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는 신화와 문학 속 여성을 ‘回’ 시리즈의 소재로 차용한다. ‘테세우스’ 신화의 아리아드네와 래버린스(미궁), ‘세이렌’ 신화의 세이렌과 ‘성경’의 선악과, ‘파우스트’의 발푸르기스의 밤과 중세의 마녀 등. 여기서 ‘回’는 첫 장면에서 은하 뒤로 되감기된 시계와 마지막 장면에서 되돌아가는 기차를 통해 친구들과 즐거웠던 때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 이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앞으로 무엇을 선택할지 복합적인 감정’을 의미함과 동시에 신화와 소설에서 가져온 모티프들을 ‘되돌리는’ 계기가 된다.

‘回: Labyrinth’는 ‘테세우스’ 신화에서 테세우스에게 실뭉치를 건네고 미궁 밖에서 그 실타래를 풀며 그가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나 버림받은 연인으로밖에 기억되지 않는 아리아드네의 이야기를 가져온다. 그러나 테세우스의 용기에 집중했던 기존의 신화와는 달리 아리아드네의 실과 래버린스에 초점을 맞춘다. ‘回: Labyrinth’의 콘셉트 포토인 ‘Twisted’를 통해 ‘아리아드네의 실’은 테세우스가 아닌 아리아드네 자신을 위한 실이 되어 자신을 묶거나 서로의 실을 함께 엮고 주변을 실로 감싼다. 그 실타래를 들고 있는 모습을 통해 그들 스스로 아리아드네가 되어 ‘Labyrinth’를 헤매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때 ‘Labyrinth’가 뜻하는 미궁은 갈림길이 있는 미로와 달리 하나의 길이 복잡하게 얽혀 쉽게 나올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왔던 길로 돌아가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여자친구는 수록곡 ‘Labyrinth’에서는 화려한 미로 속 세상에서 그대로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빠져나갈 것인지 두 개의 자아 사이에서 충돌하기도 하고, 타이틀 곡 ‘교차로’에서 자아가 충돌하는 그 교차로 앞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테세우스의 영웅담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잊힌 아리아드네의 사연은, 여자친구의 ‘Labyrinth’의 ‘날 위해서면 끝까지 갈래’라는 가사를 통해 여성의 내면에 집중, 그에게 서사를 부여한다. 여자친구가 표현한 아리아드네는 사랑하는 연인이 아닌 자신을 위해 실타래를 풀어 미궁을 헤매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나 익명으로 남아버린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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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 Labyrinth’에 이은 ‘回: Song of the Sirens’는 앨범과 타이틀 곡명, ‘Apple’이 의미하듯 ‘유혹’을 소재로 가져온다. 인간의 원죄는 뱀의 말에 현혹되어 선악과를 먹고 이를 아담에게 권한 하와로부터 시작되며, 유혹에 ‘당하고만’ 여성을 묘사한 성경의 개념과 달리 세이렌 신화는 유혹을 ‘하는’ 여성의 개념에서 유혹과 여성을 연결한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과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지나가는 선원들을 유혹하며, 노래에 홀린 선원들은 뱃머리를 세이렌의 섬 쪽으로 돌렸다가 배가 난파되어 목숨을 잃거나 스스로 물에 뛰어든다. 그러나 여자친구의 멤버 엄지가 ‘Apple’을 “예상치 못한 유혹과 흔들림 앞에 선 소녀의 모습을 표현했다. 유혹이라는 게 단순히 부정적 의미만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처럼, ‘그럴듯한 말과 행동으로’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끄는 사전적 의미와 기존의 설화들로 연상되는 유혹의 의미는 ‘Apple’의 ‘차가운 그 선택은/틀렸던 건지 왜 이렇게 아픈지’라는 가사를 통해 뒤집힌다. ‘Apple’의 ‘투명한 유리구슬 붉게 빛나’에서 현재의 여자친구가 데뷔곡 ‘유리구슬’을 부르던 그때의 여자친구와 연결되지만, 그들은 선택한 길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어도 선악과를 베어 물었기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콘셉트 포토인 ‘Tilted’에서 과거 뮤직비디오의 중요한 소재들이었던 다이어리, 곰 인형, 꽃 등의 반대편에 올려진 보석, 돈, 구두 등은 보다 투명한 인간의 욕망이며, 허영과 사치 등 부정적이고 속물적인 것들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물건들이지만 그들은 과감히 그 둘을 저울질한다. 여자친구는 세이렌의 소리를 따라가 찾은 선악과로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제는 자신들이 세이렌이 되어 아름다운 모습과 청아한 목소리로 관객들을 매혹하며 유혹이 가진 기존의 상징과 의미를 부정하고 긍정적 이미지로 반전시킨다.

