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갈 결심
강명석: 세븐틴의 네 번째 정규 앨범 ‘Face the Sun’에 네 곡을 더한 리패키지 앨범 ‘SECTOR 17’을 두 번 연속으로 들어보자. ‘Face the Sun’의 마지막 곡 ‘Ash’에서 세븐틴이 “내일의 나”를 위해 했던 선택, “방주를 새롭게 지어 나아가 저 세계로”는 ‘SECTOR 17’의 첫 곡 ‘돌고 돌아’의 첫 가사와 그대로 연결된다. “나는 어디로 걸어가는지 무얼 찾아 이리 헤메이는지”. 반면 두 번째 곡 ‘_WORLD’의 첫 가사는 “Hey 아까부터 널 봤어 우린 처음이지만 모든 재미를 느낄 수 있어 더 알고 싶어”다. ‘돌고 돌아’가 ‘SECTOR 17’의 시작인 동시에 ‘Face the Sun’의 끝이 되면, ‘_WORLD’는 ‘너’를 처음 만난 순간인 동시에 그 과정을 다시 밟는 것이 된다. 공교롭게도, ‘_WORLD’는 ‘너’와의 만남을 “마치 천국의 Deja vu”라 묘사하고, ‘돌고 돌아’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괜찮을 거야 시계의 바늘처럼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겠지”.
‘_WORLD’는 ‘WORLD’에 ‘_’를 붙여, 앞에 어떤 단어든 넣을 수 있다. 이 곡의 제목을 듣는 사람 마음대로 바꾼다면, 노래 속 ‘_WORLD’는 듣는 사람 숫자만큼이나 많은 세계가 만들어진다. 그 수많은 세계를 반복해서 사는 노래 속 ‘나’는 ‘너’가 “결국 내 손을 잡을” 미래에 대해 안다. 이 관점에서 ‘_WORLD’의 “Come into my world”는 단지 처음 만난 ‘너’에 대한 설레는 감정이 아니다. ‘_WORLD’의 ‘나’는 처음 만난 ‘너’에게 “네가 원한 모든 걸 다 줄 수 있어 너의 어두운 모습까지도”라고 고백한다. 노래 속의 ‘나’가 ‘돌고 돌아’ 미래에서 다시 과거의 시작으로 돌아온 것이라면, “Come into my world”는 미래에 닥칠 모든 일들을 알고도 함께하자는 절절한 토로가 된다. 이 고백 뒤에는 ‘Fallin’ Flower (Korean Ver.)’의 “모든 걸 버텨내고 너만을 위해 살아” 가야 할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인생 2회 차’는 아닐지라도, 세븐틴은 그들의 일에 있어 이미 미래를 경험한 것과 같다. 7년은 아티스트에게 힘찬 상승에는 추락의 공포가, 더 많은 사랑은 더 많은 이별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충분한 시간이다. 그래서 ‘_WORLD’는 첫 만남의 순간을 다루고 있지만, 데뷔 곡 ‘아낀다’처럼 청량한 에너지만 가득 담을 수 없다. ‘_WORLD’의 후렴구 후반부인 “내게로 와 in my in my in my new world”는 음을 낮추며 애잔한 감정을 살짝 섞는다.‘Fallin’ Flower (Korean Ver.)’는 더욱 빠른 EDM 스타일로 시작해 격렬한 랩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러나 절정의 순간, 모든 소리는 사라지며 곡의 분위기는 급강하한다. 이때의 가사는 “흩날리며 떨어져”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한 ‘돌고 돌아’부터 ‘_WORLD’와 ‘Fallin’ Flower (Korean Ver.)’의 세 곡은 멜로디를 점점 더 높게, 더 힘차게 끌고 간다. 