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푸른 멍이 들지라도 뜨겁게 피어나는 계절. 사쿠라에게 그 계절은 영원할 것이다.

TVING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에서 세 번째 데뷔를 위해 한국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제 도망갈 길이 없다.”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는데, 르세라핌으로 활동한 지 1년이 지났어요.

사쿠라: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ANTIFRAGILE’을 연습할 때도 ‘이번 곡이 잘 안 되면 우리는 정말 갈 길이 없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했고, 연말 무대에 섰을 때도 거의 잠도 안 자고 매일 연습해서 의전팀분들이 이제 퇴근했으면 좋겠다고 연습실로 찾아오실 정도였어요.(웃음) 그런데 힘들지 않았어요. “르세라핌 무대 잘한다.”, “팀 분위기가 좋다.” 이런 말들을 많이 들어서인지 고생한 보람이 있었어요.

 

‘ANTIFRAGILE’ 가사 그대로 “가시밭길 위로 riding” 하면서 이뤄낸 결과네요.(웃음) 지난 연말에 ‘멜론뮤직어워드’의 ‘The Hydra + Trailer’ 무대에서 사쿠라 씨가 전면에 나와 퍼포먼스를 보여주거나, ‘SBS 가요대전’에서 센터 위치에서 독무를 선보이는 것처럼 인상적인 순간이 많았어요.

사쿠라: 연말 무대의 센터에서 춤을 추거나 중요한 역할을 맡는 건 정말 꿈도 꾸지 않았던 일이에요. 다른 분들의 무대를 보면서 ‘우와, 정말 멋있다. 저 분들은 무대를 정말 잘하는구나.’ 이렇게 제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아티스트분들을 마주치면 무대가 좋았다고 인사해주시고, 제이홉 선배님과 싸이 선배님도 ‘골든디스크어워즈’에서 마주쳤을 때 칭찬해주시고, 무엇보다 피어나들도 좋아해줬어요. 그런 칭찬을 듣는 팀에서 활동한다는 게 자랑스러웠어요.

 

이전에 ‘팅글 인터뷰에서 듣고 싶다고 한 질문을 여쭤보자면(웃음) 최근 연말 무대나 연습을 모니터링하면서 ‘나 좀 잘했다.’라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사쿠라: 인생 무대는 ‘멜론뮤직어워드예요. 볼 때마다 ‘아, 이때 이렇게 했구나. 다음에 이렇게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찾아보는 영상이 됐어요. 연습할 때는 아쉬운 점들이 있었는데 막상 무대에서 잘해냈다고 생각해서 좋아하는 무대예요.(웃음)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퍼포먼스도 완성도가 정말 높더라고요. 첫 파트부터 각자의 바이브를 보여주는 동작을 5명이 군무로 맞추면서 시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사쿠라: ‘ANTIFRAGILE’이나 ‘UNFORGIVEN (feat. Nile Rodgers)’이 에너지로 표현하는 퍼포먼스라면,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는 테크닉적으로 어려운 퍼포먼스라 멤버들과도 르세라핌 안무 중에서 제일 어렵다고 이야기했어요. 즈하랑 그 스텝만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연습해서 다음 날 거의 걷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확실히 연말 무대들을 준비하면서 실력이 늘었는지 전보다 시간이 부족해도 금방 서로 맞추고 해내더라고요. 이제는 르세라핌의 무대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우리가 르세라핌입니다.’, ‘우리 무대 보고 있지?’ 이런 마인드로요.(웃음)

 

‘UNFORGIVEN (feat. Nile Rodgers)’이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퍼포먼스에서 자신감 넘치고 무심한 표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던데, 그런 마인드가 영향을 줬을까요?

사쿠라: 연습할 때는 너무 어려웠지만 르세라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음악과 무대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전까지 저는 우아하고 예쁜 표정을 가장 많이 표현해왔고 또 가장 잘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표정은 노력해서 표현한다면, 무심한 느낌은 원래 제 성격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인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곡을 연습할 때 즐거웠어요. 

앨범 전반적으로 사쿠라 씨의 보컬에도 힘이 생겼어요. 발성이 이전보다 열리고 표현이 풍부해졌는데, 전과 다르게 접근한 부분이 있었나요?

사쿠라: 타이틀 곡도 그렇고 멋있게 불러야 하는 노래가 많아서 자신감을 가지고 부르려고 했어요. ‘Fire in the belly’ 같은 노래도 열정이 가득한 분위기라 거의 소리 지르듯 부르거나 성대를 조여야 하는데, 그런 노래를 부를 때 불안하면 아예 안 되거든요.

 

불안은 어떻게 없앨 수 있나요?

사쿠라: 그냥 스스로를 세뇌하는 느낌이에요.(웃음) ‘할 수 있다. 나는 잘할 수 있다.’(웃음) 이렇게 계속 되뇌는.

