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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Zior Park 인스타그램

지올 팍은 어디에나 있다. 그는 2월 16일 공개한 EP ‘WHERE DOES SASQUATCH LIVE? PART 1’의 타이틀 곡 ‘CHRISTIAN’으로 소셜 미디어 피드의 알고리즘을 정복하고 음원 스트리밍 차트에서의 역주행 흥행에 성공했다. 3월 26일 기준 멜론 차트 9위, 유튜브 뮤직 2위, 유튜브 인기 뮤직비디오 2위 등 정점을 찍었고, 2019년 출연했던 MBC ‘놀면 뭐하니?’에 금의환향하며 재출연했다. 과거부터 그의 활동을 지켜본 R&B 장르 팬부터 숏폼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이끌려 처음 이름을 들어본 대중까지 모두가 이 독특한 음악가를 이야기한다. 2018년 첫 싱글 ‘Benefits’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발을 디딘 인물이지만 여전히 낯선 존재다. 마치 앨범 커버 속 주황색 털북숭이 사스콰치 혹은 빅풋과 같다. 목격담은 전해지나 정체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지올 팍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단적이다. 흉내내기 어려운 강한 개성과 강렬한 분위기, SNS 바이럴 마케팅을 통한 급상승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부추긴다. 하지만 지올 팍의 음악은 이미지에 경도되지도, 소수의 취향에 매몰되지도 않았다. 그를 향한 혐오는 익숙한 감각을 비틀어 노래하는 뮤지션과 변화한 미디어 시장을 누리면서도 새로운 성공 사례를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언캐니(Uncanny)다.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지올 팍은 자기 영감의 원천으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윌리 웡카,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 퀸, 크루엘라를 꼽았다. 이들은 어린 시절 지우고 싶은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거나, 새로운 모험을 지속하기 위해 담대한 마음가짐으로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놓는 천재와 괴짜들이다. “어릴 적부터 착한 주인공이나 전형적으로 강한 영웅은 별로 안 좋아했어요. 일반적인 것들을 싫어했고, 괴짜라든지 4차원이라든지 하는 말이 칭찬처럼 들렸어요.라는 대답에서 알 수 있듯 지올 팍은 데뷔부터 지금까지 평범하고 지루한 것들과는 거리를 뒀다. 그의 음악 세계는 손수 쓴 각본과 프로듀서 로킷맨(Rockitman), 기타리스트 김한빈, 오하이오피쉬(OHIOFISH)와 함께 제작한 음악의 세트장에 아트 디렉터 썬번키즈(Sunburnkids)와의 협업으로 제작한 캐릭터를 주연 배우 삼아 중성적인 보컬과 랩을 연출하여 촬영하는 한 편의 영화다. 이 지점에서는 2013년 ‘Red Light’와 2017년 ‘OO’로 자신의 작업을 영화에 빗댄 자이언티의 활동이 연상되나, 지올 팍은 직접적으로 영화의 문법을 호명하지 않고 창작한 세상 속 주연 배우의 역할에 흠뻑 몰입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2020년 처음으로 발표한 믹스테이프 ‘Thunderbird Motel’은 명확한 분위기가 있는 콘셉트 앨범이다. 번쩍이는 번개처럼 문득 찾아오는 공포와 절망, 이해될 수 없는 슬픔과 현실 도피의 감정을 지올 팍 자아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가상공간에서 오싹한 호러 장르로 그린 작품이다. 이때부터 지올 팍의 음악을 장르로 구분짓는 것은 무의미했다. ‘Penguin’이나 ‘Unicorn (Feat. Wunderkid)에서는 랩과 보컬을 오가며 힙합에 충실하다가도 ‘Distance To The Suicide’나 ‘Lonely Diver’는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가 떠오르는 R&B였으며 앨범의 문을 닫는 ‘Land’는 The 1975 재질의 팝 록이었다. 이 같은 종합 엔터테인먼트는 2021년의 ‘SYNDROMEZ’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확장된다. 이 앨범으로 지올 팍은 그의 상징이 된 주황 머리와 꼭두각시 인형, 독특한 뮤직비디오 등 비주얼 요소를 본격적으로 앞세우며 ‘MIRAGE’와 ‘MODERN FOX’ 등 경쾌한 록 기반 사운드와 모순의 세상 앞에 무기력한 자아로 일관하는 ‘BLACK FIN’에서 보이는 허무주의 중심의 가사 문법을 확립했다.

 

여기까지만 살펴봐도 지올 팍이 갑자기 튀어나온 별종이거나 바이럴 마케팅의 수혜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CHRISTIAN’은 아주 작은 기폭제였을 뿐이다. 노래가 나온 다음 날 나는 지인들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태원에 위치한 모 바에서 뮤직비디오 의상을 입고 노래를 열창하며 파티를 즐기는 지올 팍의 영상을 봤다. 발매 하루 만에 나온 노래임에도 현장의 모든 이들이 간단한 멜로디에 금방 적응하여 중독적인 후렴을 따라 외치고 있었다. 익명의 팬이 촬영한 실황 영상은 유튜브에서 31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올렸고, 지올 팍의 팬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신선한 콘셉트를 호평하는 댓글을 남겼다. 간결한 피아노 리프와 쉽게 각인되는 멜로디 라인을 바탕으로 펑키한 리듬의 버스와 정적인 훅을 대비하는 곡은 매력이 있었다. 커리어에서 암시했던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I’m still f***ing christian / Though I’m wearing new “Christian””이라는 세속화된 후렴으로 풀어 도발과 반항의 메시지를 가미하고, 이를 초현실적인 파티와 숏폼 알고리즘 재질의 핵심 안무를 결합한 뮤직비디오로 여러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 것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 때문에 곡은 심각하지만, 재치 있고, 가볍게 들을 수 있지만 찝찝한 양면성을 지니게 됐다. 약간의 홍보가 더해지고, 수많은 인터넷 크리에이터들이 노래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가사 해석, 패러디, 종교인이 바라본 뮤직비디오 해석, 안무 챌린지가 뒤따랐다. 언더독이 주류의 파티장에 난입했다.

‘CHRISTIAN’은 틱톡이 주도하는 숏폼 플랫폼 전성기, 혼란스러운 사회를 살아가는 Z세대가 콘텐츠 제작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2020년대 숏폼 시대의 버블검 팝이다. 음악 시장의 흐름을 주목하며 새 음악가들을 받아들이는 얼리 어답터들에게 지올 팍의 성공은 생소한 결과가 아니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등장인물은 사스콰치처럼 상상의 동물, 미지의 존재로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소셜 미디어 바이럴이 오로지 마케팅의 승리로 폄하받으며 분명한 개성과 음악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아티스트가 재능을 강변하는 조리돌림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음악이 대단히 낯설고 이 세상에 없었던 것이 아닌데 온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도한 반감과 불쾌감을 표출하는 흐름을 목격한다. 있는 것을 부정한다고 없는 것이 되는 건 아니다. 지올 팍은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