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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수연 (‘씨네21’ 기자)
사진 출처. 임수연('씨네 21' 기자)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에서 ‘브로커’가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기 전부터 이미 일부 기자들은 송강호의 남우주연상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심사위원장인 프랑스 배우 뱅상 랭동을 포함해 올해 심사위원 중 배우 비중이 유독 높고, 그들은 칸영화제에 초청된 출연작만 7편인 송강호의 명성을 알아볼 수 있는 이들이다. 무엇보다 팬데믹 이후 팽배한 영화제 위기론을 불식하기 위해 영화제에겐 파워 있는 스타들이 필요했다. ‘기생충’의 송강호는 매력적인 이름이다. 송강호가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적은 없지만 경쟁 부문에서 그의 작품이 상영될 땐 100% 수상했고, 그간의 인연을 공인받으며 지난해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았다. 최근 칸영화제가 페스티벌의 화제성을 견인할 빅 네임들을 심사에 참여시키는 경향을 고려할 때 송강호는 어렵고 비대중적인 아트하우스 영화만의 축제를 벗어나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인물이었다.

 

때문에 ‘브로커’ 팀이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소식(폐막식 참석 요청을 받은 영화는 이례적인 케이스를 제외하면 최소 하나의 상을 가져간다.)이 한국 기자단에 알려졌을 때 “‘브로커’가 받아갈 트로피는 송강호의 남우주연상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브로커’가 특정 배우의 연기력이 빛나기보다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이주영 다섯 배우가 고르게 분량을 가져간다는 것을 시사회로 직접 확인한 이후였는데도 그랬다. 칸영화제에서 이번 작품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만큼 뛰어나지는 않다는 평이 많아 작품 혹은 감독보다는 배우에게 상이 돌아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송강호가 한국 영화계에서 지닌 의미와 그간 칸영화제에서 쌓은 입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브로커’ 팀이 가져갈 상은 역시 남우주연상이 되지 않겠냐는 추론이었다.

 

경쟁 부문 상영작이 모두 공개된 후 미국 유력 매체 ‘버라이어티’지 역시 남우주연상 2순위로 ‘브로커’의 송강호가 적합하다고 언급했다(한국에서는 이지은의 여우주연상 수상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몇 건 떴지만, 현지에서 체감한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영화제 초반 상영된 ‘홀리 스파이더’의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사생활을 유포한 성범죄 피해자였고, 영화는 이란 내 여성 혐오 살인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가 일찌감치 유력 후보로 떠오르면서 여우주연상은 경쟁 부문 중 가장 수상 예측이 쉬운 섹션이 됐다.). 심사 과정을 비공개하는 영화제 원칙상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구체적인 이유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일찌감치 수상 가능성이 언급될 만큼 칸영화제에겐 송강호가 필요했다.

 

송강호뿐만이 아니다. 올해 칸영화제의 화제성을 이끈 건 한국 영화였다. 영화제가 열리는 메인 번화가, 크루아제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옥외광고가 CJ ENM의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였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와이파이 카페에서 마감을 하면서 만난, 라운드 인터뷰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눈 외신 기자들은 한국 영화는 한국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가졌고 한국인인 내게 박찬욱과 송강호에 대해 먼저 물어왔다. 특히 칸영화제 전부터 감독 인터뷰 요청이 폭주해 스케줄을 분단위로 짜야 했다는 ‘헤어질 결심’이 공개된 후에는 드디어 황금종려상이 유력한 영화가 등장했다며 미진하게 흘러가던 경쟁 부문 레이스에 화력이 붙었다. ‘헤어질 결심’은 영미권 공식 데일리 ‘스크린’에서 3.2점을 받으며 경쟁 부문 상영작 중 최고 평점을 받았고, 박찬욱 감독의 과거 작품에 대체로 혹평했던 프랑스 공식 데일리 ‘르 필름 프랑세즈’에서도 중위권을 달렸다.

요컨대 ‘헤어질 결심’은 개막부터 폐막까지 칸에 머물면서 가장 체감 인기를 실감한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의 감독상 수상이 기대보다 아쉽게 느껴질 만큼 칸영화제 현지에서 느낀 ‘헤어질 결심’의 인기는 상당했다. 경쟁 부문 상영작은 아니었지만 ‘헌트’의 화제성도 빼놓을 수 없다.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섹션에 감독 데뷔작 ‘헌트’로 초청받은 이정재와 그의 인생 동료 정우성을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식당 밖에서 ‘오징어 게임’의 스타를 알아본 외국인 어린이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사진을 요청했고, 정우성이 그들의 ‘찍사’를 자처하는 진귀한 광경을 목격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영화의 화제성이 비단 예술영화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 영화처럼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예술적 성취를 인정받는 영화가 대중적 재미도 있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드물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에 끌려 외국 예술영화를 감상했다가 숙면을 취해본 경험이 있는 관객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반면 봉준호, 박찬욱, 류승완, 나홍진 감독의 영화를 떠올려보자. 이들은 기본적으로 훌륭한 장르 영화감독이다.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 역시 장르성 강한 시리즈물로 주목받았다. 이들은 한국 사회를 조감하는 날카로운 시각과 차별화된 미학을 고수하면서, 완성도 높은 장르 영화를 만들어 대중의 진입 장벽을 낮춘다.

 

이러한 한국 영화의 차별점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모두 받은 ‘기생충’이었다. UCLA 영화과 종신 교수로 재직 중인 김진아 감독은 “내가 하버드에서 한국 영화를 가르치던 2005~2006년에는 이른바 배운 게 많고 가방끈이 긴 학생들이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면, ‘기생충’ 이후엔 한국이 문화 선진국, 영화의 제1세계라는 인식이 많은 학생 사이에 만연해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대중적이면서 예술성까지 뛰어난 한국 영화는 시네필과 대중 취향의 소비자군을 오가며 저변을 확장해왔다. 심지어 언어 장벽과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외신에서 한국 영화에 보다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경우도 생긴다. 이를테면 ‘브로커’는 한국 기자들보다 칸 현지에서 만난 외신 기자들의 반응이 훨씬 호의적이라고 체감했다.

앞서 칸영화제에겐 송강호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감히 추론했다. 여기엔 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종 페스티벌과 시상식이, 박찬욱과 봉준호 더 나아가 한국 영화 전반이 적용될 수 있다. 아마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아주 높은 확률로 국제장편영화상을 포함한 오스카 레이스를 준비하게 될 것이다. 에미상을 향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홍보 활동도 박차를 가했다. 더군다나 한국 영화는 그간 세계 무대에서 과소 대표됐던 비백인 인구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이 ‘로컬’이라고 칭했던 아카데미 시상식이 비영어권 국가 영화에 작품상을 주고, 그 다음 해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 주인공인 ‘미나리’의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카를로스 아귈라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은 영어가 아닌 언어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작품으로서, 비백인에 대한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서양에서 열어준 분수령이 되었다.”고 평한다. 더불어 ‘기생충’이 연기상 후보 지명을 받지 못한 한계를 꼬집으며 “‘미나리’는 백인 유권자들이 아시아 영화를 축하하려고 하지만 아시안 배우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오래된 관습을 바꾸고 있다.”며 한국 영화와 한국 영화인이 시상식에서 보여준 활약의 의의를 설명했다. 예술 작품으로서 완성도 높고 대중문화로서 재미있으며 시대의 흐름과도 조응하는 한국 영화는 지금 후보 선정과 시상 결과로 어워드의 스탠스를 증명해야 하는 이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다. 지금 한국 영화는 전 세계 영화 산업에서 정치적이면서 합리적인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