그러나 멜로디에는 마치 과거의 회고처럼 애잔함이 섞여 있고, 상승의 끝에는 급격한 낙하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븐틴의 세 유닛, 힙합-퍼포먼스-보컬 유닛의 리더들인 ‘리더즈’, 에스쿱스, 호시, 우지의 ‘CHEERS’의 뮤직비디오는 카메라가 위에서 아래로 하강하며 시작한다. 시선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을 때, 에스쿱스는 땅에서 조금 높은 곳에서 상승의 의지를 다진다. “우린 지하방에서 건물을 올리지”라고 했던 세븐틴에게 추락의 끝은 땅이 아니라 지하였다. “머릿수 많아서 밥값은 어쩌냐 했어” 같은 가사는 세븐틴이 데뷔 전 실제로 들었던 비아냥이다. 그들은 그리 크지 않았던 회사의 연습생들이었다. 데뷔를 앞둔 월말 평가는 지하 연습실에서 퍼포먼스 도중에 그들이 연습실 조명을 껐다 켰다 하며 효과를 내야 했다. 그랬던 팀이 7년 뒤에 네 번째 정규 앨범을 첫 주에만 200만 장 넘게 판매했고, 일본 돔 투어를 포함한 월드 투어가 예정됐다. 데뷔 시절부터 함께 맞춘 반지는 점점 화려해졌고, ‘CHEERS’ 뮤직비디오 마지막을 장식하는 팀의 상징이 됐다. 지금의 세븐틴은 14000605분의 1 정도의 희박한 확률을 뚫은 결과다. 세븐틴은 전원 재계약 이후 내놓은 첫 번째 정규 앨범의 리패키지 앨범을 통해 과거를 되짚고, 성공한 현재를 “Cheers”하며 미래를 바라본다. 하늘도 지하도 아닌 땅 위로부터 미지의 영역인 ‘SECTOR 17’의 정상에 오르겠다는 의지. ‘SECTOR 17’을 통해 새로운 맥락을 얻게 된 ‘Fallin’ Flower(Korean Ver.)’를 포함한 앨범의 네 곡은 ‘Face the Sun’의 의미를 완성하는 동시에, 그들이 미지의 영역으로 올라갈 결심을 한 심리적 배경을 짐작케 한다. 다시 반복되는 이 긴 여정에는 ‘DON QUIXOTE’처럼 무모하리만큼 달려들거나, ‘돌고 돌아’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순간들이 반복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해 언제나 우린 함께라는 걸 변하지 않는 너의 손 놓지 않을게” (‘돌고 돌아’)라는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뿐이다. 태양 가까이 한없이 올라가고자 하는 아티스트의 결심, 말이다.
미지의 정상에서 피운 꽃
오민지: 세븐틴의 네 번째 앨범 ‘Face the Sun’의 타이틀 곡인 ‘HOT’의 뮤직비디오에서 “깊은 바다 위에 태양이여”라는 가사와 함께 부러진 날개를 쥐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정한의 모습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과 동시에 한계를 상징했던 이카로스의 날개를 떠오르게 한다. 다만 세븐틴의 날개는 한계가 아닌 성취의 표상이다. 태양을 원해 홀로 더 높이 날아가다 가장 높은 곳에서 추락해 깊은 바다 위로 떨어지고 만 이카로스와 달리 정한은 날개가 부러졌어도 “양옆에는 열두 명”(‘CHEERS’)이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고, 추락의 두려움이 느껴질 땐 밑에서 받쳐줄 ‘TEAM SVT’이 있음을 알기에 기어이 태양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리패키지 앨범 ‘SECTOR 17’은 “방주를 새롭게 지어 나아가 저 세계로”(‘Ash’)라고 노래했던 세븐틴이 마침내 다함께 도달한 새로운 세계다.
