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BE’는 지난 4월 17일 RM이 유튜브 채널 ‘BANGTANTV’의 ‘Log ( ON )’에서 제작 계획을 알리며 시작됐고, 11월 20일 공개됐다. 8월 21일 발표한 싱글 ‘Dynamite’가 빌보드 HOT 100 차트 1위를 하던 시점에도 멤버들은 앨범 작업 중이었다. 이 타임라인은 ‘Dynamite’가 싱글이 아닌 ‘BE’의 마지막 곡에 위치할 때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들이 ‘Dynamite’를 통해 우유 한 잔 마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외출할 수 있었던 과거 또는 언젠가 다가올 거라 믿는 미래를 통해 희망을 전하던 사이, 그들은 ‘BE’의 다른 곡들을 통해 무대 아래에서 그들이 실제로 겪은 심리적인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Dynamite’와 ‘BE’의 타이틀 곡 ‘Life Goes On’ 뮤직비디오 1절이 상반된 방식으로 정국의 방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Dynamite’ 뮤직비디오 속 정국은 빛이 들어오는 방 안에서 외출을 위해 신발 끈을 묶고 신나게 춤을 추지만, ‘Life Goes On’ 뮤직비디오 속 그는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BE’는 정국을 비롯한 방탄소년단의 멤버들이 ‘Dynamite’ 뮤직비디오에 비해 채도마저 낮게 표현된 그들 각자의 방에서 나와 ‘Dynamite’를 비롯한 팬데믹 기간의 각종 활동을 해나간 과정을 기록해나간다.

‘Dynamite’를 제외한 ‘BE’의 여섯 곡은 ‘Skit’을 분기점으로 세 곡씩 나뉘어 마치 ‘V’ 모양의 그래프처럼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심리 변화를 그려낸다. ‘끝이 보이지 않아 / 출구가 보이지 않아’라며 희망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일상을 어떻게든 버텨나가는 첫 곡 ‘Life Goes On’부터 ‘바로 지금 난 널 생각해 / 니가 어디에 있든지 / 그게 뭐가 중요해’라며 팬과의 만남을 강렬하게 원하는 ‘Stay’에 이르는 과정. 그사이 그들은 ‘내 방을 여행하는 법’처럼 활동 반경이 좁아진 일상을 ‘올해는 다 뺏겼어’라고 하면서도 ‘생각은 생각이 바꾸면 돼’라며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도 하지만, 이어지는 ‘Blue & Grey’에서 ‘여전히 모르겠어 서슬 퍼런 블루 / 잠식되지 않길 바래 찾을 거야 출구’라며 내면의 우울과 불안을 드러낸다. 반면 ‘Skit’을 지난 ‘잠시’에서 ‘매번 같은 하루들 중에 너를 만날 때 가장 난 행복해’라며 타인과의 만남에 대한 소망을 드러내고, ‘병’에서 그들의 일에 관한 복잡한 생각을 어떻게든 털어낸 뒤 ‘Stay’로 나아간다. 팬데믹 시대에 희망에 대한 확신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Dynamite’의 낙관은 이 과정을 거친 뒤에야 나온다.

