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로 ‘입덕’했다는 언급을 많이 봐요.”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담당하는 빅히트뮤직 마케팅2팀 민예슬 팀장의 말처럼, ‘쇼츠에 떠서 계속 보다가 팬이 되었다.’는 반응은 최근 K-팝 팬들 사이에서 유튜브 쇼츠가 가진 영향력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쇼츠 론칭을 하고 나서 음악 팬분들이 유튜브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창작하는 방식 두 가지 다 바뀌었다고 보고 있다.”는 유튜브 음악파트너십팀 윤미정 매니저의 말처럼, 쇼츠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K-팝 팬들을 모으고 있다.
유튜브에 따르면 쇼츠는 지난 2022년 12월 기준 전 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500억 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같은 해 4월 기준 300억 회였던 것과 비교하면, 윤미정 매니저의 말처럼 “이용 수치가 정말 빠르게 늘고” 있다. 유튜브 쇼츠의 시청 시간 증가는 시청자들에게 더 많은 영상을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윤미정 매니저에 따르면 “알고리즘에 클릭수, 시청 시간, 검색 기록, 설문조사, 좋아요 등 다양한 시그널이 고려되는 것은 긴 동영상과 쇼츠가 똑같으나, 쇼츠가 워낙 많이 노출되고 시청이 되다보니 더 다양한 콘텐츠가 다양한 시청자들에게 폭 넓게 추천”될 수 있다. 쇼츠 콘텐츠를 시청하다 보면 전혀 관심 없던 분야가 뜨기도 하는 이유다. 게다가 쇼츠는 기존의 긴 영상과 달리 검색하거나 클릭하지 않아도, ‘스와이핑’하면 다음 영상이 바로 재생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심이 있든 없든 새로운 콘텐츠가 눈앞에서 자동으로 재생된다.
“쇼츠로는 추천된 콘텐츠를 보는 케이스가 많기 때문에 팬덤 외까지 도달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우리 팬분들이 전혀 아닌 분들이 볼 때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려고 해요.” 민예슬 팀장의 말은 쇼츠의 특징 속에서 형성된 쇼츠 콘텐츠의 문법을 짐작케 한다. 이는 쏘스뮤직 마케팅팀 정지혜 담당자가 “쇼츠에서는 더 친근하고 있는 그대로의 편안한 모습과 개인의 매력을 좀 더 보여주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르세라핌의 자체 콘텐츠 ‘DAY OFF’의 한 장면을 업로드한 쇼츠 콘텐츠 ‘🍊귤로 알아보는 MBTI (feat. 핌둥이들)’에 대해 정지혜 담당자는 “‘DAY OFF’ 중에 르세라핌 멤버분들이 편안하게 밥을 먹으면서 MBTI N과 S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실제 멤버분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포인트라 더 관심을 갖고 공유까지 해주신 것 같아요.”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해당 영상의 댓글창에는 멤버들에 대한 반응과 함께 각자의 MBTI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기존에는 곡이나 아티스트에게 관심이 생겼을 때 검색을 해야 했다면, 이제 쇼츠를 보다가 관심이 생기면 바로 음원이나 뮤직비디오, 풀 영상으로 연결이 가능해요.” 윤미정 매니저의 말은 숏폼 경쟁 시대에 쇼츠가 지닌 차별점이자 강점을 설명한다. 유튜브는 ‘멀티 포맷 플랫폼’으로, 롱폼 영상부터 라이브 스트리밍, 음원, 쇼츠까지 다양한 포맷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운영된다. 예능이나 드라마는 물론이고 음악까지 숏폼으로 먼저 접한 후 본 콘텐츠를 소비할지 말지 선택하는 시대다. 그리고 그 선택을 끝냈을 때 다음 행동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는 곳이 바로 유튜브다. 