 

대중 앞에 계속 노출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불안을 지속적으로 다뤄야 하잖아요. 그런 사쿠라 씨가 ‘UNFORGIVEN (feat. Nile Rodgers)’의 “I’m a villain”,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의 “I’m a mess” 같은 메시지를 르세라핌에서 표현하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요?

사쿠라: 욕심이나 숨겨야 한다고 여겨지는 감정들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면서 에너지를 전하는 게 르세라핌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이전부터 그런 무대를 하고 싶었어요. 천사 같고, 예쁘고, 귀여운 모습을 표현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사람의 내면에 좋은 감정만 있진 않으니까요. 그리고 ‘겁도 없꾸라를 하면서 마음이 더 편해졌어요. 그 프로그램에서는 정말 솔직하게 하고 있거든요.(웃음) 카메라 앞에서 “힘들다.”, “퇴근하고 싶다.”, “춥다.”, “안 하고 싶다.” 그런 말들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런 솔직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인간미 있다고 말해줘서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느꼈어요.

 

이번 앨범 핵심 메시지가 “We dont have to be forgiven”이잖아요. 이 산업에서 오래 활동해온 사람이 용서받을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말하는 것도 의미가 큰 것 같아요.

사쿠라: 누구에게나 일부의 모습만으로 평가받고 오해받는 경험이 있잖아요. 저는 저대로 그냥 살아왔는데, 그런 저를 착각하고 오해했던 사람이 갑자기 일부만 보고 ‘생각보다 괜찮네?’ 이러는 경우가 있어요. 작은 행동 하나만 보고 칭찬했다가 또 다른 일로 나쁜 말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 사람들에게 용서받으려고 열심히 사는 건 아닌데 ‘왜 갑자기 용서를 해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Unforgiven’이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정말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제 앞에는 저를 좋아해주는 피어나도 있고, 같이 달려가자고 손잡는 멤버들도 있고, 힘이 되어주는 스태프분들도 있어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어요.

 

‘겁도 없꾸라에서 아이돌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박성웅 배우에게 “(아이돌은) 이렇게 웃고 있어야 한다.”라는 팁을 주기도 했었어요. 이 산업에 오래 몸담은 사람으로서 아이돌이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고민도 있었나요?

사쿠라: 사실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건 무대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팬들에게 진심을 이야기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기도 해요.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스케줄을 하고 있는데 힘들다고 웃지 않거나 개인적인 감정이 앞서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이돌뿐만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가진 분들도 아무리 힘들어도 웃어야 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제 일은 웃고 있어야 하는 직업이 맞다고 생각하고, 진짜 내 모습과 감정을 보여주는 시간은 무대 위에 있을 때라고 생각해요.

 

프로로서 이 직업에 필요한 태도와 무대 위에서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구분하는 거네요.

사쿠라: 맞아요.(웃음)

그게 르세라핌의 정체성 같아요.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유쾌한 에너지를 유지하면서 나아가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사쿠라: 저희는 모두 온도가 같은 사람들이에요. 저와 채원이가 먼저 데뷔했던 경험이 있지만 윤진이도 데뷔 전까지 많은 일들을 겪었고, 즈하도 발레를 하다 데뷔를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고, 은채도 그렇고요. 모두가 그렇겠지만 저희는 여기 오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고, 쉽게 살아오지 않았던 사람들이라 정말 더 높이 가고 싶어 해요. 이렇게 모두의 온도가 같은 건 정말 어려워요. 설령 같은 마음이라 해도 매 순간에 대한 열정이나 태도는 모두 다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 다섯 명이 르세라핌이라는 건 정말 복 받은 일이에요.(웃음)

 

“私と同じ炎を持った君がいるということを(나와 같은 불꽃을 가진 네가 있다는 것을)”. ‘Burn the Bridge’에서 사쿠라 씨의 내레이션이 생각나네요. 풍부한 감정 표현이 인상적이었어요.

사쿠라: 평소 내레이션을 언젠가 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만큼 좋아하고 관심이 있어요. ‘Burn the Bridge’ 녹음은 두세 번만에 마무리했어요. 피디님들이 제게 “우리는 일본어를 모르지만 왠지 눈물날 것 같다.”라고 말씀하셔서 기분이 좋았어요.(웃음) ‘The World Is My Oyster’나 ‘The Hydra’까지는 ‘나, ‘I’, ‘私は’ 같은 주어들이 강조되어서 혼잣말이기도 했고, 속으로는 확신이 없고 두렵지만 강해지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Burn the Bridge’에서는 주어가 ‘우리로 바뀌었고, 함께 달려가는 멤버들이 생기면서 희망적인 말들이 많아졌어요. 강해지고 든든해진 느낌이에요. ‘UNFORGIVEN TRAILER Burn the Bridge를 촬영할 때도 상처를 입은 상태로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멤버들을 만나기 전에 혼자 활동하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표현했어요. 이미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아프지도 않고, 스스로를 포기해버렸지만 아이돌이기 때문에 미소는 짓고 있는 그런 느낌으로요.