‘Life Goes On’은 희망을 믿지도, 버릴 수도 없는 상태의 사람들에게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데 어쨌든 흘러가는 기분을 선사할 수 있다. 팬데믹 속 일상에서 어떻게든 긍정할 요소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내 방을 여행하는 법’에서 위로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BE’는 한 장의 앨범으로 들었을 때 팬데믹으로부터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전한다. 잔잔하게 흐르는 ‘Life Goes On’의 사운드가 무겁고, 느리고, 어두운 ‘Blue & Grey’를 거쳐 ‘잠시’로부터 ‘Stay’까지 점차 빠르고 경쾌해지며, ‘Dynamite’에서 쨍한 햇볕처럼 밝고 유쾌해지는 과정. 이것은 전 세계 음악 산업의 슈퍼스타인 방탄소년단이 겪은 감정적인 문제들을 간접경험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병’의 후반부에는 ‘자 일어나 one more time / 다시 아침이야 오늘을 나야 해 / 가보자고 one more night’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 순간 편곡은 분위기를 점점 더 고조시키며 곡의 클라이맥스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이어지는 ‘Everyday 나를 위로해 / 다 똑같은 사람이야 ain’t so special / Ay man keep one, two step 차분하게 모두 치료해보자고’에서 불꽃놀이처럼 곡의 가장 화려한 순간이 시작된다. 어떻게든 일의 의지를 다지는 동시에 그들의 감정적인 문제를 토로하는 순간이 곡의 클라이맥스로 가는 장치가 된다. 이 아이러니는 방탄소년단이 ‘BE’에서 선택한 화법이자, 그들의 현재다. 일과 일상에 관한 복잡한 생각들이 얽히지만 어떻게든 그것을 헤쳐나가려 하고, 그 과정의 에너지가 음악적인 쾌감으로 바뀐다.

‘BE’의 전작 ‘MAP OF THE SOUL : 7’의 타이틀 곡 ‘ON’에서 방탄소년단은 ‘나의 고통이 있는 곳에 내가 숨 쉬게 하소서’라고 했다. ‘MAP OF THE SOUL : 7’은 그들이 과거로부터 그 시점에 이르는 현재에 이르는 그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이었고, ‘ON’은 이 앨범의 수록곡 ‘Interlude : Shadow’의 내용 그대로 엄청난 인기만큼의 ‘Shadow’ 또한 등에 지고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BE’에 이르러 방탄소년단은 현재 진행형인 그들의 이야기를 앨범 전체에 걸쳐 털어놓는다. ‘병’에서 그들이 털어놓은 일에 대한 고민이 해결됐는지 알 수 없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처럼, 이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그들이 지금 이 순간에 ‘Blue & Grey’의 상태일지, ‘내 방을 여행하는 법’처럼 그나마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은 일을 ‘병’처럼 앓아내면서도 ‘잠시’와 ‘Stay’처럼 팬들을 향한 마음을 전하는 곡을 썼고, ‘Dynamite’를 위한 여러 무대에 서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낸 것이 분명하다. 방탄소년단은 ‘BE’에 이르러 그들의 무대 위아래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하나로 묶어 서사로 재구성한다. 아이돌로 시작한 팀이 어느덧 삶과 음악을 분리할 수 없는, 그들 자신이 곧 이야기가 되는 존재가 됐다.

‘BE’에서 곡을 구성하는 방식은 이 앨범에서 보여주는 방탄소년단의 음악적 변화와 연관된다. 멤버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면서 편곡은 멤버들의 가사와 멜로디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특정한 트렌드나 형식을 정하지 않고 멤버들의 파트에 따라 유연하게 변한다. 기타, 신디사이저, 베이스, 드럼, 피아노 등 실제 연주나 실제 연주에 가까운 톤으로 만든 사운드가 대부분인 편곡은 ‘내 방을 여행하는 법'이나 ‘Blue & Grey’처럼 멤버들의 파트에 따라 전개가 달라지는 구성에 적합하다. 이전 앨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든 소리의 숫자는 ‘Life Goes On’의 도입부에서 정국이 들이마시는 숨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릴 만큼 보컬에 보다 큰 비중을 부여한다. ‘내 방을 여행하는 법'에서 제이홉의 파트에서 가스펠적인 분위기가 연상된다면, 그것은 단지 신디사이저 연주가 가스펠의 느낌을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생각은 생각이 바꾸면 돼’를 부를 때 그의 목소리가 마치 자신이 받은 종교적인 감화를 고백하는 것처럼 절절하게 감정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Blue & Grey’에서 슈가가 랩을 하는 구간에서 그의 랩을 따라 드럼의 여러 파트가 하나씩 더해지며 전개를 바꾸는 것처럼, ‘BE’의 편곡은 멤버들이 파트마다 보여주는 변화에 섬세하게 대응한다.