그래서 분야를 막론하고 수많은 유튜브 채널이 본 콘텐츠의 핵심 장면이나 요약본을 쇼츠로 제작한 뒤 유입을 유도하듯, K-팝 콘텐츠도 쇼츠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예컨대 쇼츠에 삽입된 음악이 마음에 들었을 때, 우측 하단의 버튼을 눌러 공식 뮤직비디오나 음원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지금 보고 있는 쇼츠와 동일한 음악으로 만든 다른 쇼츠를 찾아볼 수도 있고, ‘리믹스’ 기능을 활용하면 해당 음악으로 직접 쇼츠를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서 클립 쇼츠는 ‘본편에서 확인하세요’ 등의 홍보 문구로 끝나고, 고정 댓글로 본편 링크를 달아두기도 한다. 기존에 유저들을 사로잡기 위해 제목과 섬네일이 중요했다면, 쇼츠는 그 자체로 ‘후킹’의 역할을 한다. 프라우드먼, 라스의 ‘RUN RUN’ 릴레이 댄스 영상에서 댄서 모니카가 달리는 구간을 자른 쇼츠는 5월 2일 기준 735만 회로, 업로드 약 두 달 만에 M2 채널의 쇼츠 중 가장 높은 조회 수를 달성했다. 쇼츠가 화제를 모으면서 본편의 조회 수도 급증했고, ‘런런 챌린지’를 유행시켰으며, 해당 쇼츠는 댓글 모음 쇼츠로 다시 제작될 정도였다. ‘RUN RUN’의 무대 영상과 공식 퍼포먼스 영상에는 쇼츠에서 보고 찾아왔다는 반응이 많다. 해당 영상의 화제에 대해 엠넷 디지털 스튜디오 이한형 총괄CP는 “구간을 선정한 포인트가 잘 맞았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K-팝 콘텐츠는 K-팝을 이해하기 전에 K-팝을 좋아하는 팬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그의 말처럼, 팬을 끌어모을 포인트로 제작한 쇼츠가 알고리즘을 통해 대중에게 발견되고, 이후 본 콘텐츠와 아티스트로의 유입이 가능해지는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K-팝과 관련된 유튜브 쇼츠 영상은 팬덤 바깥까지 퍼지길 바라고 제작하되, 팬덤을 반응의 시작점으로 삼는다. 정지혜 담당자는 르세라핌의 자체 콘텐츠에서 쇼츠로 만들 만한 장면을 “하트 필터로 캐치한다”. 이한형 CP가 쇼츠 콘텐츠를 만들 때 “정말 100% 팬의 입장에서 제작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의미다. 이한형 CP가 ‘릴레이댄스’나 ‘입덕직캠' 콘텐츠를 쇼츠 콘텐츠로 만들 때 실력 이전에 팬들이 좋아할 수 있는 매력을 가진 부분을 고르는 이유다. “춤을 너무 잘 추는 모습보다도 뭔가 매력 있는 모습이 팬이 아닌 사람들을 팬으로 되게끔 하는 데 미끼”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STAYC의 ‘Poppy’ 릴레이 댄스 영상은 노래나 춤이 아닌 촬영 중 재이의 고양이 귀 핀이 떨어지는 과정에 초점을 두어 편집한 ‘[실제상황] 릴댄 촬영 중 귀가 떨어진다면? 장재이 귀없다(!!)’ 쇼츠로 재탄생했다.
그래서 K-팝 쇼츠 영상은 제작자가 누구든 팬의 관점에서 제작한 ‘덕질’ 영상에 가까워지곤 한다. 쏘스뮤직 마케팅팀은 “실제로 팬분들이 평상시에 언급하는 내용들을 주로 쇼츠로 제작”하고, 심지어 M2에서는 “실제로 그 아티스트에 애정이 있는 팀원이 편집을 담당”한다. 이미 K-팝 팬들은 ‘무보수 크리에이터’라고 불릴 정도로 공식 영상을 재가공하여 새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하는 ‘영업’ 활동을 한다. 쇼츠에서는 공식 계정이 직접 그 일을 하는 셈이다. 일례로 빅히트뮤직 마케팅2팀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자체 콘텐츠 ‘TO DO’ 예고편으로 멤버들을 짝사랑하고 있는 학교 선배처럼 편집해 ‘교복바이투게더_첫사랑재질.mp4’이라는 제목으로 업로드했다. 해당 영상에서 가장 좋아요를 많이 받은 댓글은 한 팬의 ‘팬 채널인 줄 알았는데 공식 채널이었다.’는 내용의 댓글이다. 제목에 팬 용어를 쓰거나 멤버를 ‘덕질’하듯 편집한 공식 쇼츠 영상에 달리는 ‘당연히 팬이 만든 영상인 줄 알았는데 공식이라니.’, ‘편집자가 팬이 분명하다.’, ‘이 별명을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등의 반응은 쇼츠의 문법이 가진 특징을 보여준다.