‘回: Walpurgis Night’의 타이틀 곡 ‘MAGO’는 ‘마녀’와 그들의 축제를 소환한다. 사실 ‘발푸르기스의 밤’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묘사된 것처럼 지나치게 향락적이기에 불길하고 신성모독적인 날이며, 마녀를 대신하여 장작불을 태우는 현대의 축제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성을 마녀로 몰고 도외시하던 과거와 달리 여자친구는 ‘현대적 마녀’라는 콘셉트를 통해 마녀를 재해석하며 여성의 욕망을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이번 앨범의 콘셉트 포토 중 하나인 ‘My Room’에서 멤버들은 여성의 물질적 욕망(소원),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예린), 자기 표현의 욕구(신비) 등 다양한 욕망을 표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과거의 소녀들이 헤맨 미궁의 결말이자 ‘回’ 시리즈의 주제를 주체적인 여성으로 묘사하는 듯하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回’ 시리즈의 마지막 앨범 마지막 트랙인 ‘앞면의 뒷면의 뒷면’에서 ‘거대한 미로 속 갇힌 것 같았어 계속된 갈림길에 멈춰서 헤매던 난’, ‘뭐가 정답일까 두려워하지 마’라는 가사와 이어진다. 끝은 정해지지 않았기에 ‘진심이 반응하는 곳’으로 달리자는 이 노래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여성의 모습을 환기하며 여자친구가 현대로 소환한 마녀는 ‘악녀’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는 ‘주체적인 여성상’으로 재해석된다.
‘回’ 시리즈 이전의 여자친구는 ‘사랑’에 대한 입장의 변화를 통해 그들의 성장을 시사했다. '유리구슬'에서 '깨지지 않도록 지켜줘 언제까지나'라고 하거나 ‘시간을 달려서’에서 ‘시간을 달려서 어른이’ 되고 싶은 이유도 너를 위해서였고, ‘너 그리고 나’에서는 ‘아직은 수줍은 아이’였다. 'FINGERTIP'에서 ‘네 맘을 조종’하는 당찬 모습이, '해야'에서는 '너를 봐야 봐야 내가 불확실한 미래마저 조금씩 더 가까워져' 가는, 네가 내 인생의 전부인 듯한, 사랑하는 당신에게 전하는 노래를 불러왔다. 여자친구의 노래 속 성장과 변화는 온통 연인과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이 중심이었지만, ‘回’ 시리즈를 시작하며 나에게로 초점이 조금씩 이동한다. ‘교차로’에서 초점은 교차로 앞에 서서 고민하는 ‘나’로 조금 이동했음에도 ‘아직 모든 게 너로 가득해’ 어디도 갈 수 없는 상태였지만 ‘Labyrinth’에서는 '날 위해서라면 저 끝까지 갈래'라며 관점의 대상이 '나'로 바뀐다. 이는 ‘Labyrinth’의 수록곡 ‘From Me’에서 처음 가사의 ‘From me to you’가 후반부에 ‘From I to me’로 바뀌며 두드러진다. 변화를 보여줘야 할 숙명을 가진 데뷔 5년 차의 여자친구는 예전으로의 ‘回’를 선택하지 않고 ‘love you’에서 ‘love yourself’로 목적어를 전환함으로써 성장하고, 사랑의 대상을 자신으로 재설정함으로써 주체적 여성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Walpurgis Night’의 콘셉트 포토인 ‘My Girls’에서도 드러난다. 멤버들이 스스로 선택한 프레임인 ‘adorable’, ‘tomboy’, ‘emotional’ 등은 타인이 여성을, 여자친구를 규정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들이었지만 이를 타인의 평가가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하며 자신을 스스로 규정한다. 이제 여자친구는 자신의 선택에 확신할 수 없고(Labyrinth), 유혹에 흔들리고 방황하던 시간을 지나(Song of the Sirens), ‘Walpurgis Night’의 축제에 이르러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다.

‘回’ 시리즈는 질투와 갈등, 선택의 불확실성, 여성의 욕망과 주체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사랑하는 연인을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다면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한층 더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자신의 선택을 누군가 대신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Tarot Cards’에서 결국 ‘난 나만의 답을 찾아가’고 이후 타로 중 한패를 연상시키는 ‘Three Of Cups’에서 자신들이 걸어온 다채로운 길을 회상하며 ‘사소한 농담들과 진지한 고민을 나누다 울컥 쏟아지는 생애 가장 눈부신 우리의 Light this night’를 부른 것처럼 말이다.
여자친구의 고전 비틀기는 부정적이라고 생각했던 단어를 부정하는 과정에서 ‘부정의 부정을 통한 긍정’을 이루어낸다. 이로 인해 tvN 드라마 ‘싸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고문영(서예지)의 대사 “나는 예쁜 마녀가 될래요.”가 연상되는, ‘청량 마녀’와 ‘현대적 마녀’처럼 이전까지 공존할 수 없었던 단어들이 화해한다. 여자친구가 신화적 모티프를 통해 가져온 역사의 뒤안길에 존재했던 여성은 ‘回’ 시리즈를 거치며 여자친구만의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이름을 부여받지 못하고 사라진 여성들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고, 욕망을 죄악시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세상이 부정적으로 바라본 그 모습으로 축제를 하는 현대의 마녀가 된다. 마침 불꽃이 피고 마녀들의 축제가 돌아왔으니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한 춤을 추자. 당신의 여자친구가 그 옆에 있을 테니.
글. 오민지
사진 출처. 쏘스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