‘SECTOR 17’은 지상에서 가장 태양과 가까운 ‘좌(SECTOR, 해발 8,000m가 넘는 높은 산)’이자 지구에 현존하는 16좌가 아닌 완전한 미지의 영역인 ‘17좌(SECTOR 17)’에 도달한 세븐틴의 모습을 통해 이들의 7년간의 서사를 짚는다. ‘SECTOR 17’에 오르는 모습을 담은 ‘NEW HEIGHTS’에서 세븐틴은 설산 속 적에게 탐지되지 않도록 하얀 옷을 입고, 거친 지형과 눈보라에 대비해 고글과 장갑, 트레킹 폴 등으로 단단히 무장해야만 했다. 눈보라로 인해 얼굴에는 성에가 끼고, 주변의 어둠이나 하얀 눈 때문에 “나는 어디로 걸어가는지 무얼 찾아 이리 헤매이는지”(‘돌고 돌아’)도 알 수 없었다. 이 절체절명의 시간은 세븐틴에겐 처음 겪는 데뷔와 같은 미지의 상황에 대한 동경과 그 여정 속 이들이 겪었을 방황이나 고민, 혹은 “머릿수 많아서 밥값은 어쩌냐”(‘CHEERS’)와 같은 걱정을 빙자한 주변의 비아냥과 비난을 들었던 상황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꽃이 피고 지는 사이 상처 낫고 네가 피어”라며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는 희망을 전하는 ‘Fallin’ Flower (Korean Ver.)’나 “괜찮을 거야 시계의 바늘처럼 다시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겠지”라며 슬픔과 아픔은 지나가고 다시 행복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돌고 돌아’처럼, 그 시간을 견디고 나서 비로소 도착한 ‘NEW BEGINNING’은 말 그대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 여기에선 더 이상 보호색을 가장하지 않고 원하는 색으로 자신을 치장할 수도, 편하게 웃거나 장난치거나 누울 수도 있는 “천국의 Deja vu”이자 “슬픔이 없는 곳”(‘_WORLD’)이다. 동시에 같은 목표를 가지고 '17좌(SECTOR 17)'를 등반했던 멤버들이 마침내 다함께 모인 이 ‘_WORLD’는 세븐틴에게 전원 조기 재계약을 마치고 낸 앨범 ‘Face the Sun’이 초동 206만 장을 돌파하며 또다시 커리어하이를 이룬 뒤에도 “나도 모르겠어 어디까지 올라갈지”(‘CHEERS’)라며 새로운 목표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SECTOR 17’은 세븐틴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희망 없는 시대에 희망을 꿈꾼, 혹은 고통의 순간에도 행복을 바란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TEAM SVT’으로의 초대다.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모든 게 끝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낼 수 있다”(‘Fallin’ Flower (Korean Ver.)’)고 믿는 이들이, 평생의 상처가 남아 더 이상 행복을 꿈꿀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들에게 그런 “너의 어두운 모습까지도 들어올 수 있는 나의 세계로 오라고(come into my world)”(‘_WORLD’) 말하는.
그래도 파티는 계속된다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An Ode’라는 송시로 그들의 2010년대가 깔끔히 마감된 후, ‘Face the Sun’은 세븐틴이 지난 2년간 겪었던 경로를 갈무리하는 음반이었다. 역할 분담과 같은 효과적인 전문화로 다인원 멤버들을 전체이자 부분 그리고 하나로 구성하는 체계는 몹시 안정화되었고, 이를 통해 정규 4집은 전체의 단위로 통일된 세븐틴의 상을 제시했다. 앨범은 트랙 간의 차이를 음반이라는 단위에 종합하기보다 (2010년대의 세븐틴에 가까울 하우스 곡인 ‘Domino’와 보컬이 두드러지는 몇 트랙을 제외하면) 작년의 EP들처럼 어쿠스틱한 기타 연주 샘플부터 간결하고 단단한 4분의 4박자 비트까지 록적인 사운드와 리듬, 구성을 주로 띠는 트랙들로, 음반 자체를 단위로 삼아 총체적인 일관성을 부여한 편이었다. 그 제목이 암시하듯, 그들의 “세계관 속에서 저항의 대상, 극복해야 할 난관으로 상정이 되는 (마노, ‘Monthly : 2022년 5월 – 앨범’, ‘아이돌로지’)” 태양을 팀의 공동 목표라도 삼은 것처럼 말이다.