이 과정에서 형식적인 모험도 등장한다. ‘Blue & Grey’는 후렴구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정하기도 애매할 만큼 하나로 길게 이어진 멜로디를 가졌다. 마지막에는 아예 후렴구가 사라지고 겨울밤에 들릴 것만 같은 어둡고 쓸쓸한 코러스로 마무리된다. 갑작스러운 변화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살짝 뒤로 물러나 공간을 울리면서 스피커의 좌우를 오가는 RM의 랩, 스산한 첼로나 가사에 따라 조금씩 울림을 다르게 주는 보컬의 녹음 등은 이 곡에 겨울밤의 공간을 가져온 것 같은 스산한 정서를 부여한다. 이는 ‘Life Goes On’이 시작부터 타악기 소리가 귀 바로 옆을 때리면서 입체감을 주고, 곡이 전개될수록 후렴구와 신디사이저 연주로 가상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방탄소년단의 이야기는 특정한 상황이나 심리 상태에 대한 고백에 가깝고, 그들의 이야기에 따라 멜로디의 전개와 랩 플로도 변칙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소리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공간의 분위기는 일관성을 유지한다. ‘Stay’는 EDM 스타일의 댄스곡이지만 갑자기 비트를 빼고, 다소 우울한 멜로디로 마무리한다. ‘Stay’가 정국이 만나지 못하는 팬과 공연하는 것을 상상한 곡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는 선택일뿐더러, 보컬을 비롯한 전체적인 사운드는 조금씩 흐릿해지면서 곡을 마냥 신나는 축제로만 연출하지 않는다. ‘잠시’는 ‘Dynamite’처럼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도입부에 귀에 잘 들어오는 훅을 제시한다. 하지만 ‘Dynamite’가 반복적인 멜로디와 리듬을 변주하며 후반으로 갈수록 폭발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는 반면, ‘잠시’는 점차 사운드 수를 줄여나가며 천천히 사라진다. ‘내 방을 여행하는 법’이 팬데믹 속 일상을 긍정하는 곡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고, 아무리 신나는 리듬을 입힌다 한들 ‘병’에서 이야기하는 일의 어려움을 다 극복하기는 어렵다. 마음대로 멈출 수도, 그렇다고 전력으로 달릴 수도 없는 삶 속의 복잡한 감정들을 방탄소년단은 멤버들의 파트 단위까지 다른 지점들을 살려 전달한다. 그럼에도 앨범은 전체적으로 일관적인 흐름을 갖도록 조율돼 있고, ‘Life Goes On’은 유연하게 흘러가는 멜로디의 흐름이 끊임없이 반복될 것 같은 후렴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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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t’에서 방탄소년단은 ‘Dynamite’로 빌보드 HOT 100 차트 1위를 한 다음 날에도 공연을 위해 데뷔곡을 연습하는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은 ‘Dynamite’로 빌보드 HOT 100 1위를 한 바로 다음, ‘Dynamite’와 정반대 편에 있는 것 같은 곡들로 앨범을 냈다. 삶은 반복되는 것 같지만 어느 날 변화하고, 달라진 삶은 똑같은 일에서도 다른 결과를 낳는다. ‘BE’는 그에 대한 답이 아닌 수용이고, K-팝에서 시작해 팝의 슈퍼스타까지 된 이 팀은 그 어느 쪽도 아닌 방식으로 그들만의 이야기를 앨범에 남겼다. 그러니까 ‘No More Dream’으로 시작해 ‘Dynamite’까지 온 방탄소년단이라는 팀이 다음에 무엇이 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들은 무엇이 되든, 그 과정을 팬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BE’ 다음에는 무엇을 적을지 공란으로 남겨도 되는.
글. 강명석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