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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한국의 극장에서 일어난 일
2022 한국 여름 영화들의 예상못한 흥행과 실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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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수연(‘씨네21’ 기자)
사진 출처.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과거 데이터만 놓고 이번 여름 극장가 성적을 점치는 베팅 사이트가 있었다면, 아마 결과를 맞춘 도박사는 아주 많은 배당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먼저 최동훈 감독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흥행에 실패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범죄의 재구성’(관객 수 212만 명), ‘타짜’(684만 명), ‘전우치’(613만 명), ‘도둑들’(1,298만 명), ‘암살’(1,270만 명)에 이어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 못하는 작품이 류준열, 김우빈, 김태리 주연의 ‘외계+인 1부’(2022년 8월 20일 기준 152만 명)이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을 했겠는가. ‘관상’(913만 명), ‘더 킹’(531만 명)을 만든 한재림 감독이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을 캐스팅한 ‘비상선언’은 손익분기점(520만 명)에 훨씬 못 미치는 관객 수 200만 명대로 성적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한국 영화 역대 최다 관객 수를 기록한 ‘명량’(1,761만 명)의 프리퀄 격인 ‘한산: 용의 출현’이 손익분기점(600만 명)을 무난하게 넘긴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배우 이정재의 첫 연출작 ‘헌트’가 최동훈, 한재림 감독보다 관객과 평단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순항하는 것은 올해 영화계 최대 반전 중 하나다.

 

이들 프로젝트는 코로나19 이전에 기획됐다. 특히 ‘외계+인’,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은 코로나19 이전 천만 관객 돌파 영화들이 투자사와 제작사에 안겨줬던 수익을 기대하며 진행됐다. 기본적으로 한국 영화 산업은 극장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구조다. 해외와 달리 한국에서는 극장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어 투자 배급사에게 순수익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투자사와 제작사가 그 몫을 나눠 가질 수 있다. 이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영화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가 아무리 흥행해도 총제작비의 일정 비율 프로덕션 피(fee)를 받은 것 외의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구조와 대비된다. 2019년 기준 한국 상업 영화 추정 평균 수익률은 10.9%에 지나지 않지만. 총제작비 150억 원 이상은 21.0%, 80억~100억 원 규모는 49.8%다. 비록 제작비에 대한 위험 부담이 있을지라도 코로나19 이전에는 스타 배우를 한데 모은 대작 블록버스터나 효율적인 프로덕션을 운용한 작품의 경우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극장 산업 위기론이 대두되고, OTT 플랫폼이 대중문화 콘텐츠 소비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들은 이전과 같은 조건에서 승부를 볼 수 없게 됐다. OTT가 극장을 전면 대체했다거나 관객이 더 이상 극장 관람의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소규모 그룹의 몰입도 높은 집단 엔터테이닝 경험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극장은 여전히 고유의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지금 소비자에겐 홀드백 기간이 지난 후 IPTV나 OTT에서 보다 저렴하게 영화를 감상하거나 유튜브 등 아예 다른 영역의 콘텐츠를 택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안들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티켓 값이 1만 5,000원까지 오르면서 극장 영화는 “적당히 시간을 떼울 만하다.”는 평가만으로는 관객을 유인할 수 없게 됐다. ‘신과 함께’ 시리즈를 제작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티켓 값이 1만 원이던 시절에는 마케팅 설문을 했을 때 관람 우선 순위 3등까지는 괜찮다고 봤다. 그런데 티켓 값이 1만 5,000원까지 오르면서는 관람 우선 순위 결과가 최소 2등에는 올라야 한다.”는 변화를 짚었다. 

‘범죄도시 2’처럼 동시기 관람 우선 1순위의 자리를 오래 유지하면 관객 수 1,269만 명을 모으며 400억 원대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외계+인’이나 ‘비상선언’처럼 큰 손실을 입는다.

  • ©️ CJ Entertainment

소비 행태의 변화가 감지되면서 관객 리액션은 보다 중요한 지표가 됐다. 과거 ‘염력’, ‘인랑’ 등의 사례에서 확인된 것처럼 부정적인 입소문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타고 단 몇 시간 만에 온라인 여론을 형성한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시간과 체력, 2인 이상 관람 시 외식을 포함할 경우 최소 5만 원 이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관객은 악평에 보다 예민하게 반응한다. 업계에서는 개봉 전 사전 인지도, 예매율과 같은 흥행 스코어의 전조는 물론 언론 배급 시사회 이후 기자 및 평론가의 단평, ‘씨네21’ 전문가 별점, 네이버 영화 네티즌 평점, CGV 에그지수 모두를 놓고 전보다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최근 영화계를 휩쓴 역바이럴 논란은 상징적이다. ‘외계+인’, ‘한산: 용의 출현’, ‘헌트’에 투자하고 ‘비상선언’에는 투자하지 않은, 과거 바이럴 마케팅으로 회사를 키운 B업체가 조직적으로 ‘비상선언’의 악평을 퍼뜨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영화 온라인 커뮤니티 익스트림무비도 일부 회원이 운영진이 단독 시사회 및 GV 진행 여부에 따라 리뷰를 편향적으로 유도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최근 큰 논란을 겪었다. 이른바 ‘별점 알바’들이 경쟁작 평점을 의도적으로 낮게 주는 일은 십수 년 전에도 존재했지만 관계자들은 이번 가설에 훨씬 격렬하게 호응하며 SNS에 입장을 표했고, 영화진흥위원회는 이와 관련된 대담을 준비 중이다. 더욱더 교묘하게 진화하는 바이럴 마케팅 산업 양상과 초반 입소문의 무게가 결부되면서 영화인들은 역바이럴이 한 작품에 줄 수 있는 타격 역시 훨씬 커지지 않았겠느냐고 호소한다.

 

주목할 것은 네티즌의 자연스러운 입소문이든 (역)바이럴 작업이든 영화의 장단점이 서술되고 퍼져 나가는 양상이다. 특정 영화가 재미있는 혹은 형편없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 제시되고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확산되는데, 정확한 설명보다는 직관적인 글과 이미지를 선호하는 세태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몇 년 전 “‘리얼’급 망작”이라는 간단한 낙인이 흥행에 치명적이었던 것처럼 “‘외계+인’은 가끔 ‘우뢰매’ 같다.”거나 “‘비상선언’의 피학적인 집단주의” 같은 반응은 즉각적으로 소비층에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줬다. 반면 ‘한산: 용의 출현’은 “거북선이 마동석처럼 몸빵을 하며 상대를 쳐부수”고 “특히 4DX로 보면 왜구 간접 체험”을 할 수 있고, “‘헌트’는 이정재와 정우성이 서로 빤쓰를 벗기려고 달려드는 영화”다. 심지어 20세기부터 스타 배우였던 이정재, 정우성이 유튜브와 TV 예능을 가리지 않고 ‘헌트’ 홍보 활동에 매진하고, ‘한산: 용의 출현’ 무대 인사에 10명 넘는 중년 남성 배우들이 참석하는 진귀한 풍경도 스크린 밖에서 일종의 밈이 되어 작품 호감도를 높여준다. 기획 단계부터 최소 2~3년이 소요되고 수백억 원대의 제작비와 수백 명의 스태프가 연관되어 있지만 한 줄의 밈과 조롱이 주는 여파가 매우 큰 것처럼 보이는 산업. 지금 한국 영화는 역대 가장 불투명한 변수가 도사리는 위험한 도박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