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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성덕 (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Spotify

스트리밍의 중요성은 강조할 필요가 없다. 주요한 음악 소비 경로라는 표현은 겸손에 가깝다. 스트리밍은 지금 모든 아티스트와 레이블의 가장 중요한 수익원이다. IFPI(국제음반산업협회)의 2022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스트리밍은 글로벌 음반 산업 매출의 65%를 차지한다. 미국 시장만 보면, 스트리밍 비중은 84%에 달한다. 전 세계 음반 산업 매출은 디지털 음원의 등장과 함께 2001년 240억 달러에서 2014년 142억 달러까지 감소했다. 하지만 스트리밍이 부상하며 빠르게 회복한 매출은 2021년 259억 달러를 기록하며 새로운 정점에 달했다. 음원 다운로드는 단 한 번도 CD 등 실물 음반 시장을 압도한 적이 없다. 2021년 스트리밍 수익은 실물 음반 시장의 3배가 넘는다.

 

스트리밍은 음반 산업과 음악 소비를 근본부터 바꿨다. 과거 음악에 대한 지출이 음반 구입과 같은 뜻이던 시절을 생각해보자. 어떤 음악을 알게 되는 것과 그것을 소비하는 일은 분리되어 있었다. 라디오와 DJ는 새로운 음악을 선별하고, 비슷한 취향을 분류하는 기준이었다. 음반의 유통은 또 다른 종류의 산업이었다. 당신은 음반을 구입하고, 그 음반은 당신의 음악 라이브러리를 이루었다. 디지털 음원도 라이브러리라는 관념을 바꾸지는 못했다. “아이팟은 당신의 음악 라이브러리 전부를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어떤가? 무료 광고 모델이나 유료 구독 경제나 개별 지출이라는 문턱은 없다. 당신의 라이브러리는 의미가 없다. 당신은 1억 곡 이상을 언제든 들을 수 있다. 모든 감상 행위가 소비로 측정되고 매출로 연결된다. 이 모든 것이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스트리밍 플랫폼 안에서 벌어진다. 스트리밍은 MP3의 연장선이 아니다.

 

플레이리스트는 음악의 발견과 소비를 통합하는 서비스의 핵심이다. 모든 소비자는 빠르고 간편하게, 새롭고 흥미로운, 동시에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음악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완벽한 세상이라면 우리는 “시리야, 내가 좋아할 새로운 노래를 틀어줘.”라고 할 것이다. 현재 우리는 스포티파이의 알고리즘이 생성한, 디스커버 위클리(Discover Weekly)와 릴리즈 레이더(Release Radar)로 시작된 갖가지 개인 맞춤형 플레이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당신의 모든 감상 활동을 측정한다. 어떤 노래를 끝까지 듣는지, 중간에 넘기는지, 반복 재생하는지, ‘좋아요’를 누르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지 기록한다. 서비스가 당신의 취향을 발견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진다. 하지만 알고리즘 이전에 그 출발점에는 사람이 손수 만드는 (editorial)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스포티파이의 뉴 뮤직 프라이데이(New Music Friday) 혹은 애플뮤직의 뉴 뮤직 데일리(New Music Daily)와 같은 신곡 소개부터 각종 장르, 분위기, 활동에 맞는 플레이리스트가 1차적인 선택, 분류, 평가를 한다. 이른바 스트리밍 노출 전략이 시작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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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장르를 예로 들어, 뉴 뮤직 프라이데이(New Music Friday) 혹은 팝 라이징(Pop Rising)을 거쳐 투데이스 톱 히츠(Today’s Top Hits) 재생목록에 이르는 것은 일종의 공식적인 히트 경로다. 개인적으로 한국 외의 시장에서 K-팝의 존재를 가장 뚜렷하게 느낀 계기는 빌보드 차트 성적이 아니라, 언젠가 K-팝이 처음으로 뉴 뮤직 프라이데이(New Music Friday)의 1번 트랙과 커버를 장식했던 순간이다. 뉴 뮤직 프라이데이(New Music Friday)에는 400만 이상의 팔로워가 있고, 투데이스 톱 히츠(Today’s Top Hits)는 3,300만이다. 힙합 장르의 랩캐비아(RapCaviar)는 1,500만이다. 공식 플레이리스트가 성실한 음악 소비자 수백, 수천만 명에게 일시에 노출되는 기회가 되는 이유다. 알고리즘도 데이터가 쌓여야 축복을 내린다.

 

만약 인기 아티스트라면 어떤 시장에서든 노출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새로운 아티스트와 새로운 음악이라면 조금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전체 장르를 아우르는 뉴 뮤직 프라이데이(New Music Friday) 같은 플레이리스트보다는 장르 플레이리스트를 노리는 것이 쉽다. 새롭게 등장하는 틈새 장르에 완전히 부합하는 스타일이라면 작지만 더 확실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다양한 스타일의 리믹스는 더 많은 장르/분위기 플레이리스트에 등재될 수 있도록 한다. 요즘 앨범 발매에 앞서 오랜 기간 꾸준히 신곡을 공개하는 것도 스트리밍 시장 최적화의 일환이다. 예를 들어, 핑크팬서리스는 이 모든 과정을 거쳐 경력의 변곡점에 이른 가장 최근의 사례다. 당신은 조만간 모든 곳에서 그를 볼 것이다.

 

스포티파이조차 처음부터 플레이리스트가 이렇게 중요한 존재가 될 것이라 알지 못했다. 초기 스포티파이에게 플레이리스트는 사용자 간 취향을 공유하고, 서로 추천하는 도구였다. 2010년 이전 인터넷 서비스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공유’였던 것과 같다. 하지만 이제 플레이리스트는 단순히 시장 노출이 아닌 훨씬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 로렘(Lorem)은 Z세대의 취향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퀄(EQUAL)과 글로(GLOW)는 여성 아티스트와 성 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음악업계의 관심을 대변한다. K-팝에서도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된 하이퍼팝(Hyperpop)은 스포티파이의 재생목록으로 그 이름과 존재를 확립했다. 하이퍼팝은 대표적인 경우일 뿐이다. 스포티파이는 지역, 시대, 스타일에 따라 소위 ‘마이크로장르’를 분류하며, 이는 약 6,000가지에 이른다. 그중 대부분은 별도의 플레이리스트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스포티파이 검색 탭에서 하이퍼팝을 검색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스포티파이는 즉시 당신만을 위한 하이퍼팝 랩(Hyperpop Rap), 하이퍼팝 업비트(Hyperpop Upbeat), 앵그리 하이퍼팝(Angry Hyperpop) 마이크로장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줄 수 있다.

 

이는 쓸데없는 유난스러움이 아니다. 플레이리스트가 상업적 노출을 위한 매대가 아니라 우리가 음악을 즐기는 모든 방법을 대변한다는 증거다. 스포티파이 바깥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타이달의 플레이리스트 클래시컬 재즈(Classical Jazz)를 보자. 미국의 고전음악으로서의 재즈가 유럽의 클래식과 교류하는 지점을 어떻게 포착하고 하나의 독립된 흐름으로 인식할까? 백 마디의 글보다 듣는 것이 쉽다. 지금 우리는 싱글이나 앨범을 듣지 않는다.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 플레이리스트가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