합창단까지 동원해 호소력을 짙게 녹여낸 발라드 트랙 ‘돌고 돌아’의 “괜찮을 거야 시계의 바늘처럼 다시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겠지 (민규, 디에잇)”라는 의미심장한 구절과 함께 시작되는 ‘SECTOR 17’은, 작열하는 태양빛을 마주하는 ‘Face the Sun’의 공통된 지향점을 사랑 노래들로 감싼다. 6년이 지난 지금 명실상부하게 세븐틴의 자랑이자 팬들의 보람이 된 ‘아주 NICE’의 역동적인 그루브가 뽑아낸 변화무쌍함은 ‘_WORLD’에선 팝적으로 다듬어진 디스코의 절제된 리듬감으로 옮겨진다. 브라스는 청량하게 뿜어지기보다 배경에서 리듬 파트의 음색을 장식하는 데 쓰이고, 보컬과 랩 사이 전환은 짜릿한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기보다 여유로운 기차 여행처럼 연속된다. 한편 한국어로 재녹음된 ‘Fallin' Flower (Korean Ver.)’는 어쿠스틱 기타를 강조하며 두근거리는 록 비트를 EDM의 드롭으로 변환하는 트랙으로, 다른 트랙보다 ‘Face the Sun’ 쪽에 어울리게 가깝게 계속해서 달려 나가는 속도감을 이끌어낸다.
코러스 멜로디를 영원히 흥얼거릴 수 있다는 듯 되풀이하거나(‘돌고 돌아’), 공연장에서의 ‘아주 NICE’가 데이트 날의 마지막 순간을 한도 끝도 없이 늘이듯 짧은 디스코 그루브와 후렴 멜로디를 반복해 진행감을 연장하고(‘_WORLD’), 규칙적인 단위의 박자를 강조하며 제작되는 어떠한 계속됨의 감각(‘Fallin' Flower (Korean Ver.)’)은, “넌 영원을 내게 줘 기쁨의 맛을 더 (에스쿱스, ‘_WORLD’)”나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지금을 살고 있는 거야 (버논, ‘Fallin' Flower (Korean Ver.)’)”라는 노랫말에 담긴 영원성과 현재성에도 겹쳐진다. 다시금, 정규 4집이 적어도 인류에게 있어선 영원불멸할 항성인 태양과 동등하게 맞서고자 하는 음반이었다면, 그 리패키지에서 마련된 세븐틴만의 ‘제17구역’은 그런 태양의 상태와 꽤나 비슷하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현재에서 계속해서 돌고 돌아가는 시공을 상상하는 셈이다. 더불어 멤버들이 유닛 곡이나 솔로 곡 등으로 분류되지 않고 ‘따로 또 같이’ 이뤄진 하나의 몸체로서 세븐틴이라는 한 단위의 목소리를 낼 때, ‘SECTOR 17’은 안정적이게 완결된 리패키지 음반으로서 그 일관된 통일성과 끝없는 영원성을 보존하는 또 다른 단위가 된다.
이는 물론 음악이 언제나 가장 월등히 해내온 일이지만, 그러한 음악들이 제공하는 영원함으로 이뤄진 ‘제17구역’이 더 나아가 영구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음악이나 음악가뿐만 아니라 (‘사랑 노래’이니만큼 충분히 팬 송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청자인 ‘너’가 전제되어야 할 테다. 이 조건들이 갖춰지자 ‘SECTOR 17’은 태양에 맞서고자 우주로 날아가고, 발사를 축하할 겸 총결산 회식이라도 하듯 각 분과를 대표하는 리더조가 모인다. 흥겨운 트랩과 오토튠 랩 위에서 에스쿱스는 피아노 위에서 킥과 스네어 없이도 ‘Freaky’해진다는 리듬을 타고, 호시 또한 808베이스와 160BPM을 즐기는데, 이는 그런 음악 자체를 기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윽고 ‘CHEERS’ 하는 건배사를 힘차게 올리는 우지는 “나도 모르겠어 어디까지 올라갈지 모두 다 하늘 위로 손들어”라고 외치고, ‘SECTOR 17’이라는 우주선에서 세븐틴과 청자들이 펼치는 끝없는 파티는 그렇게 음악을 타고 올라 계속해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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