려 했는데, 그런 짐을 덜어내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워낙 멤버들이 알아서 잘해주고 리더인 저를 챙겨줄 때도 많고요.

 

그래서인지 ‘TO DO X TXT’ 속에서 수빈 씨는 편안해 보여요. 멤버들이 장난쳐도 일말의 타격이 없어 보이던데요.(웃음)

수빈: 원래 카메라가 없으면 멤버들이 놀리고 장난쳐도 크게 반응을 안 하거든요. 데뷔 초에는 뭐라도 열심히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좀 있었어요. 멤버들이 장난치면 일일이 반응해주려 하고 침묵이 생기면 어떻게든 메꾸려 하고요. 평소보다 신나게 한다거나 조금 과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었는데, 지금의 모습이 원래 저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원래 모습을 보여주면서 생긴 장점이 있을까요?

수빈: 아이돌 친구들이 가끔 평소의 나와 카메라 앞의 모습이 달라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200%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모아분들이 브이라이브를 통해 보는 제 모습이 평상시 그대로라고 생각해도 돼요. 인간 최수빈과 아이돌 최수빈의 구분이 없다는 게 너무 마음 편한 것 같아요.

 

인간 최수빈과 아이돌 최수빈의 구분이 없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수빈 씨를 모아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 같기도 하네요.

수빈: 헤어, 메이크업이 된 예쁜 모습은 무대나 방송을 통해 언제든 보여지지만, 제 관심사나 속마음은 따로 얘기해야 알 수 있으니까요. 모아분들이 좋아할 만한 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재밌어요.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저를 소개하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친구처럼 저의 대부분을 공개하며 지내고 싶어요.

그런 소중한 팬들을 드디어 팬 라이브에서 만났어요.

수빈: 오랜만에 만나 신나고 즐거웠어요. 모아분들께 보여주려고 하는 무대인데 카메라만 있고, 모아가 없으니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해야지.’ 이런 의지가 팍 꺾였었거든요. 모아분들을 만나니까 내 존재에 대해서 확신이 생기고 의지가 생겼어요.

 

“모아분들이 존재하기에 저희가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당시 멘트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수빈: 제가 팬 라이브 때 울었잖아요. 앞에서 팬분이 우시는 걸 보고 왈칵했는데 참았거든요. 그런데 머릿속에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팬은 왜 울고 있었을까?’ ‘우리랑 콘서트를 하는게 팬분에게 어떤 의미길래 눈물이 나왔을까?’ 눈물이 나올 정도로 큰 사랑을 많은 분들이 주고 계시는 거니까요. 너무 울컥하고 감사하고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발매를 앞두고 상황이 좋아지고 있어 이번 활동이 기대될 듯한데, 지금 어떤 마음이에요?

수빈: 컴백 텀이 길었잖아요. 사실 이번 앨범이 모험이고 도전인 게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린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걱정이지만 모아분들이 오래 기다리신 만큼 이번 앨범을 반겨주시고 좋아해주시고 즐겨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잘 이겨내고 성장했으면, 극복했으면 좋겠다?(웃음)

Credit
글. 윤해인
인터뷰. 윤해인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이지연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정수정, 허지인(빅히트뮤직)
사진. 윤지용 / Assist. 기원영, 전민형, 김기웅, 송은지
헤어. 김승원
메이크업. 노슬기
스타일리스트. 이아란
세트 디자인. 다락(최서윤 / 손예희, 김아영)
아티스트 의전팀. 김대영, 김지수, 신승찬, 유제경, 고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