유튜브에 따르면 매월 쇼츠 콘텐츠를 시청하기 위해 유튜브에 로그인하는 시청자는 15억 명에 달한다. 콜랩아시아는 유튜브 시청 뷰의 88.2%가 쇼츠에서 발생한다고 측정했다. 영상 1편의 시청 시간이 2분에서 1분으로 감소함과 동시에 시청 시간은 2.3배가 늘었다. 한 시청자가 10분 길이의 유튜브 영상을 한 편 보는 것보다 60초 분량의 쇼츠를 10회 이상 보는 빈도가 늘었다는 의미다. 쇼츠의 입지가 점점 커지면서 쇼츠만 제작하는 크리에이터들도 등장했다. 이한형 CP와 정지혜 담당자는 모두 ‘오리지널 쇼츠’의 입지를 더욱 늘려갈 예정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쇼츠의 소비가 많아지고 그 영향이 커지면서, 쇼츠는 다른 콘텐츠의 ‘미끼’가 아니라 독립적인 콘텐츠로 발돋움하고 있다. M2의 새 웹 프로그램 ‘오지구영’은 상징적이다. 이한형 CP는 이 프로그램을 “현재 쇼츠에서 토크형 콘텐츠의 명장면이 화제되는 흐름에 대응해서 기획한 콘텐츠”라고 설명한다. 롱폼 콘텐츠에서 재밌는 장면을 선정해 쇼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쇼츠로 제작할 내용을 미리 정해서 그걸 하나의 영상으로 만든” 게 ‘오지구영’이다. 그래서 “대본의 구성과 편집 방식 모두 쇼츠로 풀 걸 계산하고 제작”했다. ‘오지구영’ 1화 더보이즈 편의 쇼츠는 13개나 된다. “쇼츠가 처음 론칭되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쇼츠를 통해 더욱 풍성하게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는 윤미정 매니저의 말처럼, 쇼츠는 유튜브 콘텐츠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쇼츠는 쇼츠로 끝나지 않는다. 쇼츠는 누구나 가볍게 즐길 만한 소재를 다루는 숏폼 콘텐츠인 동시에 그 뒤에 존재하는 거대한 세계로의 초대장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은 ‘스와이핑’을 하며 콘텐츠를 쉽게 소비하다가도 특정 콘텐츠에 흥미가 생기는 순간 유튜브에 ‘아카이빙’되어 있는 다른 포맷에 접근할 수 있다. 윤미정 매니저가 “다른 숏폼과 달리 쇼츠 콘텐츠는 휘발되지 않는다.”고 한 이유이자 정지혜 담당자가 쇼츠를 “시청자들이 ‘록 인(Lock-in)’돼서 계속 보게끔 하는” 플랫폼이라 분석하는 이유일 것이다. 쇼츠는 유튜브 내 콘텐츠들을 서로 연결하고 그 고리에 시청자를 가둔다. 윤미정 매니저에 따르면 실제로 롱폼과 쇼츠를 함께 업로드하는 채널이 그렇지 않은 채널 대비 시청 시간이나 구독자 성장 폭이 가파르다. 여러 포맷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에서, 쇼츠는 콘텐츠나 채널을 ‘영업’해야 하는 제작자에게는 유입의 동선을 짜기 쉬운 공간이자,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흥미를 발견하고, 그 동선을 따라 콘텐츠를 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매개체가 됐다.
드라마는 한 시간 요약본으로 보고, 영화는 빨리감기로 장면을 넘겨가며 보는, 이른바 ‘시간 가성비’를 따지는 시대다. 콘텐츠에 대한 가치 판단은 원천 콘텐츠를 소비하기 전에 이미 결정나는 것이 점점 일반화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K-팝은 이한형 CP의 말처럼 “아티스트가 ‘제일’ 잘한 부분, ‘가장’ 매력 있는 부분”을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매체다. 그래서 쇼츠는 마치 K-팝의 오래된 미래 중 하나처럼 보인다. 지난 1990년대부터 미디어의 변화에 따라 적응해온 K-팝이, 아티스트의 매력을 초 단위로 분석하는 팬들이 가장 쉽게, 많이 즐길 수 있는 형식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와 만났다. 누군가 지금 무료한 마음에 K-팝 아티스트의 쇼츠를 한 번 보게 되면, 그때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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