 

하지만 멤버들을 만난 다음 짓는 미소에는 행복이 담겼죠.

사쿠라: 맞아요. 멤버들과 손을 잡고 함께 달리는 장면들이 마치 영화 같았어요. 지금까지 제가 나온 영상 중에서 이번 트레일러가 제일 좋아하는 영상이 됐어요.(웃음)

 

평소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말씀하시지만, 사쿠라 씨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여전히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멤버들과의 유대감도 그렇고,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겁도 없꾸라에서 데프트 선수를 비롯해 여러 출연진들에게 깊은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그렇고요.

사쿠라: 사람을 사랑하는 건 사실 저도 사랑을 받고 싶어서예요. 제 직업은 사람을 대하는 일이고,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상대방에게 한 태도가 저에게 똑같이 돌아오니까요. 그리고 ‘겁도 없꾸라에서 뵙는 분들은 다른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룬 분들이라, 평소 일을 할 때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래서 그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어떤 시간을 거쳐 오셨는지가 궁금해서 대화를 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있어요.

“도전하려고 태어났다.”라고 말할 정도로 야망이 큰데, 르세라핌에서만큼은 개인적인 욕망보다 팀에 대한 애정이 훨씬 커 보여요. ‘2022 멜론뮤직어워즈 비하인드에서 카즈하 씨의 무대를 보고 진심으로 칭찬해주거나, 이른 데뷔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던 은채 씨에게 “운도 실력이야.”라고 위로한 것처럼요.

사쿠라: 멤버들의 일은 제 일처럼 느껴져요. 멤버들이 무언가를 해내면 제가 한 것처럼 기분이 너무 좋고 뿌듯해요. 그리고 혼자서 큰 꿈을 이루려고 하는 건 너무 외로워요. 혼자 목표를 이루면 그게 100%라도 100%밖에 안 되는데, 지금처럼 5명이 같은 온도로 꿈을 향해 달려가면 500%가 되고 더 크게 될 수도 있잖아요. 이전부터 멤버들과 오랫동안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팀을 원한 이유예요.

 

그 팀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사쿠라: 물론 아이돌은 이상적인 롤모델이기도 하지만, 저는 르세라핌이 팬들과 함께 살아가고 성장하는 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부족하지만 점점 나아가고, 고민이나 힘들었던 일도 이야기하고, 괜찮다고 위로도 해주는 그런 팀이요. 함께 살아가는 사람처럼 피어나들의 곁에 있어주는 팀이 되었으면 해요.

 

팬 미팅 ‘FEARNADA’에서 생일을 맞아 일본 활동 당시 불렀던 ‘夢で Kiss me’를 멤버들과 함께 노래했어요. 그 시절을 바라보고 지금까지의 성장을 돌이켜보면 어떤 기분인가요?

사쿠라: 앞만 보고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시간이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에겐 모든 순간이 청춘이고, 저의 청춘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夢で Kiss me’를 부르던 때도 청춘이었고, 저희를 보고 있는 피어나도 청춘이고, 르세라핌으로서의 지금도 청춘이고, 아이돌 생활이 끝나도 청춘은 계속될 거예요. 그런데 무언가를 위해 타오를 수 있는 시간은 인생에서 길지 않아요. 언제나 열심히 살아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겁도 상처도 많아지니까 그 농도는 다를 거라고 생각해서 모든 청춘을 기억하고 싶어요. 힘든 순간까지도요.

 

‘Flash Forward’의 가사가 떠오르네요. 미래의 장면이 정해져 있는 영화처럼, 설령 예정된 결말이 있을지라도 계속 나아가겠다는 내용이잖아요.

사쿠라: 최근에 위버스에 메모를 올렸는데, 과거의 괴로운 일들을 잊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그 글을 썼어요. 돌이켜보면 힘든 순간이 정말 많았는데 이젠 잘 생각나지 않아요. 이겨냈다기보다는 그냥 잊어버린 느낌. 그러면 그때의 제가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힘든 순간도 그대로 기억하고 싶었어요.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는 시간 여행을 해서 원하는 순간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그때의 선택을 바꾸면 미래도 바뀌어요. 사쿠라 씨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사쿠라: 지금까지 한 선택들 중 하나라도 달라지면 지금의 제가 사라지잖아요. 그러니까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Credit
글. 김리은
인터뷰. 김리은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오민지
사진. LESS / Assist. 이수정, 박순석
아티스트 의전팀. 김형은, 김아리, 손나연, 신광재, 김현호, 박한울