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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지은,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임수연(‘씨네21’ 기자)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SBS

‘수학 없는 수학여행’(SBS) 

김지은: SBS 새 예능 프로그램 ‘수학 없는 수학여행’에서 동갑내기 지코, 크러쉬, 디오, 최정훈과 코미디언 이용진, 양세찬은 일본 홋카이도로 수학여행을 떠난다. 버스 안에서 시끌벅적 떠들며 시키지도 않은 내기를 하고, 자발적으로 벌칙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다가 어딘지 모를 도착지에 내린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지나가는 차의 번호판에 없는 숫자 맞히기’, ‘멤버 가족에게 전화 걸어 다른 멤버가 그 사람인 척 속이기’ 미션까지, 수학여행에서 한번쯤 할 것 같은 일들이 펼쳐진다. 여기에 더해 제작진은 코너를 설명할 때마다 “수학여행의 묘미죠.”라는 말로 운을 뗀다. 쇼핑으로 시작해서 숙소 정하기 게임과 쪽지 시험까지 전부 수학여행의 묘미라고 소개하는 건 물론이고 날씨가 갑자기 안 좋아진 것도, 시간이 늦어져 호텔에서 밥을 먹을 수 없게 된 것도 수학여행의 묘미라고 둘러댄다. 그러나 억지 같은 이 문장은 역설적으로 이들의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첫 만남 때 낯을 가리며 얼어 있던 크러쉬는 우스꽝스러운 ‘먹방’을 보여줄 정도가 되고, 지코는 빈티지 숍에서 생전 입어본 적 없는 화려한 황금색 패딩 점퍼를 입고 포즈를 취하는 디오를 보며 “경수 저런 거 한 번을 안 해본 앤데.”라며 흐느낀다. 예상할 수 없는 여행 일정에서 어색했던 친구와 점점 가까워지고, 친한 친구의 새로운 모습을 알아간다. 서로를 웃기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독방을 쓰고 싶어 하다가도 굳이 셋이서 작은 료칸에 들어가 온천을 하는 것도 ‘수학여행의 묘미’라는 말로 낭만이 된다. 이들은 첫날밤부터 숙소에 설치된 카메라에 ‘굿나잇’ 인사를 한 뒤 모든 카메라를 꺼버리고 제작진 몰래 파티를 한다. 그런데 하필 카메라 하나를 덜 꺼서 전부 걸리고 마는 것까지, ‘수학여행의 묘미’다.

‘Rising’ - 트리플에스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Y2K 콘셉트를 표방한 팀이 뉴진스 말고도 하나 더 있다. 트리플에스다. 뉴진스가 한낮의 외국인 학교 운동장 같은 이미지라면, 트리플에스는 ‘야자’를 ‘째고’ 놀러 나가는 심야 버스 같다. 곡의 인트로부터 1990년대 느낌이 물씬 나는 마이너 댄스 팝이다. 크레딧에 온앤오프의 ‘Moscow Moscow’나 레이디스 코드의 ‘Galaxy’ 등 우수에 찬 마이너 곡을 선보여온 모노트리의 GDLO가 보인다. 무심한 표정의 “La-la-la-la–la” 보컬 샘플 리프에서는 수잔 베가(Suzanne Vega)가 불렀고 DNA가 트립합으로 리믹스해 히트한 ‘Tom’s Diner’ 도입부가 떠오른다. 한국에서도 그 시절 광고 음악이나 라디오 신청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1990년대 영국에서는 트립합의 보컬뿐만 아니라 다이도(Dido)나 젬(Jem)처럼 낮고 멜랑콜리하면서도 도회적인 목소리의 여성 아티스트가 여럿 등장했다. 물론 트리플에스의 ‘Rising’은 그들보다는 훨씬 라이트하고 가뿐한 느낌의 댄스 곡이지만, Y2K에 히트한 여러 음악 중에도 여성 보컬이 강조되는 라디오 팝을 연상시키는 점이 특별하다.

‘이니셰린의 밴시’

임수연(‘씨네21’ 기자): 매일 오후 2시, 파우릭(콜린 패럴)과 콜름(브렌단 글리슨)이 이니셰린 마을에 하나뿐인 펍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은 무료한 섬마을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안식처다. 하지만 “남은 인생은 작곡을 하며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며 콜름이 돌연 절교를 선언하면서 두 사람은 단순한 절연 이상으로 참혹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매일 오후 2시 파우릭은 끈질기게 옛 친구의 집을 찾아오고, 콜름은 자신을 편히 내버려두지 않으면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협박한다. 대화를 갈망하는 파우릭과 예술과 창작에 가치를 두는 콜름은 삶의 의미를 각기 다른 곳에서 찾는 사람들이다. 인간의 태생적 외로움을 견뎌내는 상반된 방식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촉발할 수밖에 없고, 파우릭과 콜름의 비극은 관계의 허상과 한계를 차갑게 보여준다. 더불어 아일랜드 내전 막바지, 외부와 단절된 가부장 사회에서 촉발된 비극은 ‘이니셰린의 밴시’를 명분 없는 전쟁과 남성 유대의 취약성에 관한 우화로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 ‘21세기의 셰익스피어’라는 평가를 받았던 천재 극작가 출신 영화감독 마틴 맥도나가 ‘쓰리 빌보드’ 이후 내놓은 블랙코미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